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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9)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18-07-19 (목) 08:24 5년전 1212  

본문)  행 6: 1-7, 왕상 17: 8-16, 막 6: 30-44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하여, 이 땅의 만물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노동자의 주간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축소되고, 국민의 최저 생활비 보장을 위한 최저 임금제 도입으로 인한 적정선 찾기에 따른 진통으로 인하여,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 반발과 저항이 커서 온 나라가 시끄럽기도 하다. 예멘의 난민들 500여명이 제주도에 와서 난민 신청한 일들로도 국민들의 의사는 찬반으로 엇갈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관세인상 전쟁에 돌입했고,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은 거대한 홍수를 만나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도 당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북.미 간의 긴장이 다소 해소가 되었고 남.북 간의 교류들이 확대되고 있는 일이지만, 이것 역시 무슨 복병이 나타나 또 다시 우리의 삶을 옥죄일지 모를 일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영역들은 없어 보인다! 가정은 가정대로, 직장들은 직장대로, 개인들은 개인대로, 문제들의 홍수(洪水) 속에 있다. 그게 바로 우리 인생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교회는 어떨까?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을 믿으니 문제가 없는 건가? 아니다. 교회도 결코 안전지대는 아니다.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도 있는 곳이 교회요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지금처럼 끊임없이 교회를 찾는 이유는, 바로 교회에서 그 문제에 대응하고 풀어갈 하늘의 말씀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보는 눈, 문제를 대처하는 마음, 삶의 힘겨운 여정을 극복하게 하는 지혜를 주는 샘터가 바로 우리 교회 강단의 말씀에서 생수(生水)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말씀들은 아예 우리에게 문제가 없는 곳을 찾으려 하지 말라고 한다. 그 대신, ‘차라리 문제를 즐기고 감사하라’고 요구하신다. 그 까닭은 이것이다. 즉 모든 곡식들이 한 여름의 뜨거운 날씨와 쏟아지는 폭우과 밀어닥치는 폭풍들 속에서 성장하며 알곡이 맺어짐과 같이, 우리 인생도 아픔과 고통과 숱한 엇갈리는 문제들의 진통 속에서 존재(存在)와 삶이 굵어지고 더욱 튼튼하게 여물어 가기 때문이다. 

 

지난주일 말씀에서는(신8장) 이스라엘 백성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들었다. 그들의 광야 40년 생활이 바로 그것이었다. 매일매일 숨 막히는 열사(熱砂)의 땅인 광야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당신의 영원한 백성으로 삼기 위한 훈련, 즉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여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말씀에 복종하므로서, 당신이 베푸시는 축복을 받아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들이 되게 하시려고 민족적 연단을 그렇게 하셨음을 보았다. 우리나라의 분단의 70년간의 오랜 아픔과 역경도 이것을 어떻게 승화시키느냐에 따라서, 우리 한반도가 이 문제 많은 지구촌에서 세상의 평화와 화해의 모델로 빛을 발할 수 있게 하시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게 하는 말씀이었다. 

 

그 어떤 사도들보다도 환란을 많이 겪었던 바울은 이런 말씀을 선포한 바 있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2-13)

 

바울의 영적 센스가 매우 놀랍다. 그것은 하나님의 눈과 마음은 언제나 선 줄로 생각하는 자들에게가 아니라, 힘겨운 시험으로 고통 하는 자들에게 집중하신다는 사실이 우리를 희망(希望)하게 한다고 증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제 성령 받은 우리는 그 어떤 문제에도 염려나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며 먼저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고 익히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오늘의 세 본문 말씀은 다음의 몇 가지 차원의 공통적 인식 하에서 우리의 문제 해결의 믿음을 제공한다. 

 

첫째, 삼위일체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과 공동체의 문제를 먼저 아시고, 그 필요를 채우시려는 방안도 제시하여 주시는 분이시다. 

 

☞ 사도행전은 주의 성령이 교회 공동체의 지도력(leadership)의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우시는 분임을 전한다(행6:1-4). 겉보기에는 신도들 섬김의 문제 같이 보이지만, 실재로는 지도력의 조절 장애(障碍)를 겪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교회에 갑자기 많아진 무리들을 돌보는 데, 사도들이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들을 쏟으며 피곤(疲困)해지는 바람에, 신도들 섬김에도 문제들이 발생했던 것이다. 

 

결국 이 모든 해결은 당신들의 고유 업무인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면 되는 일이었다. 바빠진 봉사의 업무가 더 이상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예배와 말씀의 업무에 장애를 주지 않도록 조절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 근간이 허약해지면 나머지의 모든 것은 순식간에 위험해질 수 있음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사도들은 오직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시급히 인력 보강과 함께 휴식과 기도할 시간을 교회에 요청했다. 

 

☞ 구약에서는 선지자 엘리야의 곤궁(困窮)함을 돌보시는 하나님이 보인다. 엘리야는 바알 종교를 추종하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과의 치열한 대결로 인하여,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노상 쫓겨 다니는 아주 고단한 신세였다. 여호와는 그런 그를 편드셨다. 처음엔 요단 동편 그릿 시냇가로 피난케 하셔서, 그곳 시냇물이 마를 때까지 까마귀들을 동원하여 떡과 고기를 물어다가 먹이시기도 하셨다(왕상17:1-7참조). 

 

하지만 그곳 시내가 바닥이 나자, 이번에는 엘리야를 이방 땅 시돈의 사르밧 과부에게로 보내신다. 그녀는 부자도 아닌 가진 것이라곤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인 가난한 과부였는데, 그런 가련한 여인의 협력을 통하여(10-13절), 그들 모두가 그곳의 3년 반 지속되었던 대흉년(大凶年)의 위기를 넘어가게 하신 것이다.

 

☞ 복음서의 두 경우도 그렇다. 사람들 돌보기에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이 바빠서 피곤해진 제자들에게 주님은 뜻밖에도 특별 휴가(休暇)를 명하셨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막6:31-). 그렇다. 바쁘게 사는 사람일수록 쉴 줄도 알아야 된다. 주님은 사역만 요구하시지 않았다. 수고한 이들에게 휴식과 쉼의 시간을 명령하신다. 우리나라가 이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단행한 것도 이 쉼의 정신을 구현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마침 지금은 각 교회의 여름수련회 시즌을 맞이하는데, 이런 영적 충전과 휴식을 도모하는 일은 매우 높은 가치(價値)가 있다. 대부분의 신도들은 여태껏 세상과 가정과 자녀들 일로 너무 수고해 왔기에, 잠깐 휴식과 여유는 매우 필요하다. 교회도 그렇다. 교회나 목회자에게 혹 위기가 와있다면, 이런 문제 때문이 아닌지 잘 살펴야 한다. 

 

☞ 복음서는 하나를 더 전한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무리들의 배고픔(hungry)과 먹을 것(food)에도 관심하시고, 그 해결에 앞장서시는 분이심을 보여 준다(34-41절). 주님은 그들을 ‘목자 없는 양’같이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에게 말씀의 풍성한 꼴로 배부르게 하셨다. 하지만 때가 저물고 장소의 한계(빈들)와 식사 경비의 문제가 발생하자, 난감해진 제자들이 결국 예수께 궁여지책(窮餘之策)을 내놓았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36). 하지만, 예수님은 그 방법을 거부하셨고, 당신이 제시하신 그 놀라운 방법을 통하여 전체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러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취하신 문제 해결 방법들이 어떤 것인가? 

 

2) 문제 해결은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 하고, 외부의 힘으로 하려 하지 아니하셨다. 

 

☞ 교회 지도력의 문제 해결도 공동체 안에 들어 온 유능하고 다양한 영적 역량을 가진 평신도(平信徒) 7명을 택하여 집사로 안수하여 임직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사도들이 맡았던 봉사의 업무를 떠맡게 하면서, 모든 갈등과 숙제를 일거에 해소시켰다. 

 

그러면 그들이 누구였나? 3-4절의 내용의 조건(성령과 지혜와 믿음. 신뢰 충만)을 갖춘 인사들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들 모두는 본토의 히브리 출신이 아니라, 해외파였던 디아수포라(교포)들이었다. 그들은 사도들이 갖지 못한 부분을 보완할 재능과 역량을 갖춘 자들이어서(언어능력, 외국문화, 이방인포용성, 세계적시각 등), 사도들이 안심하고 봉사의 사역을 맡길 수 있었다. 교회의 지도력의 역량이 크게 제고되고 안정되면서, 교회는 위기를 지나 크게 부흥하고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가 있게 되었다(5-7절). 이 모습은 교회의 목사와 평신도의 균형 있는 협업(協業) 지도력의 기원이 되었다. 

 

☞ 시돈의 사르밧 과부를 하나님이 당신의 종의 도우미로 선택하신 이유가 무얼까? 그 여인이야말로 당시 그 어떤 이스라엘 사람들보다도 당신의 말씀에 민감하게 영적 대응을 잘하는 자였기에, 하나님은 그를 핏줄을 아닌 영적 이스라엘로 보셔서, 그 기회에 이 여인의 삶의 곤궁의 문제도 엘리야의 문제 해결과 함께 풀어주고자 하셨다. 

 

특히 이 여인의 말씀에 대한 반응을 보라. 그녀는 세 번에 걸친 선지자의 무리하게 들리는(?) 잇단 요구들과(10,11,13절) 거기에 따르는 보장의 약속(14절)에 대하여 ‘선지자의 말대로’ 하였다’(15절). 그녀의 이런 복종의 믿음은 두 가지 차원에서 그가 참 이스라엘 백성으로 복 받을 자임을 보여 주었다. 그는 선지자의 말을 인간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고(사29:13,비교),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확실히 보여 주었다(신8:3,마4:4 참조). 

 

☞ 복음서의 예수님도 ‘무리들을 먹이는데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며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제안을 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37절),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는지 알아보라’(38절)라면서, 자체적 능력을 통한 문제 해결의 길을 제시하셨다. 외부의 도움이나 특정 독지가의 후원 등에 의존하여 풀려고 하지 아니하셨다. 

 

옛적 경험이 생각난다. 성전매입 과정에서 지인으로부터 2년 반 기간 동안 무이자 1억 원을 차용한 적이 있었다. 때가 되어 갚아야 되는 때가 왔다. 교회는 긴장하며 해결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때의 교우들의 기도는 이랬다. ‘주님, 우리는 가난하여 할 수 없사오니, 감당할만한 사람을 보내어 주옵소서!’ 하지만 응답은 없었고, 상환 날은 임박했다. 긴장이 고조되는 중에, 어느 중직이 이런 기도를 올렸다. ‘주님, 우리는 너무 부족하지만 도우셔서 우리가 그 부채를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며칠 후, 중직들의 기도회 직후,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대로 작정했다. 목표가 초과되면서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기도 내용과 방향 변화가 그 기적을 몰고 온 것이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렇게 믿음과 순종으로 주어진 시험을 통과한 자들에게, 놀라운 성취(成就)와 배부름의 기쁨과 큰 산을 넘어서는 쾌감(快感)을 선사하신 분이시다. 

 

☞ 사도들의 기쁨을 보라. 말씀의 힘이 강해지면서 교회는 급격한 부흥을 하게 된다.

☞ 구약 증언을 보라. 선지자와 그 과부댁에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 복음서도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 12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다. 

 

이제 하나님의 방법에 정통한 인생이 되도록 하자. 인간에게는 없지만 하나님께만 있는 길이 있음이다. 자기 것보다 이웃과 우리의 것에 관심하면, 돕는 하나님을 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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