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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대림절(1-1) - " 회개의 물세례 운동으로 시작되는 대림절 " / 정재동목사

관리자 2018-11-30 (금) 10:34 5년전 2339  

본문) 말라기 3:1~7, 요한계시록 3:14~22, 누가복음 3:1~17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 그렇게 표현합니다. 예수가 주인공입니다. 성탄은 그분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고, 대림절은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께 집중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고대하고 기다리는 절기인 대림절 초입에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가 끼어듭니다. 그것을 해명하는 것이 대림절의 의미를 살리는 일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말라기는 우리가 구하고 사모하는 언약의 사자, 즉 예수 그리스도가 갑자기 성전에 임하시되(3:1b), 2절부터 4절까지에 의하면,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는 연단하는 불로, 표백하는 잿물로 세상을 깨끗하게 하여 그 세상을 공의로운 제물과 봉헌물로 하나님께 바쳐서 그분의 기쁨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연단하는 불은 심판의 성격이 강하고, 표백하는 잿물은 회복의 성경이 강하다고 하겠습니다. 심판하고 회복하는 주님이 임재하십니다.

 

그렇게 심판하고 회복시키는 참 주인공이 오기 전에 바로 그 앞에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를 보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사자의 역할이 바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3:7b), 회개하라고 요청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셔서 그 일을 완성하기 전에 예비자가 와서 그의 길을 닦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가 통찰했던 바입니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을 터인데, 그 소리가 바로 주의 길을 곧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게 바로 세례자 요한의 등장 이유입니다. 그의 사역을 보고 그리스도로 혼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랬습니다. 말라기에서도 그리스도를 연단하는 불이라고 했는데, 요한 자신도 오실 주인공은 성령의 불로 세례를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며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 역할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니지만 그를 가리키는 아주 중요한 손가락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어찌 장차 올 진노를 피할 수 있겠느냐 그러면서 단호하게 도전해 들어갑니다. 그때가 바로 누가복음 31절과 2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황제가 통치하고, 총독이 다스리고, 분봉 왕이 이끌고, 대제사장이 지도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와야 하고, 요한이 그 길을 예비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황제도 있고, 총독도 있고, 분봉 왕도 있고 대제사장도 있지만, 그러나 사회는 엉망진창이 되어서 길이 구부러져 있습니다. 말라기는 그 상황을 5절에서 운명론에 빠져 점만 치고, 성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하여 간음하고, 거짓 맹세하고, 품꾼의 삯을 착취하고,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 세상에 그리스도가 오시고, 그 길을 예비하는 자가 온다고 선포했습니다. 누가복음은 실제 세례자 요한이 와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내용입니다. 높은 산과 낮은 골짜기처럼 불평등한 세상이 되었고, 불의가 판을 쳐서 길이 비뚤어져 있는 세상에서 그 길을 곧고 평평하게 합니다. 그래서 6절 말씀처럼 모든 육체가 구원을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황제와 총독과 분봉 왕과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정의와 공평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세상에 미리 와서 정의를 세우고, 공평을 실현하며 주의 오심을 예비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 한 <회개의 물세례 운동>입니다. 그런데 이 <회개의 물세례 운동>이 주님 오시기 전에 와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요한계시록 319절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회개의 기회를 준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연단하는 불로 우리를 책망하기 전에 말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성령의 불로 우리를 새롭게 하기 전에 사랑하는 자를 위해 회개의 기회를 주려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뜻입니다. 세상을 향해서 회개의 물세례 운동을 일으키라, 그런 뜻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의 에너지를 밖으로만 뿜어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 오시기 전에 종교의 에너지를 내면으로 깊이 뿌려서 내가 새롭게 되라는 뜻입니다. 그 힘과 능력으로 존재의 변화를 이끌며, 동시에 세상을 곧게 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정체성은 결국 그리스도를 향해 있었고, 그 에너지는 세상을 향해 광야의 소리로 맑았습니다. 그리고 사자 후처럼 토해냈습니다. 무리가 달라졌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옷이 두 벌 있는 자는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는 없는 자를 먹이라고 했습니다. 세리들도 변화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부과된 것 외에는 절대로 거두지 말라, 했습니다. 군인들도 묻습니다.

 

강탈하지 말고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그랬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당신들의 조상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어떻게 우리가 임박한 진노를 피할 수 있겠느냐, 요한계시록의 말씀처럼, 너희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면, 내가 토해낼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부자라고,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만한다는 것입니다(3:17).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저들을 향해서 너희야말로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이라고(3:17) 했습니다. 겉으로는 황제가 있고 총독이 있고 왕이 있고 대제사장이 있었지만 길이 곧지 못한 것처럼 그래서 살림살이가 팍팍한 것처럼, 저들이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그저 미지근해서 나타나는 현상도, 겉으로는 부요하지만, 가난한 것입니다.

 

성경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내면이 더 깊어지고 깊어져서 궁극적으로는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며 주의 길을 곧게 하여 주님 오심을 예비하는 회개의 물세례 운동에 반응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을 고대하고 기다리는 대림절은 회개의 물세례 운동으로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주님 오시는 성탄에 우리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늘진 땅에 앉은 가난한 이웃들도 함께 참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주로 모시는 우리는 모든 이들과 형제자매로 살아갑니다. 주님 오시는 성탄에 모두가 참여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3:6) 회개의 물세례 운동에 참여해야 합니다. 요한이 한 것처럼 불의한 세상에 외치고 길을 곧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스스로도 회개의 길에 동참해야 합니다. 세상이 불의하다고 해서 내가 곧 의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불로 연단하고 표백해내는 주님 앞에 정결한 모습으로 서기 위해 요한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요한이 외치는 광야의 소리는 불의한 세상을 향한 소리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내면과 삶과 인격과 존재를 향한 외침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한국교회 위기는 종교 지도자들의 위기입니다. 숫자가 줄어 위기가 아닙니다. 말씀 앞에 진지하게 서지 않기 때문에 위기입니다. 나를 향한 말씀으로 듣지 않고 남을 향한 말씀, 세상을 향한 말씀으로만 듣기 때문에 위기입니다. 의로운 양 고개를 들고 오만한 길로 가기 때문에 위기입니다.

 

요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고 반응하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 자기성찰적 회개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위기는 파산으로 갑니다. 주님 오심이 은혜이고 감사이지만, 그분의 맑고 투명하고 불로 연단하고 표백하는 성령의 역사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회개운동은 단순히 사순절 절기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초이고 본질입니다. 거기서부터 주의 길이 예비 됩니다. 그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카이로스의 때입니다. 회개운동을 통해 세상의 희망을 노래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모든 육체가 함께 주님 오심을 찬양하고 구원의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야 합니다. 그 과제 앞에 한국교회는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교단 교파 모두 초월하여 한마음으로 대림절 <회개의 물세례 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지도자가 앞장서야 합니다. 목사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세로 이 운동을 이끌어 갈 때 성탄은 모든 이들에게 기쁨이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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