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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탄 일(1-3) - " 예수님이 세우는 하나님 나라 " / 김진수 목사 >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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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성 탄 일(1-3) - " 예수님이 세우는 하나님 나라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20-12-23 (수) 11:43 3년전 550  

본문) 사 11:1~9/ 히 1:1~12/ 요 1:6~18


초소형국가(micronation)은 국가체제를 모방한 공동체를 말합니다. 1970년 중반 미국의 10대 소년 로버트 벤 메디슨(Robert Ben Madison)이 처음 만든 말인데, 1979년 ‘탈로사 왕국(the Kingdom of Talossa)이라는 자신의 왕국, 마이크로 네이션을 창설했습니다. 요즘에는 주로 국가 체제를 모방한 테마파크들이 마이크로네이션이란 명칭을 사용합니다. 전 세계에는 120개(2014년 기준)가 넘는 마이크로 네이션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마이크로 네이션이 있습니다. 남이섬입니다. 남이섬은 2006년 3월 1일 “나미나라공화국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남이섬을 공화국으로 선포한 동기는 마케팅 전략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2004년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한국드라마 <겨울연가>로 일본인 입장객이 부쩍 늘었지만 금방 잦아들 것으로 예상하고 새롭게 찾아낸 활로가 바로 ‘상상 나라’였습니다. 나미나라공화국(남이섬)에 들어가려면 출입국심사를 받고 들어갑니다(티켓을 사면 통과). 나미나라공화국의 헌법 · 애국가 · 화폐 · 여권 · 문자는 물론이고 군대도 있습니다(남이섬을 오가는 여객선 직원이 ‘해군’). 남이섬에는 나미나라 국립호텔 ‘정관루’가 있는데 객실 44개의 호텔 정문에 무궁화가가 아니라 별 6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5성 호텔(무궁화 5)이 최고인데 나미섬에서는 여관급 정도 건물을 별 여섯 개 6성 호텔로 인정해준 것입니다(자기 나라니까요!). 남이섬에는 대만 국기가 펄럭입니다. 중국하고만 국교를 맺은 한국의 공공기관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죠. 한국 땅에서는 유일하게 남이섬에 휘날리는 대만국기 아래에서 대만인은 감격합니다. 그래서 남이섬에는 매년 대만인 10만 여명이 몰려온다고 합니다.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오신 예수


성탄절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교회들은 이 날을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신 은총의 날로 여깁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매우 개인적인 은총에 국한시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명료하게 예수님의 탄생을 새로운 나라를 세우시기 위한 탄생이라는 사실에 집중합니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의 시작을 다윗왕의 족보를 따라 왕으로 오신 예수를 말하고 있고(마1:1-16), 예수의 탄생이 적어도 이방에 있는 동방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세계적인 사건(마2:1-12)이었다고 합니다. 누가도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천사 기브리엘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줄 것과 그가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눅1:32-33)”이라 했고, 마태와 함께 마가는 예수님이 자신의 공생애를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선포(마4:17, 막1:15)하심으로 출발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구체적으로 “새 나라”,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상이 왜 이렇게 전쟁과 폭력과 억압,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었을까요? 타락한 나라들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인간이 자신이 왕이 되고 통치자가 되어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면서 온 땅에 더러워지고 파괴와 약탈과 억압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의 본이 되고 복이 되는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나라를 세우려 하셨습니다.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법을 주셔서 그 법대로 사는 나라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마저도 세상나라와 같아졌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고 공의와 평화의질서를 짓밟고 무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 제사장, 선지자들도 세상 지도자들과 동일해졌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친히 세상에 친히 오셔서 이 땅을 다스리는 왕이 되시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세 본문은 모두 하나님이 이 땅에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새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시고(사11:1-9), 그 분은 이 세상의 왕보다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왕일 뿐 아니라(히1:1-12) 전혀 새로운 왕, 모든 빛의 근원이 되시는 참 빛으로 오신 분이심(요1:6-18)을 증거 합니다.


전혀 새로운 왕(사11:1~3/ 히1:1-12)


구약본문 이사야 11:1-9은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보내시는 왕이 어떤 분인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나무 하나를 보게 하십니다. 죽은 것 같은 나무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장 초라하고 연약한 나무줄기에서 조그만 싹 하나가 나오고 그 싹이 자라 가지가 되어 마침내 그 가지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보라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사11:1)” 하나님이 보내실 왕이 가장 초라한 가문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장차 보내실 구원자 메시야는 이스라엘이 흠모하는 왕 다윗의 후손으로 오십니다(삼하7:12). 그런데 다윗왕의 번성한 줄기에서가 아니라 그 아비 이새의 줄기, 양치며 먹고 살았던 시골구석의 목자 이새의 줄기로부터 나온 분이 구원의 왕으로 오실 메시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모두를 구원할 참 왕은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 부한 자가 아니라 가난한 자라야하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붙들고 그의 능력과 지혜로 사는 분이어야 참 구원의 왕이 되십니다. 겸손한 분, 약한 분이어야 약한 자를 구원하는 왕이 되십니다. 


오직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한 왕이어야 구원의 주, 구원의 왕이 되십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11:2)” 출생이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시는 분입니다. 우리시대에 필요한 것은 사람의 능력, 사람의 지혜가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이 세상이 이렇게 망가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혀 새로운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은 “지혜와 총명”의 영으로 충만합니다(사11:2). 지혜와 총명은 모든 것을 알 뿐만 아니라 선악을 분별하게 합니다. 많이 아는 사람이 큰 죄를 짓습니다. 그 지식을 악하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영은 선악을 분별하여 지식을 바르게 사용하게 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은 “모략과 재능”이 충만합니다. 모략과 재능은 바르게 판단하여 온전하게 실천하고 수행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생각만 있고 행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은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십니다. 하나님을 경회하고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되게 하는 영이십니다.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이야 말로 이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행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합니다. 


구원의 왕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분일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대리자,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왕이 되십니다. 히1:1-12은 이 땅에 오신 구원의 메시야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영광의 광채, 본체의 형상, 하나님이 친히 낳으신 분(히1:3)”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 분만이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혀 새로운 통치(사11:4-5/ 요1:6-18)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모릅니다. 우리를 다스리는 분인 줄은 아는데 어떻게 다스리는지는 모릅니다. 우리를 구원할 구원의 왕 메시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싹이어야 하고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한 분이어야 합니다. 그 뿐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왕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다스리는 분은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는 분이셔야 합니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사11:4)” 우리의 고민은 옳고 그름을 확신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대로 믿을 수가 없고 겉으로 보여주는 대로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훌륭하게 보였던 사람들에게서 어느 날 그들의 민낯이 드러나는 날 깜짝 놀랄 만큼 추한 모습이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추악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수십 년 뒤에야 억울한 누명을 벗기도 합니다. 그 앞에 서면 이 모순과 이 거짓이 다 드러날 수 있게 하실 수 있는 분만이 우리의 온전한 통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거룩은 아나니야와 삽비라의 꽁꽁 숨겨진 사악한 거짓을 성령의 감동가운데 있었던 베드로의 불같은 눈을 통해 드러나게 하심으로 이룩될 수 있었습니다.(행5:1-11)


뿐만 아니라 참 왕이신 메시야는 공의와 정직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거짓된 판단과 불의한 재판을 다시 바로 잡으시고 억울한 누명과 원한을 완전하게 바로 잡아주시는 분이십니다. 덮고 그냥 지나가거나 적당히 얼버무리는 법이 없습니다. 나무는 다시 켜지만 “톱밥을 다기 켜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미 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켜버린 톱밥을 다시 켜십니다. 낱낱이 단 하나의 톱밥이라도 다시켜서 바로잡으십니다. 무엇보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4절)”하십니다. 부자가 억울할 일은 적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차별당하고 억울할 일이 많습니다. 그 억울한 일을 공의로 바로잡으실 것입니다. 또한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심판(4절)”하실 것입니다. 우리시대는 자랑하고 자기를 들어내고 사는 사람이 앞서갑니다. 운을 쫓는 사람이 기회를 얻습니다. 항상 좋은 것은 이웃에게 양보하고 나쁜 것은 자신 앞에 두며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멸시를 당하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자기를 과장하지 않고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정직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생존경쟁에서 얼마나 손해를 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직으로 심판하십니다. 어쩌다 운 좋게 기회를 얻는 사람보다 평생 바른 걸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높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입의 막대기도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4절)”입니다. “오직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시1:1)”하며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분주하게 사람만나고 일을 꾸미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평생 분주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는 일, 묵상하는 일, 행하는 일에 헌신한 사람들이 복을 얻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나라(사11:6-9)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 나라가 어떤(What) 나라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가끔 천국을 경험하고 온 분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황홀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그 내용이 얼마나(How) 아름다운 나라인가에 집중되어있습니다. 황금 길, 천사들의 노래, 크고 아름다운 집, 천사들의 모습, 온갖 보석으로 된 건축물들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장차 메시야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아름다운 구상언어로 이야기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 모든 표현이 “다 함께” 살고 상호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맺으며 영광스러운 조화를 이루며 사는 곳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두가 함께 사는 곳”입니다.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살며 표범과 어린 염소가 함께 눕는 곳(사11:6)”입니다. 이리와 어린양, 표범과 어린 염소를 함께 두면 어린 양, 어린 염소는 죽고 이리와 표범만 남습니다. 나중에는 표범이 이리를 잡아먹고 마지막에는 혼자 남은 표범도 먹을 것이 없어 죽습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이 매일 하나씩 죽어보세요! 내 곁에 남을 사람 없어요! 이 말씀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남한 과 북한이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원수가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서로를 죽이는 “살생이 없는 곳”입니다. 세상은 서로를 죽이고 공격해서 먹고 삽니다. 내가 살려면 너를 눌러야 합니다. 내가 잘되려면 너를 짓밟고 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공존하는 것입니다. 너를 죽여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사는 것입니다.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사11:7)” 내가 좋아하는 것,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아니라 함께 풀을 먹는 것입니다. 풀은 먹어도먹어도 계속 돋아나는 것입니다. 진디는 조금씩 밟아주어야 잘 자라고 풀은 자꾸 뜯어먹어야 새 풀 싱싱한 풀이 돋아나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 불편해도 함께 사는 길을 택하고 나 좋으라고 남의 살을 찢으며 살지 않고 풀 맛을 들여 함께 풀 먹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함께 “좋아하고 즐거워하고 재미있게 사는 곳”입니다. 일을 싫어하면 지옥입니다. 일을 좋아하면 천국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싫어하면 지옥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면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11:8)”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면 건강해지고 밥 먹고 눕는 것을 좋아하면 지옥입니다. 독사를 다 싫어합니다. 그러나 갖 난 아이처럼 독사를 좋아하면 독사가 좋아지고 선해집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이루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 세상을 덮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마시는 것이 말씀이고 숨 쉬는 것이 말씀이고 보이는 것은 다 하나님 말씀이 되고 들리는 것이 다 말씀이 되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양식이 되고, 음료가 되고 우리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주의 말씀이 온 세상을 덮을 때만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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