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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창조절(12-2) - "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 " / 김진철 목사

관리자 2021-11-19 (금) 13:00 2년전 553  

본문) 20:1~12, 3:1~12, 18:1~9

 

1. 서론 - 살리는 이야기보다 죽이는 이야기가 많은 세상입니다.

옛날 옛날에 초기 인류들은 식량의 65퍼센트에서 85퍼센트를 채집으로 얻었다. 그들은 일주일에 15시간 정도 일하고 괜찮은 최저 생활을 누렸다. 그러자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냥을 나갔고 가끔 고기와 상아를 가지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만 들고 온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도 들고 왔다. 그 결과, ‘차이를 낳은 것은 고기가 아니라 이야기였다.’

채집하던 사람의 이야기는 이렇다. 내가 귀리를 까고 또 까고 콩을 까고 또 까고. 개울물 좀 마시다가 모기가 물은 데 좀 긁다가사냥하러 간 사람의 이야기는 이렇다. 내가 매머드를 발견했는데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까 피가 새빨간 급류처럼 쏟아지고 화살이 눈을 뚫고 뇌를 관통할 때까지 버티다가 결국 매머드는 쿵 쓰러졌는데이 매머드 사냥 이야기와 귀리 이야기의 승부는 뻔하다. 매머드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다. 액션과 스릴과 죽음과 영웅이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귀리 말인데, 귀리를 먹긴 먹었는데 남아 있는 귀리는 어떻게 하지? 내일 아침에 먹을 귀리를 어딘가에 보관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모든 문화에서 그릇이야기가 발견된다. 그릇이라니? 이것은 무기보다 오래된 이야기다. 그런데 온통 무기 이야기만 있는 세상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다. 만약 누군가가 무기를 집어 드는 문화에 등 돌리고 싶을 때, 그러니까 인간이 다른 생명과 인간을 학대하고 사냥하고 공격하는 문화밖에는 인간에게 없는 것이냐고 물을 때 감격스럽게도 우리에게는 다른 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릇이 있었다. 나중에 나눠 먹을 음식을 보관하려고, 혹은 그냥 아름다운 뭔가를 보관하고 싶어서 그릇을 만들던 인간이 있었던 것이다.(죽이는 이야기가 아닌, 살리는 이야기를 :2021-10-15 [한겨레Book]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우리는 당연히 죽이는 이야기보다 살리는 이야기를 하고 전해야 한다고 말 하면서도 사실은 죽이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전합니다. 그것이 훨씬 흥미진진하고 살리는 이야기는 재미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심심하고 지루하더라도 우리는 살리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복음은 살리는 이야기이고,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공동체를 살리고 세우는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2. 죽음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 (민수기 20:1-13)

민수기 20:1-13은 미리암의 죽음을 전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공격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이나 그 땅에 들어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었으면 좋았을 뻔 했다. 죽게 만드느냐하는 죽음이야기를 그들은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미리암의 죽음을 보고 그들도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불만이 들어있습니다.

 

백성이 모새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20:3)

 

그들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으로 인해 그 백성중의 일부가 죽은 것에 대한 앙금이 마음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광야의 고난의 여정가운데서도 불신앙의 속성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출애굽 했을 때부터 수시로 드러나는 불신앙의 말들이 여전히 그들에게 남아 있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20:4)

 

약속과 희망에 대한 믿음의 이야기보다 불신과 원망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그들에게 약속에 대한 믿음, 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공격하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 기록하면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다”(20 12)하고 말합니다.

죽음의 이야기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힐 때 약속에 대한 믿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으므로 나오는 것입니다.

 

3. 모세조차 실족하였다(민수기20:10-13)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리는 이야기를 해야 할 책임이 있는 모세가 실족했습니다. 실족할 이유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40년 가까이 힘들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수시로 불평불만을 터뜨렸습니다. 민수기 말씀에 의하면 백성들은 "이렇게 고생시킬 거면 뭐 하러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냐"라는 말들을 해서 모세를 아프게 했습니다. 모세가 받았을 감정적 스트레스가 이해됩니다. 모세는 너무 스트레스 받은 나머지 감정적인 행동을 하고 맙니다. 아마도 이번 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모든 것에 대해 폭발한 감정일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돌을 두드리면 물이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시키신 대로 돌을 두드리다가, 백성들에게 "너희 반역자들아 자, 내가 물을 주겠다"라며 백성에 대한 불만을 표시함과 동시에 문장의 주어를 '주께서'가 아닌 '내가'로 말합니다. 사실 한 인간으로서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크게 실망하고 또 노하셨습니다. 백성들 앞에서 주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불신앙의 사람들과 믿음 없는 사람들 속에 살다보면 우리도 때로는 이런 감정에 휘둘리고 나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에 휘둘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앞에서 살리는 이야기를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책임을 맡은 지도자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4, 공동체를 세우는 말(야고보 3:1-12)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선생(지도자)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경고합니다. 특히 말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말로 인한 실수와 허물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지도자의 말이 주는 영향력은 크고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왜 선생(지도자)이 함부로 되지 말라고 합니까.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3:2)

헬라어 본문에 의하면 본 절은 왜냐하면이란 말로 시작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무엇에 관한 설명임을 알 수 있습니까? 선생의 막중한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3:2 )

우리는 누구나 다 실수하고 넘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삼가고 또 삼가야 합니다. 실수를 안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말 한 마디에 누군가는 실족하거나 시험에 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은 공동체를 세울 수도 있고 분란에 빠뜨리고 무너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말은 생명을 살리는 말, 화평케 하는 말, 덕을 세우는 말, 축복하는 말, 웃음과 기쁨을 주는 말 등입니다.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말은 생명을 죽이는 말, 분쟁을 일으키는 말, 화를 자초하는 말, 험담하는 말,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말, 저주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의 말실수 때문에 누군가가 큰 상처를 입기도 하고, 실족케 되기도 하며, 또한 그 일로 인해 자신도 곤혹을 치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어생활에 있어 신중함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말에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해로운 말, 즉 생명을 죽이는 말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하며, 도리어 유익한 말, 축복하는 말, 덕을 세우는 말 즉, 생명을 살리는 말을 많이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5.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18:1-9)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한 어린 아이를 불러서 세우시고 이 어린 아이와 같이 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여기서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되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린아이의 성품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문맥은 지위와 관련된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당시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지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어린 아이들은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권리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수를 계수할 때도 아이들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지극히 낮은 존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되라는 말씀은 낮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4)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어린 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세워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자기를 낮추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 답은 스스로 가장 낮은 자리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마태복음 2026-28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낮아짐의 실천적 의미는 섬김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은 섬김의 사람입니다. 섬김의 사람은 작은 자라도 존중하고 영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낮추어서 섬기고, 작은 자들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을 실족시키지 않는 사람이 교회 뿐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사람입니다.

 

6. 결론입니다.

죽음이나 죽임을 이야기하고 자랑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리는 이야기를 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말, 긍정의 말을 합시다. 어디서든지 생명을 살리고 화평과 진리와 지혜의 말로 공동체를 세워 나갑시다. 자기를 낮추고 타인을 섬기고, 작은 자를 존중하고, 타인을 실족시키는 일을 하지 맙시다. 그런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살리는 이야기는 널리 전파될 것입니다주님의 평화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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