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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7-1) - " 하나님의 심부름, 잘 하고 계시나요? " / 김진철 목사 > 주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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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주현절(7-1) - " 하나님의 심부름, 잘 하고 계시나요? " / 김진철 목사

관리자 2020-02-20 (목) 21:08 1개월전 131  

본문) 19:1~6, 벧전 2:4~10, 16:13~20)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주현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는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이 됩니다. 오늘 말씀과 더불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고, 사순절을 앞두고 우리의 신앙도 되돌아보기를 바랍니다.

 

교사도 아이도 학교를 떠나고 싶어 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그 기사가 목사와 교회의 이야기로 읽혀져 당황했습니다. 목회자나 교회에 대해 비판이 많고, 목회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자원은퇴를 이야기하는 목사님들도 더러 있고, 소명을 가지고 목회의 길을 걷고자 하는 신학지망생은 줄어든다고 합니다. 교인됨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심기일전하고 제대로 우리의 몫을 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몫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대한 것인지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2:9)

다락방에서 잠든 아이

어머니가 아이에게 제사상에 올릴 술을 받아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제사 준비하는 날은 어머니가 정신없이 바쁩니다. 그래서 아이는 술을 사고 받은 거스름돈을 들고 오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거스름돈에 신경을 쓰지 못할 것이니, 그 돈을 가지고 만화방에 가서 만화책을 몇 권만 보고 가자. 아이는 만화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들고 가던 주전자의 술을 조끔씩 마셨습니다. 한참을 그러다보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술에 취했습니다. 그는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와 어른들 몰래 다락방으로 올라가 잠이 들었습니다. 제사 준비로 바빴던 어머니와 어른들은 밤이 깊어서야 아이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제사고 뭐고 할 것 없이 온 식구들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찾으러 다녔습니다. 그런 소동이 있는 줄도 모르고 아이는 다락방에서 정신없이 잠을 잤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하나님이 보내신 심부름을 잘하고 있는가요? 세상의 술에 취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잊어버리고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요?

주현절 마지막 주일, 그리고 사순절을 준비하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 번 들어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물음을 가지고 오늘 말씀에 들어 가보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부르심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부름은 여러 가지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듣는 이에게 초대하다’,‘요구하다’, ‘지도하다’, ‘지시하다등 다양한 의미로 읽힐 수 있습니다. 이 부름은 또한 우리에게 기대와 응답을 요구합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낸 하나님은 다시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출애굽기19:5)

너희는 내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할 때 비로소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태복음16:15) 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태복음16:16)입니다. 하는 응답이 았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새 이름을 주고 교회를 세우는 존재가 되게 하십니다.

 

처음교회 역시 그러합니다.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베드로전서 2 : 9)

이 말씀 앞에 버림받은 모퉁이돌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버림받은 돌이 모퉁이돌임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지만 순종치 아니하는 자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버림받은 돌이 모퉁이돌이라는 믿음의 응답이 처음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그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믿음의 응답을 했던 때를 기억하며 부르심의 자리에 굳건하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부르심에는 하나님의 기대가 있고, 우리 생()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시는 기대가 곧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사장 나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츨애굽기 19:1-6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내신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노예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큰 구원을 입게 된 것은 이제부터 너희들 마음대로 살아라고 불러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로서 온 세상의 제사장 나라로, 그의 거룩한 백성으로 불러내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언약으로 체결하십니다. 은혜입니다. 19:6절에 제사장 나라로 불렀다고 합니다.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헌신 봉사하는 제사장들의 나라입니다.

좀 더 광의적으로 해석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세상 나라 사이를 중재하는 나라,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전파하는 나라,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스스로 성결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존엄을 보존하는 나라, 기도와 찬양으로 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은 제사장 나라를 의역하여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모세 오경을 아람어로 번역한 탈굼에서는 왕과 제사장들이가 번역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봉사적 기능 이외에 통치적 기능을 동시에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요,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중재자요, 이 세상을 대표하는 권위와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허락받은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전서 2:9-10절입니다.

“9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기대는, 그리고 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그 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시겠습니까?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요, 구원의 은총을 노래하고 전하는 것이요,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의 실천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왕 같은 제사장으로 품위 있게 사십시오.

어느 목사님이 쓰신 글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문방구 앞에서 떼쓰면 아버지는 항상 내가 왕손의 후예임을 말씀하셨다

명절 전날 떡 방앗간 앞에서도 그랬고 동네 어른들과 연탄화덕에 돼지갈비를 구워

막걸리를 드실 때도 그랬다

내 또래 친구들은 지들 아버지 곁을 기웃거리다가 살점 많이 붙은 갈비 한 대를 얻어 들고는 의기양양 내 곁을 스쳐 지나갔지만 아버지는 왕손이어서 그런지 왕방울 만하게 눈만 뜨셨다

가족을 굶기는 왕손이 어디 있냐는 어머니의 볼멘소리에 아버지는 왕손의 왕방울만한 눈을 감으시고 헛기침만 하셨다 그때는 그런 아버지가 무척 싫었는데 책상 유리 덮개 밑에 눌려 계신 아버지가 지금은 간절하다

뜬금없이 가족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봤다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그로부터 생겨난 아들, , 손자, 손녀 등으로 구성된 집단. 또는 그 구성원, 같은 조직체에 속하여 있거나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왕손이란 말도 급하게 찾아봤다

임금의 손자 또는 후손

왕손의 후예란 말도 찾았다

왕의 핏줄을 이어 받은 먼 후손

아버지가 왕손이라고 한 건 전주 이씨라는 뜻일 것이고

나도 이씨이니 왕손의 후예라는 뜻일 것이다

난 문방구 앞에서도

떡방앗간 앞에서도

돼지 갈비 냄새의 유혹 앞에서도

왕손의 후예로서 품위를 지키려고 입을 막고 코를 막아야 했지만

50여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는 책상 유리 덮개 아래에서

왕손의 후예라는 말 대신에 아들에게 미안하다라고 하시는 듯 웃음 없이 서 계시고

난 그런 아버지 얼굴에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며

지금도 문방구, 떡방앗간, 돼지갈비집 앞에서 왕손의 후예임을 말씀하시면 좋겠다

아버지가 (이기봉목사님의 시 키스전문)

 

왕손의 후예임을 자각하고 그 품위를 지키고자 유혹을 이겨낸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 품위를 지키면서 살고 있는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믿음의 고백으로 응답하면서 사순절을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왕 같은 제사장의 품위에 걸맞은 거룩함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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