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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5)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4-04-22 (월) 21:26 3개월전 325  

본문) 요 15:1~11, 아 2:8-17, 롬 8:1-11 


오늘은 부활절 다섯째 주일이다. 바깥세상에서는 여러 군데에서의 전쟁의 참화(慘禍)로 고통하고 있고 우리 역시 그 문제에 대한 불안은 안고 지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그 풍성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창밖의 정원은 이제 무성해진 수풀로 인하여, 확 트였던 전경(全景)의 시야의 폭이 좁아졌을 정도이다. 그래도 역시 자연의 풍성함은 마음의 여유와 평안을 제공해 준다. 무척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큰 선거를 치른 우리네 정치 마당은 이제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기대해도 될까? 그토록 완고한 윤 대통령이 이제 야당의 대표에게 만나자고 전화까지 약속했다고 해서 말이다. 반가운 소식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의 너무도 극우화(極右化)된 국정의 기조에 대변화가 없으면, 아무리 야당을 만나도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게 우리가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를 미.일에 종속시키려는 행태,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와 등을 지려는 행태, 무엇보다도 동족 북한과의 공생 공존공영이 아닌 힘겨루기 하는 대적자로 상대하려는 행태에 대한 포기 없이는, 그의 정치 앞날은 우리의 미래를 건설이 아닌 파멸로 치닫게 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강자와 부자 위주의 경제정책도 우리의 숨통을 막고 있기에, 그의 대오각성이 필요한 부분인데-, 그게 가능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특히 자신들의 비리들엔 침묵하고, 정치적 경쟁자들만을 향한 탄압 정치를 포기할 것인지도 큰 과제이다. 검찰 독재의 힘으로 언론계를 질식시킨 일도 포기할 것인지도 큰 과제이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기본 요소들인데, 이런 것들을 여태껏 누리며 지내왔는데, 과연 포기할 수 있을까? 


더욱 어이없는 일은 그의 정치가 특정 무속(巫俗)인의 영향력 아래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적으로는 심히 창피한 일이고, 수치스러운 일이 분명하다. 특히 그가 그 무속인의 주장을 국정에 전달하는 일은, 그게 사실이라면 이는 국정농단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인데, 우리 국민은 그런 행태를 언제까지 모른 체 하고 지내야 하나? 그런 그가 새 출발 하도록 또다시 얼마를 기다려 주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까지 우리나라의 사정이 한가롭지 못하잖나-!


분명한 것은 그간의 정치 행태는 결코 정의나 공의나 평화나 생명을 좇으려는 것이 아니라, 죄와 거짓과 불의와 분열과 독선과 욕망을 조장하고 끌어들이려는 마귀와 어둠의 세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바로 그 점을 우리는 이번의 온 국민이 참여한 합법적인 선거를 통하여 공인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우리나라와 국민의 삶 속에서 새롭게 확립되고 재건될 것인지를 기도하며 지혜를 모아야 한다. 


특히 지금은 부활절기를 보내고 있다. 부활은 불의와 거짓과 어둠과 위선과 죽음에 대한 부정(否定)이고, 생명과 진리와 사랑과 믿음과 평화에 대한 긍정(肯定)이다. 그런데 이 부활을 주도하시고 그 세계의 문을 활짝 여신 이는 바로 예수이셨다. 그 부활의 주 예수께서는 평소에도 그의 제자들에게 ‘예’(Yes)와 ‘아니요’(No)를 분명히 하는 삶을 요구하셨다. 모든 악은 그런 질서에서 탈선할 때 나온다고 일깨워 주셨다(마5:37절 참조). 이제 이 새 질서에 주목하자.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세상과 인간의 생명과 정의 회복을 위한 성취를 위하여서라도, 그 부활의 주되신 예수에게서 나오는 놀라운 힘과 지혜를 제대로 공급받아야만 하겠다. 이 일은 인간들만의 열정과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다. 힘과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보혜사 그리스도의 부활하게 하시는 신령한 능력을 덧입어야 만 되는 일이다. 마치 자녀란 새 생명을 얻기 위하여서는 여자란 텃밭에 남자란 씨앗이 떨어져 하나로 어우러져야 하는 것과 흡사하다. 


오늘 주시는 세 본문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 된 자들에게도 당신의 부활의 생명이 구현되고 그 능력이 발휘되기를 간절히 원하시면서, 그 방편(方便)으로 무엇이 선결되어야 하는지를 상세히 강조하고 계심을 보게 된다. 이 일은 열심히 듣고 깨닫는 것이나 마음으로 동의하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 실행이 중요하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그 성취를 위한 결정적인 방편은 무엇인가? 


바로 ‘그 안에 거하는(remain) 일’이다. 여기서 거(居)함이란 단순히 함께 같이 사는 정도의 차원이 아니다. 부부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서로 붙어 있는 상태, 곧 사랑하는 남녀가 마치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서로 한 몸이 되어 함께 지냄을 의미한다. 그래서 함께 마음을 모으고, 꿈을 꾸며, 자녀를 생산하며 살아가는 차원의 하나 됨을 말한다. 이것이 예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의 부활을 공유할 수 있는 방편으로 제시한 결정적 비법(秘法)이다. 


이런 정도의 연합과 하나 됨을 이루지 못한 체, 엉성하게 나무에 매달려 있는 가지들은 농부이신 하나님이 과감하게 가지치기하여서 쓰레기로 내쳐 버리신다고 선언하신다(1-2절).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애매모호한 가지들은 나무에서 물기만 뽑아내고, 다른 열매들이 제대로 성숙하지도 못하게 하는 방해꾼들이 될 뿐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한 ‘들러리 가지들’, 곧 ‘잡(雜)가지’들의 해로움을 잘 알고 있는 농부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1, 6절). 


1. 복음서 / 요15:1-11 /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본문은 어떤 사람에게 예수의 부활 생명과 능력의 행사가 가능할 것인지를 전하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설프게 예수와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애매모호한 신자들에게도 태도를 분명히 밝히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농부요 주인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귀한 열매 맺는 가지와 나무로 대접받는 존재로 살 것인지, 아니면 평생 들러리 인생으로만 살다가 불쏘시개 역할만 하다가 사라지는 불쌍한 존재가 될 것인지를 결단하라는 경고의 말씀이기도 하다. 


1)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에 관한 말씀에서 자신과 하나님의 역할에 관하여 선명히 밝히셨다. 농부(農夫)는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포도나무라 하셨다(1절). 하나님은 관리자요 심판관이고, 당신은 가지와 열매를 맺게 할 원천인 나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나무에서 나온 열매는 누굴까? 제자와 성도들이다. 바로 그 이유로, 나무와 가지는 절대 관계에 있다. 예수가 그의 백성과 제자들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이유이기도 하다. 


2) 나무가 자기에게서 난 가지들을 중요시하는 까닭은 가지들이 그 나무가 목표하는 열매들을 맺게 하고 자기를 돌보는 농부에게는 수익을 안겨 준다는 데 있다(2절). 이 대목에서 우리는 농부와 나무와 가지들 사이에 설정 되어있는 내적 규율(規律)을 본다. 매우 엄중하다. 농부는 자기 나무에서 붙어 있는 가지들의 상태를 면밀하게 보면서 손을 댄다(심판한다). 곧 나무에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 없는 가지는 제거하신다(6절). 또한 열매 맺는 가지도 농부는 손을 본다. 더 많은 열매를 기대하면서, 그것에 장애가 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과감히 잘라내신다. 


3) 주의 말씀은 살아남은 자들, 곧 열매 맺는 자들이 예수 생명과 부활의 능력을 펼치며 사는 자들이 되기 위하여 절대 필요한 행동 지침(指針)을 제시한다(3-5절). 일단은 예수의 말씀을 좇아 사는 인물들이어야 한다(3, 7절). 말씀은 방향(方向)이고 내용(內容)이며 힘인데,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그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입증하게 된다. 바로 말씀 순종은, 마치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음처럼, 그가 지금 예수 안에 거하고 예수와 함께 산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4) 열매 맺는 자들의 절대적 마음가짐을 주목하자. ‘나는 부활 예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예수 안에 거하지 못하면, 나는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서 나중엔 쓰레기처럼 불에 던져 사라지고 말 것이다’(5-6절)라는 내용의 진심을 담은 고백이다. 


5) 반면에 내가 예수 안에 거하고, 예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면 반드시 징표가 따른다. 무엇인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어지는 응답이 따른다(7절). 그러면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되면서, 농부인 아버지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우리는 예수(나무)의 제자(弟子)가 된다(8절). 이러한 관계 차원에서, 주님은 당신의 제자 된 우리에게 진심으로 당부하신다. 


-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9-11절)


2. 구약 / 아2:8-11 / “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


구약의 시가서인 아가(雅歌)서는 남녀 간의 아름다운 연애를 찬미한 8장의 문답체 노래다. 여기에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숱한 시문(詩文)으로, 또 전혀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들의 감정을 생생히 표현한 사랑의 노래로 모아져 있다. 이런 내용이 성경 가운데 자리하고 있음에 놀라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남녀의 사랑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점에서는 긍정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성경에는 남녀의 사랑을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결합(렘2:2,겔16장,호1-3장) 및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결합(엡5:25,31-32참조)의 복사판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 차원에서 사람들은 아가서에 나타난 사랑을 이해하기도 한다. 그런 중에 특히 본문은 예수의 부활 신앙을 증거하게 되는 일에 중요한 자료로 투입되어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1) 본문 아가서의 내용 부분의 주제는 <겨울이 지나갔다>이다. 두 사람 사이의 만남을 가로막던 추운 계절 겨울이란 장애물이 치워졌음을 배경으로 한다. 그 변화를 여자가 먼저 반응한다. 곧 사랑하는 남자가 자기에게 찾아온 일을 기쁨으로 묘사한다(8-9절). 사랑하는 자가 소리를 지르고, 작은 산도 빨리 넘어서 온 모습이 마치 노루나 사슴과도 같았음을 말한다. 자기 창살에 그의 얼굴이 비치는 모습에 감동한다.


2) 남자의 뜨거운 자기 애인(愛人) 찾기가 펼쳐진다(10-14절).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데,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뜨겁게 구애한다.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얼굴을 보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3) 그런 남자의 뜨거운 구애에 여자가 기꺼이 응답한다(16-17절).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곧 ’임은 나의 것이며, 나는 임의 것이다‘(My lover is mine and I am his-표준새번역)라고 확실히 화답(和答)하였다. 그러면서 날이 저물고 그림자도 사라지기 전에 나의 임께서는 노루와 베데르의 날랜 사슴처럼 빨리 와달라고 요청한다. 


☞ 결국 이런 남녀의 봄의 향연, 서로의 그리움과 애정을 나누면서 서로 하나 되는 일을 통하여 그들 세계는 ’둘이 하나‘되는 사랑의 과정을 겪게 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거하고 안에 거하는 관계에 들어간다. 마치 나무와 가지가 붙어 있듯 하게 된다.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도 이 정도로 서로 사랑하고 하나로 붙어 있어야 함을 말하고자 한다. 그럴 때 부활 생명의 역사가 드러나면서, 하나님의 새 창조와 번영의 열매까지도 맺게 된다(요15:4-9참조). 


3. 서신서 / 롬8:1-11 / “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


부활하신 예수의 영으로 변화를 받았던 사도 바울은 ’그 분 안에서‘란 삶이 어떤 삶인지에 대하여 눈이 뜬 사람이다.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 그리고 ‘예수를 살리신 분 안에서’ 사는 우리가 되지 않고서는 우리는 여전히 부활의 생명으로 살 수 없음을 계속 증언하였다. 이는 앞에서 내가 말한 대로, 대지만으로는 새순이 날 수가 없음과 같기 때문이다. 반드시 그 땅 은 생명의 씨앗을 받아야만 새 생명이 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런 점에서 우리 마음과 영혼이라는 밭에 들어오셔야 할 하늘 씨앗체이다. 우리 몸은 누구를 받느냐에 따라서, 무엇을 받느냐에 따라서 그의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 밭인 영혼에는 전적으로 하늘 생명의 씨앗인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의 영인 성령이 떨어져 자리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2절), 육신을 따라 살수 밖에 없어서 심판에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결국 하나님과는 원수로 살게 된다(6-7절). 결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가 없다(9절). 


그러니 어찌해야만 할까? 그리스도 예수 안의 사는 존재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정죄(定罪)된 존재에서 벗어나야 한다(1절).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2절). 영을 따라 사는 자로 변신(變身)해야만 한다. 그래서 내 존재가 생명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5-6절). 무엇보다도 성령은 예수를 살리신 하나님의 영으로서, 그 영이 내 안에 거하시게 되면 그 일은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게 되는 일이기에, 결국은 우리의 죽을 몸까지도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게 되는 절대적 은혜를 입게 된다(11절). 


o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인 우리들이 그의 부활 은혜와 능력을 공유하며, 거기에서 나오는 거룩하고 신령한 힘으로 이 어둠의 세상을 빛으로 밝히는 인물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세상의 소금과 빛 됨은 우리의 의지와 기개만으로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신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셔야 한다. 그의 말씀과 성령께서 내 안에서 일어나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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