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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12)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추수감사절

관리자 2023-11-14 (화) 22:01 5개월전 237  

본문) 신11: 8-17, 막 4:1-9, 고후 9:6-15


창조절 열두 번째 주일이다. 길가에 낙엽이 수북이 쌓이는 것을 보면, 한 해도 벌써 저물어 갔음을 직감하게 된다. 농사꾼들의 가을걷이도 이미 끝난 상태로 보인다. 한 해의 수고의 열매들을 거두는 일이 농부들에게 주는 기쁨과 보람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때마침 대학교 입학을 위한 수능시험도 금주에 실시되는데(16일), 이 일은 지난 오랜 세월 대학 입학을 위해 노심초사 공부해 온 수험생들에게는 또 다른 차원의 인생의 첫 수확의 기회가 될 것이다. 


때마침 상당수의 한국교회는 이번 11월의 셋째 주일을 추수(秋收)감사주일로도 지킨다. 한 해의 농사에 대한 수확의 기쁨을 되새기며,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주일이다. 교회에는 매우 큰 절기이다. 물론 요즈음의 도시교회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때를 선정해서, 자체의 추수절로 지키기도 한다. 미국 청교도들이 지킨 셋째 주의 전통을 좇지 아니하고, 자체 교회의 형편을 우선해서 취한 조치이다. 당연히 합리적인 선택이며, 신앙적으로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내용의 감사를 드리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감사를 무엇으로 드리느냐는 점이다. 이 점에서 오늘의 세 본문 말씀에 담긴 내용을 보다 깊이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오늘 우리가 받게 된 본문들에서 정리할 수 있는 부분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제적(先制的)으로 깔아주신 복(福)을 먼저 살피는 일이다. 부모, 가정, 교회, 국가, 이웃, 일터, 시간, 재능 등의 상황을 확인하는 일이다. 왜 이 부분이 중요한가? 이 현장의 소중함을 먼저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그다음의 감사를 아예 접하지 못하게 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대부분의 우리는 이미 밑바닥에 깔린 영역이나 무대나 여건에 대하여서는 아주 당연시하면서, 그것에 대한 감사도 아예 무시하고 지내기 때문이다.


간혹 ‘왜 나만 감사해야 하느냐’라고 반문하거나 ‘뭐 그런 것까지도 감사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되묻는 영역이 이 부분이다. 하지만 진정한 감사의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거나 또 감사함으로써 하나님이 안겨주실 더 나은 풍요로운 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는 사람은, 바로 이 부분에서부터 감사가 시작(始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어진 여건이나 환경 그 어느 것도, 본래의 내 것은 하나도 없었고 모두가 은혜와 선물로 내게 거저 주어진 선물들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런 선하고 좋은 것을 창조주로부터 받은 우리는 어떤 대응과 행동을 취하여야 하는가를 찾는 일이다. 정상적인 감사라면 당연히 그다음 행동을 유발한다. 만일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났는데도, 생각만 하고 아무런 조치도 없고 끝난다면 그의 감사는 결코 참된 감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뻔뻔한 인간이 될 뿐이어서, 그다음의 생산적인 단계로 발전하지 못한다. 그런 자는 마치 죽은 씨앗을 땅에 뿌리게 된 농부와 다름없어서, 미래를 기대할 것이 없게 된다. 


구약 신명기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조상들에게 오래전부터 ‘주시마’라고 약속하셨던 땅인 가나안을 장황하게 소개한 내용이다. 그들은 지금 그 땅을 받기 직전인데, 주의 종 모세는 그 땅이 어떤 땅이며 이전에 살아온 척박한 땅 애굽과는 아주 다른 곳으로서 매우 기름진 땅임을 집요하게 소개한다(9-12절 참조). 설명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고 벅차게 될 너무도 황홀한 지역이다. 그야말로 이스라엘은 아무럴 수고도 없이 이제 곧 그 땅을 접수하여 풍요의 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놀랍고 큰 축복인가! 


그렇다면 그런 복을 받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저 받은 은혜와 사랑을 그저 누리기만 하면 되는가? 어떤 대응으로 그 복을 주실 여호와를 섬겨야 하는가? 그 점에서 모세는 매우 준엄한 행동 지침(指針)을 전한다(8, 13-15절). 그와 동시에 부여된 행동 지침을 무시하고 범죄하면, 그들에게 어떤 대가가 부여될 것인지에 관하여서도 분명하게 전한다(16-17절). 


복음서에 나타난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타난 메시지도 그렇다. 이 비유는 예수께서 주신 것인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씨뿌리는 자들을 통해서 이룩된다. 이 씨는 무슨 씨일까? 생명을 살리는 곡식을 공급할 씨를 상정한 것이기에, 이 씨는 곧 생명을 구원해 내는 말씀이다. 그 씨를 받게 될 밭은 그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여기에서 씨는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뿌려진다. 예배에서 생명의 말씀을 모두가 듣기와 같다. 축복의 현장이다. 


하지만 그 씨를 받는 땅의 형태는 각가지이다. 여기에서는 네 가지 경우로 밝혀주는데, 이는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다양한 경우들을 유형별로 설명한 것이다. 실패한 경우들도 있고, 결실한 예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앞의 세 가지 경우처럼 결실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하지만 복음의 씨는 결국 많은 장애와 난관을 극복하는 자들을 통하여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 이는 말씀과 복음에 응답하는 옥토 인생을 통해서 그렇게 됨을 보여 준다.


서신서에서는 바울 사도가 아가야 지방에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주어진 복된 기회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신에게 오게 될 복을 받아 누릴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단순히 헌금 생활을 독려하고 고취하려는 말씀이 아니다. 모든 지역교회의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흉년과 박해 등의 각종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 대하여 구호헌금으로 돕는 일은, 또 다른 축복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비유될 수 있는 것임을 말하여 준 것이다. 이제 본문을 통하여 우리의 감사 생활의 디딤돌들을 찾고, 굳건히 다지는 기회를 얻도록 하자. 


1. 구약 / 신 11:8-17 / “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 


모세가 전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안겨주신 축복의 땅은 지금까지 자기 조상들이 살아왔던 애굽의 척박한 땅과는 아주 천양지차(天壤之差)를 보이는 풍요롭고 기름진 땅이었다. 자기 백성들에게 좋은 것, 최상의 것을 안겨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소개한 것이다. 무엇인가?  


1) 그 땅은 여호와께서 그들 조상들(족장들)에게 주시리라고 맹세하여 안겨주신 것으로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9절, 출3:8). 이 표현은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유목민의 입장에서 본 땅에서 나온 것이다. 꿀은 포도즙을 뜻하였고, 주변에 수출까지 한 자원이었다(창43:11,겔27:17참조). 당시의 그 땅은 가나안 7족속이 살아왔던 땅이기도 했다. 하나님은 이제 때가 되면서 그 땅을 그들 족속들에게서 빼앗아 출애굽한 유대인들에게 넘겨주시는 일을 시작하신 것이다. 신명기서는 그 이유와 사정과 과정을 폭넓게 소개해준다. 


2) 어떤 점에서 애굽의 것과 다른가(10-12절)? 애굽의 땅은 대부분 평지요 척박한 지역들이어서, 농사하게 되면 그곳에 파종한 후에는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게 하는 등의 인위적(人爲的)인 고단한 농사였지만, 이제 그들이 들어가 차지할 땅 가나안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풍부하게 흡수한 땅으로서, 끊임없이 물대기가 가능하므로서 편하게 농사짓는 일이 가능한 곳이었다. 생존에 더할 나위 없이 자연적 혜택이 부여된 곳이다. 


마치 산과 골짜기가 온 천지에 가득하여, 그곳에서 흐르는 물들의 혜택을 사시사철 보고 사는 우리나라의 실정과 유사하다. 우리나라가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축복을 엄청나게 받아 살고 있음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는 이를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모세는 이렇게까지 증언한다(12절)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이스라엘은 이제 그 세계의 맛을 보게 될 순간이었다.

 

3) 따라서 그곳에서의 생활은 계절에 따라 그 땅에 적당하게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통하여 풍성하게 수확(收穫)하게 되는 풍요로운 삶이 시작될 것임을 예고한다(9, 14-15절).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게 되고, 또 가축을 위하여서도 들에 풀도 넉넉하여 모두가 배부르게 살 것이다. 이런 삶의 대변화는 자신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져 안겨주신 선물이다. 이스라엘은 항상 이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견지해야만 한다. 은혜를 잊은 배은망덕한 족속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4) 행동 지침은 간단명료(簡單明瞭)하다.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과 명령들을 청종(聽從)하고 지켜 행하며 사는 것이다(8, 13절). 이는 억지로 끌려서가 아니라, 그런 은혜를 베푸신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는 자세로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강성할 것이요 형통의 복을 받아 누릴 것이며 먹고 배부를 것이다. 이에 어린이처럼 순종하면 된다. 


5) 그런데도 이것마저도 거역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살면 어떻게 되는가? 그는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마귀에 미혹(迷惑)되면서, 우상(偶像)을 섬기게 되고 그것에게 무릎을 꿇어 살게 된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하늘 문을 닫으신다. 제 절의 은혜가 막히게 되고, 땅의 당연한 소산도 거두지 못하면서, 결국은 그 받은 땅에서 속히 망하게 된다(16-17절). 결국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영혼 젖줄로 삼아서, 거기에서 나오는 생명의 젖을 제대로 먹고 살아야 함을 말한다. 그것이 막히면 그는 결국 죽게 되기 때문이다. 조심하자. 조금 여건이 좋아졌다고 말씀에 청종하는 삶이 게을러지거나 소극적으로 되면, 큰일이다. 그 점에서 이제 우리는 복음서의 교훈을 다시 경청하자. 


2. 복음서 / 막 4:1-9 /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으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


본문은 자기 마음에 떨어진 하나님의 말씀(씨앗)도 받는 자의 내적 상태에 따라서 결실하기에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음을 밝힌 비유의 말씀이다. 팔레스틴의 농법은 먼저 땅을 고른 후 그 속에 씨를 뿌리는 우리의 농법과는 달리, 그냥 맨땅에다가 먼저 씨부터 뿌리고서 그다음에 갈아엎어서 묻는 방법을 취한다. 그래서 씨는 길바닥에도 떨어지고, 가시덤불에도 떨어지며, 자갈밭에도 떨어지기도 하고, 옥토(沃土)에도 떨어진다. 이런 상태는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자기 가슴에 떨어져 들어온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차이가 다 다르고, 그로 인한 결과도 아주 다름을 지적한다. 


앞의 세 경우는 모두가 내적 장애물이 있어서, 생명이나 하나님 나라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사례이다. 곧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완고한 방해 때문이고(4절), 말씀을 받기는 하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조그만 환란이나 박해가 발생하면 그냥 넘어지기 때문이며(5절), 말씀을 듣기는 듣는 데도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나 인간적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버리기 때문에(7절) 끝내 결실하지 못하고 배제된다(딤전6:9-10, 마6:19-34 참조). 


하지만 그런 거친 유혹과 환경에도 끝내 자신을 지키며 결실해 내는 옥토 인생들도 있다(8절). 하나의 씨알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자라게 되면서, 30개, 60개, 100개의 낟알이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을 기쁘게 하고, 주변의 생명들을 살리는 생명체가 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이해력으로 또 다른 숱한 생명체들을 살려내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몸과 마음 자세가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말씀 듣기에 부실한 이들, 말씀 배우기에 소홀한 이들, 들은 말씀에 대한 묵상이 전혀 없는 이들, 나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인지에 관심 없는 이들은 회개하고 변화돼야만 한다. 그들은 말씀을 통하여 은혜와 축복을 안겨주시려는 창조주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서신서 / 고후 9:6-15 / ”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


본문은 예루살렘 모교회가 흉년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빠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던 남부의 아가야의 고린도교회가 구호헌금을 시작하자, 그 소식을 한발 늦게 들은 북부 마게도니야 교회들이 서둘러 구호헌금을 모았다. 그런데 정작 남부와 북부 두 곳의 구호금을 함께 모아서 예루살렘교회에 전하려고 하자, 고린도교회는 여지껏 모금을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사도 바울이 헌금을 서둘러 주도록 고린도교회에 독려(督勵) 서신을 보낸 것이다(고후8장 참조). 


여기에서 바울은 이 돕는 헌금이 씨뿌림의 의미를 갖는 일임을 일깨우면서, 많이 심도록 권고한다(6절). 이 일은 성도의 부족함을 채우는 봉사의 직무임과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법임도 일깨웠다(12절). 동시에 이 직무에 충실히 임하면, 자신들이 주의 복음을 충실히 믿고 복종하며 약한 자들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존재임을 입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13절). 그러기에 성도들은 이 구호헌금을 할 때는, 정한 마음으로 하고 인색함이나 억지로가 아니라 너그럽게 임하라고 권하였다(11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7절). 


o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리에게 모든 삶의 여건과 자원을 풍성히 공급하신 하나님은 주신 것만으로 끝내지 않으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받은 은혜와 거두어들인 열매들로 또 다른 선하고 의로운 열매를 맺고 살도록 인도하시고, 기회를 부여하신다(8-10절, 창12:1-3참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기회를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분별하고 외면하지 아니하고 꼭 붙잡아서 순복(順服)하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적 수고와 물질적 헌신이 요청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섬김을 복으로 인식하고,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은사가 자신에 있음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대비하며 살도록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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