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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13)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3-08-23 (수) 10:14 8개월전 298  

본문) 행 6:8~10, 마10:16-23, 단6:1-23  


오늘은 본 강림절기 마지막 주일이자, 가을에 맞는 창조 절기를 한 주간 앞둔 직전 주일이다.

부디 새 계절의 시원함이 우리 삶의 온누리에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그동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후 변화와 환경 재앙으로 지구촌이 커다란 홍역을 치른 때를 보냈다. 문제는 이런 

재난들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점에 있다. 이것은 지구촌이 인간들의 저지른 어리석

은 대처로 인하여, 참고 견디는 데에 위기의 임계(臨界)점에 다다랐다는 데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 보복성 재앙(?)의 반응이 기존의 틀과 방향이 아닌, 전혀 다른 예기치 아니한 역

(逆)방향들에서 새롭고 놀랍게 돌출하며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세계적인 대홍수, 대산

불, 대지진, 잇따른 태풍들과 그 방향, 각종 전염병 등이 서서히 재앙 수준을 넘나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연과 환경의 역습에도 불구하고, 인간들 차원에서는 그런 세기적인 환란을 극

복하고자 하는 공동의 노력은 없고, 오히려 어느 때보다도 더한 패권 싸움과 블록 형성을 통

한 패거리 싸움이 더욱 기승하고 있다. 한마디로 ‘바보들의 싸움’이 격해지고 있다. 


특히 지난 주간 한미일 정상들이 미국 대통령 별장에서 준(準)동맹을 맺으면서, 한국이 그간의 

한미동맹 체제도 모자라서 일본까지 함께 참여하는 한미일 동맹에 앞장서는 일이 발생한 것이

다. 왜 그렇게 현 집권 세력이 그토록 매사에 일본의 협력에 목을 매는 지, 그 원인이 매우 

궁금하다. 특히 일본이 우리에게 지금까지 취한 자세를 생각해보면, 국민적 궁금증은 더욱 가

시지 않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보면, 그 이유가 보다 뚜렷해졌다. 


외형적 이유는 북한에 대한 대응책이라고 했으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의 동아시아에서의 

중국을 견제하고 자신의 패권 유지를 위한 정책에 일본을 내세워 우리 한국을 그의 돌격대처

럼 들러리로 내세우고자 함이었다. 이를 위하여 미국은 이번에 과감히 우리 동해(東海)를 아예 

일본해(日本海)로 명명하면서, 한국의 그간의 반발을 아예 묵살하고 저 넓은 우리 국토인 울릉

도와 독도가 있는 동해를 일본의 활동무대로 공인하고 나온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이 이

제 무슨 짓을 해도 말을 못 하는 윤석열이란 맹목적 친일 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에, 아예 

그런 국제적 틀을 고착시켜두고, 앞으로도 일본의 휘하에서 동해에서의 한국도 더욱 통제하려

는 뜻을 명백히 밝혔다고 본다. 독도의 거취가 앞으로 국가적 큰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해졌다.


그 바람에 우리는 또 다른 국치일(國恥日)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우리의 우방이라는 미

국의 탐욕의 마수에 걸려들고, 일본의 간사한 외교술에 휘말리면서, 우리의 반민족적이고 반

국가적인 집권자의 어리석은 사대주의 행동이 거기에 합세하면서, 우리나라는 이제 얼마 간에

는 우리의 옷에 맞지 아니한 외세가 입혀준 엉뚱한 유니폼을 입고, 동족 북한과는 더욱 첨예

한 원수지간으로 들어가고, 중국과 러시아의 압박들도 받으면서, 정말 엉뚱한 짓들을 세계인

앞에서 보여 주며 살아야 하는 제2의 꼭두각시놀음을 펼쳐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권교체 후, 일 년도 넘자마자 이렇게까지 우리가 못난이 후진국의 옷을 빨리 갈아입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대체 우리가 최근에 어떻게 그토록 급속히 변했는가? 잠시 살펴본다. 


자신의 주체성이나 역사성도 잃어버리거나 빼앗긴 나라, 주변 강대국들의 앞잡이로 행세하며 

살게 된 나라, 균형 외교를 통하여 세계에서도 경제 대국으로 진입했고 유엔이 인정한 일류 

국가가 되기도 했으나 이제는 전혀 낯선 세상으로 곤두박질하게 된 나라, 이념 마귀가 득세하

고 정치와 민주가 실종되고 언론 통제가 강화된 체 검사왕국으로 독재가 본격화된 나라, 갑자

기 핵전쟁 이야기나 무력 경쟁체제 강화를 내세우는 바람에 평화의 분위기가 실종되고 언제 

전쟁이 발생해도 전혀 낯설지 아니하게 된 나라, 대통령이 자신을 봉건사회의 왕처럼 군림하

고 행세하는 나라, 무속 정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집권자를 둔 나라, 자신의 범죄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정적들의 경우는 보복 정치를 일삼는 집권자를 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부자의 감세 정책이 시행되고 미국과 일본에 매달리다가 경제 사정이 수직적

으로 악화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급속히 악화된 나라, 자신들의 무능과 무책

임한 일들을 이전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일이 상습화된 정권을 가진 나라, 사회불안까지 악화

하면서 대형 참사가 잇따르고, 길거리 ‘묻지마 폭력’과 살인사건들이 급속히 확장되고 있는 나

라, 그러면서 의료혜택이 좁아지면서 환자들의 각자도생이 보편화되고 가난이 확대되면서 심

지어는 지하철에서의 구걸 행위까지 시작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정말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그러면 우리를 애워싼 상황이 이러할 때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처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의 처신과 대처하는 행위가 매우 중요하다. 원하

는 바는 집권자의 교체가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 일은 합법적 틀 안에서 이루어야 할 과

정이 있기에, 우리는 또 다른 질서와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 우선은 기도해야 하겠다. 바울은 

우리의 경건과 평안한 생활을 위하여서라도 임금들과 권세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딤전2:2 참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은 직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회전하는 간

접 방식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로 통치자들의 범죄를 억제하는 노력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서 더욱 필요한 일은 우리 자신들의 거룩한 힘들을 기르고 증진하는 일에 힘쓰는 것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이 세상과 교회와 세상의 평화를 열기 위하여 나

와 교회의 거룩한 힘을 결집하는 일에 집중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세 본문의 내용

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삶의 지혜와 행동의 지침들을 제공해 준다. 복음서는 전체 기준

을 제시하였다면, 서신서와 구약의 그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 지침으로 밑받침한다. 


1. 복음서 / 마10:16-23 / “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shrewd 기민한, 재빠른)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


본문은 모든 제자 집단의 미래적 운명에 집중된 말씀이다. 특히 세상이 예수의 제자들에 대하

여 어떤 공세적 태도를 보일 것인지를 일깨우시면서, 거기에 대한 제자들 대응적 태도가 어떠

해야 하는지를 향한 주님의 지침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양을 이리 속에 보냄과 같다’고 말씀

하셨다(16절). 사람들이 이리떼처럼 제자들에게 공격해 올 것이라 하셨다. 


그러면 제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뱀처럼 기민하고 재빠르게 처신할 것을 요구하셨

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절대 간직해야만 했다. 그 신뢰가 있어야 제자들은 박

해와 위협 속에서도 순결한 대응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신뢰가 무너지면, 제자는 

결국 간교한 속임수에 넘어지게 되면서, 결국은 하나님의 역사가 개입해 들어오는 길이 차단

되면서, 자신의 모든 것들로 다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그 내용을 보자. 


1) 본문은 다가오는 박해에 대한 주님의 예고이며 대처할 지침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큰 틀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세상 권세를 장악한 사탄에 대한 도전이며 공격이다. 그러기에 

세상에 장악된 자들은 예수의 복음 전파자들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성전(聖戰)을 불

사하려 한다. 그런 측면에서 주님은 ‘이리 가운데 양을 보냄과 같다’고 비유하셨다. 그만큼 위

험성이 큰 현장에 투입된 전사들이 바로 복음 전파자란 것이다. 


2) 그러면 복음을 갖고 파송 받은 제자들에게 허락된 무기들은 무엇인가? 뱀같이 지혜롭고 비

들기같이 순결하라는 지침들이다(16절). 고대 중동 문화권에서는 이 말이 ‘신중하고 분별력 있

다’라는 뜻을 담은 속담으로 썼다. 이 표현 속에는 할 수 있으면 박해를 피할 수 있음을 열어 

놓으셨다(23절). 다만 너무 약삭빠르거나 이기적이지 아니한 비들기같은 순결함을 지켜내야만 

하였다. ‘아케라이오이’(순결하다)는 말은 악인과 어울려 죄악에 물들지 않음을 의미한다.


3) ‘사람을 삼가라’(프로세카테)라고도 명하셨다(17절). 이 내용은 사람 자체를 멀리하라는 뜻

이 아니라, ‘--으로부터 떨어져 마음을 지키라’는 뜻으로 사용된 말씀이었다. 사실 전도자는 

사람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마음을 지켜내라는 지침을 주신 것이다. 그 삼가야 

할 사람 중에는 혈육의 가족들인 경우도 있다. 형제가, 아버지가, 자식이 될 수가 있다(21절). 

그들이 자신들을 공회에 넘겨주어 채찍질 받게도 하고, 총독과 임금 앞에 끌려가게도 하여 죽

게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18, 21절 참조).


4)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주님은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요구하

셨다.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이 그때마다 말할 것을 주셔서 말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순결을 지키는 제자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신 말씀이다(19=20절,마28:20 참조). 그래서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된다(22절,하). 

☞ 이러한 말씀의 지침으로 볼 때, 오늘의 또 다른 본문들의 주인공들인 구약의 다니엘과 서

신서의 스데반 집사의 모습은 그 박해와 시련의 때를 가장 모범적으로 지켜낸 주역들임이 판

명된다. 이제 그들이 보여 준 지혜와 순결의 모습과 그 결과에 대하여 배워보자.


2. 구약 / 단 6:1-23 / “ 다니엘이 조서에 왕의 직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 전에 하던 대

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


다니엘의 모습을 보면, 주께서 앞서 복음서를 통하여 제시하신 지침인 ‘이리 가운데 보낸 양’

의 모습이 과연 어떤 상태를 말하는지를, 가장 표본적(標本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보인다. 게다가 지혜와 순결의 모습을 통하여,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그곳 바벨론 

제국 전체에 보여 주었는지를 입증해줄 아주 실재적인 인물이기도 하다(마10:16참조). 


다니엘은 유대인 포로 출신으로서, 바벨론 제국에서도 가장 유능하고 탁월한 고관들 120명들

보다도 대왕 다리오의 신임을 더 얻어서 전국을 다스릴 총리(總理)로 발탁이 되었다(1-3절). 

이에 본토 출신 관리들은 그런 다니엘을 끌어내리고 제거하려는 모략을 세운다. 처음엔 고발

할만한 허물이 없음을 알자. 이번에는 그가 매일 세 번씩 그의 신인 여호와께 기도하는 문제

를 덫(빌미)으로 삼아, 그를 법 위반자로 몰아 죽게 하고자 하였다(5,10-11,13절).


그들이 마련한 간계는, 앞으로 30일 동안에 한시적으로 왕 이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

을 구하는 자가 있으면 그를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는 법을 제정하여 시행하는 일이었다. 

왕은 그게 자신을 위한 법으로만 알았지,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한 악법임을 알지 못하여서 결

국 그 법에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리고 말았다(6-9절). 나중에 체포된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

져지게 되자, 왕이 몸부림했다. 취침도 못 하며 금식도 하며 그를 구하고자 했으나, 길이 없었

다(14, 18절) 할 수 있는 일은 ‘너희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는 발언뿐이었다(16절,하). 


그때의 그곳 바벨론 관리들은 다니엘에게는 이리들이었다. 그러면 다니엘은 과연 양의 모습인 

지혜와 순결의 입장을 보였는가? 그렇다. 그는 자신에게 부딪친 시련의 잔을 피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신뢰와 믿음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럴수록 인

간적 술수로 그 위기를 잠시 모면하고자 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세 번씩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여호와께 피함이 진정한 지혜임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10절, 22참조). 


중요한 것은 이런 다니엘의 순결한 신앙을 지켜보신 여호와의 행동이다. 어떻게 하셨는가? 하

나님은 사자 굴속에 던져진 다니엘을 지키시기 위하여 당신의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의 입을 

봉하시고 해치지 못하게 하심으로서, 다니엘이 무죄함을 모든 자들에게 입증해주셨다. 그러면

서 새벽에 사자 굴을 찾아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셨느냐’고 되물은 왕을 되레 안심케 하였다. 

큰 기쁨을 얻는 왕이 그의 승리와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인해 주었다(20-23절). 이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의 주요 만민의 주이심을 각인시키는 대역사였다. 


3. 서신서 / 행 6:8-10 / “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니 ” 


온갖 핍박과 박해에도 흔들리지 아니하는 불굴의 신앙인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하심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증거가 바로 본문의 스데반 집사의 이야기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파

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헌신한 순결한 집사 스테반에게 두 가지 내용으로 함께 하셨다. 


1)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게 하셔서, 큰 기사와 표적들을 사람들에게 행하도록 하셨다(8절). 그

의 영적 권위를 높여 주셨고, 복음의 능력 앞에 수많이 자들이 모여들게 하셨다. 


2) 지혜와 성령이 말하게 하심으로서, 주변 모여든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셨다(9절, 마19-20참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는 다니엘과 스데

반과 같은 지혜와 순결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o 그렇다. 최고의 지혜와 최선의 순결은 자신이 인간 편에서 행동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 

편에서 행동할 때 나타난다. 인간 편에서 행동하면 온갖 부작용이나 시행착오와 좌절할 것들

만 따를 뿐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일하면 하나님께서 다 붙잡아 주시고 되게 하셔서 승리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도 영광 받으시고, 우리도 축복받을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세상은 온갖 악한 영들이 득세하고 있다. 특히 최고 권력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

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무시하며, 전쟁 공포증만을 과장 확대하며,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전혀 모른 체, 온갖 불의와 거짓과 허위와 선동을 일삼고 있는 때이다. 저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과 이세벨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러기에 이럴수록 우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들

기 같이 순결했던 선지자 엘리야의 영성으로, 다니엘과 스데반의 영성으로, 하나님이 열어 주

실 때를 기대해야 하겠다. 심판의 주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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