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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창조절(4-1) - " 먼저 너의 집을 무너뜨려라 " / 이태영 목사

관리자 2021-09-24 (금) 16:42 26일전 60  

본문) 마 7:1-12, 대하 1:7-12, 살전 5:12-28


티와 들보의 비교


들보는 건축에 쓰이는 용어입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집을 지을 때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의 하나가 들보입니다. 집을 지을 때 맨 처음에 기초를 닦습니다. 그리고 그 기초 위에 기둥을 세웁니다. 그리고는 기둥과 기둥을 잇는 들보를 올려놓게 됩니다. 기둥만 있으면 건물이 넘어지기 쉬운데 기둥과 기둥을 잡아주는 것이 들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들보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내라고 하셨습니다. 눈 속에 들보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볼 수 있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눈에 들어있는 티와 들보에 대한 가르침은 정죄에 대한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절에 “비판하다”는 말 속에는 “심판하다, 정죄하다, 고발하다, 판단하다, 심문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정죄하다”는 표현이 문맥으로 볼 때 가장 적당하게 생각됩니다. ‘비판, 판단, 심문’보다는 ‘정죄’가 종교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며, ‘심판’이라는 말은 ‘정죄’라는 말에 비해 그 의미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티와 들보의 비유를 통한 예수님의 말씀을 겸손과 성찰의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자신 속에 있는 더 큰 죄를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있는 작은 죄를 지적할 수 있느냐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를 괴롭히는 작은 허물을 보기 이전에, 자신 안에 있는 큰 죄를 먼저 내려놓고 회개해야 한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큰 잘못과 큰 죄를 먼저 보고 회개한 다음에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고쳐줄 수 있다는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와 형제 눈 속에 있는 ‘티’를 비교하심으로 정죄에 대한 가르침을 아주 분명하게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들보를 말씀하신 이유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의문이 생깁니다. 크고 작은 것을 비교하려고 하면 들보가 아니더라도 더 좋은 예들이 많이 있습니다. 티와 반대되는 말에는 ‘통나무’도 있고 ‘바위’도 있습니다. “네 눈 속에 큰 바위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바위를 빼내어라,”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네 눈 속에 큰 통나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통나무를 빼내어라,” 이렇게 말씀하셔도 얼마든지 뜻이 통합니다. 이웃의 작은 잘못을 보고 정죄하려 하지 말고, 너에게 있는 큰 잘못을 먼저 고치라고 하는 뜻이라면 ‘들보’ 대신에 ‘통나무’나 ‘바위’ 같은 말을 사용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들보’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많고 많은 단어 중에서 하필이면 콕 집어서 ‘들보’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릴 때부터 목수이신 아버지 요셉을 따라서 여러 가지 일을 도우신 것을 생각하면 ‘들보’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사용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분명하게 어떤 뜻이 있어서 ‘들보’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들보’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왜 눈에서 ‘들보’를 먼저 빼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들보는 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집은 터도 중요하고, 기둥도 중요하고, 지붕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들보는 집의 모양을 갖추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만일 집에서 들보를 빼낸다면 그 집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너의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마 7:5)는 말씀을 그저 눈 속에 있는 큰 장애물을 제거하라는 뜻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너 중심의 집이 무너져야 한다


눈 속의 들보라고 하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눈에 작은 먼지는 들어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들보가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눈이라고 하실 때에는 다른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눈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눈은 마음을 나타내고 삶을 상징합니다. 이 눈 속에 들보가 있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어떤 집이 세워져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집은 나 중심의 집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집이 아니라, 나 중심의 집입니다. 

이 집은 가치관을 뜻하기도 합니다. 인생관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 살아오면서 내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내 가치관과 인생관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예수님께서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본성과 욕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의 눈 속에서 들보를 먼저 빼내라고 말씀하실 때에는 네 마음 속에 지어져 있는 너 중심의 집이 먼저 무너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중심의 가치관으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집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인생관과 세계관은 완전히 무너져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존의 마음체계와 삶의 질서가 무너져 내릴 때, 그때에야 비로소 병들고 왜곡된 눈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때에야 비로소 형제를 볼 수 있는 마음이 세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나의 마음 속에 세워져 있는 나 중심의 집을 허물고, 그 위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는 집을 허물고,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집을 세우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집을 세우고,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이웃에게 작은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신앙의 핵심적인 질문 앞에 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내라는 말씀을 통해 가장 중요한 질문을 우리 앞에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너의 믿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자기 중심의 믿음은 헛된 것이며, 죄 된 것이므로, 마땅히 무너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을 위한 믿음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솔로몬의 간구


솔로몬이 왕이 된 직후의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천 마리의 번제물을 드린 날 밤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솔로몬 왕에게 필요한 것을 물으셨습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청원합니다(대하 1:10). 열왕기상의 기록은 조금 특별합니다. “듣는 마음”(왕상 3:9)을 달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와 “지식”, 또는 “듣는 마음”을 구한 것은 많은 백성을 올바로 재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이러한 청원을 한 것은 자기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부, 재물, 영광, 원수의 생명 멸하기, 장수’(대하 1:11)와 같은 것들은 개인적 욕망이나 본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으로서, 솔로몬은 이와 같은 것들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백성을 올바로 재판하기 위한 뜻을 가졌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세와 능력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려 했습니다. 바로 이점을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보신 것입니다. 솔로몬의 간구는 하나님 중심의 믿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개인을 위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믿음이어야 함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사는 성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성도가 지켜야할 믿음의 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특히 5장 12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 속에는 성도가 잃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하나님의 뜻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살전 5:23)라는 말씀처럼, 모든 성도들이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라는 표현 속에는 예수님 안에서 거듭난 성도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성도의 삶이야말로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애증관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시간에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간, 모든 때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온전한” 믿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14, 15절), “항상”(16절), “쉬지말고”(17절), “범사에”(18절, 21절), “어떤 모양이라도”(22절), “모든 형제”(26, 27절)라는 말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이러한 표현 속에는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사는 거룩한 성도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냄으로써 자기 중심의 집, 자기 중심의 삶은 무너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중심의 믿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이렇게 할 때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웃을 하나님의 길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로 손잡고 인도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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