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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주현절(4-2) - "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 / 설주일 / 오정석 목사

관리자 2022-01-27 (목) 11:42 2년전 535  

본문) 미 6:1~8, 1:16~27, 7:13~23


주현절 넷째주일이고 설주일 아침입니다. 설 주일을 맞아 새해 복많이 받고, 누리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묵상하면서, 문득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존재들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설 명절에 친지와 가족들 만날텐데,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떤 구별된 모습이 있어야 할까도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본다면, 여러 갈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갈래의 모양이든,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들인 셈이죠.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처지를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등의 위협이 있더라고 그 무엇도 그리스도인들을 예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8:35)고 전합니다.

 

오늘 서신서 말씀인, 야고보서에서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이란 어떤 존재인지 이렇게 정의를 내립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1:18)

 

그리스도인들의 시작과 근본은 하나님이란 말이죠. 물론 모든 피조물의 시작과 근본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과 그들의 역사 속에서 첫 열매로 삼으신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준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창조하셨고, 함께하시면서,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뜻을 끊임없이 세상에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위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첫 열매로써, 하나님의 뜻을 만천하에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 겠죠. 야보고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첫 열매로써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현절 셋째주일인 지난 주일에, 율법에 대한 주님의 가르치심을 들었습니다. 율법을 조항으로 봤던 유대교 지도자들과는 다르게 예수님은 율법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래서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로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율법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그 살려내는 사랑을 완전하게 이루기 위해 오셨음을 확고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율법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결코 없어지지 않고 이뤄질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끊임없이 나의 현 위치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 길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면 정진해야 하고, 또한 그 방향이 점점 하나님과 멀어져가는 길이라면, 용기 내어 하나님의 뜻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칭찬하실 때, 가장 인상깊은 말씀은,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13:22)이라는 표현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칭찬에 걸맞게,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했고, 하나님은 그 열매로 두려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셨다.

사순절 넷째주일인 오늘,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따라 첫 열매로 삼으신 우리에게, 어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라고 하시는지 귀를 기울여 봅시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뜻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어떤 결정을 따라 행하든 그에 따른 열매가 있다는 지극히 당연하신 말씀을 하십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나무에 따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열매, 주인이 원하는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혀 불에 던져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까지 예수님은 대부분이 알고 있는 상식을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 다음에 좀 더 세심하게 귀를 기울입시다.

주님께서 열매를 말씀하시면서, 그 열매를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주제를 바꾸십니다. 그러니까, 나무와 열매에 대한 얘기는 아이스브레이킹 같은 역할입니다. 본격적으로, 구원의 문제, 영생의 문제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모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정리해보면,

주여 주여 하는 것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일 말씀에 비춰보면, 율법 조항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의 뜻이 담긴 율법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욱 나아야 한다고 강조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교회 안팎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 되어야 하고, 모든 헌신과 봉사와 섬김의 가장 깊은 곳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라고 원하기는,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삶이라는 그릇에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그 길이 비록 녹록치 않다고 할지라도, 그 길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요, 통과해야 할 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멸망으로 가는 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이 넓고 편하니 많은 이들이 갑니다. 그리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도 험해서 찾는 자가 적습니다.

 

어떤 사람이 좁은 문으로 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비춰보려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 의지가 죽고, 내 욕심이 죽고, 내 자랑이 죽고, 내 혈기가 죽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 때 망설였다가도,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과 구원의 뜻을 따르는 문이 좁고 길이 협착할지라도, 그 문 너머를 볼 수 있는 신앙의 사람입니다. 그 문 너머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 좁은 문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오늘 구약에서 우리에게 그 좁은 문을 향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미가서 65a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아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발람이 발락에게 했던 대답을 기억하라는 짧은 언급이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담긴 민수기 22장에서 24장까지를 보면, 발람이 어떻게 좁은 문을 택하고, 그 문을 향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 22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던 중에 모압 편지에 진을 칩니다. 이 때 모압의 발락 왕은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모리 족속의 땅을 통과하도록 요청했으나, 거절한 일로 아모리 족속의 성읍들이 빼앗긴 상황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자신의 족속에게도 동일한 어려움이 닥칠 것을 예상하고,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의 손에 복채를 주어 발람이라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발람이라는 사람이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발람 왕이 보낸 복채를 두둑하게 받고, 모압에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밤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며 오히려 이스라엘은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발람은 모압과 미디안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함께 가지 않겠다고 거절하죠.

이런 요청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발락 왕은 다음 번엔 더 높은 고관들을 발람에게 보내면서, 복채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며 백지 수표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발람은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 날 밤에 발락 왕의 요청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끼어있는 발람의 처지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들과 함께 가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하라고 하십니다.

모압의 고관들과 함께 발락 왕에게 가는 중에,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셔서 발람으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도록 분명하게 하십니다.

드디어 발람은 발락 왕 앞에 갔고, 그곳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발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겠다고 발락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네 번에 걸쳐서 저주 대신에 축복을 하죠.

 

발람은 시험대 위에 놓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 달라는 발락 왕의 요청입니다. 발락 왕은 명예와 높은 지위와 금은보화, 그리고 분노와 협박으로 회유하려 합니다. 발락 왕의 요청을 받으면 따라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명예와 지위, 금은보화입니다.

그리고, 발락 왕의 요청을 거부하라는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하나님의 뜻이죠.

 

이 시험대 위에 선 발람은 한 때, 명예와 지위와 금은보화가 좋기도 했을지 모르나, 결국에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말하는 길을 갑니다. 저주하는 자가 아닌 축복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세속에 살아갑니다. 과연 내가 지금 무엇을 따르며 살아가고 있는지, 내 마음이 무엇에 붙들려 살아가고 있는지, 혹은 생명의 문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말씀에서 또 하나,

하나님은 싯딤에서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5b)

싯딤은 모압 땅에 있는 있는 지역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고 바알 신을 숭배하는 일에 가담했던 곳입니다. 이 일로 염병으로 24,000명이 죽었던 불명예스러운 곳이죠. 반면 길갈은 요단강을 건넌 후에 처음 밟은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앞장서서 요단 강을 건너는 중에 요단 강에서 가져온 12개의 돌을 세운 곳입니다. 후대가 이 돌들에 대해서 묻거든, 하나님께서 홍해를 말리시고 건너게 하셨듯이,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증거라고 알리도록 했습니다.

 

, 싯딤에서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철저히 어느 길이, 어느 문이 생명의 문인지, 생명의 길인지 제시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세속의 기쁨과 유희와 우상에 빠지지 말고, 오직 약속의 땅, 가나안 땅,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그 분의 뜻을 따라야 함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매 순간, 이처럼 어떤 길과 어떤 문을 택해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오늘 아침에 교회에 올 때까지도 고민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고민하지 않아도 될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고민하고, 찾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손해봐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하고,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더욱 헌신하고 수고해야 하며 절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길이 괴롭거나 힘들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들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주신 우리의 선한 양심에 따라 오직 정의를 행하고 인자와 자비와 사랑과 겸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천국에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의 형제 야보고가 피조물 중에 첫 열매인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몇 가지 제시하는 말씀에 귀 기울여, 우리의 실생활에 적용해 봅시다.

 

성내는 것을 더디하고,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즐겨 하십시오. 사람이 화를 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내 혈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이 담긴 율법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행할 때, 경건이 헛된 것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다고 여기시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세속에 물들지 않게 지켜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만이 아니라,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이기도 하시고, 나그네와 장앤을 비롯한 우리 주변의 모든 약자들의 동일한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선명합니다. 당신의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며, 피조물들끼리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첫 열매로서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먼저 알게 하셨고, 보여주셨고, 믿게 하셨고, 소망하게 하셨으며,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생명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입니다매 순간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한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 크고 넓은 세속의 흐름을 거슬러 비록 좁고 협착하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향하는 하늘 백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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