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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성탄절(1-2) - "사랑으로 시작하는 새해 " / 새해주일 / 이훈삼 목사

관리자 2022-12-29 (목) 21:03 1년전 244  

본문) 호세아 11:1~4, 8~9


1. 정말 미치겠어요


또 한 해를 새롭게 맞이한다. 찬란하게 떠오르는 황금빛 태양을 보면 모든 어둠과 절망은 물러가고 꽃길만 내 앞에 펼쳐질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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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출처) 과학향기


새해는 새로운 시간, 새로운 기대, 새로운 희망이 피어나지만 새해를 많이 맞이할수록 부푼 기대보다는 삶의 서러움이 조금씩 짙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흔히 시간은 나이 대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고 한다. 10대 청소년 때는 시간이 너무 더디다. 시간이 시속 10km로 흐른다. 빨리 어른이 되어서 눈치 안 보고 자유를 누리고 싶다. 그래서 어른 흉내를 내기도 하고 기성세대의 자유를 부러워하면서 반항하기도 한다. 20대는 20km로 흐른다. 빨리 사회에 나가서 당당한 사회인으로 자리도 잡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원한다. 그런데 시간은 그리 빨리 가지 않는다. 그러다가 30대만 넘어서면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다. 그래도 3~40대는 시간의 속도를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가 50대가 되면 그 때는 정말 시간을 잡고 싶어도 잡지 못할 정도로 마구 흘러간다. 60대는 60km, 70대는 70km로 간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새해가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불평하는 소리가 너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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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비긴어게인3 중에서 소녀시대 출신 태연의 노래가 좋았다. 난 여기서 태연을 처음 알았다. 아델(Adel, 서양에서는 유명한 가수인가보다)의 ‘When we were young’을 독일 베를린의 어느 공원에서 버스킹으로 부르는 장면이 가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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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서서 노래를 듣던 많은 관중들도 동감하는 분위기였고 어떤 연인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노래 제목은 ‘우리가 어렸을 적에’ 라는 뜻일 텐데, 지금은 헤어진 연인 중 여성이 과거를 회고하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헤어졌는데 지나고 나니 그 땐 참 우리가 어려서 그랬던 것 같다, 별일 아닌데 그리고 오해도 있었는데 그런 것으로 헤어지다니! 이런 느낌의 노래다. 원 가수인 아델이 자기 경험을 노래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본 것 같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안타까웠죠. 

 그게 우리를 초조하게 했어요. 

 정말 미치겠어요 내가 나이 들어가는 게


나는 이 노래 후반부에 이 가사에서 울컥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안타까웠죠. 그게 우리를 초조하게 했어요. 정말 미치겠어요 내가 나이 들어가는 게”

이 노래를 만든 이는 아마도 20대에 사랑과 이별을, 그리고 30대 중반 정도에 과거를 그리워하고 후회하고 다시 회귀하고 싶다고 읊조리는 것 같다. 30대에 나이 드는 게 미치겠다고 하니 미치겠다. 내가 다시 3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처럼 시간이 흐르고 또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희망의 바로 옆 한편으로 아쉬움과 슬픔이 곁들여 있다. 시간이 곧 생명이고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2. 새해는 밝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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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충북일보)


새해는 다시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새 마음으로 시작한다. 새해 태양이 찬란하듯이 밝고 아름다운 한 해가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올해를 전망하면 그렇게 밝지 않은 현실이다. 근심과 두려움이 앞서는 새해의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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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세계(출처-Sky and Glass)


세계 경제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어렵다. 옛날에는 차라리 자급자족 구조라 우리만 열심히 일하고 생산해서 먹고 살면 다른 나라야 어떻든 그 영향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화시대이고 다른 나라의 경제 현실이 곧바로 우리 기업과 우리 집까지 영향을 끼친다. 세계 경제가 어려우니 우리나라 경제도 먹구름이 껴 있다. 기업이 도산하고 직원들이 해고에 내몰린다. ‘해고는 곧 살인’이라는 말이 일부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일터를 잃으면 당장 생존하기가 어렵다. 작년도 어려웠지만 올해야말로 본격적으로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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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아시아경제)


부동산 거품이 가라앉으면서 많은 이들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막차로 영끌해서 투자한 사람들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부동산 투자해서 쉽게 돈 벌려고 했으니 안타까울 것도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부동산 위기는 집주인뿐 아니라 가난한 세입자들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지금 수많은 전세 세입자들이 전세금 되돌려 받지 못할까봐 불안에 휩싸여 있다. 대부분 대출 받은 전세금이다. 거기다가 고금리로 돈 많은 이들은 이득을 보겠지만 돈 빌린 사람들은 너무 많은 스트레스에 위협 받고 있다.

찬란한 태양이 백번 뜬다고 이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까. 

전쟁의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해를 넘기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얼마나 많은 집과 산업시설들이 파괴되었는지 집계도 안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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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나무위키/중앙일보)


참혹했던 1차 대전이 참호의 전쟁이었는데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이 참호 전쟁이다. 하루 종일 생활하는 참호에는 겨울철 물이 고이고 군인들의 발은 얼고 동상이 걸려 총에 맞지 않아도 절단해야 한다. 더구나 핵전쟁의 공포가 기웃거리고 있다. 전쟁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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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27.-704개 종교·시민사회단체

 출처-한반도 종전평화 캠페인


한반도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남과 북 대통령들이 대놓고 한판 전쟁을 벌일 태세다. 남북관계에서 외교나 예의는 서로 폐기해버렸다. 전쟁으로 이기려는 것은 가장 무능한 정치다.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지키면서 증진시키기 위해 나라를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에게 맡기는 것이다, 정치를 하라고! 정말 암담하고 걱정이 앞선다. 본격적인 전쟁 아니더라도 총성이라도 울리고 전쟁 기운이 높아지면 우리나라의 해외 자본이 다 빠져나간다. 내가 외국에 투자했는데 전쟁 날 것 같으면 삼성이고 현대고 서둘러 투자한 돈을 다 회수하지 그냥 둘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면 우리 대기업도 그냥 무너진다. 수많은 협력업체와 연관된 산업들이 줄도산하게 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리 되면 안 되겠지만, 자칫 이런 분위기로 갈까봐 염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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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세이브더칠드런


기후위기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생태계가 급변하고 재난과 바이러스 등 수 많은 위협들이 증가하고 있다. 정말 지구 자체가 붕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음 세대는 정말 발등의 불이다. 문제는 환경오염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결국 인간의 욕망을 줄여서 특단의 결단을 온 세계가 내려야 하는데, 각 개인과 국가의 눈 먼 욕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가면 정말 가까운 시일 안에 더 심각한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고 몇 가지 재앙이 겹치면 그 폐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게 지구를 위협할 것이다. 


이처럼 위험한 파고를 헤치고 나가야 할 우리 정부에서 상식과 공정이 사라지고 있다. 권력은 형평성을 잃어서 자기편에게는 무한히 관대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잔인하고 무책임하다. 국민의 아픔과 눈물을 진심으로 위로하지 않는다.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잔인한 권력이 우리 사회를 지도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탄식만 나온다. 올해가 더욱 어두운 이유다. IMF 때처럼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위기를 극복하고자 온 마음과 힘을 다해야 하는데, 국민을 인도할 정부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세월이 흐름으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개인의 위기와 밖으로부터 발생하는 총체적 사회문화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멈추게라도 할 수 있을까. 피할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운명이 지금 우리 앞에 기다린다면 당당히 맞서 이겨내야 한다. 이를 위해 많은 정치사회 전문가들이 방법을 찾고 있다. 개인 실존과 역사의 거대한 위기 앞에서 기독교는 어떤 대안을 내놓을 수 있으며 우리는 만만치 않은 위기의 새해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3. 운명 앞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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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1814~1875년), 첫 걸음마, 1858년쯤


농민을 사랑한 화가 밀레, 당시 동료 화가들이 농촌의 풍경을 화폭에 담을 때, 밀레는 주로 농민의 생활에 눈길을 집중했다. 19세기 전반기 유럽 대륙은 산업혁명이 들불처럼 번져가면서 공장‧도시‧임노동이 대세로 자리 잡던 시기였다. 이 모두는 전통적인 농촌의 붕괴로 이어졌다. 밀레의 관심은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풍경의 농촌이 아니라, 도시와 공장 때문에 더욱 피폐해가는 농촌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놓여 있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지식정보‧인공지능 사회의 발달로 직장에서 해고되는 많은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렸다고 볼 수도 있다. 세상은 잔인하고 기계는 차갑지만 그 속에서 해체되어 가는 농촌 사람들의 성실한 노동과 고통을 따뜻한 인간미로 그려냈다.

평범한 농촌의 예쁜 장면이다. 이른 봄일지 늦은 가을일지, 편안한 느낌을 주는 나무 담장 안에서 한 가정의 흐뭇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땅을 파던 농부에게 부인이 아기를 데리고 왔다. 맨발에 슬리퍼 같은 신발을 대충 신은 농부는 무릎을 굽히고 양 팔을 벌렸다. 오른발 앞꿈치에 힘을 모으고 앉은 몸을 조금 앞으로 구부렸다. 직전까지 노동으로 손마디가 굵은 농부가 활짝 팔을 열어 맞이하고자 하는 것은 아이다. 

엄마 손에 이끌려 일하는 아빠에게 온 아기는 엄마의 앞발 위에 자기 발을 얹고는 첫 걸음마를 시작하려고 한다. 사실은 두려운 순간이다. 가축인 소나 말 그리고 대초원의 초식동물들은 낳자마자 걷고 뛴다. 열 달 동안 엄마 뱃속에 다리를 웅크리고 있었으니 낳는 순간 바로 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연스럽게 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태어나자마자 맹수의 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 초식동물들은 맹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낳자마자 일어서고 걷고 달리는 쪽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편‧불안‧불완전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불안함이 인간의 첫걸음에도 드러난다. 

아이는 얼마나 무서울까. 날씨 탓이기도 하겠지만 긴장으로 아기의 볼이 발갛게 변해 있다. 그럼에도 아기는 결국 걸음마를 내디딜 것이다. 멀지 않은 곳에 사랑하는 아빠가 그 넓은 품을 열고 팔을 뻗어 혹시라도 넘어지면 붙들어주려고 잔뜩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첫걸음마지만 부제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빠와 엄마와 아기 사이에 흐르는 따뜻하고 강력한 사랑이야말로 시대적으로 어려운 삶을 이겨나가는 농부 가정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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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 첫걸음마, 1858년                    고흐, 첫걸음마, 1890년


첫걸음마를 소재로 밀레는 1858년에 유명한 파스텔화를 그렸고, 30여년 후인 1890년에 밀레를 사랑한 고흐는 밀레의 그림을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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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교회 외벽 현수막


2023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교회 외벽에 이 그림을 내걸었다. 새해에는 정말 사랑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2700년 전 예언자 호세아는 자꾸만 하나님과 멀어지려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설파하였다.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호세아 11:3) 


하나님이 우리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고 팔로 안아주시고 상처는 치료해 주신다. 지금 이스라엘이 배신하려고 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님처럼 걸음마를 가르치고 팔로 안아주고 얼굴로 볼에 비비는 사랑의 하나님이다. 그런데 어찌 이런 하나님을 배신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진정 간절함 음성으로 우리에게 호소하신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호세아 11:8)


우리가 죄를 지어 하나님을 놓을 수는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을 버릴 수는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손을 놓지 않으시고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신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요체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품에 안아주시고 손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과감하게 그 품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행복하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늙어가는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은 없다.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하지만 세상의 위기 앞에서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나 이 위험한 시기에 어떤 해결책도 없이 불안함으로 새해를 맞이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에 맡기기 바란다. 놀라운 역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새해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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