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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6)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관리자 2023-10-03 (화) 23:56 6개월전 289  

본문) 신 32:7~14, 막 8:1-9, 행 14:8-18 


창조절 여섯째 주일이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날씨는 쳥명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점점 전국의 산야는 가을 단풍이 만연해지면서 여행자의 발걸음을 한없이 바쁘게 한다. 이럴 때, 창조주의 솜씨와 그 능력을 보다 깊이 바라보고 체득하면서,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침 중국의 항저우에서는 아시안 올림픽이 진행 중이다. 모든 분야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우수성을 맘껏 드러내는 듯하여 반갑기 그지없다. 


오늘의 세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일깨우시려는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사람을 어떻게 상대하시는가, 특히 그중에서 당신의 백성이요 분깃이라고 구별해서 말씀하시는 백성을 어떻게 찾아내시고, 또 어떻게 상대하시는가를 집중해서 전하고 계신다. 그것도 변천사(變遷史)가 있다. 모세의 시대가 있었고, 예수의 시대도 있으며, 사도의 시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분하는 데에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의 핏줄 후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택한 백성이었다. 그들에게 당신을 지칭하실 때는 언제나,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시며 야곱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였다. 게다가 그들이 모세를 통하여 받았던 율법과 십계명과 법궤 아래 있으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다는 선민의식이 더욱 공고해졌다. 그들의 외형(外形) 중심의 선민의식은 점점 배타성을 띠면서, 율법과 할례가 없는 이방인들과 비유대인들은 개나 돼지와 같은 저급 인간들로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한없이 교만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혈통 중심의 백성관은 그들의 끊임없는 배신과 탈선과 어깃장을 놓는 위선적 행위가 계속되면서, 결국은 하나님의 시선을 온 세계를 향하게 하였다. 이스라엘에게서 온 세계 만방으로 시선을 확대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래서 온 세계에 널리 편만해 있는 익명(?)의 그리스도인, 곧 흩어져 산재해 있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을 부르고 찾는 작업을 본격화하셨다. 그 첫 하늘 선교사가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세상에 파송되어 오신 메시아이자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오셔서 그는 당신의 하나님 백성 찾아내고 세우시는 일을 본격화하기 위하여, 당신과 함께 일할 제자들을 불러 세우셨다. 그 제자 12명은 예수님의 눈에는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로서 하늘 아버지가 당신에게 보내주신 자들이었다(요17:6-10절 참조).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예수와의 만남에서 모두 그의 부르심에 자기들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즉각 응답하며 따라나선 자들이었다(막1:17-18 참조). 그러면서 그들은 스승 예수에게서 권능을 전달받아서,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찾아내고 세우는 일을 이어간 것이다. 


과정과 방법이야 어쨌든, 확실한 것은 일단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그들은 그때부터 하나님의 전적인 돌봄과 보호를 받게 된다. 그것도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물론 비 백성들로 모두 창조주의 돌봄 속에서 살지만, 그것은 보편적 돌봄일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분깃으로 선택된 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돌봄을 받는다. 이는 마치 부모가 자기 자식 된 아이들에게 쏟아붓듯 하는 것이다. 다른 집 아이와는 다르게 자기 백성에게 베풀어 주신다. 


그런 점에서 본문 구약의 신명기에서는 하나님 백성들의 시작과 기원에 관한 증언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께서 어떻게, 얼마나 사랑하고 돌보셨는지를 전한다. 복음서에서는 세상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찾아오신 예수께서 그를 알아보고 찾아온 무리들을 얼마나 뜨겁게 돌보고 사랑하시는 지를 전한다. 거기에는 이미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혼재되어 있는 상태이다. 복음서에서는 사도들에 의해서 찾아진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의 모델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그 새 백성의 모습은 어떻게 드러났는지도 사례를 통해서 밝혀준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찾아내서 구원하려고 하심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먼저 부름을 받은 자들을 제자로, 선교사로, 전도인으로 세우셔서 그들에게 미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나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려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선교는 계속되어야 하고, 전도도 지속해야 한다. 


1. 구약 / 신 32:7-14 / “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


본문은 모세가 그의 말년(末年)에 이스라엘의 총회에 보낸 노래의 담긴 내용의 일부이다. 여기에서 모세는 전체 이스라엘이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에 대하여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내용을 언급한다. 이 말씀을 청종할 대상은 출애굽 제2-3세대이다. 그들은 출애굽의 직접적인 경험이 없고, 광야 세대로서 이곳 모압 땅에까지 온 무리이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가장 요긴한 점은 그들이 출애굽한 이래 이곳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 여호와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그의 백성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임하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모세가 그의 후 세대에게 주입하려는 일은 그들의 강한 역사의식(歷史意識)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이스라엘 백성을 지금까지 어떻게 상대해 오셨고, 하나님이 자기들을 어떤 민족이요 어떤 대상으로 간주하고 계신 지를 상세히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 일이었다. 이 일은 자기들은 미경험자라서 잘 모르기에, 명백한 경험자들이었던 그들의 조상들에게 물어서라도 알아두라고 촉구하였다. 이 일은 그들의 미래에 관련된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은 자기들에게 어떤 분이시고, 자기들은 하나님께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려고 했다. 할아버지가 아는 하나님, 아버지도 아는 그 하나님을 손자 된 그들도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하나님이 되셔야만 한다고 역설하였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 3대가 전민족적으로 공고해져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분깃으로 영원하기를 소망한 것이다. 아울러, 그렇게 맺어진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남다른 돌 보심은 진정 얼마나 놀라웠는지도 전해주었다. 


1) 모세는 옛날과 역대(歷代)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희망이 없음을 강조한다(7절). 그러기에 옛날과 역대를 기억하고 생각하라고 요구한다. 이는 얼마 전 ‘100년 전의 불유쾌한 왜정 치하의 한 일간의 역사를 왜 지금까지 그렇게 기억하면서 미래로 나아갈 우리의 발목을 잡게하느냐’라고 우리 백성들에게 오히려 질책했던 현 대통령 윤석열의 세계관과는 천지차이다. 심지어 모세는 그 역사를 조상과 어른들에게 자세히 물어서 알도록 하라고 지시한다. 그래서 바로 역사를 기억하는 민족이 되라고 한다. 곧 역사를 무시하는 대통령과 같아서는 안 된다. 


2) 창조주 여호와가 세계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시고 인종으로 나누실 때(행17:26 참조), 하나님께서 그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배려하셨는지도 기억하라고 요구했다. 여기서 모세는 여호와가 자기 백성이자 야곱 자손인 이스라엘을 당신의 분깃(몫)으로 택하셨음을 밝힌다(8-9절). 이는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당신의 개인 소유로 삼으셨음을 말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보편적 관리 대상이 아닌, 특별관리 대상이 된 존재들임을 일깨운 것이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게 되었고, 몸소 그들 가운데 개입하셔서 보호하신 것이다. 


3) 우리도 사적 소유물에는 외부의 그 누구의 개입도 엄금한다. 그만큼 애지중지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어떻게 그들의 삶에 개입하시고 돌보시며 인도하셨는가? 10-14절의 말씀이 하나님의 돌보신 행위를 전하는 내용이다. 


여호와는 그를 황무지에서, 그리고 짐승이 우글거리는 광야에서 만나셔서, 호위와 보호로 지키셨다(10절).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모습은 마치 독수리가 자기 새끼 위에서 날개를 펴서 너풀거리며 받으며 그 날개 위에 업는 것같이 하셨다(11절). 그때는 주변에 오직 여호와만 홀로 계셨다(12절).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셨고(13절), 먹거리로는 밭의 소산과 반석의 꿀과 기름을 빨게 하시며, 우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의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고,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도 하셨다(13-14절 참조). 


2. 복음서 / 막 8:1-9 / “ 큰 무리가 이미 사흘이나 나와 함께 있어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리라 ”


본문은 예수님의 놀라운 급식 사건을 전한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놀랍게도 두 번의 급식사건이 있다. 이전의 6:35-44의 오병이어 사건과 본문의 칠병이어 사건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새로 창조된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성만찬 현실로부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양을 공급받아 살아간다는 점이다. 다만 차이로 보이는 부분은 이 본문의 급식 사건이 이방인의 땅에서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7:24,31절, 8:2-4절 참조). 이는 이방인들도 예수와 함께하는 식탁 공동체에 받아들여졌다고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원근 각지에서 예수가 계신 광야에까지 찾아와서(4절 참조) 예수님의 말씀 듣는 일에 심취(心醉)하여, 무려 사흘이 지나도록 그 현장을 떠나지 않고 말씀의 잔치에 참여한 무리들을 지극정성의 마음에 품으시고 환대하시는 모습에 주목해야 한다. 이 모습은 예수께서 그렇게 당신에게 모인 자들을 이미 자신의 백성으로 받으셨음을 보여주신 것이다(2-3절). 이는 마치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분깃으로 삼으신 여호와 모습과 같다! 

그 대상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차별이 없다. 예수와 말씀을 믿고 나온 자들이면 자격자다. 


1) 예수님은 당신에게 나와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이 무려 사흘이나 머무는 무리가 걱정되셨다. ‘내가 불쌍히 여기노라’고 하셨다. 먹을 것 때문이었다(1-2절). 그들을 이제 돌아가게 해야 하겠는데, 그것도 걱정이 되셨다. 그들 중에는 멀리서 온 자들도 있어서, 가는 길에 기진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3절). 주님은 그들을 ‘이제 집회가 끝났으니,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거나 ‘식사는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각자도생)라고 무책임한 말씀을 하실 수 없었다. 예수님에게 그들은 이미 당신의 백성이요 가족이란 의식이 자리하였기에 더욱 그랬다. 


2) 결국 예수님의 마음은 ‘이들을 그냥 보낼 수 없다. 어떻게든 먹여서 보내자’는 입장이었다. 그러자 제자들이 물었다. -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하리이까’(4절). 예수께서 되물었다. -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 그래서 취합한 것이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였다(5, 7절). 자기들이 가진 마지막 것을 모아서 주의 손에 드린 것들이다. 


3) 주님의 시간, 곧 하늘의 특별한 시간이 펼쳐졌다. 광야에서의 칠병이어의 풍성한 식사가 펼쳐진 것이다. 주께서 그것들을 받아서 축사(祝辭)하시고, 그것들을 떼어 제자들을 통하여 전체 무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 무리는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나 거두게 되었다. 그곳의 사람은 약 4,000명이었다. 남녀노소, 유대인-이방인 차별 없이 받게 된 거룩한 식사였다(6, 7-8절 참조). 실로 잊을 수 없이 받는 신비한 만찬이었다. 오직 구별된 하늘 백성들이 어떻게 배부르게 살 수 있는지를 가슴과 영혼으로 배우고 익히게 된 식사였다. 


3. 서신서 / 행 14:8-18 / “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


본문은 지구촌 어딘가에서 숨겨져 살아온 어느 한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사도(성령)의 눈에 띄어서, 나면서 앉은뱅이의 신세에서 벗어나 두 발로 걷게 되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게 되었는지를 전한 내용이다. 이 일은 결코 특정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온 세계에 흩어져 있고 산재 되어 있는 익명의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한순간에 하늘 아버지의 눈에 보여서, 그의 능력과 축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게 될 수 있는지를 알리는 교과서적 이야기이다. 


1)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의 개방된 광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데, 거기에는 나면서 걸어본 적이 없는 앉은뱅이 한 사람이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에 눈에 그가 듣는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실로 구원받을 믿음이었다(8-9절). 그러자 성령에 감동한 전도자 바울이 큰 소리로 그에게 명령했다 -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그 순간 그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되었다(10절). 이는 실로 행3:1-8장에서 본 베드로와 요한의 앉은뱅이를 예루살렘 성전 입구에서 일으켰던 바로 그 놀라운 역사의 재현이었다.  


2) 그 기적은 그곳 현장을 목격했던 무리들을 소동하게 했다. 그것도 자기들이 믿고 있던 신들인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강림하여 일어난 사건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두 사도들에게 제사장이 앞장서 찾아와, 소와 제물을 드리며 무리와 함께 제사하려고까지 했다(10-14절). 이런 촌극은 두 사도들의 강력 저지로 무산되긴 했지만, 바울은 그 기회에 그곳 무리들이 진짜 참신인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설교하였다(14-18절). 


3) 여기에서 바울이 전한 내용의 핵심은 이것이다. 천지를 지으신 살아계신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 보편적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하늘의 비와 결실의 풍요를 안겨 주셔서 생존의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보다 특별한 은혜를 주시는 자들이 있다. 저 앉은뱅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응답하며 나아오는 자들이 그 대상이다. 그와 같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면, 그때부터는 그 누구나 하나님의 직접적이고도 놀라운 배려와 은혜를 받게 된다. 그런 은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에, 지금 바로 주께 돌아오라고 전한 것이다. 


o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어떤 과정으로 이어져 왔는지를 확인했다. 성별 된 혈통에서 시작했지만, 예수님에게 와서는 예수와 그의 말씀을 영접하면 누구나 백성이 되었다. 사도 시대에도 성령과 주의 말씀인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응답하면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특별한 돌봄과 은혜를 입게 된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이제 우리도 주변에 익명으로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내고자 전도하고 선교하는 사역에 함께하며 살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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