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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3)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3-06-14 (수) 07:34 10개월전 303  

본문) 행 11:1~18, 막 7:24-30, 슥 8:18-23


성령강림 후 셋째 주일이다. 일기 변화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더위가 온 것만은 확실하다. 거리에는 반소매 옷을 입은 이들이 이미 주류를 이룰 정도가 된 것이다. 지난 주간에는 DMZ 근처에 국경선평화학교의 준공식(6.6)이 있어서 다녀왔다. 평화운동가인 정지석 목사의 10년간의 평화 실현에 대한 집념의 열매가 무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뜨거운 평화선교열정이 전국의 사람들 수 백 여명의 발걸음을 이끌어 들이는 놀라운 현장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런가하면, 우리 교단 설립 70주년 기념 선교대회도 6.9일(금)에 분당한신교회당에서 있었다. 모처럼의 전국대회에 전국방방곡곡에서 많은 교단 가족들이 참여하면서, 함께 예배하고 기념하며, 기도하면서 우리의 지나온 여정에 감사하고, 또 허약해진 교회의 미래를 부탁드리는 기도회로 마음을 모으는 뜻 깊은 자리였다. 무엇보다도 성령의 강한 역사로 부흥하는 교단이 되기를 기도했다. 사실 우리 기장이 이 시대에 부홍 해야 할 이유들은 너무 많지 아니한가?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교단 교회들이 가진 매력이 이웃 다른 교회들과는 확연히 달라야 한다. 전 주일에도 우리는 38총회 선언문을 통하여 우리의 입장을 소개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우리에게 두드러진 점은 바로 여기에서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전적인 그리스도를 인간 생활 전(全) 부분에 증거 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것을 절대화하지 않는다’라는 선언이다. 


이 고백은 결코 간단한 말이 아니다.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을 걷겠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대부분의 교회의 증언들은 그리스도를 인간 생활 전 부분에 증거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우리 생활 전체 영역에로 퍼지고 지배하도록 노력하는 일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명실공이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를 좇으려면 큰 자기부정과 희생을 치러야 된다. 동료 교회들로부터의 숱한 오해와 미움과 시기도 피할 수 없다. 자기들과 같지 않은 교회에 대한 비판과 시기와 질투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장의 선교신학과 신앙고백 하에서의 교회의 양적 부흥은, 한계가 있고 모순도 곁들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둘을 모두 이룰 수 있는 일은 진정 성령의 대역사라야 가능하다. 이런 현상 때문에, 우리를 이해나는 타교단의 대체적인 평가는 이랬다. ‘기장교회의 교인 백 명은 자기들의 교인 천 명과 비견할 수 있다’. 그만큼 사회선교를 하면서 교회의 양적 부흥도 겸하는 일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과제가 아닌가. 교회는 역시 부훙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방법상에서 이런 점은 깊이 숙고되어야 한다. 자신의 강점을 보다 살리는 일을 가지고 교회의 부흥으로까지 확실히 나아가는 방법 말이다.  


자칫 교회 부흥을 목적으로 자기 정체성마저 포기하게 되면, 그것은 자기 부정에 빠지는 일이고, 이것저것 모두를 잃는 일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게 하는 길이 있다면, 우리는 그 길을 마다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게 무엇일까? 쉽지는 않으나, 우리의 사회선교의 모든 행위가 신학과 이념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기도와 말씀에서 나오는 것이 되도록 전력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가 받은 은사와 소명들을 더욱 시대에 맞게 예리하게 사용하도록 노력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마침 우리 교단이 지난 100회 총회에서 채택한 사회선교사 제도를 잘 활성화하고 그 활동의 폭을 강화시키는 일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중한 소명과 은사들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구원하는 자원들이 되게 하는 일이다. 그게 어떤 방법으로 가능할까? 다행히 오늘의 세 본문 내용들이 이 부분에서 답이 되게 하는 메시지들을 제공해 준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가게도 하시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오게도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일깨우고 계시기 때문이다. 참으로 매력적인 신령한 능력이다. 이제 그 대목들을 주목하여 보자. 


서신서는 사도인 베드로가 로마 백부장인 고넬료가 보낸 초청에 따라서 그의 집을 방문하면서  그 집으로 하여금,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얻게 한 내용이다. 복음서는 이방 땅 두로에 잠시 휴식 차 들리신 예수님이 그곳에 살던 헬라인 여인의 방문을 받으시고, 결국 그녀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신 내용이다. 예언서는 오랜 세월 피폐해진 도성 예루살렘으로 인한 오랜 금식의 세월 후, 진리와 평화를 사랑으로 나아가면, 그곳에 여러 백성들과 강한 나라들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자 몰려들어오는 놀랍고 기이한 사건들이 잇따를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이 세 본문들은 공히 이방세계들이 여호와의 능력과 영광에 눈이 떠서, 모두가 그 은혜를 입고자 여호와께 나아오는 모습이다. 마치 나비와 벌들이 꽃과 향기가 있는 곳들을 찾아 몰려오듯 하고 있음을 본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향기와 생명력이 과연 있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고후2:15)라고 말한 바울의 지적은 항상 옳다. 교회나 성도들은 늘 그래야 한다. 이제 세 본문 내용에서 사람들이 찾아온 원인들을 살피겠다. 


1. 서신서 / 행 11:1-18 /  “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 


원시교회 공동체는 성령께서 파격적(破格的)으로 역사하심에 따라, 기존의 율법에서 전승해 온 것을 떨쳐버려야만 하는 일들 때문에 큰 진통을 치렀다. 그 대표적인 일이 바로 사도들이 이방인들을 접촉하면서 구원을 받게 하는 일이었다. 그들의 이방인 허용은 그들이 할례 같은 행위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편입되든지 소속되어야만 가능했는데, 그렇지 않고도 구원의 행위인 물세례나 성령세례 등을 허락하는 일은 위법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행15장 참조). 


본문은 그 역사적 구원론의 변곡점에 선 원시교회의 진통하던 현장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것도 수석 사도인 베드로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로마 장교인 고넬료의 초청으로 그의 집을 방문하면서 일어났던 놀라운 구원 사건으로 인하여, 엄격한 내부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게 되면서 초래된 일이었다. 항의와 변명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그러면서 교회는 성령 때문에 새로운 차원의 구원의 세계가 활짝 열리고 있음을 경험해야 했다. 특히 이방인까지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손길은 이제 막을 수 없는 대세임도 확인했다.  


1)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할례 받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비난 받는 일이 발생한다. 그것은 베드로가 이방인이요 무(無)할례자인 로마 백부장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함께 음식을 먹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1-3절).   


2) 이에 베드로는 그 간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성령의 놀라운 인도하심과 역사에 대하여 차례로 설명하였다. 그 내용은 그가 욥바에 머물며 기도할 때 나타난 세 번의 황홀한 환상들에 관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환상 끝에 그를 찾아온 고넬료의 사절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따라서 그의 집을 방문하면서 경험하게 된 일련의 계속된 놀라운 경험들이었다.(행10:9-48절 참조). 


-첫 경험은 환상 경험이었다.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나는 것들이 담긴 큰 보자기가 하늘로부터 그의 앞에 내리면서, 베드로에게 ‘일어나 잡아 먹으라’라며 지시한 일들과, 그에 대하여 자신은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먹지 않습니다’라고 세 번이나 거부하였던 일과, 그때마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라는 음성이 있었던 일들을 소개하였다(5-10절 참조).  


-둘째 경험은 그 환상이 끝난 직후에, 고넬료가 보낸 가이샤라의 초청 사절들 세 사람을 맞이하게 된 일이었다. 그 때 성령이 베드로에게 ‘아무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며 명령을 주셨다(11-12절). 그 바람에 베드로는 함께 있던 여섯 형제들과 함께 그의 집에 갔는데, 거기서 확인된 일은 성령(천사로 표현)께서 그 사람 고넬료에게도 미리 ‘베드로를 청하여 그와 그의 온 집이 구원받을 말씀을 들으라‘고 지시를 하셔서, 자신을 초대하게 된 일이었다(13-14절).     


-셋째 경험은 그 결과로 나타난 놀라운 열매들이었다. 베드로가 증언할 때, 성령이 그들에게 강하게 임하셨는데, 마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이 받았던 것과 같았다(행2:1-이하). 그들에게도 믿음이 들어가면서 주님이 성령 세례도 주신 것을 확인한 것이다.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들이 그들 이방인들에게도 차별 없이 내리셨음을 본 것이다(15-17절). 


3) 베드로의 이 경과보고에 그들 모두는 잠잠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인정하며 영광을 돌린 것이다(18절). 사실상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이방인 선교가 공인(公認)되게 된 최초의 구체적인 계기가 되었다. 


4) 다만 주목할 부분도 있다. 이방인 고넬료에게 왜 성령께서 당신의 영을 주시면서 그의 백성으로 받아 주셨는가 하는 점이다. 이방인이라고 아무나 허락되지는 않는다. 그만한 조건이 있었다. 이탈리아 부대의 백부장인 그는 이미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주님은 베드로를 통하여 그 일행에서 성령 세례를 베풀어 주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영접하신 것이다(10:1-8참조). 그리고 복음 전파의 첨병(尖兵)으로도 사용하고자 하신 것이다.   


5) 이런 이방인들의 하나님 백성으로 합류(合流)하는 모습, 그것도 이방인 고위층 인사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면서, 주님께로 나아오는 일들은 고넬료의 경우를 통하여 구체화된 사건이었지만, 그러나 알고 보면, 이런 이방인들의 합류 사건은 구약의 스가랴 예언서에서 이미 예고된 일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반드시 구별할 부분이 있다. 이 일은 그들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받기를 원해서 찾아온 것이다.  


2. 예언서 / 슥 8:18-23 /  “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라 ---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고,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   


수난의 백성인 이스라엘에는 이방의 공격을 받은 슬픈 추억들이 많았는데, 이를 기억하며 금식하는 절기들이 네 가지로 있었다. 이에 하나님은 기쁨과 희락의 도래를 예고하여 주신다. 


1) 시드기야 왕 9년(B.C 588-587) 10월10일,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시작한 날을 상기시키는 금식과(렘52:4), 시드기야 11년(B.C 586) 4월9일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점령된 것을 상기시키는 금식과(렘39:2), 그 해 5월7일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하여 불탄 것을 상기하는 금식과(왕하25:8), 그 해(시드기야 11년) 7월 유다 총독 그달랴와 많은 유다인들이 학살당한 것을 상기하는 금식 등이 그들에게 있었다(렘41:1-10).   


2) 여호와께서 이런 슬픔 금식들에 매달린 유다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선지자 스가랴에게 놀라운 예언을 주셨다. 이 금식이 변(變)하여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될 것이니, 그를 위하여 백성들은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18-19절). 그러면서, 보다 구체적인 변화의 물결이 어떤 방식으로 밀려올 것인지에 대하여서도 언급하여 주셨다. 


3) 수많은 이방인들이 여호와께 예배하며 은혜를 힘입고자 몰려오는 일에는 흘어진 유대인들이 매체가 된 것이다. 곧 그들이 볼 때,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우리도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자 너희와 함께 가겠다’고 좇아서 예루살렘으로 몰려온다는 것이다. 규모로는 유대인 하나에 외국인 열 명이 따라 붙는 꼴이다. 그것도 많은 백성들과 강대한 나라들이 그 대열에 동참해 오는 것이다. 곧 세계가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자 몰려온다는 놀라운 경이로운 예언이었다(20-23절 참조).  


4) 그런 점에서 사도행전에서 발생한 고넬료의 사도 베드로 초청은 이런 스가랴 예언의 구체적인 성취가 실현되기 시작한 현장임을 보여 준 사례이다. 로마 고위 장교 가족과 일행들이 하나님의 종인 유대인 베드로를 청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자기들도 힘입고자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이방인들이 나아온 일은 예수님에게도 이미 있었던 일이었다. 


3. 복음서 / 막 7:24-30 / “ 헬라인 수로보니게 족속인 여자가 예수께 와서 그 발아래에 엎드려,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


본문은 예수께서 선교활동 중에 휴식을 취하고자 이방 지역인 두로의 어느 집에 잠행하셨는데, 예수의 소문을 들은 어느 이방 여인(헬라인-수로보니게 족속)이 쳐들어오듯 주님 앞에 나아와 엎드려 간구했다. 그녀는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엄마로서, 자기 딸에게 붙은 귀신을 쫓아달라고 예수께 간청한 것이다(24-26절). 


그러자 주님은 뜻밖에도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말씀하시면서, 유대인 중심사고와 이방인에 대한 은혜에서의 차별 및 무자비함을 동시에 드러내셨다. 의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엄마는 그 판을 뒤엎는 한마디를 고했다. ‘주여 옳습니다. 하지만 상 아래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그 말에 예수님은 즉시 그의 딸에게 은혜를 베풀어 치유해 주셨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이 있은 자들은 그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은혜와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이심을 보여주신 것이다(28-30절). 하나님에게는 인종, 성별, 신분 그 어떤 것도 장애가 되지 못함을 확인해 주셨다. 

   

o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는 은혜와 사랑을 무한히 베풀어 주신다. 그 은혜와 구원을 받으려면 오늘의 말씀의 사람들처럼, 영적 준비가 필요하다. 곧 고넬료에게 있었던 경건함과 기도하는 삶과 어려운 이웃들을 향한 구제를 실천하는 삶이다. 스가랴를 통하여 명령하신 진리를 좇고 화평을 추구하는 삶도 요청된다. 그리고 헬라 여인이 예수님에게 확실히 보여준 절대 믿음과 간구하는 삶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다 받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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