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60:15~22, 눅 1:5-25, 갈 3:15-22
오늘은 대림절(待臨節) 첫 번째 해의 첫 주일이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마지막 달의 첫 주일이기도 하다. 올해는 유달리 세계적으로 불행한 일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전쟁들이 활발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계속되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도 발발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지구촌도 각종 재해(災害)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세계 곳곳에서 잇따르고 있는 대지진, 대폭풍, 기상이변 등등이 지구촌 곳곳에서 그치질 않는다. 오대양 육대주가 모두 이 문제로 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실로 안전지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반도는 어떤가? 최근 아프리카 소 전염병으로 알려진 럼피스킨병으로 수 많은 소가 애꿎게 살처분되었다. 이것 또한 심각한 환경오염에 의한 질병이기도 하다. 문제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지의 큰 병들이 많을 것이란 점이다. 지구촌이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인한 온도 상승으로 더워진 지구가 되어, 지구촌의 생태계가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일은 앞으로도 어떤 역습(逆襲)으로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도록 공격해 올지 모른다.
이런 중에 우리나라의 정치 환경도 심각하다. 정말 개념 없는 윤석열 정부 좌충우돌의 행태로 인한 남북 충돌 위기의 고조, 미국과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결과 때문에 추락한 대한민국의 국격, 경제 몰락으로 인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의 심화, 검사 독재 체제 강화로 인한 언론탄압과 그로 인한 민주주의의 극심한 후퇴와 국론 분열상 등등이 지금의 우리를 바보처럼 살게 한다. 치솟는 물가와 금리 인상으로 인한 소상공인들의 아우성도 너무 심각하다.
그러면 우리에겐 이러한 부정적 환경과 질곡에서 벗어날 희망은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지금은 내년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에다 그 명운을 걸고 있는 느낌이다. 정부 여당은 총선을 이겨서 자기들의 입지를 강화하려 한다. 반면에 야당은 총선에서의 압승을 통하여 현 정권을 굴복시키고, 더 나아가 현 정부의 퇴진도 도모할 수 있기를 바라는 눈치들이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오늘 세상의 빛 되신 예수의 오심을 고대하는 대림절기를 맞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들과는 다른 차원의 대안은 없을까?
역사는 항상 그랬다.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아침을 기다리는 기다림이 뜨겁고 강했댜. 나라에 역경과 시련이 많았던 이스라엘은 그런 점에서 매우 그 기다림도 강렬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이번 대림절기를 맞이하면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기다림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 기다림에 하늘 아버지께서는 어떤 약속과 희망을 안겨 주셨는지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런 흐름의 내용들은 오늘부터 시작된 절기 속에서 주시는 세 본문 말씀의 내용들을 통하여 만날 수 있게 된다.
오늘은 이 절기 중에 첫 주일이다. 이 주일에는 이 절기가 지향하는 초점들을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성서의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이 고대(苦待)하던 메시아를 어떤 모습으로 받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대체로 보면, 인간들 편에서 먼저 계획된 것은 없다. 인간은 스스로의 상황을 헤쳐 나갈 능력이나 예지가 부족한 존재인 까닭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고단한 삶을 헤아리신 하늘 아버지께서 그들의 무거운 짐을 해결해 주시고자, 선제적이고 주도적으로 당신이 주실 해결책들을 담은 징표들을 알려 주셨다. 그런 표징들은 하나님이 직접 파송하신 종들이나, 성령으로 감동을 한 그의 종들을 통하여 세상에 전달되었다.
예언서 본문은 메시아가 오실 때에 일어난 놀라운 상황 변화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언급한다.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영광이 부여될 것임을 예고한다. 복음서 본문은 그 메시아의 탄생이 임박하면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하나님이 택한 인물 사가야 제사장 부부에게 일어날 놀라운 모습을 소개한다. 서신서 본문은 이미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난 분이심을 공지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 예수를 다시 오실 주로 믿음으로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살아가게 됨을 증언한다. 이런 성서가 제시한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여 우리도 다가올 미래를 잘 대비하여야 좋겠다.
1. 예언서 / 사60:15-22 / “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여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
본문은 바벨론에서의 귀환 후, 여전히 생존의 어려움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주민들을 향한 선지자 제3 이사야가 외친, 새 세계의 도래를 통해 시작될 은혜를 입게 될 여호와의 약속이다. 그 내용들은 본문 이외에도 곳곳에서 집중적으로 선포되고 있다(57:15, 58:12, 59:1,9-11. 61:1-4, 62:1 참조).
그들은 사실 귀환 후에도 가난과 곤경과 압제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자율적 회복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자신에게서 그러한 새 은혜와 축복을 받을만한 준비와 여건도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런 놀라운 회복과 대전환의 예언이 약속으로 전달된 근거는 오로지 하나님께서 몸소 자기 백성에게 오신다는 사실에 기인한다(60:2참조). 그렇다면, 예언자는 그들 예루살렘의 처지가 오실 분에 의하여 어떻게 대 전환하게 된다는 것인가?
1) 본문에서 선지자는 완전 대조법을 통하여, 메시아로 인하여 다가올 미래의 대변화와 대전환의 모습을 실감 나게 브리핑한다. 곧 ‘전에는 이러이러했으나(Although you have-), 이제는 저러저러하게 된다’(l will make you ---)라는 완전히 변화할 모습들을 알기 좋게 대조하며 설명한다(15-17절). 그러면서, 최종적으로는 ‘다시는 이렇게 될 것이다’(No longer will---)로 증언을 마친다(18-22절 참조).
2) 그러면 그들의 당시의 처지는 어느 정도였나? 당시의 예루살렘의 처지는 마치 쫓겨난 여인에 견줄(見州) 수 있을 정도였다(49:21, 50:1, 54:6참조). 그래서 버림을 당하고 미움을 당하여서 그에게로 다가가는 자가 없을 정도의 참담한 처지였다(15절). 그런 비운의 여인과 같은 존재가 한 순간에 대변신(變身)하게 된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자요 구속자요 전능자로 그에게 찾아오셨기 때문이다(16-17절). 그 바람에 세상의 무게 추(樞)가 여호와께서 계신 곳인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관심이 그곳 예루살렘으로 쏠리리라 했다.
3) 하나님께서 그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신다(15절). 이는 마치 어머니가 젖먹이를 먹이듯이, 그것도 이방 민족들과 임금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예루살렘을 먹이게 될 것이다(16절). 특히 이스라엘의 적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들게 되면, 그들은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여호와로 인하여 결국 자기들끼리 싸워 망하게 될 것이다. 그 일로 인하여 세상은 하나님이 자기 사람들의 참된 보호자요 승리자가 되심도 알게 될 것이다(17-18절, 49:26 참조).
4) ‘다시는—피조물의 빛이 아니라, 오직 창조주 여호와만이 영원한 빛과 영광이 되리라’고 강조되고, ‘오직 여호와가 그 백성의 영원한 빛이 되시고 슬픔의 날을 끝낼 것임’을 예고하는 19-20절의 내용은 예루살렘(믿는 자)을 위한 영광과 구원을 세계적이고 우주적(宇宙的)인 차원으로 확장하고, 장래의 영원한 나라의 질서에까지 이어질 것임을 보여준다(65:17 참조).
5) 그때의 백성들은 여호와가 심으신 가지와 피조물로서 다 의롭게 되어, 영원한 땅을 차지하게 되면서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낼 무리가 된다(24:23 참조). 이때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도 이길 능력을 부어 주셔서,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세상’을 이루게도 하시리라는 것이다(21-22절, 슥14:7, 계21:23 참조).
☞ 룻(Ruth) 이야기가 생각난다. 젊은 나이에 과부 된 모압 여인 룻은 유대인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다. 그래서 귀국 길에 오른 과부 시어머니의 ‘너의 나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아라’라는 간곡한 권고를 거부하고, 그 시어머니를 붙좇아서 이스라엘 공동체로 밀고 들어온다(1:14참조). ‘만일 내가 죽는 일 이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1:17)라면서, 여호와 신앙을 붙잡은 것이다.
그 결과는 정말 놀라웠다. 예기치 못한 극한 놀라운 일들이 그에게 결과로 왔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에서 그녀는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를 만나서 계대혼인법에 따라 그의 아내가 되었고, 거기에서 태어난 자식 오벳과 손자인 이새, 그리고 증손자인 다윗(왕)의 조상이 된 것이다(룻3:17-). 아니, 그 후 오랜 세월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중의 하나도 된 것이다! 자기에게 다가오신 메시아를 붙좇은 자의 축복이 어디에까지 이르는 지를 놀랍게 보여주었다.
2. 복음서 / 눅 1:5-25 / “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
메시아 예수의 탄생이 임박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영접할 환경을 사전에 조성하기 시작하셨다. 우선은 요한을 선발대원으로 선정하셔서 당신의 아들에 앞서 세상에 보내셨다. 이는 그가 보낼 아들 예수의 모든 하늘나라 말씀과 행동이 선발대 요한의 헌신으로 연착륙하듯이 만민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도록 하게 하시려는 뜻 때문이었다. 그 주요 내용들은 다음과 같았다.
1) 하나님이 보내실 선발 대원을 아들로 맞이하도록 선정(選定)하신 가계는 제사장(아비야 반열) 사가랴와 엘리사벳(아론의 자손) 부부였다(5절). 이들 부부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고,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던 자들이었다(6절). 하지만 늙도록 자식이 없었다(7절).
2) 그런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천사(天使), 가브리엘을 만나서 아기 탄생의 통보를 받게 된 곳은 예루살렘 성전의 분향소에서 전체 제사장을 대표하여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던 현장에서였다(19절). 그 직무 수행은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뽑기에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제단 향단(香壇)의 우편에 찾아온 천사를 사가랴가 만나게 되었다(8-11절). 어떤 일이 있었나?
3) 사가랴는 놀라고 무서워했다. 그러자 천사가 먼저 말했다.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12-13절). 그러면서 아들로 올 요한의 인물됨과 그가 행할 일들도 압축해서 전달하였다.
-➀ 부모와 모두에게 기쁨을 줄 자가 된다 – 그는 실로 오랜 기도의 응답이었다(13-14절).
➁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며, 모태로부터 성령 충만함을 받는다(15).
➂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한다(16절).
➃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서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또 주 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한다(17절).
☞ 이 대목에서 천사는 이스라엘의 메시아 기대치인 엘리야를 거론하는데, 이는 오실 분이 그의 수준을 넘어서실 분임을 비교로 일깨워 준 부분이어서, 매우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4) 사가랴는 정작 자신의 고령(高齡) 문제로 그 천사의 통보에 의아해하는데, 그 바람에 그는 요한의 탄생할 때까지 벙어리로 사는 징벌이자 징표를 받았다(20-22절). 그 후에 아내는 잉태하게 되어 무려 5개월 동안 세상의 시선을 피하여 숨어 살기도 했고, 결국은 주께서 그들의 무자(無子)의 부끄러움을 씻어주시는 은혜도 받게 된다(24-25절). 말씀이 성취를 목격하였다.
3. 서신서 / 갈 3:15-22 / “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의 약속(約束)된 자손으로 오신 분임을 강조한다. 시간상으로는 2,000여 년 전에 받았었던 약속의 성취(成就)로서 오신 분이 메시아 예수이시다고 증언한 것이다(16, 18절). 바울이 이런 내용을 갈라디아 교회에게 소개하고 강조하는 연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약속의 무게와 함께, 그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이 시공간(視空間)을 초월하여 여전함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바울은 약속의 시간대 한복판에 뛰어들어선 모세의 율법(律法)에 대한 의미도 설명한다(17-21절). 그 율법은 약속을 주신 하나님과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 그 약속의 성취의 날을 고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약속을 처음 받았던 유대인들의 연약함을 돕기 위하여 디딤돌이었던 것으로 보면서, 그러기에 율법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 자체를 변질시키거나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이 못됨을 분명히 규정하였다.
이는 지난 시간에 밝혔던 바대로, 시행령인 세칙이 모법인 헌법이나 상위법을 훼손할 수 없음과 같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바울의 증언은 율법의 유한성과 한계를 인정하라는 요구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에게서 주어진 바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율법의 다리를 뛰어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된 것이기에, 이제는 우리의 전적인 관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또 다른 오심(재림-마라나타)의 약속을 기다림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한 피난처인 예수를 향한 믿음 위에 있어야 함을 말한다(22절).
O 대림절이 시작되었다. 2023년의 대림절은 모든 면에서 주님의 오심을 더욱 생각하게 한다. 주님의 심판을 무시하는 기류들이 온 세상에 가득하다. 흔들리면 안 된다. 공존 공영 공생의 평화정신이 더욱 절박하다. 그의 나라를 이루려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의 각성도 요긴하다. 깨어 살아야 한다. 다시 오실 주님은 심판의 주이시다. 여러 가지로 전조들이 무성하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할 것인지는 순전히 우리들의 몫이다. 영생이냐 심판이냐? 오직 여호와께 붙좇아 살자.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처럼 신실한 믿음의 가계를 이루자. 주님의 약속으로 주신 재림의 약속을 믿으면서, 그날에 합당한 하나님 자녀의 삶을 취하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