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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주현절(1-1) - "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에서 "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5-01-10 (금) 22:55 3시간전 2  

본문) 11:26~32, 72:1~7, 10~14, 고전 13:1~13, 5:1~12


지난 월요일은 주현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심을 기념하는 날로, 즉 공생애를 시작하셨음을 기념합니다.

교회는 이 날을 기념하며 주현절 절기를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사람과 함께 활동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들 가운데 이루시기 위해 복된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한 것을 기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 중 팔복이라고도 부르는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러이러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시는 말씀이 연속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팔복의 말씀만큼이나 잘 알고 있는 바울사도의 가르침은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사랑이 제일이라는 내용입니다. 신명기서에서는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었다는 선언으로부터 말씀이 이어집니다.

 

복이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생각하는 복이 다를 것입니다.

내가 가장 귀한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별스럽지 않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이 육체를 입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복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육체적 건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육체가 건강해야 무엇이든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육체가 점점 쇠약해 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일상을 이어가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복된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복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내 생각이나 활동이 타인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복과는 다르지만 사랑도 타인을 기쁘고 즐겁고 유익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랑을 통해서 사람도 신앙도 성숙해지고, 모든 것을 환히 꿰뚫는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자기자신을 온전하게 알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듣는 복과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이며, 내가 만나는 이웃이나 상대와 함께 평화를 이루어가는 사랑의 행위를 통해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이 되며 내가 있는 곳이 평화로운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언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하게 하는 사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

이러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 다른 복을 받고 싶습니다.

1. 심령뿐 아니라 물질이 부유하고 싶습니다.

2. 애통한 것이 어찌 복이 됩니까?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3. 온유하기보다는 강인하여서 다른 사람이 함부로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뒤 돌아서서 가슴 아파할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내 주장을 펼치는 것이 더 좋습니다.

5. 긍휼한 마음이 생기면 자꾸 약해져서 내 것을 나눠줘야 할 것 같은데, 내 것은 아까우니 좀 더 움켜쥐고 싶습니다.

6. 마음이 청결해서 법 없이 살 것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기 쉬우니 내 몫을 제대로 챙기며 살고 싶습니다.

7.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들과 조율을 하느라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상황에서 벗어난 여유로운 것이 좋습니다.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고 누가 알아줍니까? 부질없는 짓일랑 접어두고 다른 사람이 사는 것처럼 시류를 따라 갈등하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말씀드린 것과 같이 내가 받고 싶은 복을 다 받는다면, 그 때부터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을 구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들은 자기의 유익함이나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억울해도 호소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며, 이제껏 살면서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런 처지에 처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천국의 주인공이 될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인간적인 고난과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때문에 지금 핍박과 고난과 소외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미래에 있게 될 복만 아니라 핍박받고 고난당하는 지금여기에서이미 복에 속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있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합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저희 앞에 둔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미래에 복을 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복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기 위해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

 

그리심 산에서 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합니다.

그 복과 저주가 갈라지는 조건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고 떠날 것인가!’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양쪽에서 내려와 골짜기에서 만납니다.

두 산은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하여 섰을 때에 오른쪽에는 그리심산이, 왼쪽에는 에발산이 있습니다. 우리말에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모습을 줄타기를 한다고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몇 걸음 걸어가면 오른쪽이고 몇 걸음 걸어가면 왼쪽입니다. 그러니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한다는 것은 걸음의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사람살이가 어찌 그리 무 자르듯이 잘라지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내가 향하고 나아가는 방향을 신중하게 선택해야합니다.

 

고린도전서 1231절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겠다고 하면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더욱 큰 은사이며 가장 좋은 길이 사랑의 길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사랑장이라고 말하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실천하려면 사랑 때문에 더욱 낮아져야 합니다. 사랑 때문에 더욱 겸손하고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멈추지 않고 역동적으로 활동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랑은 고요함을 유지하면서 점차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보여주신 복의 모양이나 내용은 육과 영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너와 내가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화목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를 이루는 복의 원형을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복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떠나, 사람들과 함께,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의 생활을 그대로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가 배울 사랑의 시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배우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가장 좋은 길, 복의 길을 따라 걷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합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 복과 저주 사이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그 말씀을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

복과 저주를 선택하는 주체는 나 자신입니다. 복을 향해 분명하게 걸어가는 삶의 방향을 잡아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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