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목회연구원

강림후(6)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설교자료

본문 바로가기

설교자료 HOME > 원장코너 > 설교자료

강림후(6)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5-07-16 (수) 08:05 1일전 25  

본문) 계 2:8~11, 암5:18-24, 약13:1-13


오늘은 강림 후 여섯째 주일이다. 때 이른 폭염(暴炎)과 폭우(暴雨) 공세가 잇달면서, 우리들 모두는 기후 적응에 무척 힘겨운 나날을 보낸다. 통계적으로 보면, 지구촌의 기온 상승으로 인하여 지금의 날씨가 앞으로 닥칠 기온에 비하면, 가장 시원한 때라는 예보가 있을 정도이니-, 지금의 우리 삶은 진정 세상 종말(終末)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해도 옳은 듯싶다. 이미 빙하들이 급속이 녹아내리면서, 세계의 조그만 섬나라들이 침수되어 사라지고 있다. 급수 문제도 클 것이다. 농작물들의 지형(地形) 판도도 급속히 변한다. 식량난도 뻔하다. 보이지 않는 해양 생태계도 몸부림한다. 지상의 쓰레기처리도 벅찬 과제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태계의 탄식과 신음을 피할 수 없다(롬8:19-22 참조). 한마디로, 생존(生存) 전략이 화급한 때이다. 


이런 중에서, 세상은 전쟁의 손짓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벌써 몇 년이나 되었나? 그 싸움에는 이미 북한까지 뛰어들면서, 진영 싸움이 되었고, 땅따먹기 싸움이 되었으며, 자존심 싸움까지 되어서, 언제 어떻게 멈추게 될지 알 수 없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싸움은 잠시 중단되었으나, 저들의 골목대장 패권 싸움은 언제 또다시 폭발할지 모른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틴을 향한 무자비한 진압 행위는 이미 인구 말살 전쟁의 수준에까지 접어든 느낌이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들이란 말이 심히 부끄럽다. 이런 중에 세계 평화를 안겨 줄 것으로 큰소리치며 미국 대통령으로 들어선 트럼프는 이제 미국 우선주의 기치 아래,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펼치면서, 온 세계의 상거래 질서를 무너뜨리며, 자신이 마치 온 세상의 제왕인 듯 행세하고 나왔다. 그는 이미 세계인에게 지금의 이상(異常) 기후보다도 훨씬 더 열받게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우리 대한민국을 자기의 금고 정도로 보는 듯하다.


이런 중에 온 세상 만물의 주이시고, 역사의 주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또다시 세 본문 말씀을 주신다. 무슨 말씀인가? 세상과 인간을 살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주신다. 이 말씀은 이미 중병(重病) 들어 무너져 내리는 세상과 인류를 살리고 싶어 하시고, 그러기에 그 중차대한 구원의 사명을 부여받은 교회 공동체부터 우선하여 살려야 한다는 확실한 마음에서, 오늘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곧, 무너지는 세상과 인류를 떠받치고 있는 당신의 교회를 보다 확실히 먼저 제대로 세우시려고 주신 말씀이다. 긴장이 되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교회관은 마16:18-19에서 분명히 밝혀졌다. ‘에클레시아’(헬)로 표현된 교회는 본질상 그 소속이 예수께 있다(마16:18, 18:17 참조). 교회는 절대 세상의 것이 아니라, 예수의 것이다. 그의 부활 후에 그가 남기신 지상의 몸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 바로 교회이다. 따라서 교회는 그 어떤 인간의 소리가 주인처럼 들리면 안 된다. 오직 예수와 그의 말씀이 생명의 복음으로 들려야만 하는 곳이다. 그래야만 음부(陰府)의 권세가 범접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죽은 자의 권세들의 범접을 막아내고, 허무와 파괴의 세력들을 물리치게 되어, 오직 빛과 생명만이 가득한 구원성을 이룰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 천국 열쇠를 사도 베드로에게 주셨다. 그가 예수를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16:16참조)라고 믿음의 고백을 드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된 이 천국 열쇠는 예수의 가르침을 올바로 해석하고, 모든 사람이 예수로 인하여 선포되고 시작된 하나님 나라(=천국)에 들어가는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권세를 행사하게 하셨음을 말한다. 이는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 일에 필요한 교도권과 훈도권, 그리고 징벌권이 인간 개인 베드로가 아니라, 당신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교회에 허락하셨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교회의 주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상에 있는 당신의 교회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지켜보고 계시겠는가? 건강하게 깨어서 자신에게 부여된 교회의 사명을 제대로 구현해 가는 교회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며 지켜보고 계신다. 당신의 교회들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지켜보고 계시고, 그 모습에 대한 당신의 구체적인 평가를 내리고 계심을 확실히 보여 준 말씀을 바로 계시록의 소아시아 7교회를 향한 주님의 편지에서 확인하게 하셨다. 


그런데 주님은 당신의 모든 교회를 다 사랑하시지만, 그러나 본질에서 어긋난 교회나 음부의 권세에 복종하고 끌려다니는 교회까지도 사랑하시는 것은 아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교회와 그렇지 못해서 책망할 수밖에 없는 교회를 엄히 구별하신다. 아니, 사랑하셔서 영접하실 교회와 아예 책망하시고 버리게 될 교회를 구별하신다. 그러기에 교회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주님의 교회다운 자리를 목숨 걸고 지켜내야만 할 이유이다.


예수께서 최후로 예루살렘을 찾으실 때, 제일 먼저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신 까닭도 바로 그 이유에서였다. 나라가 어렵고, 백성의 삶이 곤고한데, 당시의 예루살렘 대성전이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친히 확인하고자 하신 것이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전은 실격(失格)자였다. 깨어 기도하지 못했고, 장사하는 곳이었으며, 강도의 소굴로 전락 되어 있었기에(눅19:45-46), 주님은 그곳 장사꾼들을 내어 쫓으시면서 ‘이 성전을 헐라’고 명하시기도 하셨다(요2:15-16). 


특히 요즈음의 우리 한국교회들이 바로 그 심판의 무대에 올려 있다. 진리와 복음의 본질에서 떠나, 거짓 정치권력이나 이념 등에 종속되어서, 교회의 생명력을 상실한 교회가 되고 세상의 기대에 어긋나 비웃음을 받는 교회들로 크게 변질되어 졌기 때문이다. 실로 주님의 매서운 책망과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몹시 처량하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세 본문은 살아남게 될 교회와 사라질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구별하여 알려주신다. 


1. 복음서 / 막13:1-13 / “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평소 성전을 아버지의 집으로 간주하시면서 매우 소중히 대하신 예수님이 지금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는 시선은 매우 싸늘하셨다. 그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3 성전인 <헤롯 성전>이라 칭하는 곳으로써, 그 건립만 해도 무려 46년이나 걸쳐서 건축된 곳으로 매우 웅장하고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던 성전이었음에도 말이다(요2:20 참조). 


이 성전은 이두매(에돔) 출신 헤롯이 유대에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려고, 기원전 20년경에 부분 파괴된 스룹바벨 성전을 개축 및 증축하였다. 그런데 그 증보수를 무려 64년경까지 계속하는 바람에, 그 규모가 원래의 규모보다 배 이상 커졌고, 외관도 웅장하고 매우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아마도 성전 안에 금전거래가 왕성하고, 제사를 위한 환전 거래도 성행하여서 예수께서 역겹게 보시고, 채찍질하며 상을 뒤엎으셨던 것도, 모두가 당시 이 성전의 관심사가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에 몰두한 까닭이었기에 그런가 싶다(요2:14-16절). 본질을 상실한 성전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또 다른 범죄의 온상이며 악취만 풍길 뿐이었다. 


결국 완공 후 6년인 70년에 로마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성전은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때 로마 군인들은 이 성전에 조각된 포도나무 기둥들의 금을 채취하려고 성전 곳곳에 불을 질러 철저히 파괴하였다. 그 바람에 주께서 예언하신 바대로, 헤롯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있지 아니하고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막13:1-2 참조). 슬픈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그 바람에 헤롯의 예루살렘 성전은 결국 사라지게 될 성전의 원형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 귀한 성전이 사라지게 될 이유를 구체적으로 찾아보자. 오늘 본문에서는 막13:3-8에서와 구약 본문인 암5:18-24의 내용에서 그 사라지게 될 연유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먼저 복음서 중심으로만 먼저 살펴보겠다. 


1) 제자들은 그런 불행한 때가 언제 있겠으며, 무슨 징조가 있겠는지를 주님께 물었다(3-4절). 이에 주님은 그때(time)와 징조(sign)를 언급해 주시지는 않으시면서도, 그 원인에 대하여 먼저 지적하시면서, 제자들이 조심해 대처할 일이 무엇인지를 몇 가지로 제시해 주셨다(5-6절). 


첫째는 영적 사기꾼(사냥꾼)을 조심하는 일이다. 그들은 모두 미혹(迷惑)의 영을 받은 자들로서, 자기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혼란스럽게 만들면서, 자기가 마치 시대의 메시아요 구원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적잖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숱한 성도들이 그들의 확신에 찬 주장에 현혹당하여, 많은 시간과 돈과 열정을 그에게 바치며 충성하는 행태에 빠져든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이런 거짓 선지자들을 최근 국가 내란 사건에서 전광훈나 신현보와 같은 자들을 통하여 매우 생생히 목격하였다. 아, 얼마나 많은 보수교인들이 그의 하수인처럼 그의 말에 휘둘리며 살았는가? 극우세력의 본산지도 바로 거기였고, 한국교회의 추악하고 초라한 모습의 산실도 바로 거기였다. 


둘째는 주변 환경과 나라 안팎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난리들과 그에 따른 흉흉한 소문들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왕좌왕하며 흔들리며 사는 일이다. 주님은 그런 일이 종말의 징조는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재난의 시작일 뿐이기에, 성도들은 믿음을 가지고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라고 하셨다(7-8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중심으로 성도들을 세워 주셨는데, 그 중심된 자들이 마치 불신자처럼, 흔들리는 가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지적하셨다. 죽음을 넘어선 부활도 믿고 또 영생까지도 믿고 사는 이들에게, 가벼운 처신은 더욱 걸맞지 않았다.


2. 구약 / 암 5:18-24 / “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 ”


이곳 본문 내용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환영은커녕 버림을 당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담고 있는 내용이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하고, 오히려 어긋난 생활을 하여 근심과 분노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마지막 여호와 심판의 날에는 하나님의 영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나?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만 봐도 그 원인이 충분했다. 우선은 여호와의 그 심판의 날을 사모하면서 살았다(18절).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충성심이 뜨거웠다. 절기 준수도 철저했다(21절). 각종 성회(聖會)도 잘 지켰다.(21절).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들에도 정성이 대단했다(22절-번제/소제/화목제 등등). 비파와 노랫소리(찬양)에도 열심이었다(23절). 실로 하나님 사랑에 그들의 열심은 뜨거웠고 열심이었다. 그런 자신들이었기에, 하나님의 구원도 마땅하다고 믿고 살았다. 어찌보면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들 대부분의 구원의식과도 흡사하다. 


문제는 하나님 자신도 그런 그들의 자평에 동의하시느냐에 있다!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대답은 ‘NO’였다! 실로 그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심판의 날이 빛이 아니라 어둠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들의 열심인 제사도 전혀 기뻐하지 않으실뿐더러, 찬양에도 귀를 막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18-23절). 엄청난 충격적 반응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의 이 모든 것들이 헛수고일 뿐이며, 오히려 심판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24절의 말씀이 바로 그 원인이다! ‘정의(正義)와 공의(公義)의 샘이 강처럼 물처럼 흐르게 하라’. 이는 무슨 말씀인가? 구원의 또 다른 요소인 ‘인간(이웃) 사랑의 영역을 살려내라’는 명령이다. 사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잘하면 된다고 믿었으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서로 사랑의 삶에는 무관심하며 살았다. 상류층 사람일수록 더욱 심했다. 그 바람에 그들 예배는 너무 형식적인 것이 되었고, 불의와 차별로 신음하고 탄식하는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긍휼과 자비의 마음 샘은 완전 메말라 있었다. 세상을 깨끗한 곳이 아니라 어두운 곳이 되게 하였다. 오직 자기만족에 탐닉하는 자들이 되어, 안일과 방탕에 빠져든 것이다(6장 참조). 결국 하나님은 그런 이중적 예배자들을 철저히 거절하셨다.


3. 서신서 / 계2:8-11 / “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이기는 자는 둘째 사랑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


이 부분은 여호와께서 지극히 사랑하셔서 결코 버릴 수 없는 교회(성전)의 경우를 소개한 곳이다. 바로 소아시아 7교회 중에서 온전히 칭찬만 받은 서머나교회이다. 예전에 내가 그리스의 그곳 서머나 교회를 찾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소위 2천 년 넘도록 생존한 교회의 표상으로 여전히 감동을 준 교회였다. 주인이신 주님이 그토록 기리 끌어안고 계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 본문과 복음서 본문인 13:9-13절의 내용을 종합하면, 주요 원인이 보인다 :


1) 그들은 모든 교회 중에서 진짜 부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교회였다(계2:9). 원수들이 위세를 부리며 박해와 탄압과 억압으로 군림하며 그들을 괴롭히고 회유했지만, 그들은 더욱 강한 부활 신앙과 영생의 언약이 준 거룩한 영성으로 그들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그들은 자신들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인간적이고 폭력적인 힘과 권세보다도 더 크고 위대한 신령한 힘과 자산이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참 부요한 자와 승리자임을 입증했다. 


2)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힘을 받아 두려움 없이 담대히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증언하였고, 혈육을 통한 회유나 박해나 버림이나 미움이나 심지어 죽임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견디어 냈다(막13:9-13절 참조). 


3) 주님은 그런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와 성도를 지켜보시면서, 이렇게 확언해 주셨다. ‘내가 생명의 관(冠)을 네게 주리라’(계-10절).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害)를 받지 아니하리라’(계-11절).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救援)을 받으리라’(막-13절). 


O 진정 정신 차리고 참믿음을 좇아 살아야 할 때이다. 교회 출석하고, 직분을 받아 일하고, 탄탄한 교회 경력을 보유하고, 나름대로 교회 일과 봉사에 힘쓰며 살아왔다고 해서, 나의 구원이 보장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단계는 모두 응답 단계로서, 내가 받은 은혜에 대한 충성과 헌신의 몫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마음과 시선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 흔들림 없이, 성령이 주신 은사에 따라 진실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신앙을 실천하며 사는 일에 전념하는 삶이다. 



말씀목회연구원        ☎ TEL : 010-2434-0536       E-mail : puock@hanmail.net
COPYRIGHT © 2017 말씀목회연구원 .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