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40:1~11, 빌 4:4~7, 눅 1:57~66
이사야서 40장은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오실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약과 신약을 잇는 중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서 40장은 다섯 가지의 중요한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손”(사 40:2)입니다. 무엇보다 “여호와의 손”은 하나님의 통치와 권능을 말합니다. 특히 이사야서에서 ‘여호와의 손’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을 의지하고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였으며, 여호와를 구하지 않는”(사 31:1) 죄를 저질렀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사 29:13). 이들은 하나님 앞에 헛된 제물을 드렸고(사 1:13),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한 패가 되어 뇌물을 사랑하며, 고아와 과부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사 1:23). ‘여호와의 손’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시되, 이제는 용서의 때가 시작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율법의 시대를 마감하고 은총의 시대를 열기 위해 오시는 예수님을 증언하는 표현입니다.
둘째는 “여호와의 길”(사 40:23)입니다. “여호와의 길”은 하나님의 공의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걸어가시는 길이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사 40:4)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회당에서 선포하신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셋째는 “여호와의 영광”(사 40:5)입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고 합니다. “나타난다”는 말의 의미는 덮개를 벗긴다는 뜻입니다. 이제까지는 여호와의 영광이 감추어져 있었다는 말입니다. 감추어져 있고 신비에 싸여 있어서 알 수 없었지만, 이제 때가 되어 그 영광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 피조물의 역사에 감추어져 있었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심판하심이 드러날 때,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영화로우심은 더욱 빛이 나게 될 것입니다. 아직은 어둡고, 캄캄한 때이지만, 이제 곧 하나님의 영광이 온 천하를 비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의 뜻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넷째는 “여호와의 입”(사 40:5)입니다. “여호와의 입”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 하나님의 선포, 하나님의 약속을 가리킵니다. 구원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선언과 선포는 소망의 출발점이며, 믿음의 근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이 세상에 오실 메시야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의 약속을 완성하실 메시야는 고난 받는 종의 모습으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며,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고,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고,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사 53:2-3)의 모습을 가졌으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며,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사 53:5-6)고 이사야서는 말합니다. “여호와의 입”은 이러한 메시야를 보내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뜻합니다.
다섯째는 “여호와의 기운”입니다. “기운”이라는 히브리어 단어에는 ‘숨, 영’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기운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숨,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특히 오늘 이사야서 본문에서 “하나님의 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강조하여 증언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것은 잠깐 피었다가 사라지는 꽃이나 풀과 같은 데 비해서 하나님의 기운, 하나님의 숨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사 40:6-8).
하나님의 숨은 영원하지만, 인간의 숨은 잠깐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전도서에서 ‘헛되다’고 할 때, 이는 인간의 아주 짧은 숨을 가리킵니다. 인간의 숨이 짧다는 것은 세상 권세도 짧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순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운”은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시고 선포하시기 위해 오시는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 말씀에 따라 이 땅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신 분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사 40:3)는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회개의 세례’(마 3:1, 막 1:4, 눅 3:3)를 베풀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 3:2)면서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가르침은 내면적인 회개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정직하게 살아갈 것을 강조했습니다. 세리들의 경우에는 부과된 것 이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했고, 군인들은 사람에게서 협박하여 무엇을 빼앗거나 속여서 강탈하지 말 것을 강조했습니다(눅 3:12~14)
세례 요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요 1:13)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대해 가진 입장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자신의 명예와 목숨을 내려놓는 길을 걸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렇게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을 통해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쁨을 선포합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서 기뻐하고 또 기뻐합니다(마 2:10). 세례 요한이 태어날 때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 모든 사람이 기뻐할 것에 대한 말씀을 전합니다(눅 1:14).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나타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눅 1:28)라는 말씀을 전하는데, “평안할지어다”라는 말은 “기뻐할지어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대림절 넷째주일을 맞이하여 아기 예수님 탄생의 기쁨이 온 세상에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우리는 이미 와 있는 하나님 나라가 반드시 완성될 것을 믿습니다. 어둠과 절망과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이들 위에 아기 예수님의 거룩한 탄생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