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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성탄절(2-1) - " 이제 역사가 됩니다. " / 송종근 목사

관리자 2020-01-02 (목) 16:36 4년전 1869  

본문) 사 62:1~7, 롬 11:13~24, 막 1:1~11

 

오늘 이사야서를 통해 선포된 말씀은 장차오실 메시아의 선언입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무너진 이스라엘을, 좌절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회복시키고, 세우실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이는 앗수르로 바벨론으로 로마로 그 통치자가 바뀌면서 겪었던 이스라엘의 고단한 역사에 대한 중단선언이요, 그런 이스라엘을 비웃고 조롱하던 이방과 세력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그들이 얕잡아 보고 무시하던 이스라엘이 더 이상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고, 그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인 것이죠. 그 중심에 바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그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이 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에 대해 오늘 성경은 새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다 표현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이름은 자신의 신앙고백이며,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감사와 찬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의 신앙고백이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족속을 상징합니다. 그 이스라엘의 시작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역사는 이집트 노예 430년의 세월을 거쳐 출애굽을 통해 새롭게 되었습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인도하시는 하나님,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과정을 통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그 옛날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던 야곱의 고집 센 경험을 뛰어 넘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에게 주어진 거룩한 이름이요, 승리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이름으로 가나안을 정복하고, 다윗왕의 영광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영광된 이름, 이스라엘은 르호보함 왕 때에 이르러 분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이스라엘이 무너지고, 남유다도 무너지는 참혹한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아래 영원할 것 같았던 왕국 이스라엘의 붕괴는 충격이고, 이변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이방은, 주변은 이스라엘을 향해 비럼받은 여인에 비유하고 조롱하고, 비웃었음을 오늘 구약의 말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이스라엘의 이런 실패는 하나님의 변심이 빚어낸 결과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요, 불신앙의 결과였습니다. 한 민족을 통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제사장 나라로 삼겠다던 계획으로 언약을 주신 하나님을 온전히 받들지 못한 이스라엘의 잘못인 것이죠. 그로부터 이스라엘은 승리의 이름, 영광의 이름에서 패배의 이름, 좌절과 절망의 이름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증언이요, 이것이 역사의 기록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역사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다시금 새 역사를 열고자 하는 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그 민족을 택하고, 그 나라를 세우신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실패의 역사, 좌절의 역사, 파멸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으시고, 또 다시 새로운 부흥의 길, 구원의 길을 준비하고 있음을 오늘 구약의 말씀은 보여줍니다. 창조의 때 아담을 통하여 세우셨던 그 거룩한 뜻이 결코 변하지 않고, 지속되고 있음을 오늘 말씀은 다신 한번 보여줍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제사장 나라로 삼아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세우는 주체는 바뀌었을지언정, 그 거룩한 뜻과 계획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죠.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의 말씀은 바로 그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오늘 성경은 새 이름을 주겠다는 선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새 이름은 헵시바요, 쁄라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축복을 향한 한 인간 야곱의 굳센 의지와 집념의 표현이었다면, 헵시바와 쁄라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기쁨이요, 세상의 왕관이 되게 하겠다는 창조주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택하신 인간을 통한 하나님 역사의 구현이었다면, 헵시바와 쁄라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통하여, 그들을 움직여 이루시려는 영광과 미래에 대한 표현인 것이죠. 그래서 그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해 그 도구로 당신의 아들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그 택하신 아들을 맞이하는 우리는 거룩한 파수꾼이 되어 세상에 그 뜻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깨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함을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증거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계획과 그 뜻에 순종하는 인간의 헌신이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 거룩한 새 이름을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것이죠. 이런 하나님의 뜻은 오늘 복음서를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서는 마가복음의 말씀입니다. 마태와 누가와 달리 마가는 예수의 탄생에 대해 주목하지 않고, 그 첫 증언을 예수의 세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가복음의 관심이 오직 이 땅에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신실한 종으로서의 예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를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만 집중하니 마가에게 그 탄생 과정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죠. 주목할 것은 오늘 마가복음에서도 구약의 말씀에 등장했던 두 가지 측면에서 예수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파수꾼으로서 세례요한이요, 또 다른 하나는 헵시바, 쁄라로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파순꾼으로서 부름 받은 세례 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소리가 되어 예수님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회개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서는 세례 요한의 이 모든 행동들이 이미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선포되었던, 예언 되었던 일이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계획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들이라는 것이죠. 그 계획은 당신의 아들 예수가 철저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으로 구체화 됩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계획 아래 세례를 받으신 예수를 보시고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성령을 내려 축복하시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새 이름을 주겠다 하시고, 이스라엘에게 헵시바라 쁄라라 부를 것이다 예언해던 이사야의 증거가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확인되는 대목이죠. 예수를 통해 하나님은 버려진 이스라엘을 역사의 중심으로 다시 세우고,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계를 구원하는 새 역사를 시작하셨음을 오늘 말씀을 보여줍니다. 그 거룩한 씨앗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자,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기쁨으로 거듭나기 시작했음을 복음서는 보여줍니다.

 

이런 하나님의 계획은 서신서를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의 말씀은 바울 사도가 이방인 그리스도들의 교만을 경계하며 쓴 말씀입니다. 오늘 로마서 말씀을 통해 바울은 어떻게 이방인이었던 이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게 되었는지를 접붙임을 통해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경고합니다. 원가지의 잘못으로 잘라진 그 곳에 접붙임 받은 이방인들이 그 은혜와 사랑을 잊고 원가지였던 유대인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교만해 지면 결국 접붙임 받은 그들도 또 다시 잘려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바울은 철저히 이 모든 역사의 뿌리가 하나님께 있음을 강조합니다. 18절입니다.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오늘 바울이 강조한 뿌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택하신 족속을 통하여 제사장 나라로 삼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며, 거룩한 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기쁨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거룩한 섭리입니다. 그 섭리로 인하여 버림받을 수 밖에 없던 쓸모없는 우리가 거룩한 은혜 안으로 들어오게 됐으며, 거룩한 영광의 도구가 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이죠. 곧 우리가 세상의 영광이 되고,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우리가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이 받으셔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들의 본질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접붙임 받은 우리들의 본분이라는 것이죠, 그렇지 않고 그 영광과 주목을 우리가 탐하게 되면, 우리도 결국 버림받아 잘려나가게 될 것임을 오늘 바울은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할 성도가 바뀌어 그 기쁨을 탐하고, 그 기쁨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면 결국 우리는 버림받아 사라질 것이라 경고하고 있는 것이죠.


새 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되면 많은 이들이 새로운 계획들을 세웁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작심삼일이기도 하죠. 새해가 됐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입니다. 새로운 시작이라 함은 어제까지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 중요치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제까지 우리에게 어떤 아쉬움이 있었는지, 어제까지 우리들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중요치 않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현재입니다. 지금 내가 어떤 결심과 어떤 자세로 하나님 앞에 있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선언이 과거의 일을 덮어버리자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잘못은 분명한 자기 고백과 회개로 털어버리자는 것입니다. 부족함은 붙들고 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할 때 용서받고, 새로운 기회를 부여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아쉬움, 부족함 회개를 통해 모두 털어내고 오늘부터 우리가 할 일은 새 마음, 새 다짐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이루는 거룩한 파수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그 거룩한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깨우는 파수꾼이 되고, 받은 은혜, 받은 사랑 잊고 교만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깨우는 파수꾼이 되고, 나는 죄인이라서 안되고, 부족해서 안되고, 연약해서 안된다는 좌절과 절망에 빠진 부정적인 사람들을 일으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의 뜻을 드러내고 감당할 때 거룩한 하나님의 씨앗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은 우리의 역사를 바꾸어 헵시바가 되게 하고, 쁄라가 되게 할 것입니다. 어제까지 우리를 비웃고 우리를 지적하던 세상이 변하여 우리의 행동에 수긍하고, 우리의 행동을 인정하여, 나아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게 될 것입니다. 그 역사를 우리의 힘이 아닌 보내신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이루고,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동참함으로 이루는 것이 새 해를 맞이한 우리들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역사는 오늘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좌절과 절망, 수치와 모욕으로 얼룩진 역사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한 영광과 기쁨의 역사가 되는 것이죠. 그 역사의 시작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되었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는 우리들의 고백 위에, 새 이름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 안에 다시 시작됩니다. 과거의 부족함 회개로 털어버린 우리들의 새 시작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오늘부터 걷는 우리들의 걸음이 2020년의 새 역사가 되고, 오늘부터 드러내는 우리들의 믿음이 2020년 한국교회의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새해에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어, 온 땅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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