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 2:1~3, 시 119:1~8, 롬 14:1~12, 막 2:23~3:6
1. 지금부터 13년 전에, 9월 초순 어느 날 저녁, 저녁밥을 먹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마당에 나갔어요. 제가 익산에 있는 맹산교회에서 목회할 때입니다. 저녁 8시가 넘었는데 교회는 안 나오지만 저와 인사를 주고받는 마을 할머니가 까만 봉다리를 들고 지나가다가 저를 보시면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이거 드셔. 제사음식인데 안 드시려나.” 줄까 말까 줄까 말까 고민을 하시더라구요. “딴 사람들은 제사음식이라고 안 먹던데.” 여러분이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2. 또 한가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앉아서 막걸리를 드신단 말입니다. 저를 보고 반가운지 벌건 얼굴로 “목사님! 일루와서 한 잔만 하세요.” 제가 받아먹었을까요? 사양을 했을까요? 어떻게 했을까요? 먹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고, 안 먹으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어떻게 했을까요? 제가 제사음식을 먹었다는 소문이 나면? 그럼 먹지 말아야 할까요? 술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3. 로마서 14장 15절은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디모데전서 4장 3~5절은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마가복음 7장 15~16절은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4.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셨습니까? 내 생각과 내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셨습니까? 많은 분들이 성경 말씀으로 정확하게 확인을 하고, 그 뜻을 살핀 후에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맞아” 자기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저는요. 마을 할머니가 주시는 제사음식을 받았습니다. 집에 가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빵을 사 들고 그 집을 찾아가서 맛있게 먹었다고 이야기하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들어들이고, 손 잡고 기도해드리고 나왔습니다. 지금 당장 교회는 안 나오시지만 전도대상자잖아요. 막걸리를 주는 어르신들에게 가까이 가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제가 먹을 수 있지만, 목사가 먹으면 시험에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제가 한 잔씩 따라 드리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제사 음식 음식은 먹어도 되고 술은 먹으면 안 된다.” 이런 말이 아닙니다.
5. 제사음식을 먹는 걸 꺼리는 초신자들이 있다면 저는 제사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음식물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먹어도 되지요. 문제는 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로마서 14장 19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화평을 이루는 것! 덕을 세우는 것!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지만 그것이 화평을 이루는가? 덕을 세우는가? 먹어서 화평이 이루어지고 덕을 세울 수 있다면, 먹어야지요. 먹지 말아야 덕을 세우고 화평을 이룰 수 있다면 먹지 말아야지요. 아멘하시겠습니까? 이런 문제로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를 중심에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선택을 하라는 것입니다.
6. 오늘 말씀에 보면, 마가복음 2장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면서 밀이삭을 잘랐습니다. 먹을려고, 이를 본 바라새인들이 왜 당신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명확합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게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거야.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다는 말입니다. 배고픈데 안식이 어디 있습니까? 허기를 면해야 안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7. 마가복음 3장에서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손 마른 사람, 한쪽 팔이 어그러지고 비틀린 사람이 있습니다. 3정 3절에 보면, 예수님은 굳이 그 사람을 일어서라 하고 한 가운데 세웠습니다. 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데 손 마른 사람을 놔두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손마른 사람을 고쳐주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다르다는 겁니다. 어느 것이 맞냐?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아, 규정대로 하면 되잖아. 규정대로 하면 따질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일 성가시게 만들지 말어. 근데 예수님은 일을 성가시게 만들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서 고쳐줘도 되는데 굳이 안식일에 많은 사람 앞에서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8. 창세기 2장 1절에서 3절의 말씀을 보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일곱째 날, 안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안식일을 복된 날이라 거룩한 날이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은 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쉬는 날을 정하시고 이날을 복된 날인 동시에 거룩한 날이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먹고 허기를 면하면 그날은 복된 날이지요.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럼 이건 복입니다.
9. 로마서 14장 1절에서 12절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비판하지 말아라. 비판하지 말아라. 1절과 3절입니다. 또 10절에서 네가 어찌하여 형제를 비판하느냐고 책망합니다. 어찌하여 형제를 업신여기냐는 겁니다. 규정대로 해. 말씀대로 하면 되잖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건 복이 아닙니다. 너는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도 복이 아닙니다. 자, 침대를 사러 갔습니다. 사람을 침대에 맞추는 게 맞습니까? 침대를 사람에 맞추는 게 맞습니까? 침대가 작고 사람이 크다고 사람을 자를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침대가 크고 사람이 작다고 사람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10. 시편 119편은 아주 명확하게 말합니다.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는 복이 있음이여. 전심으로 지키는 자를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잘 지켜야 하고 굳게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6절의 말씀대로 주의해서 지켜야 합니다. 말씀이 말하고 있는 7절에 기록된 주님의 의로운 판단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 행하되, 조심스럽게 따라가면서, 정말 중요한 건, 주님의 의로운 판단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했어, 근데 주님의 판단과 달라요. 의롭지 않습니다. 이게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11. 제사음식 먹으면 안 돼. 그거 우상숭배야. 술 먹지 마. 그거 죄짓는 거여. 그런가요? 어떤 장로님이 밤을 새고 친구의 술을 받아주었습니다. 밤새고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그 친구가 며칠 지나서 장로님에게 전화를 합니다. 밥을 먹자고. 그리고 말을 합니다. 사실, 나 죽을려고 했어. 근데 자네하고 하룻밤을 지내고 나서, 나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 친구 고마워. 로마서 14장 19절에, 화평을 이루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라. 말씀을 지키되 손가락질하지 말고, 비판하지 말고, 맞네 틀리네 싸우지 말고, 주님의 의로운 판단을 배워야 합니다. 그게 복을 만드는 길입니다.
12. 명절을 지내면서 복을 만드셨습니까? 화평을 지키고 덕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편안하게 안식하셨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셨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거룩한 것입니다. 말씀은 소중합니다. 말씀은 생명입니다.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으로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몰아세우고 손가락질한다면, 책망한다면, 이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의 정성과 진실은 거룩하고, 복 있고, 쉼이 있고, 화평하고, 덕을 세우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진짜 순종입니다. 이게 참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말씀하셨고 복을 주신 하나님입니다. 뭘 해서 복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복을 찾으면 됩니다. 복의 길을 가면 됩니다. 평화를 만드십시오. 덕을 세우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은혜로 강물처럼 흘러넘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