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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4)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맥추감사주일

관리자 2025-07-02 (수) 00:14 8시간전 4  

본문) 딤전 6:6~19, 출32:1-4, 눅16:1-13


오늘은 성령께서 강림하신 후 넷째 주일이다. 날씨는 7월에 접어들면서 습도가 높아 무더위를 깊게 느끼게 하는 한 여름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를 정도가 되었다. 건강에 크게 유의해야 할 때이다. 나라는 새 정부 들어서면서, 새 진용을 꾸리기에 바쁘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는데, 부디 좋은 정부의 일꾼들이 적재적소에 들어서서 할 일 많은 우리나라가 새 시대를 이루면서, 온 누리에 새 기운과 감동으로 충만히 채워지기를 기도드린다.


무엇보다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긍정적이다. 그들은 국민을 위한 일꾼이요 도구이지, 권세자나 특권을 행사하는 자가 아니라는 의식이다. 그 바람에, 이번 대통령의 사람들은 과거 역대 어느 정부의 인사들보다도,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일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고생 좀 할 듯하다. 공직자의 자세와 섬김이 바로 잡히면, 어찌 나라가 흥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디 초지일관하여, 우리나라를 반석 위에 세워 놓는 일꾼들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오늘은 또 맥추감사절로 맞이한다. 한 해의 반년의 삶을 되돌아보고, 지켜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롭게 시작할 후반의 삶도 하나님께서 선히 인도해 주시기를 기원하는 예배를 올린다. 이 절기는 구약에서부터 정착해 온 절기이기도 하다. 출애굽하고 가나안에 이주하여, 농사짓기 시작한 이스라엘이 그 첫 열매인 보리 추수를 하면서, 여호와께 감사제를 드렸기 때문이다. 칠칠절과 오순절이라는 이름으로 이 절기를 지켜왔다(신16:1-12 참조).


이때에는 여호와께서 자기들을 출애굽하게 하셔셔, 이토록 자유롭고 풍요로운 세상을 살게 하신 일을 기억하며, 먼저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서 감사드리고, 그다음은 자신들이 추수로 수확한 열매의 복들을 자신과 자녀들은 물론, 주변의 노비와 레위인, 그리고 고아와 과부 같은 어려운 처지에서 사는 이웃들과도 함께 기쁨을 나누며 살게 하신 절기이다. 그 바람에 그들은 이 절기를 맞이하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자로 살기 시작하였다. 율법으로 절기라는 영적 시스템을 갖추어, 사랑하는 사람들인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살게 하신 것이다. 


이런 절기에 담긴 정신을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구현하며 살아가야 할까? 그런 점에서 오늘의 세 본문 말씀에 담긴 내용을 먼저 숙지하고, 그 의미에 담긴 메시지를 좇는 일이 중요하다.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우선은 물질이나 재물에 매이지 아니한 인물,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사람답게 선한 싸움에 힘쓰는 인물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려면, 우선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물질의 속성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물질이 주는 무서운 독성(毒性)들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한다. 그 대신 필요한 물질은 하나님이 그의 사람들에게 안겨 주실 것임을 믿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우선해서 추구하고 실천하며 살아야 하겠다. 


먼저 세 본문의 메인 본문인 디모데서는 자족(自足)하는 마음을 품고 살 것을 권한다. 그것을 위해 부하려 하는 일과 돈을 사랑하는 일을 극히 경계한다. 그런 마음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고, 미혹을 받아서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가 찔림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본문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자족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선행이 힘쓰며 나누어 주기를 좋아해서 영생과 참된 생명을 취하라 명한다. 우리 마음을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고 살라고 권한다.


구약 출애굽기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 하나님을 잃어버린 백성들이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 살기 위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게 자기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낸 신이라면서 우상 숭배에 빠지든 모습을 전한다. 그런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숭배는 그 후에도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더욱 북왕국 이스라엘을 우상숭배 속에서 몰아넣고, 민족 멸망을 재촉하는 치명적인 요인이 되게 하였다. 진정 하나님 없는 마음에, 바로 돈과 소유를 그 대안으로 찾게 됨을 보게 한다. 


복음서는 돈과 물질을 관리하는 자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제시하는 내용이다. 두 가지가 강조된다. 첫째는 청지기는 자기가 다루는 재물의 속성(屬性)을 제대로 알고 관리하여야 한다. 특히 긍정적인 면과 어두운 면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그 재물을 사용하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물질을 교만과 자기만족의 도구로 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도구와 방편이 되도록 하는 것이 되어야 함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결국 오늘의 세 본문 말씀은 진정한 성령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것들을 다루는 청지기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물질과 소유에 노예나 종이 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것들을 선하게 부리고 활용하며 주인이신 하나님에게는 영광을 돌리고, 이웃들에게는 복을 안겨주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 주시는 내용으로 보아야 한다. 


1. 서신서 / 딤전6:6-19 / ”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라 “


바울의 목회서신의 일부인 분문은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물질 사용과 관리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들에 대하여 언급한다. 그 중 경건(godliness)이 탐욕과 결합하지 않고 자족(自足)하는 마음과 결합하면, 경건은 실제로 좋은 이익(利益) 거리이다. 이때의 경건은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여 주고 특히 돈 욕심의 끔찍한 결과에 빠져들지 않도록 보호해 준다(6절).                        

여기에서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소유관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어떠해야 할지를 거론해 준다. 그것은 예전에 욥이 재난을 당한 후에 여호와 앞에서 고백하였던 바로 그 내용을 상기시키는 내용이다(욥1:21). 곧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라’는 실존적 논리를 공유하면서, 그러기에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자’는 입장이다(7-8절).  


인간의 실존이 이러한 데도, 그런 입장을 외면하고 욕심을 부리는 행위, 곧 스스로 부(富)하려 하는 입장(9절)과 돈을 사랑하며 사는 행위(10절)와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살고자 하는 행위자들이 있음(17절)은 매우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런 모습이 왜 문제인가? 특히 요즈음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노력으로 돈을 벌고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시대에서 이런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혹, 재물이나 돈 소유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아니한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아주 풍요로운 삶을 부여해 주신 하나님이 아닌가! 그의 후손인 우리 성도들의 삶도 풍요롭기를 원하실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어쩌잖은 건가? 말씀에 담긴 뜻은 이렇다. 즉 본질상 돈과 재물과 소유는 모두 자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의인 욥의 고백처럼, ‘이 모든 것들을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는 이도 여호와시다’라는 기본적 믿음 위에서(1:21), 돈과 재물을 상대하자는 것이다. 동시에 부자와 비(非)부자의 문제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려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판단에 따라 결정하신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자는 것인가? 그 대신, 부자 되려는 노력 대신에, 우선 먼저 할 것이 있다. 바울의 지적대로라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일이다. 영생을 취하고자 전력하는 일이다’(12절). 이 싸움의 내용은 무엇인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사는 삶이다(11절). 돈 벌어 부자 되려는 노력보다는, 바르고 의롭게 살려는 노력,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제대로 섬기려는 마음, 참된 믿음의 소유자 되기, 사랑을 실천하기, 억울한 것 잘 참아내기와 매사에 겸손한 마음으로 살기 등에 우선하는 삶이다. 


또 있다. 자기의 소망과 마음을 정함이 없는 재물에 두지 않고, 오직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실 하나님께 두고 산다(17절). 선행에 힘쓰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며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로 산다(18절). 그렇다면 이렇게 사는 사람을 내내 지켜보시는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상대하실까? 가난하며 고생만 하고 살도록 버려두고 외면하실까, 아니면 제대로 살아보도록 기회를 주실까? 기회를 주신다면 어떻게 채워주실까? 

 

그렇다. 본문 말씀의 뜻은 자기 욕심과 자기 의지로 된 부자는 되지 말라는 것이다. 그 대신 하나님이 필요하게 보셔서, 하나님이 친히 만들어 주시고 채워주신 저 야곱과 같은 부자가 되어서 살아보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겠거든, 차라리 가난하게 사는 삶이 그에게는 축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자세가 되지 못한 자,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랑할 마음이 없이 그저 부자가 되어 살려는 자, 그런 자는 욕심에서 얻는 부와 재물 때문에 결국 영생은 커녕 파멸과 멸망에 빠지고야 말 것이다(9절). 참 부자 될 새 길을 알리셨다. 


2. 구약 / 출32:1-4 / ”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 금 고리를 받아 --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 “


분문은 사람이 하나님을 잃고 마음이 불안해지면, ’자기들이 믿게 될 신‘을 만들어서라도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으려고 한다는 또 다른 실상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 바람에 그들은 점시 자기만족에 빠져들게는 되지만, 결국은 참 하나님을 영원히 잃게 되고 또 배신하게 되는 일로 인하여, 결국은 멸망 길로 빠져들게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입증해 주게 된다. 이런 실례가 바로 ’아론의 금(金)송아지 신상(神像) 제작‘ 사건이다. 


1) 이 일의 발단(發端)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적잖은 시간을 지도자 모세 없이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마치 엄마와 떨어진 아이들만의 처지와 흡사했다. 왜 그랬는가? 하나님의 특명으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十誡命)과 그에 따른 율법과 계명이란 말씀을 수령하려고, 시내산에 올라갔기 때문이다(출24:12-31:18 참조). 


2) 이 일에 두 가지 휘 몰이가 있었다. 첫째는 불안한 백성들의 강력한 요구였다. 둘째는 그런 백성들의 마음에 편승하여 그들의 요구대로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고 섬기게 한 모세의 형 아론의 어리석음이다(1-4절). 그것도 백성이 요구한 신을 금으로 송아지 형상의 신상을 만들어 백성의 마음을 사고자 한 아론의 문제가 컸다. 왜 송아지였나? 송아지는 힘과 생식력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인간의 공허한 욕망의 극대화를 견인한 가축인 송아지를 신상으로 만들어 제시하였다. <잘 살게 해주겠다>는 공허한 공약을 남발한 어느 후보를 연상케 했다.


3) 짧은 대축제가 광란(狂亂) 속에 펼쳐졌다(32:5-6). 하지만 그들이 얻어낸 것은, 그들을 향한 관계 단절에 따른 하나님의 대노(大怒)와 무자비한 징벌(3,000명 죽임당함)이었다. 충격에 휩싸인 모세는 십계명 판을 내던지기도 했고, 회개하고자 또다시 시내산을 올라야만 했다. 


4) 역사의 후유증도 컸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시조인 여로보암이 바로 이 아론의 금송아지 상을 세워놓고 그게 자기들을 출애굽시킨 여호와라고 호도하면서, 나라의 출발부터 망조에 빠져들게 하였다(왕상12:28 참조). 수천 년이 지난 지금은 이 송아지가 뉴욕 월가의 상징물이 되었고, 우리 은행들의 고객 마음을 현혹하는 상징물도 되어 버렸다. 이제 어떻게 대처하나? 


3. 복음서 / 눅16:1-13 /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비유를 통한 교훈이 깊다. 주인을 둔 청지기(manager)의 윤리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본문은 청지기에게는 재물의 속성부터 제대로 알아야 함을 일깨운다. 동시에 청지기는 자신에게 위탁된 재물 관리권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도 일깨운다. 청지기가 절대 주의할 것은, 재물이 가진 어둠의 속성을 헤아려서, 그 함정과 유혹의 늪에 빠져들지 않는 일이다. 


본문엔 재물을 ’불의한 재물‘이란 표현으로 두 번이나 사용한다(9,11절). 이것은 재물이 가진 마력적(魔力的)인 속성 때문이다. 곧 재물은 자기가 줄 수 없는 안정(安定)을, 능히 줄 수 있는 것처럼 인간들을 믿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믿을 수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말한다(딤전6:17)! 문제는 인간에게 있다. 재물이 누구의 손에 들어있느냐에 따라서 누군가를 살리는 선의 도구도 되기도 하고, 죽이는 도구도 된다. 그러기에 재물사용에 냉정한 인물이 필요하다. 아주 작은 것부터 재물을 소중히 다룰 인물이 필요하다. 


본문의 청지기는 분명 주인의 소유를 자기 것처럼 허비한 불의를 범했지만, 그것이 고통하는 자들의 처지를 위해 사용되었고, 나중에 그 일로 주인의 문책을 당하여 강제 퇴직 되면서 자신의 생계가 위협을 받게 되자, 그 채무자들의 빚을 더 탕감하면서 자신의 뒤처리를 도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주인은 그 청지기가 재물로 나약한 이웃을 자신의 친구로 삼고, 그들을 인하여 자신의 구원까지도 도모하는 행위를 보인 그 종을 오히려 지혜롭다고까지 평했다(1-8절). 약자를 향한 재물의 활용법을 터득한 청지기의 모습으로, 자신을 심판대에 올린 것이다.  


o 맥추감사절에 우리는 몸과 마음이 하나님께 거룩한 제물로 드려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자족하는 삶의 제물로 여호와께 나를 받치느냐‘이다. 선한 싸움과 영생을 취하기 위하여 싸워서 얻어낸 그 취득물이 감사절 제단에 제물로 올려져야만 하겠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로 지켜낸 제물들이다. 내가 부자냐 가난한 자냐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결정해 주시고 판단해 주실 일이다. 나는 그저 그의 복과 부요하심을 누리고 살기에 합당한 존재가 되었느냐는 삶만이 내가 꼭 책임 있게 응답할 일이다. 예전보다 성숙한 제물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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