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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2-1) - " 새 하늘과 새 땅 천국을 사는 사람들 " / 새해주일 / 홍철화 목사 >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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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성탄절(2-1) - " 새 하늘과 새 땅 천국을 사는 사람들 " / 새해주일 / 홍철화 목사

관리자 2021-12-30 (목) 18:05 2년전 365  

본문) 사 66:18-23, 계 21:22-22:5, 마 3:13-17


  전통적인 교회력에서는 대림절부터 새해로 여기고 성탄 절기를 맞는다.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고 하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달력에서 새해를 맞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 한다고 다짐한다. 송구영신하는 시기에 교우들과 함께 매일 새롭게 살자고 권하면서 아침마다 새롭게, 날마다 새롭게, 늘 새롭게 살자! 라고 했다. 이것을 남들에게 전하기보다 자신에게 던지는 경구처럼 말했다. 고령의 시니어로써 매일 새롭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를 체험한다. 주어진 아침이 신비하고 경이로우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물 같다.


  하루하루가 그날 같고 밥을 먹을 때마다 또 그 밥을 먹는다고 일상을 불평하지 않는다. 사실 언제나 새날이며, 매끼 마다 다른 시간에 새롭게 마련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내가 지금 숨 쉬는 것이 순간마다 새로운 것이기에 죽을 때까지 그대로 이어지므로 심장 역시 하루에 십여 만 번 이상 끊임없이 뛰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신비스럽고 경이로운가를 깨달아야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지만 이것을 되새겨 보면 같은 되풀이란 없다. 신앙 안에서 새롭게 눈을 뜨고 새롭게 들으려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1-2) 이 선물 같은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1. 구약 말씀


  코로나 19 재난 시기가 이렇게 오래 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 세계가 이 엄혹한 난관을 대처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음에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수 없이 변이되어 지속하고 있다. 백신을 한 번도 아니고 두세 번 계속 접종하는 이변이 생겼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재난이 마치 무슨 재앙이나 심판 같은 느낌이 들어 두렵기도 하다. 역사의 현장에는 늘 명암이 있었다. 좋은 일만 우리에게 지속하지 않고 때때로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닥친다. 지금 이 지구상의 이변은 일상이 되어 세계 어느 곳에서 기후변화가 일어나 화산 지진 화재와 폭풍 해일 한파 등 전에 보지 못한 일들이 발생한다.


  이런 현실을 보고도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은 나라마다 어떤 이해 관계 때문에 제대로 실행되지 않아 앞으로 이 지구가 어떻게 존속될지 의문을 품게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낙심만 하고 있을 것인가.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 이사야의 말씀에서 어떤 경고를 듣는다.


  남 왕국 유다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회복이 불가능하다 생각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난다. 나라가 망하고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 절망 상태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새롭게 시작된다. 그 때문에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새 역사의 징조를 눈여겨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 현실이 그렇다. 세계 제일의 선교 국가라고 교회 성장을 자랑하던 나라, 경제 발전, 문화 강국… 이런 자부심을 가졌던 나라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이때 주시는 경고의 말씀, 위로의 말씀, 생명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새로운 징조를 보라는 것이다.


 

  최악의 현실에서 비전을 주신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들을 길이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이 가득 찬 도성으로 창조하고 그 주민을 행복을 누리는 백성으로 창조하겠다. 예루살렘은 나의 기쁨이 되고 거기에 사는 백성은 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니 그 안에서 다시는 울음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사 65:17-19)‘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시다.’(사 65:24-25)


  한 생명의 탄생은 모진 진통 후에 있고 그 고통이 기쁨을 증폭시킨다. 시련과 고난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것이 신앙이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사람들아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66:10) 고통받던 백성들을 제사장과 레위 사람으로 삼을 자를 택하여 세우겠다고 약속하시고 그들을 향해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늘 있듯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늘 있을 것이다.’(66:22)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끊임없이 분투하고 전진해야 한다. 고진감래라 했지 않은가. 새 하늘 새 땅은 아름다운 꿈을 꾸는 자 그것을 향해 줄기차게 나아가는 사람에게 온다.


 


  2. 서신서 말씀


  요한계시록은 환난과 핍박이 극심하던 때에 희망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소 아세아 7 교회에게 주는 귀한 메시지들을 대하면서 독자가 새 힘을 얻는다. 고난의 현장에서 ‘이기라’고 명하는 말씀에서 힘을 얻었던 것이다. 2 년 동안의 코로나 19 재난 현장에서 교회가 비대면 예배를 드리며 시련을 겪었다. 목회자들이 남다른 노력에도 성과가 나지 않아 고심하고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현실이 이겨내야 하는 특별한 자리이다.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말씀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감옥에다 집어넣으려고 한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겠다……. 이기는 사람은 둘째 사망이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2:10)


  고 김정준 목사님의 <내가 죽는 날>이라는 시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 내가 죽는 시간은 밤이 되어도 좋다. 캄캄한 하늘이 내 죽음이라면 저기 빛나는 별의 광채는 새 하늘에 옮겨진 내 눈동자이니라…….’ 목사님은 자신의 비문에 <임마누엘> 이 한마디 만을 새겨달라고 했다. 그리고 장례식에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 계시록의 말씀을 읽게 했다. 김 목사님은 젊은 시절에 폐결핵으로 죽음을 바로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기적같이 회복되어 나중에 그때 체험으로 <관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책을 썼다.


  계시록을 쓴 저자는 본문에서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도시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도시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민족들의 영광과 명예를 그 도시로 들여올 것입니다. 속된 것은 무엇이나 그 도시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증한 일과 거짓을 행하는 자도 절대로 거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다만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21:22-27)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소망을 품고 자신이 하나님을 모신 성전이라 여기고 찬양과 감사로 산다.


  요한계시록이 장차 올 미래의 희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고난의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준다. 저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1:3)라고 한다.


 

  동양 고전 <대학 9>에 나오는 글이다. ‘참으로 오늘 새롭게 했거든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리라.’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16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낡아지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위의 고전 풀이를 이현주 목사가 다음과 같이 썼다. ‘나날이 새로워진다는 말은 나날이 죽는다는 말이다. 십자가를 지되 날마다 져야 한다. 어제 졌다가 오늘 안 질 수 있는 그런 십자가란 없다. 날마다 죽어서 날마다 태어나는 그것이 바로 <일일신 우일신 日日新 又日新>이다.’우리가 미래를 소망한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도 꼭 같이 그 믿음으로 살겠다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도 그 희망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야 한다.


 


  3. 복음서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 말씀이다. 공관복음서에 모두 예수님의 공생애 출발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왜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는지 그런 문제보다, 이 사건의 의미가 매우 뜻깊고 중요하다. 이 사건이 예수님의 이후 공생애를 이끌어간 추진력처럼 보인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다. 이 놀라운 사역이 어떻게 펼쳐지는가.


  먼저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세례자 요한은 당치 않는 일이라 여겼으나 예수님이 이 세례를 통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 하여 요한이 허락하였다고 한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니 그때 예수님에게 하늘이 열렸다고 한다. 땅에 속한 인간은 땅을 보고 이 땅에 집착한다. 하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렸다. 야곱이 광야에서 잠못 이루던 밤에 하늘이 열리고 사다리가 그에게 내려져 천사가 내려왔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전해지는 자리였다. 땅이 어둡고 캄캄할 때 하늘이 열려야 한다. 이렇게 뚫려 하늘의 뜻이 그에게 전해지고, 또 사람의 소망이 하나님께 올라간다. 이 열린 통로가 기도라 하겠다. 어려울 때 기도하고 캄캄하고 막혀 있을 때 울부짖고 구하라는 것이다.


  다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그 위에 계셨다. 새해 새 출발 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이 그 위에 계신다. 하나님의 영이 바로 성령이시다.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오셔서 무엇이라 하셨는가. 예수님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그에게 전해 주신 것이다. 이 어려운 시대에 기억해야 할 것이란 하나님의 영이 명하는 것을 들어야 할 것이다.


  하늘에서 들려준 말씀‘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놀라운 선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에 주목하자. 인간은 누구나 혈통으로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은 우리 부모에게서 출생하는 것과 다른 하나님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힘들고 험난한 세상에서 사람으로 사는 것 그 이상의 일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 아들로 사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서로 좋아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서로의 이해가 엇갈리는 복잡한 사이라 하겠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좋아하셔서 마음에 드는 복된 관계가 된 것이다. 하나님이 아들을 향하여 ‘너는 나의 기쁨이다.’라는 확언을 듣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코로나 19라는 뜻밖의 재난 속에서 다시 맞이하는 새해가 밝았다. 이사야가 꿈꾸었던 희망을 품고, 요한 계시록의 비전을 가지라는 그 말씀을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 하나님의 영이 오늘 나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라는 귀한 말씀을 들으며 복된 새해를 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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