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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7)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도시.농어촌선교주일

관리자 2023-05-16 (화) 23:28 1년전 890  

본문) 요 16:16~24, 사 32:9-18, 행 1:12-26 


부활절 일곱째 주일이다. 본 절기의 마지막 주일이며, 성령강림 직전 주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주일은 주님의 분부를 받들어, 오실 보혜사를 고대하며 함께 모여 기도하는 시기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주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굳게 하면서, 그 때를 기다리는 준비로서의 기도가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잘 기다리고 준비하는 자가 다가 올 미래의 주역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우리 한국사회의 입시생이나 수험생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살리라.


반면에 다가 올 미래에 대한 안일한 대비자들이나 아주 태만한 태도로 대응하는 자들의 미래는 아무리 미래 자체의 내용이 좋은 것으로 다가올지라도, 그것을 좋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서, 그의 삶이 망가지고 만다는 점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이런 점은 부잣집 자식들 중에서는 부모로부터 풍요로운 유산을 받고서도 그것을 미래를 대비한 소중한 자원으로 잘 감당하지 못하는 바람에, 삶이 아주 타락하고 망해서 사는 경우들을 통하여 충분히 입증된다.   


마침 오늘의 총회가 제정한 도시.농어촌 선교주일이기도 하다. 이 주일만 되면, 나는 오랫동안 섬겨왔던 우리 양무리교회가 지금까지 농촌 목회자 자녀를 위하여 장학숙을 만들어 그들의 서울에서의 학업생활을 지원한 일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는 도시교회는 농어촌교회의 희생으로 부흥한 곳이기에, 그곳의 교역자 자녀들의 서울 유학생활을 협력하는 정도는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시행했던 일이었다. 


최근은 해남의 신기교회(박승규목사 시무)가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도시 어린이들의 농촌지역에로의 유학생활을 유도하면서,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새로운 가치변화를 추구하는 놀라운 시도를 한다. 도시화된 아이들에게 자연화의 매력을 심는다. 매우 신선한 시도인데, 부디 훌륭한 선교와 교육의 열매들이 맺혀지기를 소망한다. 확실히 선교는 쌍방적일수록 더욱 바람직하다. 도농(都農)교회들이 상호 지원과 협력으로 이루어질 때 더욱 생산적이 되리라 믿는다. 


그러면 승천으로 인한 스승 예수님과의 이별을 슬픔이 아닌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으려면, 어떤 내용의 생산적 대비가 필요할까? 오늘의 세 본문에서 그 대답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스승 예수가 하늘 본향으로 떠나면, 제자들만 이 땅에 남는다. 그들은 이제 어떻게 처신하여야 할까? 저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 두 사람의 낙향하던 모습이 해답일까, 저 7제자들이 보여주었던 갈릴리 어부의 옛 생활로 돌아가서 살면 될까? 아니다. 그렇게 흩어지면 모두 허무해진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서신서는 또 다른 메시지를 우리에게 안겨 준다. 첫째는 함께 모이는 일이었다. 그들을 말씀과 사랑으로 양육하고 가르치셨던 예수를 정점으로, 그와 관련된 모든 이들이 함께 모이는 일이다. 그게 당시에는 다 합쳐서 120명이었다(12-14절). 그래서 예수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로부터 받았던 집단적 힘과 지혜와 사랑과 기도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흩어지면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새로운 공동체가 출현한 것이다. 


지금의 그리스도의 교회(敎會)를 이룬 것이다. 당연히 리더는 주님으로부터 얼마 전에 지목되어 당신의 양무리를 치라고 위임받았던 사도 베드로였다(15절,요21:15-이하). 우리 개신교에서 보면 공교회의 첫 담임목사요 당회장이 출현한 것이다. 카톨릭에서는 그를 지금도 제1대 교황으로 선정한 근거이기도 하다. 바티칸 성전도 성(聖)베드로 성당이라고 칭하고 있기도 하다. 20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결속력은 아주 공고하다.  


제자 공동체 내부의 무너진 시스템도 재건하였다(16-26절). 예수를 배신하고 떠나서 자살했던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채울 12번째 사도의 자리의 공백을 매우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12명의 사도란 개념은 단순한 자리 하나가 아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성한 족장 야곱의 자손들인 12명으로 구성되었던 12지파(支派)의 한 자리 몫을 채우는 의미의 그런 자리였다. 새로운 이스라엘로서의 빈 한 자리를 보완하는 일이었다. 그 큰 역할을 맛디아가 맡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使徒)될 조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최소한의 기본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했다. 그것은 예수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으로부터, 예수의 하나님 나라운동 처음에서부터 지금 하늘로 승천하시는 일에까지 함께하며 직접 목격한 인물이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21-22절). 그래서 그 역시 부활의 증인으로 일할 수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공동체는 거기에 합당한 인물을 찾아냈는데, 결국 최종적으로 두 사람이 천거된 것이다.  


한 사람은 요셉이었다. 바사바라고도 하고 유스도라고도 불린 인물이었다.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맛디아(Matthias)였다. 결국 공동체는 이 유자격자들 두 명을 놓고, 함께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았다. 이는 구약 성경에서 통용된 방법이었는데, 여기에서 뽑힌 이를 하나님의 선택으로 간주한 것이다(잠16:33,레16:8-10,대상24:5-18,31,욘1:7,눅1:9참조). 마티아의 후기 행적은 소개된 바 없으나, 전승에 의하면 그의 유골이 유일하게 독일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이제 세 본문의 구체적인 상황들과 그곳에서 전달되는 메시지를 듣도록 하겠다. 


1. 복음서 / 요16:16-24 / “ 지금까지는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셨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본문은 곧 다가올 제자들과의 이별을 놓고, 예수께서 제자들이 그 때를 어떤 마음과 자세로 대처할 것인지를 일깨워 주시는 말씀이다. 한마디로, 주님은 그 기간을 마치 임산부의 해산할 때처럼 간주하시면서, 해산 시의 통증과 고통은 피할 수 없으나, 일단 아기를 낳으면 그 때 얻게 된 큰 기쁨으로 인하여 산모는 다시 그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으리라고 진단하셨다(21절). 중요한 일은 주님을 다시 볼 때의 기쁨과 만족함의 압도적인 힘이다. 


1) 일단 만나고, 얻고, 채움을 받게 되면, 그 동안의 모든 불만, 고통, 외로움, 통증, 고독 등등 그 모든 괴로움을 안겨주었던 부정적인 것들이 일시에 사라지게 되는 그 수퍼 파워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주님은 그 괴력(怪力)의 신비한 능력의 실체를 보혜사 성령으로 제시하셨다. 그 성령을 받으면, 새삼 주님을 찾을 필요도 못 느낀다. 그 영은 바로 주님이 보내신 주님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주님 자체의 힘과 지혜와 능력이 자신을 덮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실제로 주님만이 행사되던 그 놀라운 능력이 자신에게서 표출되는 것도 경험한다. 


2) 이런 보혜사의 거룩한 임재를 체험하게 되면,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며 그 누구에게도 그 기쁨을 사로잡혀 살게 된다. 본문에는 슬픔과 고통을 극복해내어서 얻게 된 기쁨에 대한 증언이 가득하다(20-24절). 동시에 주님은 그 얻어낸 소중한 기쁨을 한순간 날려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확실한 방안 하나를 제자들에게 제시하신다. 곧 아버지께 구하는 일이다. 그래서 공급되는 기쁨이 중단됨이 없이 계속 이어지게 하는 일이다. 


3) 이것은 주님이 당신 이후의 시대를 제자들이 어떻게 발전시키고 유지시킬 것인지에 대한 비법(秘法)이기도 한 것인데, 바로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의 하늘 아버지께 직접 구하는 것이다. 즉 기도(祈禱)하는 것이다(23-24절). 이 기도는 여지껏 예수님만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와 교통하시던 통신수단이었다. 제자들은 거의 기도하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예수가 떠나신 이후에는 본인들이 직접 기도해야만 한다. 대신해 줄 성격이 아니다. 직접 자신이 것으로 삼아야한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모든 필요한 것들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4) 이 기도가 살아있을 때, 기쁨과 소망과 믿음은 유지되고 살아있게 된다. 성령은 이 기도를 통하여 하늘과 땅에 운행하신다. 기도가 파이프라인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주의 목자들은 기도의 통신수단을 뜨겁게 달구고 살아야 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24절)는 주님의 지시를 지상명령으로 알고, 기도에 매진하여야 된다.


2. 서신서 / 행 1:12-26 / “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 여자들과 어머니 마리아와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 


본문은 평소 주님을 따라고 섬기던 이들이 주님께서 앞에서 분부하신 말씀을 좇아서, 흩어지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본격적으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의 강림을 사모하며 기도하기에 힘쓰면서, 새로운 역사를 준비한 모습을 잘 보여 준다. 


1) 주님이 감남산에서 승천하신 직후, 제자들과 일행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다락방에 집결하였다. 주요 인물들로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 11명, 일련의 여자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주님의 아우들이다. 모인 그들은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12-14절). 


2) 그곳에 모인 인원들은 대략 약 120여명이었다(15절 상). 그 모임을 주도하던 사도 베드로는 전체 모임에서, 매우 중요한 안건 하나를 제시하면서 모임의 합의(合議)를 이끌어냈다. 그것은 배신자 가룟 유다의 자살로 인해 결원(缺員)된 12제자단의 빈자리 하나를 새 인물로 채우자는 안건이었다. 베드로의 제안은 스스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시69:25과 시109:8의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인물 대체(代替)를 예고한 말씀을 발견한 데에서 나온 제의였다. 

  

3) 사도가 될 조건은 요한의 물세례로 시작된 예수의 공생애에서부터 주님의 고난과 부활에까지도 함께 하여서, 앞으로도 예수의 생애와 부활의 증인으로 삶을 헌신할 인물이어야만 했다(21-22절). 거기에 적합한 자들 두 명이 후보로 지목 되었다. 요셉과 맛디아였다. 그들은 이 둘을 위해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께서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주님께 택한 바 되어 봉사와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 보여 주소서’라며 하나님의 선택을 간구했다(24-25절). 

   

4) 응답을 받았다. 선택 방식은 구약에서 자주 취하던 제비뽑기 방식이었는데, 그 둘 중에 맛디아가 뽑힌 것이다. 그가 12번째 사도의 자리를 꿰차고 들어선 주인공이 된 것이다. 아마도 평생 예수님 만나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오로지 예수와 그의 가르침에만 집중해서 살다가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는 주인공이 되었다고 보인다. 그의 흔적은 이름뿐이지만, 그의 삶을 내내 지켜보신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인물로 그를 택하여 주셨다고 본다.  


이렇게 120여명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에 따라 제자단의 빈자리도 보완하면서, 그들이 하나 되어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들에게 약속된 보혜사 성령이 어찌 오시지 아니하겠는가? 마침 위로부터 임하실 성령이 오시면 어떤 세상에 펼쳐질 것인지를, 오래 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통하여 증언된 바가 있기에 이제 확인해 본다. 이 내용을 보면, 사도행전에서 언급된 내용과는 달리 보다 광범위한 영역의 변화가 예고되었다.


3. 예언서 / 사32:9-18 / “ 위에서부터 영(靈)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그 열매는 화평이요 결과는 평안과 안전이라 “


본문의 배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를 외면하고 나태한 대응을 통하여(9-11절), 결국 치욕적인 수치와 고통을 당한 후에(12-14절), 하나님의 주도적(主導的)인 자비와 긍휼에 의한 성령 파송을 통하여 새 세상이 그들에게 이루어질 것에 대한 예고의 말씀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자연과 생태계가 큰 변화를 받으면서, 아름다운 밭과 숲을 이루게 되면서 그 영역에까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임하게 될 것을 예고하였다(15-16절). 본래 인간 세상은 자연과 창조세계가 연합되어 이루어진 영역인데, 하나님의 성령이 이토록 인간의 삶의 영역인 자연과 창조세계에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이 어찌 인간의 삶이 풍요롭게 되지 아니 하겠는가-! 그 공의의 열매는 평화이며, 그 결과물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16-17절). 그렇다. 보혜사의 소망은 당신의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쉼을 누리는 곳에 있다(18절).  


이렇게 준비가 철저하고 성실하면,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은혜와 축복은 풍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실하고 안일한 반응을 보이는 곳에는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윤석열 정권의 출범 1년을 맞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 정권에 대한 분석이 들어보면, 한 마리도 평가할 만한 것이 없을 만큼의 부실 자체이다. 


정치에서는 야당 외면한 일당 독재로 치닫는 중이고, 경제는 지난 일 년 동안 곧장 마이너스 성장만을 기록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재벌이나 경영자 위주의 부자 중심에 서서 노동자층에게는 법과 원칙을 내세워 노조 탄압을 일삼고 있으며, 외교와 안보는 오직 미국과 일본과의 동맹 강화에 매달리면서, 그 대가로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그들의 모든 각가지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고 있고, 특히 대중국과 러시아에게까지도 이념 잣대를 내세우면서 거리두기를 일삼는 바람에, 그곳들과의 경제 및 군사와 외교상의 헤아릴 수 없는 불이익이 급(急)증대되고 있다. 


가장 두려운 일은 대북정책의 실종이다. 무조건 굴복을 요구하는 듯한 고압적 자세와 언행으로 북한 측은 남측과의 그 모든 통신망올 모조리 차단한 상태가 되었다. 국민들에게는 전쟁의 먹구름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이런 중에서 그는 사이비 도사의 조언을 매우 크게 받고 있다는 통설까지 있다. 뭐 하나 건강한 것이 보이지 않고 모두가 불안하다. 그래도 그는 오직 검찰인력을 내세우고, 어용 언론을 길들여서 국민들 속이는 일도 서슴지 않은 느낌이다. 


두려운 것은 나라의 미래다. 이렇게 전혀 준비가 안 된 막무가내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채우겠다고 앞으로 4년을 계속 밀고 나간다면, 전쟁만 없어도 천만다행이겠지만-, 우리나라는 아주 가난한 나라, 후진국이 된 나라, 세상에서 가장 급속히 주저앉은 나라가 되면서, 세계로부터 부끄러움을 받게 되리라 우려된다. 가장 무능하면서도 고집 센 대통령을 선택한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 지를 치욕적으로 맛볼 것 같은 예감이다. 지금은 정말 자다가도 깨어 있을 때다.   

   

o 과거를 잊고 그 교훈을 망각하고 사는 백성은 미래도 없다. 과거에서 얻어낸 교훈을 갖고도 계속 그 실패를 반복하는 일도 크게 어리석다. 대비하고 준비하며 산 민족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깨어 대비하라고 강하게 요구하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보내실 성령을 반드시 받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지시하셨다. 초대교회처럼 우리도 깨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거룩한 능력자들이 되자. 개인과 세상을 거룩히 변화시킬 주역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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