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목회연구원

부활절(6)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승천주일 , 어린이주일 & 교회교육주일 > 설교자료

본문 바로가기

설교자료 HOME > 원장코너 > 설교자료

부활절(6)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승천주일 , 어린이주일 & 교회교육주일

관리자 2018-05-03 (목) 10:35 6년전 1367  

본문) 눅24:44-53, 출19:16-25, 계5:6-14  / 승천주일

 

우리 기독교 신앙에는 살아서 하늘에 오른다는 승천(昇天) 신앙이 있다. 놀랍고 신비로운 주제이기도 하다. 죽은 자의 부활도 놀랍거니와, 살아 있는 자가 죽음 없이 하늘에 오른다는 일도 더욱 놀랍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사례가 세 건이나 있고, 또 다른 개연성 있는 기사들도 적잖다. 그러기에 마냥 ‘헛튼 소리’라고 매도할 수는 없는 영역이다. 

       

구약에서만 해도 에녹의 승천, 선지자 엘리야의 승천이 소개되었고, 우리가 애창하는 찬송가에도 반영되어 있을 정도이다(창6:24, 왕하2:11, 찬송430장4절). 모세도 그의 죽음은 말하면서도 무덤이 없는 모습은 모세 역시 승천의 여지도 남겼다고 본다(신34:6참조). 주목되는 장면은 예수의 변모(變貌) 사건에서 예수님과 대화했던 대상들인 모세와 엘리야 모두가 성서의 핵심 축인 율법-예언-복음의 영역을 대표한 분들인데, 모두가 부활 내지 승천에 연계된 분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 세계를 이 땅에서 주도한 분들은 모두 죽음을 이겨내고 영생(永生)을 향유한 분들이었음을 드러낸 증언들이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마17:1-8,막9:2-13,눅9:28-36참조). 

       

그러면 다시 생각해 보자. 이처럼 놀라운 승천 신앙의 증언은 신비성과 기적적인 면모만을 담고 있는 것일까?  물론 에녹이나 엘리야 등의 경우만으로 보면, 그 이후의 그들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의 승천 이야기가 가세(加勢)되면서, 우리는 승천 이후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계속 추적(追跡)하게 하고 그가 천상에서 감당하고 계시는 모습과 역할의 메시지를 통하여, 전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식과 함께 우리가 생존하고 있는 세계가 머잖아 다가 올 그 세계와 어떻게 연계(連繫)되었는지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해 주는 눈과 안목을 활짝 열어 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즉,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의 부활신앙의 지평을 땅의 나라에서 영원한 나라인 하늘 세계에 로까지 확대시켜 주면서, 우리가 이 땅에서부터 그 나라에 적합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종말론적(終末論的) 인생으로 살도록 인도하는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해 보라! 초대교회 사도들과 그들에 의해서 세워진 모든 교회들이 그토록 뜨거운 복음의 열정과 섬김의 삶으로 이 세상 어둠의 역사를 변화시켰던 그 핵심적 신앙 요인이 무엇이었나? 또 그들이 그렇게 살도록 추동(推動)했던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일깨우시고 준비하게 하신 핵심 메시지가 진정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 나라, 인간 사랑만을 강조한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이 예수를 통하여 본 것이 있었고, 믿은 것이 너무도 뚜렷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 가슴 밑바닥에 부활 너머에 있는 영생(永生)의 세계가 강하게 심겨져 있었고, 또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재림(再臨)과 심판(審判)신앙도 심어졌으며, 다시 오실 그를 맞이하려면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의 삶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진정한 힘은 보고 믿는 데에서 나온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깊은 사모하는 마음이 고갈된 체, 단순히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그 동력을 발휘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요즈음처럼, 고도 문명시대와 인간 중심 시대에서 우리 교회가 교우들에게 무엇을 지시하여야 할 것인지를 정말 깊이 고민하여야 한다. 이런 시대의 특징은 인간 소외와 가치 몰락을 부추겨주면서, 집단적 자기 포기와 자기의 중요성과 소명을 상실한 ‘길 잃은 어린 양들’을 대량 생산하게 한다. 그 대안을 제시하여야 할 교회 강단이어야 하겠는데, 그 길을 제시할 대안은 무엇이겠는가? 

       

요즈음은 교회의 존폐를 염려하고 있는데, 이것은 교회와 그 강단도 길을 잃고 있음을 말하는 것 아닌가? 흔히들 그 극복을 위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하는데, 문제는 초대교회의 어떤 모습으로 가야할 것인지가 애매하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는 뜻밖에도 주변의 이단(異端)들이 빛(?)을 던지고 있기도 하다! 까닭은 그들에게는 엄청난 무리들이 몰려들어 열기를 품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은 분명한데, 그런데도 그들의 그 열정은 왜 일까? 

 

주목할 것은 그들 이단들의 교리의 주 메뉴가 바로 요한계시록과 특정 묵시문학적인 내용들이라는 점이다. 기존 교회들이 외면하는 그 몫으로 이단들이 흥행(興行)을 누린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지금처럼 종말론과 묵시문학적 신앙증언의 부재가 가져온 결과는 아닐까? 그 분야의 증언을 외면하는 일이 설교자가 취할 능사가 아니다. 자칫하면 울안의 양들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설교자가 그 세계를 바로 알고 전문가가 되어서, 바르게 가르쳐서 교회와 교인들의 신앙을 잘 지켜내야만 한다. 

        

놀랍게도 오늘 세 본문의 주제인 승천 이야기들은 우리의 갈등에 해결의 빛을 던져 준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 세상 역사 속에 어떤 모습으로 당신의 현존(現存)을 보여주셨는지를 전한다. 모세 시대에는 극히 제한된 계시로, 복음서는 예수승천 모습을 통하여 인간도 낙원에 오를 수 있는 세계가 있음을, 계시록은 승천 이후의 하늘 세계의 모습과 이 땅과의 교제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 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복음서를 어떻게 보아야할까

 

하늘 승천을 앞둔 예수님이 최후까지 얼마나 진지하게 제자들 성경 교육에 집중하셨는지를 잘 보게 해 주는 장면인데-, 그 주요 내용을 다음 네 가지 차원에서 정리할 수 있다. 

 

① 당신 이후의 당신에 대한 증인(證人) 시대를 열기 위해 제자 교육을 집중 하셨다(48절). 

무슨 증인인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과 구원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온 세상에 전파되는 일이 어떤 성경의 근거에서 되어져 온 것인지를 예언과 성취 차원으로 확인시켜 주셨다. 

그것도 구약의 세 본문(율법-선지서-시편) 중심으로, 예고되었던 내용들을 확인시키고 가르치며 깨닫게 하신 것이다(44-48절). 확실한 말씀이야말로 제자들이 부활과 하나님나라 증언하는 데, 가장 강력한 자료(資料)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②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聖靈)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라’는 지시를 하셨다(49절, 행1:4). 참 생명과 구원의 복음은, 지금까지의 살인과 죽임의 도시였던 예루살렘이 아니라, 회개와 용서와 화해의 능력의 도시로 거듭난 미래의 예루살렘에서 나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복음은 미움과 살인과 배척을 피해서가 아니라, 극복하고 이겨낸 곳에라야 제 생명을 드러내는 일임을 예수께서 아시고 계셨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은 그런 곳이었다!

 

③ 하늘에 오르시는 예수님은 그를 지켜보는 제자들에게 손을 들어 축복하시며 떠나셨다(50-51절). 당신 이후의 ‘또 다른 작은 예수들’로 살아가야할 그들을 향한 주님의 뜨거운 마음의 축복이었으리라고 본다! 

 

④ 남은 제자들의 가슴에는 더 이상 슬픔이나 좌절이 아니라, 큰 기쁨과 찬송과 다시 만날 기다림으로 채워진 상태였다(52-53절). 주님과 그의 말씀이 준 결정적인 영향이 분명했다. 결국 주님의 승천은 그들을 하나로 결집(結集)시켰고, 말씀에 집중하면서 기도하며 새 시대를 뜨겁게 대비하게 했다(행1:12-14). 

 

구약의 내용을 어떻게 보아야하나

 

구약시대에는 인간의 하나님의 접촉 범위가 얼마나 제한적이었고, 특정인 중심이었는지를 전해 준다. 예수 오시기 전의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전 모습의 전형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① 본문은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내려 주시고, 이스라엘과 선민(選民) 계약(契約)을 맺으시려는 전(前) 단계의 모습이다. 나약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연민과 배려가 이런 과정으로라도 펼쳐져가는 단계였다고 보인다. 

 

② 하지만 이 때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가까이도 할 수 없고 멀리도 할 수 없는 소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였다. 하늘 세계에 대하여서는 완전 비공개였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시내 산이라는 성별된 특정 지역을 당신과 인간의 만남의 장소 삼아, 당신은 내려오시고 모세와 아론 같은 특정 대상은 불러 올리셔서 회동(會同)하시는 조치를 취하셨기 때문이다(18-20절). 다른 이들의 접근은 일체 엄금(嚴禁)하시면서 말이다. 

 

그때만 해도,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당신의 자세를 엄중하게 하셨다(21-24절). 마치 범죄한 인간의 접근을 금하는 하나님의 ‘에덴의 경고’(창3:24참조)가 여전했다. 모세를 당신의 증인으로 내세우셔서, 백성들로 하여금 간접적인 하나님의 경험을 하게 하였을 뿐이다. 

 

그 불편한 간접적 관계가 편리한 직접적 관계로 완전 변화되게 하신 분이 바로 성자 예수님이시다. 그가 오셔서, 아버지께 충성하며 연약한 인간들을 무한 사랑하면서-, 하나님과 인간이 불편한 관계를 믿음과 기도란 매체를 통하여 서로 직접 교제하고 그 분 앞에 나아가도록 하나 되게 하셨다. 즉 복낙원(復樂園)의 문을 열어 제치신 것이다. 

 

계시록의 증언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예수 승천 후, 밧모섬에 유배당했던 장로 요한의 입신(入神)을 통하여 나온 증언인데, 여기서는 하늘에 오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백성들과도 어떻게 연대(連帶)하고 계신지를 주목하게 한다. 

① 천상에서의 주권자인 그리스도는 어린 양 예수이셨다(6-8,12-13절). 

그는 죽음이 없는 세상에서 죽음을 경험한 유일한 존재인데, 그 죽음이 바로 세상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얻은 의로운 것이어서, 천상에서도 가장 최고의 존귀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 표지(標識)가 되었다고 본다(6절,9,12절).  

 

② 그가 보좌에 앉으신 이(하나님)로부터 두루마리를 취하신 유일한 분이셨는데, 이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세상 역사에 대한 심판의 지침서와 같은 것이어서, 두루마리를 쥔 주님은 그 순간부터 세상 심판의 전권자로 등장하셨음을 말한다(7-10절) 

 

③ 매우 주목할 만한 내용은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에게 드리는 금 대접에 담긴 향(香)인데-, 그 향은 바로 지상(地上)에서 올리는 성도들의 기도(祈禱)였다는 점이다(8절.하). 

이것은 무엇을 말할까? 이것은 하늘에 오르셨지만, 그러나 당신의 눈(마음)은 여전히 당신이 떠나 온 이 세상에 두고 계신 분으로서(6절 참조), 당신의 지상을 향한 심판과 통치의 핵심 근거를 지상에서 올리는 성도들의 보고(報告)와 같은 기도에 두고 계심을 말한다. 바로 이런 상황을 위해, 주님은 이미 제자들에게도 당신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당신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직접 기도하라고 강하게 주문하셨던 것이다! (요16:24,26참조)  

 

④ 천상에서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어린 양은 이미 예배와 경배를 받으시는 분이 되어 계셨다(11-14절). 그 분을 향한 찬양이 올라오는 범위가 대단하다(14절).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 바다 위, 또 그 가운데 있는 피조물들이니(14절), 전 피조물의 예배대상이다. 이 대목은 그리스도 예수가 이제 우리의 예배와 찬양의 대상이 되셨고, 근거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결론은 이렇다 

 

예수의 승천은 이 세상과 땅의 한계를 넘어설 복낙원의 삶을 열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결정적인 꿈과 믿음을 안겨 준 놀라운 영적 선물이다. 그런 측면에서 예수는 온 인류에게 복음(福音)이 되셨다! 그의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이제 우리는 이 땅의 삶이 나그네 인생임을 믿으며, 그러기에 이 땅의 삶은 탐욕과 정욕에서 자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는 삶이어야 함을 일깨우시는 건강한 생의 동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 받은 우리(교회)는 그 주님과 그 나라의 증인들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늘의 주님과 끊임없이 교제하며 산다. 그 분의 분명한 보호와 인도를 받는다. 무엇보다도 그의 증언자인 우리 설교자들은 승천 메시지를 통하여 증언의 폭을 이제 천지(天地)로 확대해가자.



말씀목회연구원        ☎ TEL : 010-2434-0536       E-mail : puock@hanmail.net
COPYRIGHT © 2017 말씀목회연구원 .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