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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2-1) - " 그 날이 오면 " / 김은승 목사 > 주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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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주현절(2-1) - " 그 날이 오면 " / 김은승 목사

관리자 2020-01-17 (금) 15:22 4년전 1929  

본문) 슥 14:5~11, 고전 12:12~31, 요 17:20~26


육체는 정신을 지배합니다. 사람은 동물과 달라서 이성이 육체를 지배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사람 역시 육체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점을 잘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명절이 되면 어른들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 숙여 절하는 것을 예법으로 만들었습니다. 원하지 않는 상대에게 무릎을 꿇으면 분노가 치밀지만, 사랑하는 이 앞에 무릎을 꿇으면 존경심이 더 생겨나게 됩니다. 이 번 명절에는 부모님들께 뿐만 아니라 형제들과 또 부부간에도 큰 절을 나누어 보십시오. 특별한 애정이 솟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 앞에 몸으로 무릎을 꿇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기도 시간을 따로 정하여 구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도 큰 힘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위하여 소리 내어 기도해 보십시오. 또 자녀들을 위하여 소리 내어 축복기도를 해 보십시오. 그 음성 위에 마음이 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신앙 생활은 영적인 차원의 삶인 것으로 말들 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고전9:27)’하고 고백했던 것처럼, 믿음 생활은 육체의 훈련(discipline)과 더불어 역사하는 성령의 은사라고 하겠습니다. 올 한해는 여러분의 믿음을 몸으로 고백하는 시간으로 삼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또 여러분 마음 속 사랑을 몸으로 표현해서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귀한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본문은 예수께서 잡히시기 직전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땅에 당신의 백성들을 두고 가셔야만 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절절히 풀어놓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도 없어서 로마에 아부하며 목숨을 구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짓밟히고 훼손당해도 누구 하나 나서서 소리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 앞에 놓인 참담한 미래를 누구보다도 안타깝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17:23). 그래서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만들고 싶은 것이 예수께서 간구하시는 핵심입니다(26).

예수님의 기도는 당신이 얼마나 이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죽음을 앞 둔 상황에서 오히려 살아 남을 백성들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될 그 날을 미리 걱정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당신 목숨을 대속 제물로 주시는 그 일로 자기 역할을 충분히 감당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자식의 손목을 붙잡고 선생님 앞에서 이 아이가 제 자식입니다. 잘 지도해 주십시오하고 간청하는 부모님처럼, 그렇게 하나님께 소리 내어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와 같은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다정한 음성으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앞날을 누구보다도 애타게 걱정해 주십니다. 힘들고 지칠 때에 주님 앞에 털어놓아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한 마디도 흘려 듣지 않으시고 같은 심정이 되어 위로해 주십니다. 그래서 다시 힘을 내어 일어설 때에는 누구보다도 기뻐하시며 격려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이렇게 하나 되는 깊은 교제를 이루기 위해 고통의 잔도 마다 않고 마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만난 사람은, 그리고 이 사랑을 아는 사람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기쁨을 맛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카톨릭 교회의 수장 프란시스는 자신의 권고문 복음의 기쁨제일 첫 문장에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모든 사람의 마음과 삶 속에는 복음의 기쁨으로 충만합니다라는 말로 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자마다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으로부터 놓임을 받습니다하고 기쁨의 실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다정하신 예수와의 깊은 교제 속에서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지 50여년이 지난 때에 활약한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고 하는 그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스가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키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님만이 아시는 그 날이 오면 햇빛도 달빛도 다 사라지고, 밤이 되어도 밝게 비춰줄 하나님의 빛이 비칠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솟아나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흘러가며 그 땅의 모든 사람들을 깨끗하게 씻겨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치 평야 가운데 우뚝 솟은 땅처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터전을 잡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이 될 것이라고 선지자는 예언합니다.

스가랴가 활약한 다리우스왕 때는 이미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한 고레스왕의 칙령이 반포된 때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이스라엘 민족은 성벽을 복구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일도 추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이 회복될 그 날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 만이 아시는 날이라고 밖에는 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선지자의 마음 속에 그 날은 그저 불투명하기만 한 환상 속의 날이 아니었습니다. 선지자는 이미 그 날의 영광을 환상 가운데 확인하였고, 미래의 어느 날이 아니라 오늘 그 회복의 기쁨을 자신의 입술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의 삶은 선취하는 삶입니다. 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였더라고 고백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고 고백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따라서 이 믿음 가운데 있는 사람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 아름다운 내일 속으로 들어가 사는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태11:12)’라고 기록된 말씀 역시 믿음 가운데 천국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축복을 일컫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스가랴가 말하는 그 날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 한 가운데로 가져다 주신 축복의 날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믿음 가운데 약속의 날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희생시키며 삽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오늘을 감내하며 살다가 문득 소망하던 내일은 오지 않고, 이미 지나간 그 날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날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래서 아쉬워하며 허무한 인생이라고 슬픈 노래를 부릅니다. 고통이 있고 슬픔이 있다고 해서 과연 허무한 인생이겠습니까? 희망이라고 하는 것은 내일에만 있는 것이겠습니까?

푸시킨은 맑은 날이 올 것인데, 왜 슬퍼하느냐? 마음은 내일을 사는 것. 이것을 믿으라하고 노래했습니다. 맑은 날은 그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 가운데 있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시려고 예비하신 날입니다. 오늘 당하는 고통과 슬픔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에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려고 오늘을 뚫고 들어오게 하신 천국의 은혜입니다. 사랑에 겨워 당신 백성들을 불러 주님과 하나 되게 하시는 초대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내일을 살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복음의 기쁨을 강독하면서, 사실은 첫 문장에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만난 사람이라는 전제 자체가 크게 울려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가 주신 복음을 기뻐하며 살고 있지 못하다고 한다면 예수님과의 내밀한 만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교인의 의무를 다하는 것 이전에 주님과의 만남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사랑스런 음성을 듣지 못하면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주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줄기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처럼 사랑의 자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엇보다 주님과의 만남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약속하시는 그 아름다운 날을 오늘 살아내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소중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주님 예수께서 사랑에 찬 음성으로 간절히 빌어주시는 친구들입니다. 예수께서는 스가랴가 예언한 그 축복의 날을 이미 여러분 품에 안겨주셨습니다. 주님과 만나 교제하면서 이 기쁜 날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힘드십니까? 주님께 말씀하십시오. 분노가 일어납니까? 주님께 호소하십시오.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져 주시는 주님께서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소리 내어 불러 보십시오. 주님께서 천둥처럼 대답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교제 안에 오늘을 이기는 기쁨으로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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