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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대림절(2-2) - " 마지막 기름을 태워서라도 "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1-12-04 (토) 11:25 3년전 781  

본문합 2:1-4, 롬 13:8-14, 마 25:1-13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해 탄식합니다. “여호와시여제가 폭력(חמס 불의한 소득잔인함압박자때문에 도움을 청합니다당신은 언제까지 듣지 않고구원하지 않으시겠습니까?”(합 1:1) “악인이 그보다 의로운 자를 삼키는데 가만히 계십니까?”(합 1:13)

하박국 선지자가 성루에 선 이유는 하나님께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심산입니다나의 탄식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지 들어보겠다는 겁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에 주께서 대답하십니다.

종말에 관하여 증언하는 것이 거짓되지 않을 것이다더딜지라도 기다려라분명히 올 것이며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유다가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그 시대에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을 받은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하십니다내가 하는 말을 듣고 판에 글자를 똑똑히 새겨서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도록 하라십니다.

의인은 그의 진실함으로 살 것이다.”

의인이 짓밟히고 폭력과 잔인함에 숨조차 쉬기 어려운데 얼마나 더 진실을 부둥켜안고 버텨야 합니까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으므로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는데그 사랑은 무엇입니까?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룬 자’(롬 13:8)라고 합니다.

율법은 비록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여도 규칙에 따라 행동하여서 타인을 함부로 억울하게 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초등교사’(갈 3:24), 개인교사(새번역)와 같습니다율법은 규칙을 하나하나 가르치고 따르도록 엄격하게 규제합니다그래서 율법은 자율적이지 않습니다그러나 사랑은 자율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폭력을 일삼는 이들또는 불의한 소득을 취하기 위해 잔인하게 약탈하는 악인에게 에워싸여 율법도 정의도 사라진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의인들의 무기력함을 고발합니다나아가 혹시 하나님마저도 의인들을 외면하시는 건 아닌지 따져 묻고 있습니다.

주님은 너무나 정결하시기 때문에 악함을 찾아내지 못하시는 건 아닙니까?”

곧 올 그것을 기다리라고 하셨는데그것이 오면 악이 사라집니까의인이 숨을 쉬며 살 수 있습니까?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신랑이 오기를 기다립니다문제는 언제 올지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모른다는 거지요미리 준비는 했습니다그런데 신랑이 짐작한 시간보다 더 늦어집니다자다 졸다 하느라 등불이 이미 다 꺼져버렸습니다기름을 넉넉히 준비한 사람들은 다시  불을 밝히는데기름을 다 쓴 이들은 불을 밝힐 수 없습니다애써 기다렸는데 눈앞에서 잔치가 벌어지는 성의 문이 닫혀버립니다.

혹시 하박국 선지자는 신랑을 기다리다가 기름을 다 써버린 이들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모두가 어두운 곳에서 빛을 밝혔는데 정작 신랑이 온 그 때에 성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습니다어쩌면 어둠의 시대에 등을 밝히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닐까요?

 

폭력과 잔인한 시대에 숨죽여 메시야를 기다린다는 것그것은 시간을 기다림이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한 숨죽임입니다그러나 언제까지나 숨죽여 있을 수 없는 것은 신랑이 도착한 다는 것을 알면서 기다리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하박국 선지자처럼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불의와 폭력을 모른 척 할 때 과감하게 불을 켜고 만천하에 잔인함을 고발해야 합니다그러다가 내게 있는 기름이 다해간다고 다시  불을 끄고 잠들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을 향해 외치는 그 항의가성루에 올라가 버티며 말씀하시기를 요구하는 그의 몸짓이 가엾습니다.

 

오늘의 시대에도 하박국 선지자처럼 높은 곳에 올라가 하나님을 향해 외치는 이들이 있습니다산업현장에서 죽고 싶지 않은 시간에 죽지 않을’ 환경과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생명을 보존하며 노동할 환경을 마련해 달라며 세상을 향해 외칩니다찬바람 부는 첨탑에 올라가 농성을 합니다그들의 몸짓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 시대의 간절함입니다자신의 몸을 불살라 세상의 불의함과 잔인함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행위인가 봅니다평양의 을미대 위에 어느 여인이 올라가 앉아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그 사진은 1931년 5월 강주룡이라는 여성노동자가 일방적인 임금삭감에 항의하느라 을밀대 지붕에 올라갔고이 사건은 우리나라 고공농성의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90년이 흘렀습니다오늘 이 시간 경기도에는 전국학교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공농성중입니다영광의 원전 앞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고공농성을 하고 있습니다첨탑으로 올라가 때로는 400일을 넘기고 500일을 넘기는 경우도 있습니다뜨거운 여름과 얼음장 같은 추위를 견디는 이들이 있습니다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새해를 성탄절을 부활절을 그 뜨겁고 추운 곳에서 끼니를 걸러 가며 불안한 잠을 자는 이들이 지금도 있습니다그러나 그들의 외침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마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까우리의 목적은 신랑을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에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재림을 기다리느라 저 높은 곳에서 생명을 담보로 정의를 구하는 그들이 그 곳에 있도록 모른 척 등불을 끈 채 신랑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까?

신랑이 온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그러니 신랑이 오기 전어둠 속에서 추위에 떠는 내 곁의 사람을 위해 등불을 켜 둘 만 하지 않습니까장작불을 지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법은 사랑보다 클 수 없습니다율법은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는 바울사도의 선언은 남을 사랑하느라 나의 욕심을 내려놓은 이후에 하는 말입니다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는 그에게 희망이 되는 말입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자율을 보장해 주는 동시에 나도 역시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합니다사랑은 나를 위함이 아니라 너를 위함이 먼저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반드시 이를 것이다더딜지라도 기다리라.”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말씀인 듯합니다그러나 희망은 하박국 선지자에게나고공에서 농성을 하는 노동자 혼자는 이룰 수 없는 신기루 같아 보입니다그래서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달려가면서라도 볼 수 있도록”.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마주서야 합니다높은 성루에 선 하박국 선지자와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대신 지고 높은 곳으로 올라간 이들이 의인들에게 희망을 놓지 않도록 달려가면서라도 읽을 수 있도록 기록한 말씀입니다. “더딜지라도 기다리라반드시 종말이 이를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이 어둠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등불 하나 켜 두는 것.

신랑이 오시 전에 가진 기름이 다 소모되더라도 따뜻한 빛을 밝혀 온기를 나누는 것.

성루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는 그가 외롭지 않도록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노라고당신의 써 놓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노라고 등불 하나 켜 들고 성루 아래로 모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메시아에게 얻을 구원을 기다리면서 누군가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곧 다가오는 우리의 희망이 꺾이지 않도록우리 서로의 희망을 품고 정의가 악을 이기는 순간을 위해 함께하는 것이 메시아의 오실 길을 평탄케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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