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삼하 1:19-28, 히 2:9-18, 눅 2:41-52
1) 송년주일
2021년 마지막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온 것을 감사합시다. 에벤에셀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이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이 코로나 사태 속에서 힘들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고계신 하나님이 참으로 힘드셨을 것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코로나 환란을 당하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고집하며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인류를 보시고 하나님이 참 힘드셨을 것입니다. 노아홍수 때 하나님이 사람들의 죄짓는 모습을 보시고, 세상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셨다는 말씀처럼(창6:5,6) 지금 우리 인류를 바라보시고 힘들어하셨을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 새롭게 하고 달라진 우리들의 모습을 보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회개하고 돌아서서 새 길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2022년은 새로운 길을 갑시다.
2)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 사무엘
사무엘상 1장은 사무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에브라힘 지파에 속한 엘가나에게 두 아내가 있었는데 하나는 한나고 하나는 브닌나였습니다. 그런데 브닌나에게는 아들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하나는 브닌나에게 수모를 당하면서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서원하며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 앞에 드려서 구별된 사람으로(나실인) 살도록 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하나님이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한나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사무엘이라 지었습니다. 사무엘이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말입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잘 길러 젖을 떼게 될 때 하나님 앞에 서원했던 대로 실로 성소의 엘리 제사장에게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바칩니다. 보통 나실인으로 바치면 3살 때부터 성전에 데려다놓고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에 의해서 양육되게 되는 데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은 평생을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엘가나의 아들, 한나의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어린 사무엘을 젖 떼자마자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엘가나나 한나의 입장에서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나는 아마도 엘리 제사장의 실로 성소에 사무엘을 데려다 놓고 돌아설 때 그 발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니 하나님께 바친다는 믿음으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 후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의 실로성소에서 엘리를 도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훗날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스라엘을 이끈 훌륭한 신앙지도자로 성장하여 하나님의 많은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 이스라엘을 신앙으로 바르게 이끌었고 훗날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아 이스라엘의 처음 왕이 되게 하여 나라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나실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평생 동안 머리를 깎지 않고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습니다. 바쳐진 사람으로 하나님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3)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할 '사람 예수'
복음서 말씀 누가 복음 2장 본문은 복음서 안에서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유일한 말씀입니다. 12살 때 그 부모를 따라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성전에 올라갔다가 마리아와 요셉이 어린 예수를 잃어버려 다시 찾아다니다가 사흘 만에 성전 안에서 찾게 된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서 예수를 잃어버리고 소동을 벌인 이야기입니다.
유월절 명절 같은 때는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혼잡합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친지들과 인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동했기 때문에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가 다른 또래의 친구들이나 동네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가다가 예수가 보이지 않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수를 찾았는데 성전 안에서 성전 선생들과 토론하고 있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가“내가 네 아버지와 너를 찾기 위해 얼마나 걱정한 줄 아느냐?”고 했을 때 예수님은 “어찌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십니까?”하고 반문 했는데 그 부모들은 그 말의 참 뜻을 알지 못했는데 마리아는 이 말을 마음에 간직해두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열두 살 때이지만 이미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의식(自意識)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집에 있어야한다는 점을 부가시키는 말씀입니다. 이는 사무엘 1장의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서 오늘 본문은 바로 앞에 나오는 아기 예수의 정결예식(헌아식: 獻兒式 : Baby Dedication)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로 앞 절을 이어 누가가 이렇게 상당한 시간을 넘어서 열두 살 때의 예수가 하나님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쓰는 것은 누가가 사무엘의 헌아와 관련지어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무엘이 실로성소에 드려진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으로 성전에 있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식을 예수님 스스로 가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연인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이기 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의식(自意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아버지의 집인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자신을 스스로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범주(category) 안에 묶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요한복음 12장 49, 50절에서 “내가 자의(恣意)로 말하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고 하신 것처럼 자신은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자신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하신 것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드려진 사람으로 자신의 뜻을 온전히 죽이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순명(順命)의 삶을 사셨습니다. 이미 어려서부터 예수님은 자신은 죽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받드시는 삶을 사신 것입니다.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그 기도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4) 온전한 구원을 위해 죽으신 대제사장 예수
히브리서 2장의 서신서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을 주시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9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은 잠시 천사들보다 못한 자가 되어 죽음 고난을 맛보심으로 영광의 관을 쓰셨는데 이렇게 행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을 당해 죽으신 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와 똑같이 “혈(血)과 육(肉)”을 입으신 것은 당신의 죽으심을 통해서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14-15절)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형제가 되셨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신실한 대제사장으로 백성들의 죄를 속량해 주셨습니다.(17절) 예수님이 고난을 당해 보셨기 때문에 그렇게 시험받는 자들을 도우실 수 있었습니다.(18절)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을 하시고 사시며 고난 특별히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은 마귀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켜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스스로 그렇게 자기를 온전히 포기하시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지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전히 자신을 다 내려놓으시고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신 ‘순명’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삶 속에 자신의 사사로움을 추구하는 이기적(利己的)인 모습은 전혀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죽으신 것입니다. 다 포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극히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가장 낮은 곳 곧 베들레헴 마굿간으로 오셨고 철저하게 자신을 죽이시고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삶을 사시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순종과 헌신을 통해서 죄로부터 자유를 얻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았습니다.
5) 맺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시다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으로 모든 것을 다 바쳐 섬기셨습니다. 이 사랑을 받은 우리도 이제는 우리 모든 것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헌신(獻身)의 삶을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