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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3)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5-01-21 (화) 15:19 7시간전 4  

본문) 마 5:17~20, 신10:12-22, 딤전1:1-11


오늘은 주현절 셋째 주일이다. 일기는 여전히 한 겨울을 지나고 있지만, 그것을 맞이하는 우리 인간들의 마음은 매우 다채롭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이에게는 따뜻한 계절로, 어떤 이에게는 차디찬 계절로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주간에 드디어 맞게 된 현직 대통령의 체포 사건을 보면서, 국민들 사이에는 만감(萬感)이 교차하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내기도 하고, 분노와 실망 속에서 저항하기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본 것은 바로 이것이다. ‘법(法)은 정말 아름답다’라는 점이다. 이 법이 엄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것인지 새삼 절감하였다. 만일 이 법이 만민 위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번 내란 사태는 그 결말이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아찔하다! 총칼의 힘을 가진 자들의 횡포를 억제할 브레이크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참담한 어둠의 골짜기에 굴러떨어졌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를 결집해 줄 법(憲法)이 엄존하기에, 우리는 저항할 수 있었고, 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고, 또 그 악행자를 단호하게 끌어내릴 수가 있었다. 


나는 이런 사실을 목도하면서, 하나님 여호와께서 일찍이 그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을 향하여 법을 내려주신 일을 새삼스럽게 보게 되었다. 바로 그들이 마음과 뜻과 생명과 의지를 다하여 지켜야만 할 계명(誡命)인 율법을 내려주신 일이다. 이는 당신의 나라는 건강한 법 위에 올려놓겠다는 의지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법을 통하여 그들의 삶과 행동을 속박(束縛)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그들 모두를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 내려주신 법이었다. 십계명을 모델로 삼고, 총 613가지 율법들을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 반드시 지켜 살라고 내려주셨다. 


그 이유도 분명했다. 그 말씀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켜 행함으로써,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법을 거역하고 훼손하여 살게 되면, 그는 반드시 저주와 버림을 당할 것이라고 단단히 못 박듯이 강조하셨다. 이런 경고의 말씀은 그냥 주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조건부로 주신 것이었다. 성경을 확인해 보라. 이스라엘이 언제 복을 받고 평안을 누리며 형통했는가? 여호와의 법을 준수할 때였다. 언제 패망하고 저주의 나락에서 탄식하며 살았는가? 여호와의 법을 거역하고, 다른 우상들을 섬기고, 불의를 행할 때였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종교는 하나님의 법인 율법에 관심이 매우 컸다. 특히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은 그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며 지켜 행하도록 지도하며 살았다. 그 대표적인 종교 그룹이 바로 제사장 그룹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다. 그들의 역할은 마치 군대의 헌병(憲兵)의모습을 생각하게 할 정도였다. 위법자는 정죄하였고, 순종자는 우대하였다. 그러기에 그 시대는 엄격할 정도로, 두 갈래로 갈라졌었다. 법 준수한 의인과 법 위반한 죄인이었다. 


이런 중에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활동은 자연히 기존의 율법주의자들과 맞서는 일이 계속 발생했다. 예수님이 보신 그들의 문제는 무엇이었나? 그들의 가르침 자체가 아니라, 가르치는 자의 삶의 모습 때문이었다. 자기들은 지키지 않으면서 회중에게만 준수를 요구하고, 그 가르침을 못 지키는 자들을 정죄하는 일이 구조화되었다는 점이었다. 그 바람에 당시의 유대교는 회칠한 무덤 같았다. 일반인들의 법 위반은 칼질을 하면서도, 자기들에게는 한없이 자비했다. 


당시의 국가종교인 유대교는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율법을 준수할 기력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모두가 그 율법 앞에서는 죄인 의식을 벗어나지 못한 채, 탄식하며 신음하며 살았다. 이는 법을 지킬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삶의 여건이 밑받침되지 못한 데에서 나온 한계였다. 그 바람에 어느덧 율법은 강자와 힘 있는 자를 위한 보호막으로 인식되었고, 약한 자들에게는 아예 율법을 통한 구원은 난감한 그림의 떡처럼 멀어진 법이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그때에는 이런 종교의 허상과 악순환의 굴레를 깨고, 백성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방안이 꼭 필요했다. 그 길을 여시고자 오신 예수께서 마 5장에서 선언하신 팔복은 그런 차원에서 나온 새 구원의 메시지였다(마5:1-12 참조). 강한 사람이나 힘 있는 자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탄식하고 신음하는 낮은 사람의 측면에서 구원의 길을 더욱 쉽게 열어주시려는 접근을 예수께서 선포하신 것이 바로 팔복이었다. 그러기에, 예수를 통하여 방법에서 대혁신(革新)의 길을 듣게 된 백성들은, 놀라운 충격과 신선한 도전을 받으면서 예수께 몰려들었다. 


1. 복음서 / 마5:17-20 /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니 ” 


예수님의 이러한 새로운 구원의 접근법은 당시의 율법주의자들부터 매우 강력한 역습(逆襲)을 받았다. 그것은 예수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을 폐(廢)하러 온 것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자기들의 종교 권위의 기반을 몽땅 허물어버리려는 술수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게 되면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17절). 그 점은 분명 예수님의 본의와는 전혀 달랐다. 그래서 적극적 대응으로 당신의 뜻을 확실히 전하셨다. 


1) 예수님의 입장은 모세의 율법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드러난 시행상의 보완할 부분을 완전하게 채워 주시고자 함이었기 때문이었다(17절). 이 부분에 대하여서는. 율법을 받았던 모세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일찍이 이렇게 예언한 바 있었다. 

“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신18:18-22)


2) 그렇다. 예수님은 모세가 예고한 바로 그 언약의 성취로 오신 분이셨다. 오래 전의 모세를 통해 받은 율법의 보완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분이셨다. 그래서 율법에 대한 당신 입장은 아주 단호하셨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며 선언하셨다(18절). 율법 자체의 가치와 소중함을 엄중히 밝히셨다. 이는 또한 당신의 하나님 나라 운동도 결국은 율법의 바탕 위에서 진행됨도 알리신 것이다.


3) 그래서 주님은 선포하셨다.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거나 그같이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라고 평가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라‘(19절). 여기서 주님은 당신이 천국의 심판자이심을 드러내시면서. 동시에 그 나라에서 진정으로 우대받을 사람은 그 법을 가르치되, 자신부터 솔선수범하며 가르치는 자라는 점도 확실히 하셨다. 바로 이 점이 예수께서 ’회칠한 무덤‘이라면서 당시의 율법 종교인들의 이율배반적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그 점이기도 했다.


4) 그러면서 이번에는 당신의 제자들을 향한 준엄한 경고의 말씀도 주셨다. ’너희 의(義)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20절). 이는 19절의 내용의 연속적 말씀이지만, 이제부터 당신의 백성이 될 성령과 신앙 공동체인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었다. 곧 평신도는 주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 하지 아니한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목회자도 주의 말씀을 가르치기만 하고 실천 하지 아니한 자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  


5) 결국 실천하지 못한 체, 교리나 신조를 지식과 머리 수준에 두고 가슴에까지는 채워지지 못한 자들은 천국이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주님이 비교급(比較級)으로 사용하신 ’저들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씀에서 언급하신, 더 나은 실천 방안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큰 틀에서 보면, 율법은 골격이다. 하지만 복음은 피와 살이다. 이 둘은 서로를 함께하고 조화로울 때, 인간이 되게 하고 생존하게 한다. 그 점에서 남은 두 본문들은 율법을 동력화시킬 핵심적 에너지로써 사랑을 제시한다. 함께 살펴보자. 


2. 구약 / 신10:12-22 /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 그를 사랑하며 —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본문은 모세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진정으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리고자 한다. 여기에서 그는 위로부터 받은 율법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 것인지를 제시하려고 한다. 그것은 곧 백성들은 자신의 국가를 형성하게 될 터인데, 거기에 걸맞은 법과 질서를 세우는 일은 율법이 담당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법을 사랑하고 지켜 살려는 마음이 모아져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야 힘 있고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모세는 일찍이 그의 조상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누릴 방안이기도 했던, 하나님 사랑과 연약한 이웃 사랑을 제시한다. 


1) 먼저는 왜 모두가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법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과 뜻을 다하여 섬겨야 하는 지를 밝힌다(12-15절). 첫째는 그 법이 인간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주신 명령과 규례이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피조물 자체로서는 생산할 수 없고, 인간보다 인간의 의식구조를 온전히 알고 계시는 사랑의 창조주만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 법이 천지를 창조하신 모두의 주인으로서, 그의 소유된 자들에게 삶의 지침으로 내려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그들의 조상들과 후손들을 만민 중에서 선택하시고, 70명에 불과한 소가족을 이토록 하늘의 별 수처럼 창대하게 하신 까닭이다(22절). 


2) 그다음으로는 이웃들을 사랑하며 살아야 할 이유도 밝혔다(16-19절). 이를 위하여 모세는 마음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곧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절대 교만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이는 피조물 상호 간에는 교만은 최대의 적이요 겸손만이 살길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 구체적 사례로 모세는 만물의 주되신 여호와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뇌물도 받지 않지만, 반면에 사회적 약자들인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서는 정의를 행하시며 떠돌이 나그네를 사랑하시면서 그들에게 떡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임을 설명했다. 그런 분이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이기에, 그의 백성들이 된 이스라엘은 마땅히 여호와를 본받아 주변의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나그네 된 자들이 유독 강조되었는데, 그것은 그만큼 주변 사정이 평화를 잃고 먹고 살기 위해 떠돌이가 많았음을 의미한다. 


3) 이때 모세는 그들에게 부여된 뒷부분 정체성(Identity)을 일깨운다.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라‘(19절,하). 사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번성하게 하실 때, 애굽에서의 430년간의 혹독한 시련 생활엔 깊은 뜻이 있었다. 곧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고난받는 어려움을 겪는 주변의 이웃들을 사랑하며 축복하고 살아야 하는 백성이어야 함을 이루려 하심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항상 자기 조상들이 나그네였고 떠돌이였던 신분이었음을 먼저 기억(記憶)하고, 거기에 걸맞게 어려운 이웃에 대한 동정심을 품으며, 그들과 공존하는 삶을 살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그들의 정체성 속에 담겨 있었다(창12:3의 내용).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 정체성을 절대 잊지 말아야 했다. 이웃 사랑을 유발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이다. 


3. 서신서 / 딤전 1:1-11 / “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빼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한다”


분문은 사도가 초대교회가 안고 있는 약점을 지적하면서 그 함정에 교회와 성도들이 빠져들지 않도록 일깨워 주는 말씀이다. 그 모습은 율법과 함께 예수의 복음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일어난 논쟁 때문이었다. 그들의 특징은 복음서에서 지적된 바리새인의 약점을 지닌 자들에게서 나타난 바와 유사하다. 즉 가르치려고는 하지만, 실천은 하지 않는 이원론적 태도가 문제였다. 


1) 첫 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을 명령(命令)이라고 공언한다(1절). 그리고 뒷에서는 그 명령이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福音)이라고 고백했다(11절). 그렇다면 명령이란 어떤 것인가? 듣는 자는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법이다. 듣고도 안 지키면 그때부터 그는 위반자인 죄인이다. 그런 명령을 받은 바울은 후배인 디모데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 주면서, 계명을 명령으로 지켜 행할 때 비로소 계명이 복음(福音)이 됨을 일깨운다. 그러면서 명령받은 자의 기본적 자세와 굳건히 지켜낼 중심점이 무엇인지를 선명히 밝혀준다. 


2) 가르치는 자는 복음 이외에 절대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않아야 한다. 교인들로 하여금, 신화(神話)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해야 한다. 그래서 도리어 변론을 만들어 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에서 벗어나면, 헛된 말에 빠져들어서 율법 선생이 되려고 하면서 자신의 얕은 지식을 자랑하려 들게 하면서 또 다른 위선적 바리새인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되면, 주의 명령과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인데(3-6절), 바로 그 본질을 심각히 훼손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3) 그러면서도 바울은 율법이 꼭 필요한 곳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않은 자와 모든 범죄 자들을 위한 것임을 전제한다. 여기에는 영육 간의 모든 범죄를 망라하지만, 그중에 이웃을 향한 범죄는 이러하다. 곧 부모를 죽인 자와 살인하는 자, 음행하는 자, 남색 하는 자, 인신매매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들이 모두 율법에 따른 심판 받게 될 것을 밝혔다. 


o 이제 우리에게 법과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그의 선하신 법으로 우리와 우리 땅을 바르게 세우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 모세의 율법과 함께 예수의 복음도 주신 여호와께 찬양 올리자. 그래서 하나님 사랑도 하며, 이웃 사랑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신 주님께 영광 돌리자. 나보다도 나를 더욱 완전히 아시고, 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다가 당신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을 미리 계획하시고, 성경을 통하여 그 길을 복음으로 알려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응답을 드리자. 법은 지킬 때 아름답지, 못 지키면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는 것도 일깨워 주셨다. 율법은 우리가 순종하며 지킬 때 복음이 된다. 우리는 모두 율법과 복음의 법을 아름답게 통과하여 영생의 그곳을 통과한 주인공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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