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목회연구원

창조절(7-3) - "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 " / 한성수 목사 > 창조절

본문 바로가기

창조절 HOME > 설교올리기 > 창조절

[셋째해] 창조절(7-3) - "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 " / 한성수 목사

관리자 2019-10-11 (금) 22:46 4년전 1637  

<본문> 수 24:14-28, 행 3:22-26, 요 15:18-27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하고 나서 레위를 제외한 열두지파에게 땅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임종이 가까워지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세겜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특히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백성들과 함께 불렀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층들도 빠짐없이 불렀던 것은 세겜 모임이 그 만큼 중요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꿈에 그리던 땅을 가지게 되었는데, 땅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 지를 당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선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거룩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선조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은 75세의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어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보여줄 땅을 알지도 못한 채 떠났는데, 히브리서를 인용하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믿음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도착한 곳이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의 세겜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땅에 대한 약속을 합니다.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창 12:5-9) 

 

 하나님은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아브라함은 세겜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더 넓은 지경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장차 이 땅이 나의 자손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성호를 드높이 불렀던 것입니다. 이렇듯 세겜에서 아브라함이 그의 자손이 가질 땅의 약속을 받았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나서 온 백성을 세겜으로 불러 모았다는 것은 선조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호수아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곳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은 선조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 진 것인데, 이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무수히 많은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고 회고합니다. 애굽의 종살이와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빠져 나온 일,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과 광야에서 보내었던 연단의 세월, 그리고 가나안으로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적들을 물리치고 드디어 가나안의 성읍들을 정복하게 된 일들을 나열하면서, 이는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신 은혜의 역사라는 것입니다.(수 24:1-13)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을 섬기라”(수 24:14)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다른 족속들의 신들이 더 좋아 보이면, 오늘 너희가 섬길 자를 택하라고 하면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면서, 어떤 신을 섬길지 오늘 결단하라고 하였습니다. 아, 얼마나 자신 있고 얼마나 확신에 찬 고별설교입니까? 

 

 여호수아는 그야말로 전사로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일찍이 열두지파의 대표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보고를 할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지파의 대표들은 두려워 떨면서 결코 그 땅을 차지 할 수 없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힘이 쎈 네피림의 후손인 아낙자손들이 버티고 있으니 우리 모두는 죽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갈렙과 함께 그렇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민 14:9)고 하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저들은 우리의 먹잇감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판단한 승리의 기준은 하나님이 함께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였습니다.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를 이어 가나안 정복의 선봉장이 된 여호수아는, 여전히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에게 있음을 굳게 믿고 오늘의 승리의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여호수아의 비장한 결단의 촉구는 단순한 겁박이나 회유가 아니라, 전 생애를 거쳐 경험하였던 자신의 신앙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세상을 이기게 하시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두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 믿음의 고백을 끝까지 견고하게 붙들고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축복으로 받게 된다고 힘 있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여호수아가 경험하고 고백하였던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서 동전을 구걸하는 자를 만납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향하여 은과 금은 나에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너에게 준다고 하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니 평생 일어서서 걸어본 적이 없던 그 사람이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서 일어서고 걷게 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킨 베드로를 보고 모여들자, 베드로는 이 일은 우리 개인의 권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생명의 주이신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는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모세의 말씀 속에 드러나 있다고 하였습니다. 

 

“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행 3:22-23)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세우실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인데 만약 그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던바, 그 선지자는 곧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모세를 인용한 베드로의 이 말은 여호수아의 고백과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셔서 생명의 주가 되게 하셨으니, 이제 그 이름을 믿는 자는 구걸의 삶에서 해방 될 것이요, 앉은뱅이의 삶에서 일어서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말해 예수의 이름만이 생명이요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요 15:18)고 하셨습니다. 동시에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요15:20) 나아가서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요 15:23)라고 하면서 제자들과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것은 제자들로 상정된 믿음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택하신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요15:19) 따라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그리고 예수를 나의 주로 영접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62)고 하시면서 믿음의 길은 오직 바르고 곧은 외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과 물타기를 하는 것은 의의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요, 예수의 생명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서두의 구약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여호수아가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하면서 세겜에 모인 백성들에게 ‘오늘’ 그리고 ‘여기서’ 결단을 촉구하니, 백성들은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수 24:21)라고 합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는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수 24:23)고 하였습니다. 입술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방 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여호와를 섬기는 자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면서 그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만이 언약으로 받은 축복의 땅 가나안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복된 땅에 거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전하고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일어서고 걷는 능력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삶을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목회연구원        ☎ TEL : 010-2434-0536       E-mail : puock@hanmail.net
COPYRIGHT © 2017 말씀목회연구원 .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