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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일(1-1) - " 사랑은 여기 있으니 " / 김진수 목사 >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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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성탄일(1-1) - " 사랑은 여기 있으니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21-12-23 (목) 10:21 2년전 338  

본문) 미 5:2-5, 요일 4:7-12, 요 3:16-21


성탄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 땅에 찾아오신 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을 사랑해서 오셨고 사랑을 주려고 오셨으며 사랑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오셨습니다. 이 세상의 참 문제는 참 사랑이 없는 문제이며 이 세상의 가장 큰 위기는 사랑의 위기입니다. 에릭 프롬(Erich Fromm)은 현대인들이 ‘사랑’을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랑을 ‘사랑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랑받는 문제’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외모나, 매력을 갖추려 하고 남자는 여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려고 힘을 쏟습니다. 또한 ‘사랑의 능력’을 얻는 것보다는 ‘사랑의 대상’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능력을 배양하는 것 보다는 좋은 대상을 찾는데 몰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 상태’보다는 ‘사랑하게 된 최초의 경험’을 중시한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이유 없이 사랑에 빠지는 황홀하고 격앙된 경험을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릭 프롬은 ‘기술’을 배우듯이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며 매일 땀 흘려 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참 옳은 말입니다. 이론적으로는 합당한 말입니다. 그런데 훈련한다고 노력한다고 사랑이 될까요? 그게 잘 안 됩니다. 해본 사람만 압니다. 사랑은 알아서, 노력하고 훈련해서 되는 차원의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사랑의 능력(미5:2-5)


사랑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랑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사랑의 능력, 사랑할 수 있는 힘입니다. 셀린디온(Céline Dion)이라는 미국의 여가수가 “사랑의 힘(The Power Of Love)”란 노래를 불렀어요. 그 가사가 감동적입니다. 직역하면 시적 감성이 죽어서 정말 제 느낌대로, 자유한 영혼으로 번역해보았어요!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난 연인들의 은밀한 속삭임 소리가, 지금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려요/ 당신의 눈을 보면, 당신 전부가 내 품 속에 있고, 당신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당신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워, 내가 결코 버릴 수 없는 사랑이죠/ 난 당신의 여자요. 당신은 나의 남자니까요


당신의 손을 내밀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게요/ 당신의 품에 누워있으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요/ 세상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힘들어도, 당신과 함께 있는 순간 모든 건 끝나버리죠/ 내가 멀리 있어도 놀라지 마세요. 난 항상 당신 옆에 있으니까요/ 난 당신의 여자요. 당신은 나의 남자니까요


우리는 결코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가고 있죠. 때때로 겁이나요/ 그러나 난 사랑의 능력을 의지할거에요. 당신의 심장박동 소리가 확신을 주니까요/ 그 길을 계속 헤쳐 나갈 수 없다는 느낌은 이미 천리만리 떠나갔어요/ 난 당신의 여자요. 당신은 나의 남자니까요”


사랑은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도 필이 꽂혀서 사랑의 힘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한 순간 두려움도 사라지고 둘이 함께라면 어떤 힘든 길도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일본 황실의 한 공주도 평범한 민간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황실에서 보장하는 모든 특권을 다 버리고 지금 미국의 조그만 셋집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내 맘에 드는 사람을 사랑하는 자기중심적인 ‘에로스’의 사랑도 이만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놀라운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 영원한 하늘로부터 임하는 사랑, 곧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구약본문 미 5:2-5은 그 놀라운 사랑을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 전부터 시작된 사랑, 그칠 줄 모르는 사랑, 포기할 수 없는 사랑,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 결국 우리를 살려내시는 사랑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까지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입니다.(2, 4절)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2, 4절)


진정한 사랑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은 지식이 아닙니다.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보내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장벽을 사랑의 힘으로 허무십니다. 영원과 시간의 장벽을 깨십니다. 이 땅에 친히 오셔서 가장 초라하고 연약한 그의 백성을 구원해 내십니다. 죄인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십니다. 큰 나라나 도시, 왕이나 권세자의 힘을 빌리시지 않고 가장 작은 마을에 오셔서 오로지 하나님의 큰 사랑의 권능으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7-12)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은 다만 사랑의 힘, 능력일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랑과는 구별되는 신령한 하늘의 은혜입니다. 서신서 본문 요일 4:7-12에서 사랑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이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과는 무엇이 다른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사랑(아가페)은 여기 있다”(요일4:10)고 말합니다. 아가페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아가페는 자발적이고 무엇보다도 ‘비동기적’인 사랑입니다.(니그렌) 아가페가 자발적이라는 것은 자기 밖 외부의 요구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자기 스스로 사랑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이지요. 또 비동기적이라는 것은 사랑에 어떤 이유도 없다는 거지요. 마치 욥이 아무 까닭이나 조건 없이 하나님을 믿는지 여부를 두고 사탄이 하나님께 내기를 걸었으나(욥1:9-12). 욥은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는 게 있으니까 믿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바람도 없이 믿는 비동기적 신앙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산 증거를 보였듯이 하나님의 참 사랑 아가페는 아무 이유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발적이며 비동기적 사랑입니다.(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또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은 어떤 가치에 치우치지 않으며 대상에 좌우되지 않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사랑 받을 만한 대상이거나 조건을 갖고 있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지요. 전제 조건이 달려 있는 ‘만약에 사랑’(if love), 조건이 따라붙는 ‘때문에 사랑’(because love)이 아니라 아무 조건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in spite of love)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도 전에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오히려 우리가 죄인임에도 사랑하사 화목제물로 그의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그뿐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은 창조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아가페는 아무 가치 없는 흙덩어리인간을 가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창조하신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나 다시 흙덩어리 존재로 돌아간 우리에게 다시 사랑의 생명(조에)을 불어넣으셔서 우리를 새 존재(born again)가 되게 하셨습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그 아가페사랑은 죄의 노예로 살던 자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이제는 이웃을 용서하는 자로 살게 하십니다.(요일4:11-12,20)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아가페사랑 만이 이 세상을 구원하고 이 세상을 회복시킵니다. 이 사랑이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받는 사랑(요3:16-21)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을 매 순간 받아서 살아야 합니다. 아가페 사랑은 우리에게는 없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가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 요3:16-21을 보십시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6절) “그를 통하여 세상이 구원받게 하려 하심이라”(17절) 그러므로 사랑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이 큰 사랑, 이 놀라운 사랑을 받아야 우리가 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만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사랑의 한계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기고 고난을 이기고 환경을 이기며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청년알파 24기 성령수련회를 마쳤습니다. 온라인으로 6주 동안 비대면 모임으로 진행된 알파 마지막 날에는 성령을 사모하고 체험하는 기도시간을 가졌습니다. 과연 이런 환경과 가운데 성령께서 친히 우리 모임가운데 임하실까? 생각도 들었지만 기우였습니다. 기도 중에 모든 환경의 제약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고 참으로 오랫동안 코로나로 억압되고 제한된 환경에 짓눌려왔던 청년들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갑자기 가슴에 맺혔던 억압들이 풀어지면서 영혼의 자유와 기쁨과 평안이 모두에게 임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눈물 섞인 기도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서로가 자신의 가슴에 있는 아픔들을 나누기 시작했고 모두 함께 서로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정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서로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청년들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생기가 돌았습니다. 얼마 만에 맞보는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르겠다고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기 전에, 맡은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사도행전적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먼저 은혜를 받아야 땅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모든 환경과 원수 마귀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시대의 한 현상인 코로나는 분명 우리가 지켜야할 거리를 요구하고 모임의 위험을 경고합니다. 동시에 코로나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영적 게으름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부터의 거리를 두도록 미혹합니다. 코로나를 초월하는 신앙적 삶의 방식은 오히려 제한된 공간적 환경을 뛰어넘어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오히려 고립된 공간을 하나님을 만나는 “골방”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먼저 받으십시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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