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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3)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씨뿌림- 4.16세월호 추념 - 4.19혁명기념주일

관리자 2024-04-09 (화) 17:52 20일전 125  

본문) 요 10:1~18, 겔34:11-16, 히13:7-10, 20-21


부활절 셋째 주일이다. 봄꽃과 더불어 새순들이 만발하다. 특히 벚꽃을 비롯해 다양한 들꽃들도 제 모습과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만물이 생명력으로 충만하다. 창조주의 솜씨가 놀랍기 그지없다. 이런 때, 우리나라는 지난 4.10일(수)에 나라를 새롭게 섬길 선량들 300명을 뽑았다. 이들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앞으로의 4년이 새롭게 흘러갈 것이다. 결국 큰 책임은 그들을 선출한 국민의 몫이다. 바라기는 이번 선출된 이들 모두가 절도나 강도가 아닌 선한 목자들이 되길 소망한다. 그 동안의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고, 선순환의 정치가 펼쳐지길 원한다.


마침 총회가 제정한 씨뿌림주일과 4.19혁명기념주일도 겸하여 맞이한다. 한 해의 농사의 시작을 축원하면서, 4.19혁명에 의해 시작된 오늘의 민주주의가 다시금 지지게를 펴게 되는 때가 되기를 기도한다. 농부는 다수의 소비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가치는 높게 평가돼야 마땅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 현 정권이 취하고 있는 검찰 독재는 이번 새 국회의 등장과 함께 종식되어야만 한다. 세계가 우려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퇴보가 소수의 검찰 집단과 그들에게 부역하는 언론들과 그 밖의 협력자들에 의하여 진행되는 일은 반드시 단절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이번의 총선은 제2의 4.19가 되어야만 한다. 


또 있다. 10년 전에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발생한 304명의 세월호 대참사 사건에 대한 기억이다. 너무나 유감스럽게, 아직도 진상이 규명되지 못하고, 그 유족들의 피눈물을 씻어주지 못한 상황이어서, 가슴이 무척 아프다. 그 사이에 이태원 159명의 참사 사건과 청주의 채 상병 익사 사건 등이 잇달아 발생하였다. 아벨의 피의 호소가 이 시대를 관통하지만, 나라의 공권력은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입 틀어막기에만 급급하다. 병든 나라의 속성이다. 


이런 중에 우리는 오늘 세 본문의 말씀을 받았는데, 그 공통적 메시지가 보인다. 대상은 교회의 목자들을 향한 듯하지만, 큰 틀에서 나라의 일꾼들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부활 공식(公式)을 제시하는 말씀으로서, 모든 것의 최종적인 답(答)이 될 수 있는 부활 세상이 어떤 누구에게 열리고 또 주어질 것인지를 제시하려는 해법들이다. 부활은 그저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문과 길에 들어서야만 비로소 열리는 세계이다. 곧 죽음다운 죽음이 있어야만, 거기에는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부활 세계가 경험된다는 말씀들을 공식으로 주신 내용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양무리를 돌보는 선(善)한 목자의 목양(牧羊) 윤리를 시범(示範)하셨다. 그가 선보이신 선한 목자는 양무리 주변엔 항상 자신의 이익만을 노리는 삯꾼과 다르고, 도둑질하고 죽이며 멸망시키려는 절도와 강도와도 다르다. 그 대신 그는 자기 양들을 돌보고 그 생명들이 나가며 들어가며 꼴을 풍성히 얻도록 문과 길을 지키기도 하고, 도적과도 싸울 줄도 알며, 최후에는 양들의 더 나은 생명을 위하여 스스로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기도 하셨다. 


구약 예언서는 이런 선한 목자의 구체적인 행동들이 어떤 내용들인지를 일찍이 예고하신 내용이다. 모두가 선한 목자가 아닌 삯군과 같은 처신만을 일삼았던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列王)들의 연속된 행위들로 인하여 북방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망하고 남방 유대는 바벨론에게 망하면서, 나라 잃은 슬픈 백성이 된 저들 이스라엘에게, 긍휼의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을 통하여 그들을 온전히 회복시킬 미래의 선한 목자의 등장이 있을 것을 전하신다. 사실상 당신의 아들이신 메시아 예수의 세상 목회의 시대를 앞당겨 예고하신 것이다. 


서신서는 당신의 백성을 섬기고 목양하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선한 목자이자 큰 목자이신 예수를 상기시키면서, 그 주님을 본받아 배우고 익힌 초대교회의 모범적인 목회자요 순교자인 이들의 목양도 주목하며 그들을 본받을 것을 권한다. 그들이 주 예수를 본받아 성문 밖에서 고난받았음을 기억하고, 성령의 분별력을 가지고 이단이나 옛 규정 따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하여, 주의 뜻을 온전히 이루며 살아갈 것을 권한다.


1. 복음서 / 요10:1-18 /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 


본문은 예수께서 당신과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 즉 당신의 돌봄을 받게 된 양무리와의 특별한 관계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들에게 당신은 누구신 지를 명확히 하신다. 그러면서 그들 주변에서 사람을 오도(誤導)하면서 그들의 영혼을 파괴해 온 거짓 세력들에 대한 당신의 분명한 태도도 밝히신다. 여기에서 주님은 그 유명한 ‘에고 – 에이미’(나는 – 이다)라는 직설법을 통하여, 당신이 누구신지를 밝히셨다 -‘나는 양의 문(門)이요(7절), 선(善)한 목자다’(11절). 


선한 목자란 어떤 존재인가? 그는 양의 출입을 책임지는 존재다(2,7절). 절도(竊盜)나 강도처럼, 아무 때나 틈타서 목자도 모르게 출입하고(1절), 양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며, 그러기에 양들도 그를 듣거나 따르지도 아니하고(5절), 도둑질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멸망도 시키려는 무리와는 다르다(10절). 반면에 선한 목자는 양을 알고 그의 이름도 알기에 그 이름을 불러 인도하는데, 그러기에 양도 따르는 존재이다. 양이 구원을 받도록 울에서 나가며 들어가며 꼴(양식)을 얻어서(8절)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수고하는 사람이다(10절). 


또 있다. 그의 선함은 그가 삯꾼(a hired hand)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데에 있다. 삯꾼은 품삯을 위해 고용된 임시직이어서, 자기 이익이 항상 최우선이다. 자신이 맡은 양에 대한 임무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예컨대 이리 같은 맹수가 나타나면, 자기가 살려고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 바람에 양이 이리의 밥이 되고 또 헤침을 당한다(12-13절). 그러나 자기 양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가진 선한 목자는 전혀 다르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그는 자기 양을 위하여 소중한 목숨을 버릴 줄 안다는 점이다(11,15절). 그 점에서 양은 이런 선한 목자의 투철한 돌봄에 의하여, 생명을 보전하고 안전을 도모하며 편안히 살게 된다. 


여기에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다. 예수의 조상이셨던 다윗이 그 소년 시절에 사울 왕에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예기치 않게 택함을 받았다. 시편 시인(詩人)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함을 받은 곳을 주목한다. 그는 왕자 같은 신분이 아님에도, 오히려 거친 들짐승이 넘나드는 양의 우리라는 목양 현장을 책임지던 소시민의 일원에 불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다윗을 주목하셔서 나라의 왕으로 택하신 하나님을 소개한다(시78:70, 삼상16:11-13 참조). 


그 시점을 보면, 이세의 8형제 중 막내였던 다윗은 처음에는 선지자 사무엘의 ‘아들들 부름의 자리’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목양 일을 바빴기에 그 중요한 모임에 참석지 못하였으나, 여호와의 시선은 참석한 형들이 아니라, 책임 있게 거친 짐승과의 싸움도 감당하면서 모든 가족을 대신하여 현장을 묵묵히 지키던 성실하며 담대한 목자의 소양을 감당한 어린 다윗을 보시고, 그에게 온 이스라엘 백성을 치는 왕(王)이란 목자의 대임(大任)을 맡기신 것이다. 


그런 다윗 왕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께서 목장 현장을 지키고 사랑하며 그 양무리들을 돌보고 지키시는 대(大)목자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이신 최후의 모습이 바로 저 십자가에 죽음이었다. 그때의 그의 가슴엔 당신의 양무리가 유대인만이 아니었다. 양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 곧 온 세계에 흩어져 있으나 당신이 거두셔야 할 모든 백성까지도(교회공동체) 품고 자신이 그들의 목자이심과 사랑하심을 선포하셨다(16절). 당신의 십자가 죽음의 능력이 미래의 세상까지도 품고 있어서, 당신을 찾아올 백성들 모두를 구원하리라고 보셨다(17-18절). 


2. 예언서 / 겔 34:11-16 / “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 그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


본문은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책임성이 얼마나 뜨겁고 강렬한지를 자세히 밝혀준 내용이다. 그들은 비록 여호와의 사랑과 율례를 배반하여 나라가 망하고 세상 열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시련과 고통을 겪게 되었을지라도,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때가 되면 그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하실 것임을 분명히 약속하셨다. 이는 눅15:4에 나타난 ‘잃은 양을 찾아 나선 목자의 그 모습’을 전하신 예수의 행위와도 일치한다. 


1) 그들 유대인들은 주전 587년에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게 되면서, 가장 슬프고 참담한 비극을 맞이한다(왕하25장 참조). 예루살렘과 대성전이 처참하게 무너졌고, 왕족들은 학살당했으며, 힘 있고 쓸만한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갔고, 힘없고 나약한 백성들은 버림당한 모습으로 폐허가 된 도성을 지키며 살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적잖은 이들이 바벨론은 물론 애굽을 비롯한 주변의 나라들로 흩어져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살게 되었다. 디아스포라의 본격적인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실로 ‘흐리고 캄캄한 시절’이었다(12절). 


2) 하지만 그들의 창조자요 보호자이며 목자이신 여호와는 그런 그들을 결코 포기하지 아니하셨다. 비록 그들의 엄청난 죄악과 배신행위로 그런 참담한 형벌을 받도록 허락은 하셨으나, 그렇다고 그들 자체를 포기하신 것은 아니었다. 복역의 시간이 끝나기만 하면(사40:2), 그들은 그들을 찾으시는 선한 목자의 손길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본문은 그때 일어날 일들을 앞당겨 예고하시면서, 인내와 믿음을 갖고 잘 견뎌낼 것을 요구한 말씀이다. 


3) 그때의 목자이신 여호와는 어떤 모습을 보이실 것인가? 선한 목자요 사랑하는 목자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매우 실감(實感)난 행동들을 예시했다(11-15절). 첫째는 목자인 당신의 양 찾기에 집중하신다. ‘찾고 찾되, 흩어진 양 떼를 찾는 것 같이 당신의 양을 찾아서,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양들을 건져낼 것이다. 둘째는 데리고 온 양들을 어떻게 대하실 것인지를 예고하셨다. 곧 만민 가운데서 끌어내며 모아서 그 본토로 데리고 와서 본국인 이스라엘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을 먹이고, 안전한 높은 산에 두어 그들이 살진 꼴을 먹게 된다’ 


4) 그리하여 이 목자는 돌아온 양들에게 진정한 목자의 위상을 확립하게 되고, 양들의 안위를 돌보는 선한 목자가 되리라 언약하셨다(15절). 그 후 이런 예언의 완전한 성취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그 자신을 내어주시기까지 그의 백성들을 돌보시고 양육하시는 모습으로 성취되었다. 


5) 단, 이 선한 목자의 양무리 돌보심에는 특징이 있다. 전적으로 약한 자와 돌봄이 필요한 자 위주였고, 강한 자와 힘센 자 편에 섬으로서 야기될 수 있는 불평등이나 차별을 불어오는 정의(正義)의 차원을 훼손하는 일은 배제되는 차원에서 집행되었다. 이제 그 본문을 확인한다.


- “ 그 잃어버린 자(the lost)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the strays)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the injured)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the weak)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the sleek)와 강한 자(the strong)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16절)  


3. 서신서 / 히 13:7-10, 20-21 / “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히브리서는 교회의 복음이 세상의 권력으로부터 엄청난 박해와 미움과 배척을 당하는 환경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을 격려하고자 기록한 신앙서이다. 여기에서는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섬기며 사는 일 이외에도, 그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키고 성도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등의 목회(牧會)를 하다가 세속 권력으로부터 박해와 순교를 당하여 이 세상을 떠난 무명의 그들의 목회자들에 대한 기억(記憶)을 함께 요구하기도 한다(7절). 


그것은 그들이 일관되게 보여준 행실로 인한 믿음의 신실성 때문이다. 그런 모습은 교회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특히 그들의 예수와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충성된 모습은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의 백성임을 입증해 준 행위로서, 그 역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끌어내신 생명의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인물이 되었음을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까지 전해주었기 때문이다(20-21절).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자신의 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신 일을 기억하고, 그 뒤를 쫓은 목회 동역자들도 본받으면서, 우리도 이 세상에서의 무사안일한 삶의 태도를 버리고 십자가 멍에를 짊어지고 영문(營門) 밖으로 나가야 하겠다(12-13절 참조). 우리가 찾을 것은 이곳이 아니라 영구한 하늘 도성이며, 장차 올 하늘 처소임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이때 우리는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실천하면 된다(14-15절 참조). 


본문 안에는 엄격한 음식 규정으로 교회가 내면적 강화를 위한 수단을 사용한 흔적이 나타나 있다(9-10절). 하지만 복음과 은혜의 시대에 접어든 지금의 우리는 그런 율법적 교훈보다는 마음을 은혜로써 굳게 함이 더 아름답다는 교훈을 취하고 사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o 오늘은 부활의 문이 우리 구원을 위하여 거룩한 자기 버림인 죽음을 통하여 열리는 것임을 확인했다. 모든 생명을 안겨주는 곡식은 농부의 치열한 수고로 제공된다. 4.19 혁명의 의로운 핏값으로 우리에게는 민주주의란 소중한 선물이 제공되었다. 4.16 세월호의 피의 호소는 반드시 원인이 규명되고, 그 잘못된 행위에 대한 심판은 다음을 위해서라도 있어야만 한다. 


교회와 성도들은 선한 목자 예수의 은혜를 입은 무리들이고, 그의 은혜로 구원받은 삶을 누리며 사는 자들이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가 찾으시던 주변의 길잃은 양들 찾기에 땀과 눈물과 피를 드려야 하겠다. 선행과 나눔의 삶을 생활화해야 하겠다. 안일한 삶이 아니라, 성문 밖으로(outside the camp) 나가서 그곳에서 만나게 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세계에 들어가는 믿음의 주역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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