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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2)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교회연합주일

관리자 2023-09-05 (화) 22:36 7개월전 292  

본문) 창 1:26~31, 눅 12:4-7, 요일 3:1-10


오늘은 창조절 둘째 주일이다. 조석으로 변화된 기온을 확인하게 된다. 그토록 사나운 더위도 밀려온 변화의 물결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게 창조절에 다시 만난 자연의 소박한 모습이다. 


다만 더욱 사납게 변한 것이 있다. 대통령의 반공 이념이 온 나라를 갈수록 힘겹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군을 이끌고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의 대승을 이끈 바 있었던 고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그가 한 때 그곳에서 공산주의에 가입한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 육군사관학교의 교정에서 퇴출하는 조처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일제의 일원으로 독립군을 제거하는 일에 앞장섰던 고 백선엽 장군의 흉상은 우대하려고 한다는 말도 들린다. 


결국 윤석열 정권의 친일 중심의 국정 운명이 반공 이념을 끌어들이면서, 일제에 항거한 독립군 흔적은 제거하고, 일제의 충성한 세력은 우대하는 모순된 행동을 취하고 있다. 참 어리석다. 그들의 모순된 역사 왜곡 정책이 과연 성공할까? 우리 국민들을 향한 항일 역사 지우기가 사라질까? 게다가 후쿠시마 핵폐기물 버리기로 인한 전 국민적 분노와 저항도 이제 시작한 마당에, 어쩌자고 저토록 친일 맹종적인 태도를 그토록 고집하고 있는지, 정말 큰 수수께끼이다. 


그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가 한 나라의 국정을 이끌면서 그가 다른 그 누구와도 대화하는 일은 보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입장 관철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게는 야당을 비롯한 모든 비판 세력이 모두 반국가세력이다. 마치 옛날의 왕조시대를 방불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재국가의 늪 속에 빠져들었다. 그 주변엔 친일그룹인 뉴라이트 세력, 극보수적 반공세력, 검사왕국지지 세력만 뭉쳐있다. 오직 대통령 권한으로 마음껏 조정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때 우리 한국교회는 오늘을 교회연합(聯合)주일로 맞이한다. 서로 다른 교회들(교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자는 숭고한 뜻을 가지고, 모든 교회들이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지 말고, 서로 연합하고 일치하여 보자는 다짐을 하는 주일이다. 연합의 정신은 서로 자기 입장만 고집하지 말고, 나와는 다른 상대의 입장에도 경청하면서 서로의 뜻을 모아 함께 공유하고 통용할 수 있는 공동선을 이루자는 데에 있다. 


피조물들은 조물주와는 다르다. 피조물 그 누구도 좋고 온전한 모든 것을 홀로 독점하거나 소유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필요한 것은 이웃에게서 찾기도 하고 빌리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눔을 통해서 서로 보충해야만 한다. 그게 바로 연합정신이요 요즈음 말하는 에큐메니칼 정신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이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서로가 필요한 것이나 가진 것을 나누고 공유하면서, 더불어 풍요로움을 이루는 일이다. 


이런 아름다운 마음과 행위는 우리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 처음부터 취하신 모습이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으로서, 당신만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없이 모든 것을 자족(自足)할 분이셨지만, 그러나 만물과 그 안에 인간과 생물들을 지으실 계획을 갖게 되시면서는 주님은 당신의 존재를 홀로 족이 아니라 협력형(協力型) 존재로 세우셨다. 그래서 조물주는 태초부터 당신의 존재를 함께 일하시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 그 일 때문에, 말씀이신 로고스와 지혜 되신 영을 낳고 세우셨다. 삼위일체 진용을 구축하신 것이다. 창1장은 창조주 하나님의 그 연합된 모습의 첫 무대이다. 물론 그들을 도울 천군 천사 진용도 구축하셨다(계시록). 


그러기에 모든 생명체들은 물론, 특히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은 인간들은 조물주의 이러한 협력형 존재성에 눈과 마음이 뜨고 열려야만 한다. ‘우리’에 눈이 떠야 하고, ‘나’만 보고 살아가려면 안된다. 독재형이나 독점형으로 살아가려면, 그는 아주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은 나라 경영에도 필수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공동체도 이 공존 공영 공생의 연합체 정신을 구축하고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어떤가!


오늘 창조절 둘째 주일의 세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인간 곧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形狀)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며, 그러기에 어떤 복이 부여되어 있는지를 전해준다(창1:26-28). 사도 요한은 그 점을 이렇게 풀이한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씨를 받은 존재이다(요일3:9). 특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은 조물주 하나님을 닮은 성품을 받은 존재임을 밝혀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내 친구’라고까지 말씀하신다(눅12:4). 당신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제자 된 자들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 사랑 속에 사는 우리임을 기억하자. 


1. 구약 / 창 1:26-31 / ”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 다스리라 하시니라 “


본문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던 중, 마지막 단계에서 인간을 창조하시는 대목을 전하는 내용이다. 왜 인간은 맨 나중에 창조된 것일까? 이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시켜 놓으신 후, 맨 나중에 그것을 주관할 인간들을 등장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관리하고 다스리며 번성하게 하고 또 주관하게 하셨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창주주께서 인간을 상대하시는 모습이다. 그들이 세상 무대에 등장하게 되는 일은 창조주 하나님이 직접 맡으시되, 그 후로부터는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관리나 주관은 그렇게 제작된 인간들에게 위임하고 위탁하시는 방법을 취하신 일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인간을 당신의 파트너요 동반자요 대리자와 같은 소중한 존재로 계획하셨음을 말한다. 이는 사람을 처음부터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든다는 데에서 보다 자세히 나타났다. 이제 그 내용을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 하나님의 사람 창조는 본질에서부터 특별하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당신들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자 하셨기 때문이다(26=27절). 이는 무엇을 말하나? 당신의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기능은 인간의 사지백체(四肢百體)란 육체란 그릇에 다 담을 수 있게 하시고, 당신의 마음과 영감 같은 영적 기능은 인간의 내면세계인 마음과 영혼 속에 다 담을 수 있게 만드셨다. 그래서 사람을 처음부터 당신과 닮은 존재요 소통이 가능한 존재가 되게 하셨다. 물론 한계성을 담긴 하나, 신적 접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간은 독보적 창조물이 되었다. 


2) 여기에서의 창조주는 ‘우리의 형상이나 모양’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여기에서의 ‘우리’란 누굴까? 창조주의 창조과정에 함께 동역하신 성자 로고스와 성령이라고 본다. 한 분 하나님(the Godhead)안에 계신 복수의 삼위(三位)를 말씀하신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동일성(Equality)과 개별적 특성(Unique)을 함께 갖고 계신데, 그 점에서도 인간들이 그분들의 닮음을 입었다고 본다(요5:19,8:28-29,54). 하늘의 천사그룹을 포함시키는 일은 적합하지 않다. 


3) 그러면서 창조주의 사람을 향한 위탁 사항이 드러난다. 곧 하늘과 땅과 수중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다스리게 하자는 창조주의 의지가 표명된 것이다(26절, 28하). 그러면서 그들에게 당신의 권한을 넘겨주는 복을 전하셨다. 이 복을 받게 되는 사람은 남자와 여자였다(27절). 이 또한 남자와 여자란 양성(兩性)이 창조주의 복을 함께 받아 누릴 대상이었다. 그러면서 받게 될 복의 내용은 무엇이었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와 ‘그들을 다스리라’는 복이었다. 


4)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받은 사람들, 곧 당신을 닮은 생명체들에게 각별한 복을 주셨다. 온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것이다. 혼자서는 안 되지만, 서로 협력하고 힘을 모으면 무엇이든지 감당할 그런 복을 주신 것이다. 이런 축복은 그의 형상을 닮은 인간들에게만 부여하신 매우 소중한 천부의 자산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점에 눈과 마음이 열리면 행복해 질 것이다. 이 번영과 충만은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의 정신으로 임하면 된다(마25장). 


5) 창조주는 그의 사람들에게 먹거리들도 주셨다. 온 지면의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먹거리들로 주신 것이다(29절). 동시에 하늘과 땅과 그 위에 생명이 있는 모든 짐승과 생명체들에게도 먹거리로 푸른 풀인 식물을 주셨다(30절). 


☞ 그 후 노아의 홍수 후에는, 이 모든 짐승까지도 사람의 먹거리로 허락하였다(창9:1-3절 참조). 이런 모습은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큰 양보와 배려였다(창8:20-22 참조). 하지만 모든 짐승을 피째로 먹는 것은 금지하셨다. 특히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 피를 흘리는 일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복수하실 것이라 경고하셨다. 생명의 피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인간은 창조주의 형상을 간직한 존귀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창9:4-6절 참조). 


2. 복음서 / 눅12:4-7 /  ”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본문은 복음과 믿음에 따른 박해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거나 순교를 당하게 될 수도 있는 당신의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특별한 권면이다. 이때에는 존재에의 두려움을 가장 극심하게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마음의 중심 잡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때 필요한 마음은 무엇일까? ‘진정으로 가장 두려워하며 섬길 자를 찾는 일’이 다. 살려고 몸부림치려는 대신에, 차라리 제대로 품어야 할 마음을 품게 된다면, 그는 자기 육체에 가해오는 온갖 두려움으로부터 놀랍게 해방되게 될 것이다. 


1) 가장 필요한 일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신을 ‘너는 내 친구’라고 불러주신 일을 기억하는 일이다(4절). 그는 이미 죽음에서 승리하신 분이시며, 하늘 본향에서 영원히 친구 된 이들의 영접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계신 분임을 기억하도록 호칭을 그렇게 전해주셨기 때문이다. 박해에서 생존하면 생존한 대로 좋고, 혹 순교하면 영원한 친구를 뵙게 될 것이기에 더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러기에 박해나 순교의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자기가 죽게 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그보다는 거룩한 주님을 온전히 뵐 수 있도록 간구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더 필요한 마음이다. 그리고 절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꼭 두려워해야 할 대상인 하나님만을 향하면 된다. 십자가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은 주님의 모습을 생각하자.


3) 주님의 명령에는 불필요한 두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신다(5절). 그 대신에 반드시 품어야 할 마음을 제시하신다. 첫째는 주님은 절대로 당신의 친구 된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일이다. 그는 당신의 친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심판자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분이시다(6-7절). 따라서 진정 두려워할 일은 그가 친구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고 배신하거나 지옥에 떨어질 변절자의 행동을 하는 일이다. 


3. 서신서 / 요일 3:1-10 / ”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


본문은 교회의 사도이신 요한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구원받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게 된 자들임을 밝혀주면서(1절), 그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이 마귀의 자녀들과는 달리 어떤 차별화된 삶을 살고 있는지를 강하게 증언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의를 행하지만, 마귀의 자녀들은 죄를 짓는다. 특히 마귀의 자녀들은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하나님 자녀인 우리들의 삶에도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10절). 


1) 하늘 아버지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우리를 그의 자녀로 칭함을 받게 하신 일이었다(1절). 부모가 되고 자녀가 되는 일은 모든 관계에서 가장 최상위 관계가 아닌가! 그 이상을 호가할 관계는 없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일에는 조건이 붙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항상 더 좋은 것을 못 주어서 아쉬워한다. 전능자 하나님이 죄인이었던 우리를 그렇게 영접해주시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은혜요 사랑이며 축복이다. 


2) 하나님 자녀의 영광된 모습은 장차 주님 앞에서 설 때 참모습으로 드러날 것이다(2절). 


3) 자녀 됨을 인지하고 그날의 영광된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는 특징들이 있다. 

-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3절). 죄 없이해 주시려고 오신 예수를 생각하며 죄를 범하지 않는다. 

- 의(義)를 행한다(7절). 

-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하기 때문에 범죄하지 못한다(9절). 대신 의의 열매를 맺게 한다.


4)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와는 달리 마귀의 자녀들(요8:44참조)은 의를 행하지 않으며, 특히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한다(10절). 진리(구원의 현실)가 그 안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자에게는 사랑이나 연합이나 모두를 위한 헌신은 없다. 교회에도 이런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조심하자. 


o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들이다. 이는 하나님이 상대할 대상으로 우리를  만드셨다는 말이다. 이런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믿음으로서 비로소 우리의 삶에서 현실화 된 것이다. 크게 감사할 일이다. 그가 주신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안에는 마귀가 준 죄악의 씨가 소멸하고, 하나님의 씨가 들어와 생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복되게 잘 지켜내자. 창조의 영성이 생산과 번영으로 꽃피울 수 있도록 수고하자. 의의 열매들이 꾸준히 맺혀지도록 선한 싸움을 계속하자. 무엇보다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행진들이 꾸준히 이어가도록 헌신하자. 이 일을 위해 교회와 성도의 연합은 활성화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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