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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6)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3-07-04 (화) 09:42 9개월전 324  

본문)  행 28:11~31, 막16:15-20, 욘3:10-4:11


성령강림 후 여섯째 주일이다. 큰 장마는 아직 오지 않았으나, 벌써 피해가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가뭄이 상습화된 지역에서는 크게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다. 부디 겸손한 마음으로 기후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하여야 하겠다. 장마와 태풍이 분명 불편한 면은 많지만, 그러나 필요한 면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번씩 판을 뒤흔들고 뒤집어 놓음으로써, 기존의 묵고 낡은 판을 쇄신하는 능력이 그 안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훈련을 잘 해야겠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말씀인 복음을 그의 종들이 어디에까지 전하여야 하고, 또 누구에게까지 전해야 하는 지를 일깨우시는 말씀들이다. 곧 복음 전파의 범위와 대상을 규정해 주시는 말씀들이다. 그러면서, 그 복음이 온전히 전파될 때 어떤 일들이 그곳에서 발생하는 것인지에 대하여서도 일깨워 주시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복음전파를 명령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엿보게 된다. 바로 그의 사랑 때문이었다!  


오늘의 세 분문의 내용을 보면, 이 복음 전파는 놀랍게도 예수와 그 이후인 성령 시대부터 시작된 일은 아니었음이 밝혀진다. 구약시대, 곧 선지자들이 활약하던 시대에도 이미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방 나라에 파송되었고, 그것도 우호(友好)국이 아닌 적성(敵性)국가였던 나라와 백성들에게까지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놀라운 일이 바로 요나 예언서의 내용이었다. 이 점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까지 미쳐 있는 지를 확인하게 된다. (이 점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제대로 된 선교인이 될 수 있다). 


이 점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복음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아드님이신 성자 예수님의 사마리아에 대한 친근한 접근 이해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선교의 행태 중에서, 유독 사마리아에 대한 태도는 매우 미스터리한 일 중에 하나였다. 왜 모든 동족 유대인들이 그토록 외면하고 배제하며 차별하던 집단인 사마리아를 예수님은 그토록 끌어안으려고 하셨느냐는 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요4장 전체, 행1:8, 8:1-24 참조).    


분명한 것은 선교지(어디-Where로 갈건가)나 대상(누구-Whom에게 가나)이나 그 때(언제 –When 가나)나, 그리고 왜(Why) 가야만 하는 지에 대한 선교에 관련된 일체의 일들은 모두, 그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결정하신다는 점이다. 인간이 결정할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점들은 이미 바울의 유럽행 선교를 택하게 되는 과정에서도 생생히 확인한 바 있었다(행16:6 이하 참조). 그런 점에서 전정한 모든 선교는 단연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마침 지난 주간(6.26- ) 대천한화콘도에서는 교단이 개최하는 제10차 해외선교사 홈커밍 대회가 있었다. 세계 오대양 육대주의 30개국에 파송되어 일하는 본 교단 선교사들 69명 중에서, 53명(부부포함)이 참석하여, 귀한 배움과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부디 그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이 함께 하셔서, 크고 많은 열매들을 맺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세 본문들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선교 파송에 관련된 메시지의 내용을 먼저 점검하는 것이 좋겠다. 그 내용 전체는 선교 파송의 모든 원리와 원칙과 그 선교의 당위성까지도 담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 메시지가 구약에서는 어떻게 담겼는지를 살펴보고, 서신서에서는 그 메시지가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확인하겠다. 


1. 복음서 / 막 16:15-20 / “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


본문은 마태복음의 선교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과 같은 부분이다. 마가는 제자들 중에서도 아직 부활에 대하여 제대로 믿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대하여 주님이 찾아오셔서, 심한 질책을 하신 후에(14절), 본 최후의 명령을 그들에게 내리신 것으로 전한다. 승천 직전인 예수님에게는 제자들이 부활 사건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일이 매우 마음에 걸리셨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에게 그 문제는 왜 그리 신경을 쓰실 수밖에 없던 것일까?  


그것은 주님이 부활하심으로서 그 부활과 함께 만유의 주로 임명되셨고(빌2:9-11,골1:18-20참조), 그 사실을 기쁨의 소식으로 만민에게 전파하여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이 예수께 돌아와 그의 백성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게 복음의 핵심이다. 따라서 그 사실을 온 피조물들에게 알리는 것이 제자들과 지상의 모든 교회에 지워진 의무이다(엡3:8-10, 딤전3:16 참조). 이런 사정에서 제자들의 모호한 신앙은 실로 큰 장애물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당신의 길을 가시려고, 제자들에게 마지막 분부를 내리신다. 선교를 위한 지상(至上)명령이었다. 당신의 간절하고도 절실한 마음을 담아서,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한 선교 지침들을 제자들에게 제시하셨다. 이제 그 구체적인 지침 내용들을 확인해 본다.  


1) 당신의 복음, 곧 부활하셔서 만유의 주가 되신 예수를 전하는 복음을 위하여 제자들은 가야만 했다. 그 대상은 누군가? 바로 ‘온 천하(天下)’였다(15.상). 헬라어로는 ‘온 창조 세계’를 말한다. 온 피조물(被造物)에게 전파하라는 것이다. 사람은 물론이지만, 모든 생명체들도 예수가 자신들의 주이심을 알게 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으신 것이다. 아씨씨의 성자 성 프란시스의 찬송가인 69장의 내용(온 천하 만물 우러러)이 그 분부의 내용을 풍부히 담고 있다.  


2) 보다 구체적인 대상을 지목하셨다. ‘만민(萬民)에게’였다. 이 내용은 지금은 쉽게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파격이고 충격적 지시였다. 자기들만이 아니라 모든 세상 나라와 이웃 백성들을 다 포함하였기 때문이다.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 남녀노소 모두, 빈부귀천 모두, 친구와 원수 모두, 빈자와 부자 모두, 강자와 약자 모두 등등, 실로 배제와 차별과 분리 없이 온 세상 만민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는 우리 모두의 주’이심을 듣게 하는 일이 최고의 사명으로 부여되었다.  


3) 이 소식을 듣고 믿게 된 사람들은 어떤 결과물을 얻게 되는가? 또한 듣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 점에 대하여 주님은 단호히 선언하셨다. ‘믿고 세례를 받는 자들은 구원(救援)을 얻을 것이나, 거부하는 자들은 정죄(定罪)를 받으리라’(16절) - 곧 예수 인생은 구원을, 예수를 거부한 인생을 정죄란 심판을 받게 된다(행`6:31,33, 요일4:14-15참조). 이로써 인류는 두 가지로 갈라져 판단 받게 되었다. ‘예수 사람이냐, 비(非)예수 사람이냐’ 


4) 그러면서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 따라오는 놀라운 변화(變化)들과 표적(標的)들에 관해서도 몇 가지 언급하셨다(17-18절). 

- 주의 이름으로 귀신(鬼神)을 쫓아낸다. 귀신 잡은 예수께서 그의 대장이 되시고 편이 되어 주셨기에 나온 약속이다. 우선 마귀가 먼저 예수가 두려워서 예수의 사람에게서 붙어 있을 수 없어서 떠나기 때문이다. 우상 미신의 역사가 강한 시대인데, 오직 예수만이 이 악한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 새 방언(方言)을 말한다. 새 언어를 사용함을 말한다. 죽음의 언어에서 살림의 언어로, 절망의 언어에서 소망의 언어로, 저주의 언어에서 축복의 언어로, 관심사와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입술의 변화가 따라오게 됨을 말한다. 그러기에 자연히 주변의 친구들로 변하게 된다. 


- 뱀을 집어올리고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한다(18절). 이는 믿는 자를 지키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증언을 말한다. 다만 이런 내용을 문자대로 시험하고자, 뱀을 집고, 독을 마시는 일은 안 된다. 복음과 전도를 위하여 피할 수 없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체험할 수 있을 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능력의 손길은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났는다(18절,하). 치유(治癒)의 능력을 말한다. 이 병은 육체적 질병만이 아니다. 정신과 영혼의 질병들도 포함한다. 주님은 항상 그를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기에, 이 치유의 사안들은 언제든 어디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체험자들은 우리 주변에도 숱하게 많다.  


5) 이런 중대한 분부를 내리신 직후, 주님은 하늘 본향에 오르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19절). 본래의 신분으로 복귀하신 것이다. 이에 제자들은 그 분부에 따라서 전도와 선교의 최전선에 나선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의 영이신 보혜사가 함께 하시면 도우셨고,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다양한 표적들로 힘을 보태셨다(20절). 그러면 이제 요나서에 나타난 선교의 역사를 통하여 성부의 선교에 관심사도 알아보고, 로마에 도착한 바울의 모습도 살펴보자.  


2. 예언서 / 욘 3:10—4:11 / “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12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그들을)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


선지자 요나는 자기 입장과 개성이 아주 강한 자였다. 그것은 하나님이시라도 자기의 판단과 입장과 다른 요구를 하신다면, 자기는 거부하거나 외면할 의지를 분명히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일차 주의 파송 명령을 거역하고 해외로 도피한 바도 있었다. 그래서 징벌을 받아 고기 뱃속에까지 들어가 잘못을 회개한 후, 가까스로 제2의 인생을 맞이하기도 했다(욘1-2장 참조). 그런데도 하나님은 또 다시 그를 불러서, 똑 같은 지시를 내리신 것이다.  


결국 도피할 길이 없음을 알게 된 요나는 마지못해 응하여 자기의 적성 국가인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40일 후의 주의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자 뜻밖의 반응이 발생한다. 그들의 온 도성이 회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왕으로부터 온 백성들, 심지어 가축들까지도 금식하면서 회개하였다. 놀라운 사태 변화를 목격하신 여호와는 당신의 심판의 뜻을 거두신다. 심판할 근거가 사라졌고 살려야할 이유만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요나는 강한 반발을 보인다. 


그 때 여호와는 그 곳의 12만명이나 되는 생명체들을 당신이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며 당신의 깊은 속마음을 드러내셨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서로 맞지 않아서 원수나 적이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에게는 모두가 당신이 지은 생명체들이었기에-, 악한 그들에게도 회개를 통하여 구원받을 기회는 주시고 싶었던 것이었다. 요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었다. 이는 예수의 원수까지도 사랑하신 마음의 근원이기도 했다(마5:44,롬12:18-21참조).  


1) 하나님의 과감한 심판 철회가 펼쳐졌다. 그들이 요나의 심판의 예고를 듣고,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왕으로부터 전 백성과 가축들까지도 회개하며 악한 길에서 돌이켰기 때문이었다(3:10). 


2) 요나가 하나님께 불같은 성질을 부렸다. 자기는 평소 하나님의 그런 유하신 마음을 알고 있어서 결국은 그럴 줄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게 뭐냐’는 거친 반발을 한 것이다(4:1-2). 그러면서 이번엔 아예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라며, 성질을 부렸다(3절). 그 후, 하나님은 박넝쿨 시험을 통하여 그를 깨우치셨음에도 ‘그래도 죽는 것이 좋겠다’며 계속 고집을 부렸다(4-9절 참조).  


3) 하나님은 요나에게 ‘네가 그 어떤 수고나 재배도 없던 박넝쿨이 하룻밤 만에 사라진 것에 그토록 안타까워하는데, 그렇다면 이 큰 성읍 니느웨의 12만명의 수많은 가엾은 생명체들을 내가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라며, 여호와의 인간 사랑을 여전히 드러내 보이셨다(4:10-11절). 바로 이 대목이 예수께서 ‘만민에게 가서 복음과 심판을 전하라’라는 내용의 근저였다고 본다. 


우리도 요나처럼, 상대할 사람을 자기가 결정하려든다. 거의 좋아하는 무리들이다. 싫어하거나 부담되는 이들은 제외한다. 한국교회도 요나형이 아닌가 싶다. 결정은 하나님이 몫임을 알자. 


3. 서신서 / 행28:11-31 / “ 바울이 온 이태를,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


본문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그곳에서의 선교한 내용을 전하는 대목이다. 실질적인 주님의 땅 끝 선교의 성취 부분이기도 하다(행1:8참조). 오랜 세월 각가지 풍랑과 역경을 뚫고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셋집을 마련하게 되면서, 그곳에서의 복음 전파의 기회를 확대해 간다. 이태 동안의 기간 동안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아주 담대하고 거침없이 가르친다(30-31절). 전설에 따르면, 참수형 순교를 당한 그는 그곳 세계 정치의 중심지인 로마교회의 복음화의 밀알이 된 것이다. 그 과정을 좀더 살핀다.   


1) 바울의 로마행은 매우 다채로운 여정을 뚫고 이루어졌다. 주의 인도하심이었다(11-14절). 

2) 로마에서 자신을 맞이하려고 멀리까지 찾아온 형제들을 보며,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동시에 담대한 마음을 얻기도 했다. 한 군인의 경비 속에 셋집 생활에 들어갔다(15-16,30절). 


3) 바울은 모인 사람들에게 로마인이 아닌 동족의 반대로 여기 로마에까지 왔음을 밝히면서, 자기는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에 이렇게 죄수가 되어 왔음을 설명하였다(17-20절). 


4) 바울은 모인 이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되, 구약의 세 본문인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예언과 기타의 말씀에 담겨 있던 하나님 나라와 그 성취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집중하였다(23절). 그 결과는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아니한 사람들로 양분되었다(24절). 

그러면서도 선포된 복음의 물줄기는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들에게로 흘러들어갔다(28절 참조).    


o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와 그 근원, 그리고 그 선교가 어떻게 온 만민에게로 흘러들어갔는지를 살펴보았다. 선교는 주의 왕 되심과 구주되심을 온 만민에게 알리고 전하는 것이다. 그들을 예수의 사람이 되게 하여 구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단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 요나처럼 자기 중심형 선교는 안 된다. 북한 선교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일이 계속되어야 한다. 바울 선교로 나아가야 한다. 전력을 다한 선교인들이 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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