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2:1-12, 사60:1-14, 갈4:1-7
주님의 평화
성탄의 기쁨과 복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예수님 없는 성탄절에 대한 우려가 큰 현실입니다. 젊은이들에게 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것을 물었더니 데이트, 화이트 크리스마스, 선물, 밤샘, 산타, 트리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예수님은 나오지 않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럴수록 교회는 더욱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합당한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 세 본문의 말씀과 함께 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과 함께 기뻐하고, 환호하고, 경배하는 성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뻐하라(이사야60:1-14)
이사야 예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회복될 것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고통과 좌절 속에 있었습니다. 가난과 곤핍과 압제와 슬픔이 가득하였습니다. 영적, 정치적으로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그들 스스로 그 어둠을 걷어낼 힘이 없었습니다. 절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빛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빛이 아니라, 이미 임한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오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만이 모든 것을 회복하고 영광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절망과 슬픔중에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이 오셔서 영광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고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에 오셔서 모든 것을 회복하시고 영광의 빛을 비추게 하시는 예수님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환호하라(갈4:1-7)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을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다”(갈4:1-7)고 해석했습니다. 이 회복과 영광은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거나 우연한 역사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의 길은 세계 곳곳으로 뚫려 있었고, 헬라어는 세계 공용어가 되었으며, 유대 민족은 메시아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정치적 해방을 원했지만, 하나님은 영적 해방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요구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인간의 신음을 들으셨습니다.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내면의 갈망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고, 하나님의 본체, 영원한 아들,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예수님 탄생의 시간은 인간이 정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고, 어느 민족의 정치적 계획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때가 찬 하나님의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오심으로 우리는 죄의 종과 율법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죄와 율법의 속박,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자녀여 환호하며 예수님의 탄생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회복과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구원 경륜에 따라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경배하라!
그리스도께 경배하라(마태복음2:1-12) .
동방박사
헤롯왕 때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마태복음 2:1-2)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별의 인도를 받아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예물을 드리고 경배를 했습니다. 이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연구하고 꿈을 해석하는 메소포타미아의 점성가들일지 모릅니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탐구하고 해석하는데 뛰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메시아의 탄생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한 것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일깨워줍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경험은 우리를 아기예수께 경배하도록 이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연구하고, 어떤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든 그것은 결국 예수님을 경배하게 합니다. 그것이 점성술이 되든 신비한 종교적 경험이 되든지 예수님을 찾는 것이 됩니다.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장에 취업하기 위한 그런 지식이 아닙니다 세상의 궁극을 생각하는 지식, 인간 존재의 근본을 묻는 지식, 삶의 신비를 탐구하고, 신을 찾는 지식은 어디로 가는가? 결국, 예수 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연구한 지식이 결국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에게 구원의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예수님을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예수님을 보게 하시고 우리의 구주로 믿고 경배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더 많이 알아가기 위해 연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별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마태복음2:2)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 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마태복음2:9-10)
동방박사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별입니다. 그들은 별을 보았고, 별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별을 정확히 아는 천문학자요 점성가들이었습니다. 고대에 토성은 이스라엘의 별, 안식일의 별이었습니다. 목성은 왕의별이었습니다. 기원전 7년경 이두별이 만났습니다. 그것은 메시아의 태어나심을 알려주는 징표였습니다. 민수기의 예언 말씀은 이것입니다.
한 별이 야곱에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민수기24:17)
이 말씀을 조금 더 쉽게 풀이하면 <야곱에게서 한 별이 솟는구나. 이스라엘에서 한 왕권이 일어나는구나.
그 별은 왕의 탄생을 뜻하는 별이었습니다.
사랑의 언어는 별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연인들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그대는 나의 별, 그대는 내게 별이랍니다>
그이가 내 삶에 빛을 던지고, 나의 밤하늘을 별처럼 비추어 나의 밤을 밝힌다는 뜻일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날이 새어 너희 마음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베드로후서 1:19) 샛별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의 밤하늘에도 별이 빛납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우리 마음에 빛을 가져오십니다. 죄와 어둠과 절망 몰아내고, 기쁨, 희망, 행복의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안제루스 실레시우스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어둔 밤의 샛별 세상을 기쁨으로 채우네 나의 예수 들어오시어 내 마음의 보석상자 비추신다.
별을 바라보면 무엇인 떠오르는가? 사랑, 이상, 동경, 그리움, 기쁨....무엇이든 우리 인생의 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희망이 생기고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이 우리의 삶을 이끌고 갑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는 곳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별은 우리를 인도해갑니다. 이 땅의 소망을 이루도록 인도해주십니다. 하늘의 영광 나라에 이르도록 인도해가십니다.
경배와 예물 드림
동방박사는 예수님을 보고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정신은 예수께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는 예수님은 누구인가? 그분에게 합당한 경배드림은 무엇인가?
동방박사의 예물을 보면 알게 됩니다. 황금, 유향, 몰약
왕이신 예수님, 제사장이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를 위해 수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 우리의 왕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 그분을 알고 믿고, 그분의 인도를 받고 동행하며 경배하며 이 땅에 오심을 축하하고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