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19:11-27, 신4:5-11, 엡5:15-21
오늘은 강림 후 열넷째 주일이다. 성령강림절기로서는 마지막 주일이고, 다음 주일 9월 첫 주일부터 시작되는 창조절(創造節)를 앞두고서는 그 직전 주일도 된다. 그런데 우리 삼위일체력에서의 창조절은 한 해 전체 절기의 시작이기도 해서, 오늘 주일은 그간 지켜온 셋째 해 절기들(총7절기)의 마지막 주일이자, 다음 주일부터 시작되는 절기 첫 번째 해의 예비 주일이다. 따라서 오늘 받게 될 말씀들은 한 해에 대한 정리와, 새해를 맞이하게 될 마음이 필요하다.
교회력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이렇게 해와 달을 보내고 다른 해와 때를 새롭게 맞이하는 시간대에 들어서게 되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오고 있는지를 성찰하고 동시에 다가오는 시기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비하여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존재들이 되어야 한다. 그런 중에 이번 8월을 보내면서, 유독 생각하게 되는 위인들이 두어 명이 있다.
한 사람은 지난주, 세상을 떠난 불교계의 스님 명진이다. 그것도 제주도에 거하면서 프리 다이빙을 즐기다가 세상을 홀연히 떠난 인물이다. 나이도 적잖은데, 그런 운동을 즐기고 사셨다는 것이 역시 <명진>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비록 이웃 종교인이지만, 그는 늘 자신들이 제대로 된 불자와 중이 아님을 질책하며, 그런 눈으로 나라의 인권과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위해 불을 토했던 분이다. 그 바람에 조계종에서 승적이 박탈되기도 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또 한 사람은 오래 전인 1959년 8월10일에 세상을 떠난 우장춘 박사이다. 그는 세계적인 식물학자 & 한국 농업의 아버지였다. 비록 그는 아버지 우범선이 명성 황후 시해(弑害) 사건에 가담이 되어 일본에 망명했다가 일본 여인과 결혼한 후, 아들 장춘이 5살 되었을 때, 자객에게 암살당하는 비운(悲運) 가족의 일원이었지만-, 그러나 자신은 혁신적인 유전학 이론을 정립하여, 광복 후 아버지 나라인 조국 한국에 와서, 온 국민의 식량난 해결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일본에서 ‘조선인의 자식’이라는 극심한 차별과 학대, 지독한 가난 속에서 자랐는데, 어머니의 헌신으로 학업을 이어가면서, 도쿄대학 농학부를 졸업했다. 농림성에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육종학 연구에 매진하여 ‘종의 합성’ 논문으로 도쿄대학에서 농학박사가 되었다. 원예 기술 혁신가(겹꽃 재배)로도 유명했다. 광복 후 심각한 식량난에 위기를 겪은 한국 정부는 그의 귀국을 요청하자, 1950년 가족을 남겨 둔 체, 홀로 귀국하여 그때부터 ‘자기는 아버지의 나라를 위하여 평생 일하다 죽겠다’고 선언하면서, 그의 각오대로 평생을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으로 무와 배추등의 품종 개량에 이바지했다. 오늘의 한국 밥상을 풍성케 한 인물이었다.
제주도의 감귤 재배와 대관령의 씨감자 대량생산도 그의 몫이었다. 1959년8월10일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국가가 주는 훈장을 가슴에 안고 ‘이젠 한이 없다. 조국이 나를 인정했다’라며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안고 태어난 불행을 최선의 행복한 삶으로 응답하신 분이었다.
내 생애도 들여다보게 된다. 회고할 부분은 삼위일체 교회력에 따른 세 본문 설교와 씨름해 온 삶이다. 이는 지난 2007년 4월 22일 주일예배 설교 때부터 시작해서, 어느덧 20년간 씨름해 온 과제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들어 선포하고 가르쳐서, 제대로 된 하나님의 백성을 키워내야 한다는 점을 지고의 목회적 소명으로 알고 매진해 왔다. 이를 위해 지난 2017년 12월엔 말씀목회연구원을 창설하고, 200명의 회원들과 함께 지금까지 치열하게 씨름해 오고 있다. 부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앞길을 복되게 이끄시길 기도한다.
마침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주를 믿는 자들을 향하여, ‘세월이 악하니 아끼라’면서, ‘지혜 없는 자(unwise)처럼 살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wise) 같이 살라(Be very careful)’고 간곡히 요구하신다. 그러면서 무엇이 어리석은 행위이고, 무엇이 지혜로운 행위인지도 세세히 일깨워 주신다. 곧 ‘어리석은 자로 살지 말고, 지혜로운 자로 살라’라고, 우리들을 독려하신다.
이를 위해서 누가복음서는 <므나의 비유>를 통하여 지혜로운 자의 삶과 어리석은 자의 삶의 모습과 특징을 매우 간결하게 대비해 준다. 마태 복음서에는 <달란트 비유>로 잘 소개한 곳이기도 하다(마25:14-30 참조). 특징은 각자 자기 몫으로 맡은 일(은사,소명,역할)에 대한 소임을 어떻게 책임 있게 완수하고 감당하였느냐에 있다. 여기에서도 갈림길은 소임 맡은 자들이 자기에게 업무를 위탁한 주인(귀인)을 어떤 이로 알고 있느냐에 달렸음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런 점에서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분별한 종은 지혜로운 자이다. 그의 뜻과 소망을 제대로 받들고자 노력하게 되면서, 그에 따른 보상과 처우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분별이 잘못되어, 주인에 대한 이해도나 인식이 주인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이 되면, 그는 치명적인 심판을 받게 된다. ‘어리석다’ 심판을 당하고 배척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구약의 신명기 법전은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규명해 준다. 곧 그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지혜와 지식을 보유한 큰 나라 사람이요 큰 나라 백성임을 선언한다. 그들이 가진 특징들은 이렇다. 곧 받은 말씀을 잊지 않고 마음을 다해 지키며 산다. 그리고 자손들에게도 그 내용들을 전수해 준다. 그 핵심은 십계명으로서, 하나님 사람과 이웃 사랑을 실행하며 살게 하는 것이다.
서신서인 에베소서는 그런 위대한 큰 나라 백성들이 자신들과 후손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이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다양한 축복을 향유(享有)하되, 그것도 영생에 이르기까지 하게 하는 방법들을 소상하게 설파해 준다. 이제 그 내용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복음서 / 눅19:11-27 / “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에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100은전)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 주인이 이르되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
본문은 종말을 사는 모든 사람(신자)은 하나님 앞에서 균등한 은사와 기회를 부여받았으며, 그 부여받은 일에 대한 결과상의 책임은 각자가 져야 함을 밝힌다. 그때의 심판 기준은 자기에게 은사와 소명을 준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서 주인의 뜻을 제대로 받들어 살았느냐, 아니면 주인의 뜻을 오해 내지 곡해해서 자기중심적인 대처로 그 결과물을 내놓게 되었느냐에 딸려있다. 전자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 갑절의 보상을 받게 되지만, 후자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게 되면서,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잃는 아주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된다(27절).
1) 본문에 나타난 표현인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에 갈 때에’(12절)라는 말은 예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담은 내용이다. 곧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의 봉건 군주들은 로마(황제)의 승인을 얻어서 통치하였기에, 그가 왕으로서 임명을 받기 위해서는 로마에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예수께서는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통하여 하나님 오른편에 오르셔서,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왕위를 받고 다시 오실 때에야 비로소 그의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질 것임을 예고하신 것이다(9:51, 24:50-51, 행1:9 참조).
2) 그 귀인은 자신의 모든 종들에게, 당신의 부재 시의 살림 경영권을 균등(均等)하게 부여해 주었다. 곧 종들 각자에게 1므나(=100 은전)씩 사업자금을 주었다(13절). 이것은 교회 시대에 제자들 모두가 함께 감당할 임무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다.
3) 그런데 당시 유대인 중에는 예수에 대한 적대감을 품고, 예수와 그의 가르침에 반항하는 세력들이 있었다(14절). 하지만 그런 일부 반대 세력의 공세가 있음에도, 예수께서는 ‘왕’이 되셔서 오신다. 그 후에는 그의 종들을 불러 모아 그동안의 영업 보고를 들으신다(15절). 그 결과는 어땠는가? 두 부류로 정리된다. 곧 열심히 일하여 풍성한 이익을 남긴 ‘착한 종들‘과 주인 뜻을 오해하여 전혀 장사도 이익도 남기지 않은 ’악한 종들‘이었다(16-25절 참조).
4) 결국 심판(審判)이 선고되었다. 착한 종들에게는 얻은 분량만큼의 고을들을 다스릴 권세가 부여되었고, 악한 종들에게는 주인의 분노와 함께 가진 것까지도 빼앗기며, 주인의 원수로 취급당하게 되면서, 종국에는 처형(處刑)까지 당하게 된다(24-27절).
5) 그렇다면, 대체 이 둘의 차이(差異)와 그에 따른 교훈(敎訓)은 무엇인가? 주인을 향한 공경심과 그를 향한 충성심이 있느냐에 차이가 그 둘의 운명을 갈라논 것이다. 좋은 종들은 오로지 주인의 말씀을 좇는 일과 그가 맡긴 업무에 충성을 다한 일도 가득했기에 그토록 결과도 좋았다. 하지만 악한 종은 –아마도- 주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물들어서(14절 참조), 그의 말씀과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은 자기 방식대로 대응하다가, 그토록 부실한 결과를 내어 논 것이다. 그 바람에 그는 종으로서 가장 치명적인 부실한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도 돌이킬 수 없는 나락에 빠지고야 만다. 그렇다면 대체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화급하고 중요한 건 무엇일까?
2. 구약 / 신4:5-14 /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great nation)은 과연 지혜(智惠)와 지식(知識)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
하나님께서 불러 세우신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그의 목표는 그들을 온 세계 만민 중에서 가장 큰 나라 백성이 되게 하시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큰 나라‘라는 표현은 외형적인 크기를 말하는 ’big’이 아니라, 내면적 크기를 말하는 ‘great’를 말한다. 위대(偉大)한 나라라는 표현이 훨씬 적합하다.
그러기에 땅에서나 인구에서나 국방력에서나 경제력 등에서의 큰 나라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 국민이 품고 있는 품격과 의와 지식과 지혜 등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크기를 겨냥한 것이다. 그 크기의 내용물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와 법도였다. 그것들이 그의 백성들에게서 준수되고 외부로 표현될 때, 세상 만민은 진짜 큰 나라와 백성을 놀랍게 보게 되면서, 자신들도 ‘따라 해보자’라는 놀라운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1)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전하고 가르치신 당신의 규례(decrees)와 법도(law)는 그들이 머잖아 들어가 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생활 지침이었다(5,14절). 당시는 그런 고차원과 품격을 가진 사회법들이나 공법들이 그 주변의 족속 중에는 없었다. 그러기에 만일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명대로 준행하면서, 그들이 규례와 법도를 행한다면 그때는 이스라엘이 그 주변 모든 국가로부터 ‘큰 나라’, ‘위대한 백성’, ‘공의로운 나라’로 추앙받게 되는 것이다. 곧 존경과 배움을 베풀 민족으로 도약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5-8절 참조). 그게 여호와의 꿈이었다!
2)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그런 당신의 꿈을 실천할 방안들까지 몇 가지를 추가로 제시하셨다 :
➀ 마음을 다해 힘써 지키고,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가기였다(9절). 광야 체험, 호렙에서의 하나님 체험, 여호와께서 주신 규례와 법도를 가슴에 품고 항상 기억하며 지켜 사는 일이다.
➁ 그 내용들을 후손들에게 전하는 일이다(9-10절). 집안의 신앙 역사(歷史) 세우기이다. 하나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자녀들에게 가르치게 하는 일이다. 3-4대(代) 가계를 이루기였다.
➂ 여호와께서 친히 써주신 계명인 십계명을 힘써 지켜 행하는 것이다(12-13절). 이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함께 실천하게 됨으로써, 공의(公義)로운 백성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3. 서신서 / 엡5:15-21 / “ 그런즉 너희가 ---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둠의 권세자 마귀가 끊임없이 믿는 자를 탈선하게 하려고 온갖 도전과 유혹을 쉬지 않고 있음을 알리면서, 그 대처 방안으로 다음의 몇 가지 영적 삶의 규례들을 제시해 준다(15-16절). 깊이 명심하고 실천해서 구원받은 자의 품격을 지켜가야 한다.
1) 무슨 일을 하든, 먼저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자 힘쓰라(17절). 여기에는 역시 기도(祈禱)가 생명이다. 그러면, 그는 후회 없게 되고, 실패를 예방하게 되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게 된다. 모든 일이 합력해서 유익함을 이루게 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2)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18절). 그래야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삶을 살게 된다.
3) 시와 찬송과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고, 주께 마음으로 찬송하며(19절), 범사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20절). 믿음과 의지적인 감사는 분명 광야의 새 길을 내게 하신다.
4) 믿음의 동료와의 관계도 아주 중요하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服從)하라’(21절). 상호 간에 자기주장보다는 상대방의 입장과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며, 협조적이어야 된다. 그래서 주의 뜻이 서로 안에서 아름답게 이루어지도록 기도와 인내와 협력의 꽃을 피워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 행진은 더욱 탄탄하게 미래와 영원을 향하여 잘 나아갈 것이다.
o 우리는 교회력의 경계선(境界線)에 있다. 이런 때에 우리는 먼저 구해야만 되는 일이 있다. 내가 받은 귀한 은사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는 데, 잘 사용되도록 기도하는 일이다. 동시에 내 신앙의 방향과 내용에 대한 긴장과 점검도 이어져야 한다. 착한 종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전력하며 사는가, 아니면 내 뜻과 마음대로 살다 가면 된다고 고집하는 건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꿈은 분명 큰 나라. 위대한 백성이시다. 그런 꿈이 완전하게 되도록, 지혜자의 삶으로 차근히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