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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대림절(4-2) - "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라 " / 이훈삼목사

관리자 2018-12-21 (금) 18:57 5년전 2303  

본문) 이사야 35:1~2

   

1. 반전의 매력

 

1) 1999년에 개봉하여 반전(反轉) 영화의 교과서가 된 식스 센스(Sixth Sense)’.

죽은 영혼이 눈에 보여 두려움에 떠는 너무 귀여운 꼬마를 치료하는 유명 아동 심리학자 말콤 크로우(브루스 윌리스 분), 그런데 영화 마지막에 보니까 바로 이 심리학자도 죽은 사람이어서 이 꼬마와 소통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가 잘 되었다는 것은 영화 막바지까지 이 사람이 죽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중에 가서야 밝혀져도 내용 전개에 무리가 없이 매끄러웠다는 점이다. 이 깜짝 반전에 관객은 탄성을 지른다. 이후 영화에 반전이 없으면 시시해져서 거의 모든 영화 막바지에 반전의 요소를 삽입하게 된다.

 

2) 기독교 신앙도 한 마디로 비유하면 반전 드라마다.

마치 징그러운 애벌레가 한 마리의 황홀한 나비가 되듯이 말이다. 인생과 역사의 흐름이 어떤 계기를 통해 전혀 다르게 변화했다는 것이 전체 성경의 주요 내용이다. 구약을 대표하는 사건은 출애굽인데, 출애굽이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히브리(하층민)들이 자유민이 되었다는 것이다. 노예에서 자유인으로의 전이가 구약의 핵심이다. 신약도 마찬가지다. 마음과 육체의 질병으로 고생하던 이들이 건강과 새 인생을 얻게 된 것, 환자에서 건강한 사람으로의 반전이다. 그저 이름 없이 갈릴리 호수에서 평생 고기 잡으며 살 사람들이 사람을 낚고 인류를 구원하는 엄청난 인물로 변화되었다는 반전이야기다. 기독교 신앙을 통해 반전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니다. 나 자신과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가정, 일터, 사회의 뚜렷한 변화를 추구하며 경험하는 삶이 우리의 목표다.

 

3) UP or Down?

문제는 변화의 방향이다. 변화는 악에서 선으로 향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착하고 애틋했던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면서 아주 낯선 아이로 급작스럽게 변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 가족은 당황하며 어찌할 줄을 모른다. 순수하고 착하던 사람이 돈에 눈이 멀거나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며 악의 화신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것은 슬픈 반전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원하는 것은 연약함, 부족함, 어리석음, 난폭함, 사악함이 변하여 건강하고 온전하고 지혜롭고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반전의 방향이 악에서 선으로 향할 때 의미가 있다. 이 방향이 잘못되어 선을 지향하지 못하고 악을 지향하게 될 때, 자신과 주변이 불행에 빠진다. 우리의 사명은 자칫 악의 반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현실을 선의 반전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2. 너무 아름다운 전망

 

1)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2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노래한 예언이 아름답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이사야 35:1~2)

 

이 말씀에는 뚜렷한 대조가 드러나 있다.

 

광야·메마른 땅·사막 : 백합화·기쁜 노래·레바논의 영광·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

 

광야와 사막 같은 메마른 죽음의 땅에 백합화가 피고 노래가 넘쳐나고 평화와 풍요의 아름다움으로 변할 것이라는 매혹적인 전망이다. 이러한 꿈은 시대와 역사를 달리 하지만 우리 모두의 공통된 소원이다. 더 이상 메마른 인생을 살지 않으면 좋겠다, 더 이상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는 것보다 삶의 희망을 더 많이 느끼면 좋겠다, 더 이상 궁핍으로 쓰라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차고 넘치는 은총으로 여유롭게 삶을 즐기면 좋겠다는 바람, 지금 우리도 가지고 있는 기도 제목들이다.

 

2) 이스라엘의 신고(辛苦)

이스라엘은 역사에서 수많은 고난을 당했다. 이집트 노예 살이, 강대국의 침략, 포로, 추방. 학살 등 지구상 약한 이들이 당할 수 있는 아픔을 겪었다. 유대인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2천년 동안 세계 곳곳에 나라 없는 백성으로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편하고 유익하고 재미있는 것이라면 모르지만 그것 때문에 삶이 위험해지고 죽음까지 각오해야하는 것임에도 지켜낸 것이라면 그건 대단한 것이다. 유대인은 이 기적을 해냈다. 삶의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현실에서 유대인들을 지켜준 것은 이사야 같은 예언자들이 선언한 반전의 비전이었다. 지금은 고통스럽고 지금은 죽을 것 같고 지금은 절망적이지만 이제 곧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며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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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두 세계

낭만적인 노을과는 다른 느낌의 붉은 하늘이다. 거친 붓질로 상황의 심각함을 표현하고 붉은 색은 거의 분노의 핏빛에 가깝다. 산은 아직 초록빛이 남아 있지만 멀고 높은 산부터 검게 변하고 있다. 지상에는 혹독한 화염이 휩쓸고 간 것 같다. 땅도 제 빛을 잃고, 나무들은 잎이나 가지 하나 없이 모두 시커멓게 타버렸다. 지금도 암울하지만 갈수록 더욱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질 것이다. 악으로 향하는 전망이다. 우리가 지금 저 곳에 놓여 있다면 숨이 막힐 것이다. 하늘도 산도 땅도 희망의 색이 보이지 않는다. 죽음의 승리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들이 푸름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럽 대륙의 거대한 구릉지대에 나무와 곡식과 풀이 장관으로 펼쳐져 있다. 드넓은 초장 사이로 비포장 길을 달리는 차도 낭만적이다. 여름에는 초록의 물결이 넘실대고 가을에는 황금빛 향연을 예고하고 있다. 저기서 뛰고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지금도 만족하고 감사하며 내일은 더욱 희망으로 부푼 삶이다. 우리가 꿈꾸는 낙원이다. 선으로 향하는 전망이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현실이 서로 전이될 수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급반전이다. 결과는 서서히 나타나더라도 방향의 선회는 급작스럽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우리 가운데서 시작하고 진행한다. 우리는 선에서 악으로 반전이 아니라 악에서 선으로의 반전을 꿈꾸고 추진한다.

그 계기는 무엇인가?

 

 

3. 반전의 계기

 

1) 문제는 어떻게?

우리는 모두 악에서 선으로, 열악한 현실에서 아름다운 미래, 유토피아로의 반전을 원한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자본주의가 꿈꾸는 세계나 사회주의가 그리는 지상낙원이나 기독교가 제시하는 하나님 나라나 고단한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행복을 원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가에서 친구가 적이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는 지금처럼 강자나 약자나 규제를 최소화하고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두면 자연스럽게 전체적으로 발전이 이루어져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의식적으로 자본 중심의 사회 구조를 변혁할 때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새 세상을 만든다고 한다. 이러한 입장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창의적 기술개발과 경영혁신을 통해 경쟁에서 승리하고 이긴 자들 중심의 낙원을 이루기 위해 기술 개발과 효율적 경영에 몰두한다. 아니면 약자들의 조직을 정비하고 연대성을 강화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 굳게 손을 잡고 제도를 개선하고 부의 공정한 분배 구조를 만들기 위해 투쟁한다.

우리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이상사회에 다다르기 위한 세상의 논리와 지혜를 무시하지 않지만,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주도권(Initiative)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세계는 주님의 손안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과학적 이론을 면밀히 검토하면서도 우리의 무게 중심은 하나님의 은총에 두고, 이론적 무기를 가다듬는 것과 함께 그보다도 더 주님께 기도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이다.

 

2) 메시아의 도래

메시아의 도래는 이런 절망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세계로의 반전을 위한 유일하고도 명확한 계기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은 기술 개발이나 인간의 연대도 소중하지만 그 바탕에 하나님의 개입, 메시아의 오심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자연과학자들이나 사회과학자들이나 그들이 제시하는 사회 이론을 자신도 모르게 따라가고 있는 현대인들에 메시아의 오심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희망의 세계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사명이다.

현대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평가를 해야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역사 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역사의 질곡에서 그들은 죽지 않고 생존했다는 점이다, 이집트에서의 노예, 강대국의 침략으로 멸망과 포로, 또다시 식민지화와 전 세계로의 추방, 그리고 나치 학살 등 끔찍한 역사의 고난 앞에서 그들은 죽을 것 같으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그들의 이런 저력 맨 밑바닥에 있는 것이 바로 메시아를 기다리는 신앙이라는 점이다.

 

3) 이번 성탄절에 반전 : 개인과 역사

인생과 역사를 새롭게 선한 방향으로 급반전시킬 메시아가 우리에게 오신다. 2018년 성탄절에 메시아가 오시지만 누구나 은총을 입는 것은 아니다. 주님만이 나의 고통과 갑갑한 현실에서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실 분이고, 주님만이 교착 상태에 빠진 한반도의 평화 기운을 새롭게 살려서 평화와 통일로 이끌어주실 분이라는 확신을 지니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내리는 은총이다. 이번 성탄절이 우리에게 반전의 시작이 되게 하자. 우리 자신이,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우리 사회가 온갖 모순을 넘어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구원의 새 차원을 활짝 열어젖히는 출발점이 되게 하자. 아기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성탄절을 믿음으로 준비하며 기다리는 이에게 반전의 새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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