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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1)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재일동포선교-교회개척주일

관리자 2023-08-29 (화) 22:31 7개월전 306  

본문) 창 1:1~25, 요 1:1-5, 계 4;1-11


오늘은 창조절기 첫 번째 주일이다. 본 교단이 지켜오는 삼 년 주기 삼위일체력의 첫 번째 해의 첫 번째 주일이다. 특히 매년 9월에 맞이하는 창조절은 그 해의 총 7절기들(창조절-대림절-성탄절-주현절-사순절-부활절-성령강림절) 중의 첫 절기인데, 그중에서 오늘은 첫 주일이라는 점에서, 2024년 새해를 여는 첫 주일이기도 해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창조절기는 창조주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의 절기이다. 우리 교단은 이 절기를 교단 창립 제25년인 제62회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교단의 교회력으로 채택한 이래, 어느덧 46년째 잇고 있다. 우리가 일반 교단들이 그동안 외면해 온 이 창조절기가 들어있는 삼위일체력을 지켜내면서, 우리 교단은 세계교회 안에서도 매우 큰 공헌을 해오고 있다. 두세 가지 차원에서 그렇다. 


하나는 기독교 최고의 신학 이론인 삼위일체론을 교회력에서 확고히 정립하였다는 점이다. 이 절기에 교회는 설교와 교육을 통하여 모든 성도가 삼위일체 하나님 이해와 역사에 대하여 크게 눈이 뜨도록 도움을 공급한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그의 역사를 매우 균형 있고 다양하며 폭넓게 접할 수 있게 한다. 또 하나는 오늘날 지구촌의 최대 위기인 기후와 환경과 생태계 파괴와 가정과 가족 파괴에 관련된 제반 위기에 대하여, 창조론적 성서의 다양한 메시지를 집중적으로 증언함으로써, 신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창조절기는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전 영역의 시작(始作) 부분을 주목하며, 그 가치와 출발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해 준다. 소위 첫 단추를 제대로 낄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하고 있음이다. 사실 시작(처음)을 제대로 했는지 못했는지의 차이는 너무도 중요하다. 그 효과와 그로 인한 결과물의 차이도 너무도 크고 막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의 출발을 제대로 시작하게 하는 절기인 창조절은 우리에게 신앙의 정도와 영역을 바르게 세워 준다. 


오늘은 특히 우리 교단이 재일(在日)동포 선교주일과 개척(開拓) 선교주일로도 겸하여 지킨다. 창조절 첫 주일의 의미를 담아, 우리가 아주 오랜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일본이라는 이방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오고 있는 디아스포라 동포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마침 올해는 간토 참사 100년을 맞이한 때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발생한 천재지변의 일이 우리 조선인들에 의하여 발생하였다고 누명을 씌워서, 그곳에 있는 우리 동족을 무차별 대학살한 일은 일본이 진정 영원히 속죄해야 할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교단의 개척 선교에도 힘써야 한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번성하고 부흥해야 할 교단은 바로 우리 기장임을 기억하자. 기장이 아니고서는 세상과 불의한 정부에 대하여 예와 아니요를 제대로 할 교회가 지금은 없는 실정이 아닌가! 그러기에 더욱 우리 교단은 설립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품고, 우리는 교단의 교회들이 하나라도 더욱 이 땅 위에 설립되도록 역량을 모아가야만 하겠다. 물론 지금은 개척이 힘들 때이다. 그래도 교회는 개척되어야 한다.


오늘은 이런 창조주 하나님의 놀랍고 은혜로운 역사가 우리 가운데 다시 펼쳐지기를 소원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와 그 기원에 대한 성서의 증언들을 먼저 경청하자. 그래서 탄탄한 창조 신앙을 구축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역사의 전위대로 재출발하도록 하자.


1. 구약 / 창 1:1-25 /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 “


성경의 첫 문장인 1-2절은 성경의 창조신앙의 첫 신앙고백이다. 천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우연이나 자연적인 원인이나 작용들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태초에 계신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의해서 있게 된 것임을 고백한다. 


여기에서 ‘창조하시니라’는 히브리 낱말은 무엇을 무엇으로부터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절대 주권자에 의하여 ‘무(無)에서’ 불러낸다는 뜻이다. 본문은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창조주의 권능 있게 명령하시는 말씀에 따라서(3,6,9,11,14,20,24절), 현존하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존재하게 되었음을 설명해준다(시33:6,9, 롬4:17참조).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33:6)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33:9)


2절에 의하면, 창조는 모양이 없고 스산한 원초 상태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10절까지에는 창조의 기본 행위를 경계 설정과 분리, 삶을 가능하게 하는 질서의 제정으로 이해하였다. 그 주역은 하나님의 영(靈)이다. 이 영은 히브리어로 숨, 바람을 뜻한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숨, 생명을 창조하는 숨이 잔잔하거나 출렁거리는 물 위에서 활동하신 것이다. 


빛은 모든 생명의 기본 전제이다(3-5절). 본문에서는 해가 창조되기 전(16절), 또 해와는 상관없이 빛이 나타난다. 이것은 빛은 해에 의한 것이라는 인간의 전제가 잘못된 것임을 말해준다. 태양 빛에 따른 빛 이외에도, 하나님의 세계를 비추는 빛이 있었음을 말한다. 생명의 빛이다. 히브리인에게 빛은 곧 생명력이었다(욥33:28,시27:1, 36:9, 사9:2참조). 창조주의 부르심에 의하여 존재하게 된 빛은 어둠에 대하여 언제나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사45:6-7참조). 빛이든 어둠이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한다. 


궁창(穹蒼)이라 불리는 푸른 하늘(공중)은 일종의 둥근 천장처럼 나타난다(6-8절). 물을 모아 둔 것이 있어서, 이로부터 비구름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태초의 큰물이(2절) 생활 공간이 될 땅과 육지를 드러내기 위하여 차차 밀려난다(9-13절). 이때 하나님은 드러난 땅에게 식물계를 주관할 중책을 맡기신다. 그간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과 바다와 공중은 생물들의 생활 공간 장만의 터전이 된다. 


생물 창조가 시작된다(14-19절). 하나님이 먼저 두 큰 광명체를 만드신다. 낮을 주관할 큰 광명체인 해와 밤을 주관할 작은 광명체인 달과 별들이다. 이스라엘 주변 이웃 민족들은 이 존재들을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신적인 존재로 간주하였지만, 여기서는 그저 밤낮을 다스리는 존재로서만 간주하면서, 그 지위를 피조물로 격하(格下)되었다. 


동식물들은 바다와 공중과 땅이라는 공간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나누어 살게 된다(20-23절). 식물은 그 종류대로 다양하게 존속하도록 배치되었다(11-12절). 반면에 동물과 사람의 경우는(28절) 번식(繁植)이라는 창조력을 피조물 자체에게 넘겨주셨다. 그 바람에 피조물들은 창조주의 위탁에 따라서, 물과 땅을 채우고 충만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력을 자손 대대(代代)에게 넘겨주신 위탁 행위이다. 동시에 하나님이 당신의 창조력을 넘겨주신 복(福)의 의미가 있다. 곧 ‘복을 주신다’는 표현은 ‘당신의 힘을 넘겨주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땅의 생물은 길든 짐승인 가축과 땅의 짐승인 들짐승과 풍뎅이와 땅바닥에 붙어 움직이는 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으로 이루어졌다(24~25절). 그러면 이런 하나님을 뵐 수는 없을까?


2. 복음서 / 요 1 : 1-5 /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리라 “ 


기독교회는 <요한복음>을 독수리의 상징으로 간주하고 있다. 왜 그럴까? 짐승 중에서 독수리는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아도 눈이 멀지 않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의 시야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은 놀라운 시력의 힘을 독수리가 가진 것이다. 그런 시야와 시력을 가진 인간이 있다면, 얼마나 놀랍고 엄청난 세상을 보게 될 수 있을까? 다행히 교회는 요한복음의 저자에게서 그와 같은 놀라운 창조주를 볼 수 있는 신령(神靈)한 눈이 있었음을 본 것이다.


요한복음의 첫대목은 다른 복음서들과는 확연히 차이를 보인다. 공관복음서들은 모두가 인간으로 오신 예수의 모습을 전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기원에 관하여 먼저 말한다. 곧 그는 영원 전에 하나님의 영원성 안에, 하나님의 가장 깊은 본질 자체에 근거한다고 본 것이다. 이 견해를 저자는 신앙고백적으로 장엄하게 표현한다(요1:1-18). 그러면서 이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에 대한 신앙고백을 이렇게 드러낸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 


본문은 이런 장엄한 서론 부분에서, 태초부터 말씀인 로고스(헬)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서 증언한다. 그때 그곳에서 계셨던 이분은 아버지와 함께 창조주로 동역하셨던 분이심을 밝힌다. 그 점에서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3절). 결국 이런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은 손님이나 나그네로서가 아니라, 당신의 집을 찾아온 주인이요 주관자로서 오신 것이다. 


그러기에 요한복음은 나약한 아기 예수 부분이 아예 없다. 처음부터 당신의 땅과 집을 찾으신 당당한 주인장이자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으로 이 세상을 상대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어둠의 거짓 세력들로 인하여 한없이 망가진 당신의 나라와 집을 보고 분개하시면서(2:12이하), 동시에 그 무너진 당신의 세상을 재건하기 위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셨다(3:16 참조), 본문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오신 성자 예수의 정체성 부분만을 집중하려 한다. 


1) 본문은 예수의 등장을 가장 광범위한 틀에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는 오래된 그리스도교 교회의 가사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한다(1-5ㅡ 9-12, 14,16절 참조). 이 기사에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핵심에서 하나님과는 하나이신 말씀(로고스)으로 소개한다(1절, 빌2:6 참조).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2절)는 말씀은 창1:1의 세상 창조의 시작을 회상시키지만, 그보다 더 멀리 모든 창조 이전 하나님의 영원(永遠)에까지 소급해서 생각하게 한다. 


3) 만물은 바로, 이 말씀을 통하여 창조되었다. 그를 통하여 모든 것이 지음을 받았음을 공포한다(창1:3,6,9 등, 고전8:6, 골1:1:15-16, 히1:2-3참조). 이 선언으로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시면서 동시에 온 세상의 원주인(原主人)이심도 공포하고 있다.  


4) 요한은 강조한다. 이 말씀 안에는 처음부터 생명(Life)이 있었는데,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는 빛(the light)이었다고(4절)! 따라서 이 복음서에서는 유독 생명과 빛에 대하여 증언할 것이다(8:2참조). 그런데 이 빛과 생명은 구원의 선물로 교회에 분여(分與)되었다(요일1:1-4참조). 


5) 그러나 어둠의 세상은 처음부터 비치는 이 빛을 깨닫지 못하였다(5절). 빛과 생명을 거부했다(3:19참조), 다른 번역에 의하면,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이 내용은 집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아온 집주인에게 저항하고 거부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이렇게 기술한 것이다. 


☞ 결국, 이 복음서 내용은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가 그의 아들로 오신 예수를 통하여 친히 뵐 수 있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면 하늘에 오르신 주님을 그곳에서는 어떻게 증언하고 있을까? 


3. 서신서 / 계 4:1-11 /  이십사 장로들이, ” 우리 주 하나님이여 ---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


본문은 하늘에 소환된 선견자(先見者) 요한이(고후12:2 참조), 지상에서 구원의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 본향으로 오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늘의 보좌들인 24장로들을 통하여 어떠한 찬양을 받고 계셨는지를 확인해 준 내용이다. 


땅(지구촌)에서는 로마 황제 도미티안이 가장 혹독한 박해정치를 펼쳐지면서, 자기를 세상의 신이요 주로서 섬기도록 강요하는 있는 때였는데, 이곳 하늘나라에서는 온 보좌진과 생명체들이 온 힘과 정성을 다하여서, 오직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만이 세상 만물로부터 찬양과 영광과 존귀와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고 고백하고 외치고 있었다. 이는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찬양이나 경배를 돌려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그러면서 그 하나님 중심의 승리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도 있는 내용이었다.  


특히 24장로의 고백 중에 왜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의 경배를 받으셔야만 하는지를 알리는 대목이 올라와 있는 점이 주목된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데에 있었다. 만물은 창조주의 뜻대로 있는 것이고, 그에 의해 제조된 피조물이다는 점이다(11절). 사정이 이런데-, 주인이 받아야 마땅한 찬양과 경배를 어찌 한갓 피조물에 불과한 세상의 황제나 특정 인간이 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탐욕자는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것이다.  


o 우리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 기원에 관하여 확인하였다. 창조의 사역은 처음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대역사였다. 그러기에 우리는 전심전력을 다하여 이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돌려야 한다. 이 일에 우리는 모두 하나 되어야 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창조 신앙이 요청되는 때이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분의 창조 세계가 크게 망가져 있다. 특히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바다 생태계 파괴사건은 우리를 정말 경악하게 한다. 그의 자녀요 백성 된 우리에게는 그 창조주의 뜻과 형상과 소명이 부여되어 있다. 주님의 마음으로 그의 세상의 회복을 위하여 거룩한 열심을 내야 하겠다. 지혜와 순결로 임하고, 소금과 빛으로 회복 사역에 임하자. 가장 교회의 일원으로 부름을 받은 일을 감사하며, 창조절에 내려주실 큰 복을 받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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