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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창조절(7-2) - " 아! 노아의 시대여! "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4-10-11 (금) 22:16 6일전 85  

본문) 9:1~7, 16, 벧전 4:1~11, 25:14~30

 

하나님은 죄가 관영한 세상을 새롭게 하시려고 홍수로 심판을 하시는 때에도 모든 숨 쉬는 생명의 씨앗을 방주에 보관하셨습니다. 무려 1년여의 시간 동안 방주 안의 생명들은 숨죽여 있던 시간을 지내고 생명의 빛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정처 없이 물에 떠다니던 방주에서 생명을 보존한 후 찬란한 빛을 보며 땅에 발을 내딛은 생물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을 것이며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않게 하겠다.”(8:21b~22)

 

하나님이 노아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에는 당신의 사명을 맡긴 처음 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던 내용과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처음 남자와 여자에게는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남자와 여자는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리를 받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대신하여 정복하고 다스린다면 의롭고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려 평화로우며 화목한 세계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행동을 하였고, 에덴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안정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첫 후손은 형제를 살해하였고, 그 동생의 생명이 끊어지고 피는 땅을 적셨습니다. 가엾은 피가 땅을 물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하셨을 때에 다스리라는 의미는 통치하다, 지배권을 가지다라는 의미 외에 부스러뜨리다, 긁어내다등의 의미가 같이 있습니다. 정복하라는 짓밟다, 멸시하다, 억누르다, 침해하다, 종속시키다라는 의미입니다. 두 단어에서 중도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많이 들립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들은 대로 땅과 거기에 있는 것들을 정복하고 다스린 결과 자신들의 생명조차 보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 죄가 관영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죄에 물든 모든 것을 물로 씻어내셨습니다. 아우 아벨의 피를 흡수한 땅도 씻어냈습니다. 그리고 당대의 의인이라고 인정하신 노아를 선택하셔서 죄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물에서 모든 동물들의 생명을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방주에서 내린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시며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고 하십니다. 두려워하다두려움, 경외의 대상’. 무서워하다눌러 짓이겨진, 공포, 당황한, 약화된, 겁먹은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동물을 사람들이 먹게 될 것이니 그들의 생명이 사람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니 살아있는 짐승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여 겁을 먹고 도망가며 숨어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남자와 여자에게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종속시키고 지배하라고 하셨으나, 노아에게는 살아있는 동물들이 사람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두 번에 걸쳐 명령하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시는 말씀 안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의 유기적인 평화가 사람에게 달려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때에 사람이 다른 모든 피조물들에게 저지르던 짓밟고, 억누르고, 부서뜨리고, 긁어내던(바닥까지 긁어 착취하던)죄를 그 깊은 물속에서 오랜 시간동안 씻어냈습니다. 물로 죄사함의 의례를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노아 이후, 하나님의 심판에 이은 새로운 창조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곳곳에는 도륙되는 짐승이 있을 뿐만 아니라 형제들 사이에서 흘리는 고약한 피의 냄새가 온 천지에 진동합니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입니다. 그러니 늘 약한 자가 먼저 전쟁을 도발했다고 기록하여 승리자의 해명거리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전쟁을 불사하게 된 저변에는 강대국이 약소국가를 정복하고 다스리려는 야욕을 감추고 있을 때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지난 7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몇 번의 휴전제의가 오갔으나 그 때마다 이스라엘은 전쟁터를 넓혀갑니다. 전쟁터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를 넘어 레바논과 이란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족을 멸절시킬 때까지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는 선언도 들립니다. 하마스는 2023년 이스라엘의 초막절기에 군사시설을 공격해서 이스라엘인 약 1300명 정도가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1200명 정도의 인질을 잡았다가 아직 약 20명 정도가 풀려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전쟁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군인과 민간인은 42,500명가량 되고, 부상자는 145,000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최근 며칠사이에는 미군이 공급한 초대용량 폭탄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병원시설을 폭격의 목표로 삼았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살해당한 아벨의 피를 받은 땅이 흐느끼던 핏소리를 듣고서 가인에게 아우의 행방을 묻던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전쟁은 가끔, 현실감각이 없는 무모한 지도자의 탐욕과 교만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참상을 온 몸으로 겪은 분들이 아직도 생생한 기억을 가지고 우리 주변에 살아계십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다시금 전쟁에 휩쓸리지 않기를 위해, 형제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물로 죄를 씻으셨으나 죄의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은 생명들이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생태계가 멸망으로 치닫는 것을 몸으로 겪고 있는 요즘입니다. 하루하루 다르게 변하는 기후와 그에 따른 생태계 파괴의 현장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들과 다르게 지식이 축적되고 지혜를 갖춘 사람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있는 각각의 생명이 위협받는 기후위기의 시대에도 사람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기대는 헛된 상상이라는 것도 깨달아지는 시대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사람을 두려워할 것이라는 말씀이 오늘날의 현실을 그대로 예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는 인류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가져다 사용합니다. 필요한 만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수집하고 쌓고 팔아 이득을 남깁니다. 이제 그 이득이 정당하지 않다고, 물자를 수집해서 쌓아놓고 이득을 올리기 위해 공급량을 조절하는 것이 불의하다고 지적할 수는 있지만 금지할 수는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들이 사람을 두려워하듯이 사람도 사람을 두려워하는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물로 사람의 죄를 다 씻으셨지만 다시금 새롭고 더 지독한 죄와 악이 관영한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이 계속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도 계속됩니다. 그리고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변함없이 사람의 악한 행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이 유예되는 동안 이웃을 심판하는 사람들로 세상이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고 그의 피로 사람들의 죄를 씻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제 편리함을 따라 제 힘과 능력을 펼치며 저보다 약한 생명을 정복하고 다스리려 합니다. 죄와 악에 익숙해진 사람은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의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자기의 소유를 종들에게 맡기고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한 사람이 맡은 액수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인의 것을 맡은 마음이 어떠했는지가 중요합니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이 주인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인 것을 내가 압니다.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여서 당신의 것을 돌려드립니다.” ‘굳은 사람이란 인색하고 지독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가 정말 주인이 인색하고 지독한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달란트를 맡기는 주인의 의도를 헤아려야 했습니다. 주인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힌 종은 스스로를 옭아매서 행동하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인간은 모두 죽음이라는 미지의 상황에 대해 두려워합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두려움을 이기고 스스로 죽음을 향해 가는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 두려웠을 것입니다. 무섭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수치심에 떨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기 위해 그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기로 결정하고 당신의 피를 쏟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인 피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온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사도의 말씀을 새겨들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아벨은 연약한 이들이 겪는 가엾은 피를 땅에 흘렸습니다.

예수께서는 연약한 이들이 생명을 회복할 수 있는 사랑과 긍휼의 피를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형제에게 살해당한 아벨의 피를 기억합니다.

전쟁의 참상을 기억합니다.

온 세계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에게 받은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죄가 관영한 노아의 시대를 끝내야 할 때입니다.

비가 퍼붓고 홍수에 휩쓸리는 산과 강과 집과 농토를 볼 때면 노아시대의 홍수가 기억되어서 두렵습니다. 주인이 다섯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맡겼던 종들처럼, 우리에게 당신의 창조세계를 맡겨놓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살아갑시다.

아직은 밤과 낮, 여름과 겨울, 심음과 거둠을 계속할 수 있는 때입니다온 생명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들이니 죄와 악은 거두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쓰는 우리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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