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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행 기 (5) - 양무리 천국을 찾은 양무리 목사

관리자 2019-01-27 (일) 23:53 5년전 1263  

제 10일째(11.6)의 일정은 호주의 시드니로 입국하면서 시작되었다. 

 

두어 시간 가까운 비행으로 우리는 새로운 땅이자 대양주의 대륙인 호주(濠洲)의 중심도시인 시드니에 도착했다. 한낮이었는데, 입국 심사는 뉴질랜드와는 차이가 컸다. 훨씬 유연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를 기다린 현지 가이드의 환영을 받으며, 우리는 호주에서의 닷새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점심은 한정식을 받았는데, 그 지역에는 한인만 대략 2,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이 많았다. 점심상 역시 한국 전통음식이어서, 왠지 고국에 가까이 와 있다는 느낌마저 들어서 좋았다. 

 

호주는 인구가 약23,000,000명으로서 8개주로 행정구역이 편성된 나라였다. 엄청난 땅 덩어리게 소수의 인구로 빛나는(?) 나라였다. 게다가 지하자원 및 각종 광물 자원도 세계 1위을 차지하는 목록이 엄청난데, 그들은 그것은 개발하여 사용하지 아니하고 수입해서 사용한다고 했다. 먼 앞날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한다고 했다. 호주 역시 양무리천국일 정도로 목축업이 주 산업이며 환경을 고려하면서, 제조업에는 쉽게 뛰어 들지 아니하고 대체로 수입품으로 대체하여 사용한다고 했다. 매우 전략적인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도 영연방 국가인데, 뉴질랜드와 함께 스스로 영연방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단다. 전쟁으로 인하여 숱한 자원을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란다. 그 나라는 우리처럼 월급제도가 아니라, 지난 1997년도부터 주급(週給)제도 국가였다. 호주역시 원주민이 있는데, 뉴질랜드의 마오리족과는 달리, 아시아 쪽과 유사하다고 했다. 보라색 자카랜드 나무가 매우 번창하고 있었고, 호주 국화(國花)는 노란 아카시아였다. 

 

첫 방문지는 호주의 세계적인 자랑인 블루마운틴 국립공원이었다. 거기는 호주판 그랜드 캐년으로 널리 알져진 곳으로서, 시드니에서만 2시간이 소유되는 곳이었다. 그곳의 이름을 그렇게 명명하게 된 것은 유칼립투스 나뭇잎에서 나오는 유액이 태양에 반사되어 푸른빛으로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것으로서, 지난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곳이었다. 참고로, 유카리투스 나무에는 알콜기가 있어서, 그 수액으로 포로폴리스를 만드는 자료가 되고 있었다. 일기가 고르지 못하긴 했으나, 적잖은 방문객들이 그곳에 있었다. 우리를 환영하는 광고판은 대형 공룡들이었다. 거대한 공룡들이 그곳에도 존재하였음을 잘 전하고 있었다. 

 

시닉(scenic) 레일웨이부터 올랐다. 250m의 가파른 절벽을 오르내리는 관광 열차를 탄 것이다. 급경사의 레일웨이는 두렵기는 했으나, 스릴 만점이었고 빠른 속도 때문에 긴장감이 속히 풀려서 좋았다. 하차 후에는 호주 특유의 원시림(原始林)을 감상하게 한 산책로인 보드 워크를 경유하면서, 그곳 초기 1980년대에 광산(鑛山)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다시 오른 후에는 에코 포인트 전망대에 서서 저 멀리 보이는 세 자매의 전설이 있는 <세자매 봉(峰)>등의 장엄한 자연 경관을 관람했다. 그러면서 그 주변의 다양한 경관을 돌아본 후에 호텔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매우 개인적인 임무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호주 한인장로교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는 정기옥 박사를 만나는 일이었다. 정 박사는 과거 33년 전에 우리가 양무리교회를 강남 대치동에서 개척할 당시, 홀로 나와서 짧지만 굵게 교회를 섬겼던 적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 때는 그리스도신학교를 졸업하였으나 갈 바를 알지 못한 체, 방황하다가 우리 교회에 출석하였는데-, 어느 순간 홀연히 호주로 떠났었다. 

 

그래서 매우 오랫동안 최상의 악조건을 견디어내면서, 그곳의 신학교를 다시 수학하고 교회도 섬기다가 박사학위와 함께 지금의 안디옥교회를 개척하고 섬기게 되었던 분이었다. 게다가 그가 떠난 후, 그의 누님이 김원배 박사와 결혼하게 되는 바람에 처남. 남매관계로까지 이어져 있어서, 더욱 반가운 존재가 된 것이다. 피차 그리웠던 관계였으나 기회가 여의치 못했는데, 우리가 마침 시드니에 들리는 순간이어서 만나고자 나선 것이다.  

 

다행히 연락이 되었다. 밤중인데도, 정 박사는 노회에 참석하다가 나의 소식을 듣고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달려왔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우리 부부는 정 박사와 오랜 시간 회포를 풀었다. 다만, 우리는 일정에 매여 있는 바람에 내일을 약속할 수 없는 것이 매우 아쉬웠다. 다만 정 박사와의 만남에서 그가 깊이 전공하고 관여하고 있는 원주민 선교를 통한 실상을 다소 나마 파악하고 대화한 일은 큰 유익이었다. 

 

한마디로, 호주 원주민의 사정은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아오리족의 사정과는 많이 차이가 있었다. 아오리 족은 원주민으로서 모든 주권과 대우를 잘 받고 있었다면, 호주의 원주민은 전혀 그런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 주인이 손님이 되고, 손님이 주인 노릇하는 어긋난 모습이 정말 비극이 아닌가? 정 박사도 그 점을 많이 아파했다. 

 

나는 세계를 다니다 보니, 나라마다 그곳의 원주민 정책들이 다양함을 접하곤 했다. 미국-카나다-호주-뉴질랜드-대만-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원주민 정책 수준이 매우 천차만별하였다. 내 기억으로는 가장 탁월한 수준에 오른 원주민들 정책은 바로 대만(臺灣)으로 보였다. 뉴질랜드도 괜찮기는 하였으나, 대만은 정치적인 권리 행사에 까지 참여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 차원에서의 대만의 원주민들은 상당했다. 원주민 출신 목사가 매 4년마다 대만장로교회의 총회장에 오르도록 제도화했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총회 4명의 목사 임원 중에는 언제나 원주민 출신 목사가 한 명씩 배치되었다. 그리고 그들만의 원주민을 위한 신학교도 탄탄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총회장 시절, 그곳을 방문하여 받은 충격과 기쁨은 놀라운 것이었다!

 

교회가 이주민과 원주민을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함께 섬기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작금의 세계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주민에게 밀려난 원주민들의 비참한 현실에 교회마저 침묵하는 것은 큰 문제였다. 그런데, 대만장로교회는 이미 국정에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원주민의 땅을 국가가 원주민에게 반환하라는 소송을 교회가 주도하고 있었으며, 지금의 여성 총통의 배후에도 교회의 영향력이 크게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나는 마침 정 박사가 원주민 선교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기에, 정 박사가 이제부터라도 세계의 다양한 현실을 살피고, 그쪽의 전문가들과도 연대(連帶)하여 호주는 물론 세계의 원주민들의 인권회복에도 기여하는 선교인이 되시라고 권고할 수 있었다.

 

조그만 해프닝도 있었다. 아내가 떠나는 정 박사의 호주머니에 뭔가를 밀어 넣어 준 것이다. 모든 게 여의치 않아 건내 줄 선물도 준비 못한 체 만나게 되었다면서, 이거라도 가지고 가다가 부인과 맛있는 거 사먹으라는 소위 금 일 봉을 넣어준 것이다. 얼마인지는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그 때의 정 박사는 무척 당황스럽지만 한편으로 엄마의 정(情)을 담은 손길처럼 느꼈던 모양이었다. 그것은 그 다음 날 저녁에 큰 선물 꾸러미를 받게 낸 일과 함께, 누나인 김원배 박사 사모님에게 그 때의 마음을 전한 일로 인하여 알려진 바였다. 참 좋은 만남이었다. 

 

제 11일째(11.7) 일정은 시드니 동부 해안지역 관광으로 시작되었다. 

 

동부로 가는 길목에 들린 더들린 페이지는 최고의 포도 존(zone)이었다. 호주가 자랑하는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릿지를 비롯하여 시드니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명소였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그곳에서 펼쳐진 시드니 모습을 사진에 담기에 분주했다. 본다이 비치도 방문했다. 다소 궂은 날씨였는데에도, 그곳 해변에는 쾌 많은 사람들이 파도와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곳은 국가적인 써핑(Surfing) 명소로서 알려진 곳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다소 찬 날씨에도 파도를 타는 이들과 함께 나이든 여성들 몇 명이 모래사장의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친교 하는 모습이 괜찮게 보이기도 했다. 

 

약 80m의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소용돌이 차는 파도와 눈부신 바다 풍경을 안고 있던 겝팍 관람도 매우 좋았다. 검붉은 바위들은 각양각색의 모양과 색깔을 뽐내며 관광객을 유인하고 있었다. 때마침 눈앞에 펼쳐진 바다에는 몇 마리의 고래들이 등장하여 우리들과 많은 관광객들의 흥미를 집중케 하였고, 때마침 등장한 검은 잠수함까지 함께하면서, 평소 볼 수 없는 바다의 귀빈(貴賓)들로 인하여 장관(壯觀)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중식은 현지식인 스태이크를 취한 후, 약 250m 높이에서 시드니 외곽 지역까지 360도 방향으로 전망할 수 있는 시드니 타워 & 4D 시네마 체험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길이 145m의 수중 유리터널을 따라 바닷속 탐험을 하게 하는 호주 최대 규모의 시드니 수족관을 관람하였다. 그곳에 규모는 엄청났는데,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의 화려한 산호초, 세계 최대 상어, 대형 가오리, 열대어 감상을 즐기었으며, 실내 보트에 탑승하여 펭귄도 감상하는 등, 매우 다양한 해저 생물들의 장관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우리는 트라이라이트 디너 크루즈에 탑승하여 생산 요리를 저녁으로 즐기면서, 시드니 항만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였다. 크루즈는 아래 윗 층의 규모로서, 몰려든 관광승객들로 가득하였다. 일기가 고르지 못하였지만, 세계적인 관광지를 선상에서 가까이 보는 재미는 특별했다. 그 중에서 옛날에는 바다 위의 교도소였던 곳이 지금은 유명한 카페와 음식점으로 변한 곳도 있어서 우리 일행이 관심 있게 지켜보기도 했다. 

 

저녁에는 우리 여행의 두 번째 선택옵션 프로그램인 약 2시간 동안의 시드니 야경 투어에 들어갔다. 오페라하우스에서 하버브릿지까지 차량이동이나 걸어서 킬리빌리 공원에 도착하여 차도 마시며, 기념촬영 및 시드니 전경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일기는 좋지 못했으나, 우리는 주로 걸어서 다니면서, 그곳에 도착하여 야경이 더욱 빛나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릿지의 장중한 외관 및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육중한 대교는 폭넓게 건설되어서 다양한 통행을 가능하게 한 대로이기도 했다. 밤인데도, 시내의 불야성의 모습도 무척 아름답고 장중했다. 빌리공원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남태평양의 깊고 짙은 물결과 대비되면서, 거대하게 들어선 호주의 세계적인 명소들은 그 자체가 대단한 위용을 발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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