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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3-1) - " 아브라함의 복과 구원 " / 남신도회주일 / 한성수 목사 > 창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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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3-1) - " 아브라함의 복과 구원 " / 남신도회주일 / 한성수 목사

관리자 2022-09-16 (금) 12:10 1년전 395  

창세기 12:1-9,  요한복음 8:53-59,  갈라디아서 3:1-14


 

주어진 세 본문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을 소환하여 유대인들에게 당신의 오심을 설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선조 아브라함을 통하여 장차 그의 후손에서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며 그가 구원을 선물로 주실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구원의 주이신 그리스도로 오심은 창세전부터 예비된 하나님의 계획임을 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아브라함을 언급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미칠 것임을 미리 말씀한 것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은 유대와 이스라엘이라는 율법적 장벽을 넘어 만국의 백성에게로 전파될 것인데, 그것은 믿음으로만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율법이 아닌 믿음이 구원의 통로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육의 선조로 삼고 있는 아브라함 역시,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였습니다.(갈 3:11)



  먼저 구약본문인 창세기로 들어가 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게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하셨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은 육적인 기반입니다. 내가 평생 관계 맺고 닦아 놓은 삶의 기반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버려두고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어느 면을 보아도 “떠나,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현재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장차 보여주실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를 두고 히브리 기자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조합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을 향해 “떠나, 가라”고 하신 하나님은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복은 장차 보여주시겠다고 하신 땅의 축복에 이어서 후손에 관한 축복이었습니다. 이어서 땅과 후손을 주셔서 큰 민족을 이루어 무명한 네 이름이 창대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세상의 복이 되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무모한 발행을 요구하셨지만, 그것은 목적이 있는 출발이었던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옛사람의 기득권을 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어떻게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옛사람의 기반을 모두 내려놓고 믿음으로 출발하는 결단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길을 떠나는 순종을 통해 복이 주어집니다. 믿음 없이는 결코 옛사람의 유혹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믿음 없이는 장자 주어질 복의 실상을 미리 볼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 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가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출발에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물론 그 복이 현실로 이루어지기까지는 무수한 시험과 역경이 있었음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만은,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의 출발은 복을 향해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장차 땅이 주어지고 후손이 창대하게 되는 복을 향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삶에는 분명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복을 좀더 깊게, 아니 본질적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되리라”(창 1:2),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는 하나님의 말씀을 흘려 듣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자가 복을 받아 그 이름이 창대하게 되는 것은, 한 개인의 영광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이 이웃과 세상에 유익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웃과 세상에 복이 되는 것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인에게 미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4)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인에게 미치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방인에게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말해 아브라함의 복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구원의 복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에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에서 나사렛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이 받은 땅과 후손의 복은 세상의 축복과 다를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특정 민족과 가문의 이름만이 창대하게 되어 이웃과 주변 나라에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에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세상의 복이 되고,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이 되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복을 약속받은 상황을 상기합니다.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5-9)  



  이방인에게 주어진 성령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졌던 것처럼, 아브라함 역시 율법이 존재하기 전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정한바 되었으니, 이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하신 그 말씀이 곧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갈 3:8) 이어서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복을 함께 받느니라”(갈 3:9)고 하면서 궁극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복으로 보았습니다. 그 구원의 복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방인에게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8:51)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육의 죽음으로만 이해하여 구약의 아브라함과 선지자들의 죽음을 언급합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믿음의 선조들보다 크지 않은 것 같은데 어찌 죽음 없는 삶을 말할 수 있냐고 반박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가 내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요:57)고 조롱합니다.


  예수님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후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구원을 얻을 것으로 믿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아브라함은 ‘나의 때’ 곧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그때를 믿음으로 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고 하시면서 성자 예수로서 성부 하나님과 함께 하셨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유대인들의 생각으로 볼 때, 아브라함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과 그리고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는 예수님의 선재성에 대한 발언은 말도 안되는 비약이요 언어도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돌을 들어 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요 8:59)


 


  율법은 회초리입니다. 회초리는 아픔과 고통을 주어서 너의 행실이 잘못되었다고 깨닫게 합니다. 회초리는 자신이 때린 종아리의 푸른 멍과 상처를 치유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가 전한 복음은 죄와 허물로 인하여 만신창이가 된 삶을 용서하고 치유합니다. 용서와 치유에는 사랑이 전제합니다. 죄인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바 되었으니 그것이 곧 십자가 대속의 죽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롬 13:10)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셨음을 말한 것이 복음이 아닙니까? 구원은 그 복음을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의에 이르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죄인이지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에 이르고, 그 의를 보시고 하나님은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 믿음과 의와 구원이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난” 아브라함에게 고스란히 나타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운 자로 인정받고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복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남신도회 주일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받을 복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육의 축복의 사모합니다. 땅을 소유하고, 자녀를 생명의 선물로 얻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축복입니다. 우리 역시 그 복을 얻기 위해 땀흘려 수고하고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축복들이 아브라함의 복으로 작용해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하늘의 복이 이웃과 세상에 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받은 복이 이웃과 세상에 복이 되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분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기꺼이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놓음으로써 그 복을 이루었습니다. 그것은 곧 구원이라는 선물이었습니다.


 

  율법에 매인 삶은 ‘나’라는 이기심의 울타리에 갇히게 됩니다. 내가 잘되고 내 이름이 창대해지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맙니다.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은 율법에 매여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선제적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듣고 믿을 때에 나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율법의 장벽은 허물어지고 빛과 생명의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나에게 주어진 복이 이웃과 세상의 복으로 확장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복이 이웃과 세상의 복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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