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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1)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송년주일

관리자 2021-12-23 (목) 17:32 2년전 627  

본문)  눅 2:41~52, 삼상 1:19-28, 히 2:9-18


o 세 본문의 분석(分析)과 이해(理解) :


성탄 후 첫째 주일이다. 시기로는 년 중 마지막 주일로서 2021년을 보내는 송년(送年)주일이

기도 하다. 비록 온 세상이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 삶에 큰 위축을 당하면서 지내 왔지만, 그

런 중에도 이토록 우리의 삶이 보존되고, 또 사랑하는 가족들이 우리나라의 백성과 교회들과 

함께 하나님의 크신 돌보심 속에서 송년하게 되었기에, 하나님께 크게 감사를 올린다.   


사실 지난 3년간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하여 삶에 많은 변화와 시련을 겪어왔다. 그 

중에서도 소위 <거리두기>란 낯선 문화가 준 파장은 정말 컸다. 코로나가 침(비말)으로 전파

되는 바이러스이기에, 그 예방 차원에서 나온 것인데, 이로 인하여 파생된 우리 삶의 문화는 

사람들의 모든 모임과 접촉을 엄청나게 통제하였다. 국제적 국가적인 모임들은 물론, 각종 상

점들, 심지어 가족들의 모임까지도 제한당하면서, 통제와 감시와 점검을 받게 되었다. 


교회의 집회도 직격탄을 맞았다. 평소 모임이 가장 활발한 한국교회도 한 동안 문을 닫듯 하

였기 때문이다. 예배와 교제와 선교와 봉사가 생명인 교회가 모임가 안 되니까, 그 내적 고통

은 컸다. 그러기에 통제하는 정부 당국에 가장 저항이 심한 곳이 교회이기도 했다. 그 바람에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입은 신뢰도 손실은 상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자기들만 하는 이기적 

집단이다’는 이미지 때문이다. 억울한 면도 많았지만,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요할 듯하다. 

  

하지만 이 시간, 우리 성도들에게 새삼 일깨워 강조할 것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성도들

의 ‘교회(敎會) 사랑’은 더욱 뜨거워져야 한다는 점이다. 교회 사랑이란 건물 사랑이 아니라, 

예배 공동체 사랑을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 사랑을 말한다. 교회는 본질상 ‘주님의 

몸’이기 때문이다(마16:18참조). 교회는 언제나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있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높이며 그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우리의 영혼이 성장

해가는 요람(搖籃)이기 때문이다. 잊지 말라. ‘교회사랑 없는 주님 사랑은 없다’ 

  

송년주일에 이렇게 교회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새해를 맞기 전, 이 교회 사랑을 우리

의 가슴과 영혼에 품고가자는 마음 때문이다. 코로나가 준 도전과 시련에 잃은 것들과 빼앗긴 

것들도 많을 것이지만-, 그 중에 정말 빼앗겨서는 절대 안 되는 소중한 부분, 곧 주님의 교회

를 향한 사랑은 반드시 우리가 지켜내야만 한다는 점을 명심하시라. 이것은 설교자의 소신 때

문이 아니라, 오늘의 세 본문 말씀들이 우리에게 준 확실한 메시지 때문이다. 


세 본문의 내용에 나타난 소년 예수의 예루살렘 성전을 대하시는 모습, 구약에 나타난 사무엘

과 그의 부모들이 성전에다 자식의 모두를 바치는 모습, 그리고 서신서에 소개된 예수께서 하

나님의 택하신 무리들을 교회 회중 공동체안에로 영접해 드리는 모습들(12-13절)은 교회 중심

신앙이 왜 우리에게 더 중요한 지를 확인하게 해 준다. 이제 그 굵은 내용들을 살펴본다. 


복음서에 나타난 소년 예수님의 모습은 정말 놀라웠다. 그는 12살 되어, 부모를 따라서 예루

살렘 성전의 유월절 순례에 참여하셨다. 하지만 몇 일 간의 행사 후에도 소년 예수님은 귀가

하던 부모님을 따라가지 않았다. 홀로 남아서, 그곳 선생들과 듣고 물으며 시간을 보내신 것

이다. 3일 후에야 뒤돌아 찾아온 부모를 만난 예수님은 그를 추궁하는 엄마에게 이렇게 대답

하신다. ‘왜 나를 찾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49절). 


주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첫 방문에서, 그곳이 당신의 하늘 아버지의 집임을 새삼 확인하시고, 

육신의 부모가 아닌 하늘 아버지의 집을 더 선택하신 행보를 취하신 것이다. 비록 그런 예수

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육신의 부모에게는 큰 곤경을 안겨 주었을지라도 말이다-.  


구약의 주인공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위대한 사사요 선지자였다. 그의 출생은 어

머니 한나의 금식과 서원을 담은 눈물의 기도와 제사장 엘리의 축복의 산물이었다(삼상1장 참

조). 그가 출생 후 이유(離乳)기에 되자, 그의 부모들은 서원을 좇아, 아이 사무엘을 실로에 있

는 성전의 여호와께 바친다(28절). 그 사무엘은 결국 이스라엘 대지도자로 한 시대를 산다.      


서신서의 히브리 기자는 예수께서 이 땅에 인간되어 성탄(聖誕)하신 이유를 밝히는 데 집중한

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완벽히 낮고 천한 인간이 되어 오시되, 그것도 온갖 가난

과 고난, 시험과 죽음의 자리에 까지도 내려가 인간 체험을 하신 것은, 당신이 연약한 인간들

을 직접 체휼(體恤)하신 이로서, 모든 연약한 인간들을 도우시되 특히 하나님의 성전(교회)공

동체 식구들인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붙들어 구원하시려는데 있음을 전한다(12-16절 참조).  


1. 복음서 / 눅 2:41-52 /  “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이 인간들에 의하여 세워진 성전을 어떻게 보셨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예루살렘 성전은 모든 백성들이 일 년에 3차례씩의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전국에서 순례하며 

찾아 경배하는 민족 성전이었다. 비록 독재자 헤롯에 의해 기원전 10년경에 건립된 곳이었으

나, 그곳은 분명히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의 말씀이 선포되며 그를 찾아 기도와 경배가 이루어

지는 이스라엘 신앙과 종교의 중심이었다. 그곳을 소년 예수께서 부모와 함께 찾으신 것이다. 


1) 갈릴리 나사렛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한 약 120km의 순례길은 부모들로서는 해마다 오

르는 길이었으나, 12살이 된 장남 예수에게는 첫 번째 길이었다. 율법에 의해서는 남자 13세 

이상부터는 의무였기에, 예수의 그런 첫 번째 순례는 자원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41-42절). 

그리고 통상 오가는 순례길은 동네와 인근 마을의 다수의 사람들이 어울려 왕래한 길이었다. 


2) 본문은 그곳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특색있는 예수의 언행들에 대하여 집중해 전한다. 첫 번

째는 예수께서 그곳 순례일정을 마치고 귀갓길에 오른 부모를 따르지 않고 의도적으로 그곳에 

머무르셨다는 점이다(43절). 둘째는 그곳 성전에 머문 예수께서는 그곳의 선생들과 대화하시

며 듣고 묻기도 하셨는데, 듣는 자들의 모두 예수의 지혜와 대답에 놀라워한 것이다(47절). 


동시에 예수의 특색 있는 말도 전한다. 뒤늦게 실종된 아들 예수를 찾아서 사흘 후에서야 비

로소 성전에서 만난 아들 예수를 향하여, 엄마 마리아가 질책하듯 한 마디 했다. ‘아이야 어찌

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다’(48절). 부모로서는 당연한 질

책이었다. 그런데 그 때의 아들 예수의 답변은 정말 의외였고 이해 불가한 내용이었다. “어찌

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50절).   


3) 부모를 놀랍고 고통스럽게 하며 이해 불가능하게 한 어린 예수의 일련의 처신들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 시절의 예수는 이미 그의 육신의 부모와 다른 차원의 세계를 보고 접하며 지내

고 계셨음을 보이신 것이다. 그곳 성전에 가셨던 예수께서는 그곳 현장을 통하여 비로소 당신

이 진정 누구며 어디에 계셔야 될 존재인지를 자각(自覺)한 순간이었다고 보인다. 사실상, 그

곳 성전에서의 행보는 인간의 옷을 입고 성육하신 그리스도가 신(神).인(人)의 양면성을 세상

에 드러내신 첫 번째 현장이었다. 그러기에 주님은 무심하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셨다!   


-가장 결정적인 말씀은 이것이다. 곧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그곳의 경배드릴 성전을 ‘내 아

버지의 집’으로 규정하시면서, 그러기에 당신은 그의 아버지의 집을 찾은 아들이심을 담담히 

밝히신 것이다. 당연히 그런 차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던 육신의 부모는, 아들의 낯설지만 

그러나 범상치 아니한 답변을, ‘책망보다는 가슴에 담아 두어야만’했다(51절). 

   

-또 있다. 예수님은 이미 성전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가르치는 장소로 공인하신 것

이다(46-47절). 그 후에 공생애에 들어간 예수님의 행보도 그런 행보를 계속하셨다(눅19:47, 

20:1,21,21:37참조). 우리도 이런 모습을 통해, 교회 성전의 교육기능을 인정하고 배움의 터로 

적극 활용하는 자세를 회복해야 하겠다. 


4) 그 후 예수님은 나사렛으로 귀향하셔서 부모님께 순종하시며 지냈기에(51절), 하나님과 사

람들에게 더욱 사랑받는 존재가 되셨다(52절). 하나님의 사람에게 세상 안에서의 부여된 인륜 

적인 삶이 어떠해야 되는 지도 주님이 친히 모범을 보이신 장면이다. 본받을 장면이다. 


2. 구약 / 삼상 1:19-28 /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립니다” 


신학교에 가면 부모의 서원이나 강권에 의해 입학했다고 말하는 학우들이 제법 있었다. 모태 

신앙의 힘, 조상의 서원 기도의 언약에 따라 자신의 진로가 결정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이런 

이들이 어찌 한둘인가? 숱하게 많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사무엘도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

관 없이 어린 나이(약3-5세 정도)에 당시 실로의 성전에 하나님께 바쳐진 인물이었다.  


그런 이유는 분명했다. 엄마 한나가 불임으로 고생하다 눈물로 서원(誓願)의 기도를 드린 후 

아이를 받게 되어서 태어난 생명이 바로 사무엘이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는 어린 자식의 뜻 보

다는 자신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생명을 주신 하나님, 그리고 또 자신들이 드린 서원 기도를 

기억하실 여호와를 향한 약속 이행이, 부모나 자식의 미래 모두를 위해서도 우선 지켜져야 할 

소중한 덕목으로 판단한 것이었다. 자식의 미래의 모든 주도권을 아예 여호와께 드린 것이다!    


1) 사무엘의 탄생에 얽힌 비사(祕史)가 올랐다(19-20절). 한나의 통곡의 기도의 원인을 들은 

제사장 엘리가 그녀에게 축복을 빌어준 후, 그들 부부는 새벽예배를 통해 여호와께 경배하고 

라마의 집에 돌아와 동침했는데, 바로 그 때에 여호와께서 태의 문을 열어주신 것이었다. 그

래서 얻은 아들을 엄마 한나가 사무엘(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했다)이라 명명(命名)한 것이다.    


2) 그 해 매년제와 서원제를 올리는 명절이 되어, 남편 엘가나가 실로 성전에 올라가려고 하

자 아내 한나는, 추후 아기가 젖 뗀 후에 아기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를 뵙게 하고 거기에 영

원히 있게 하겠다며 동행 순례를 사양했다. 그러자 아내의 사정을 잘 아는 남편 엘가나가 그 

의견을 수용한다(21-23절). 부부 신앙의 일치와 내용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3) 그 날, 곧 젖 뗀 날이 왔다. 부부는 여호와께 드릴 제물들을 준비하여 어린 아들 사무엘을 

데리고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집인 성소에 나아간다. 먼저 제사장 엘리를 만나서 그 동안의 

경위를 설명하고(아이를 구하는 서원기도와 제사장을 통한 축복과 자식 얻음 등), 이제 약속 

이행을 위하여 그 아이를 평생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고백하며 헌아(獻兒)식에 참여한다. 이스

라엘의 역사의 운명을 크게 좌우할 위인 사무엘은 그렇게 성전의 지도속에서 나오게 된다.     


3. 서신서 / 히 2:9-18 /  “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 


초대교회 일각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임 당하심이 너무도 일반 인간들과도 유사하고 천

사보다도 못한 모습이어서, 그것이 시험이 되는 흐름도 있었다. 그 바람에 천사 숭배교 라는 

이름아래 그리스도의 성육에 따른 구원의 복음과 그 능력이 저(低)평가되는 문제까지 있었다. 


히브리 기자는 바로 그런 점에 대해 전면 승부에 임했다. 바로 하나님의 관심 속에는 천사들

이 아니라, 죄인이자 형벌을 당하게 될 인간들과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

비의 마음만 있음을 직시하라고 말했다. 그런 하늘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신 주님이셨기에, 주

님은 그토록 인간의 밑바닥에까지 오셔서 세상 죄를 걸머지고 고난은 물론 죽음까지 직접 체

험하고 이겨내시는 체휼(體恤)로, 인간 전체의 연약함을 돕는 구원자가 되셨음을 강조하였다. 


1) 죽음의 고난으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의 성육과, 잠시지만 천사들보다 낮은 신분

의 자리에도 내려가셔서 고난과 죽임까지 당하신 까닭은, ‘구원의 창시자(創始者)’로서의 예수

가 보다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당신의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게 하시려 함이었다(9-10절). 


2)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당신의 ‘형제’라 부르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거룩하게 하

신 이와 거룩함을 입은 자는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보셨기 때문이다(11절). 주님은 그

런 은혜를 주신 주를 교회 회중 앞에서 찬송하셨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그런 자들을 신뢰한

다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자녀’라고 인정도 하셨다(12-13절,사8:17 참조). 


3) 혈육을 가지신 몸으로 죽으심은 죽음의 세력을 장악한 자인 마귀를 멸하시고, 그에 종노릇

하며 한 평생을 사는 자들을 해방시키려 함이며, 측히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들(믿음의 가족들

을 붙들려 하심이었다(14-16절).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의 직임을 

수행하면서, 모든 시험 받은 자들을 능히 도우시는 메시야이기를 원하신 것이다(17-18절).   


o 그리스도인의 성전 및 교회를 향한 정체성은 ‘내 아버지의 집’이요, ‘우리는 그의 백성들이

요 자녀이다’란 의식에서 찾아야 한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의 말씀을 듣고 배

우고 익히며, 특히 그가 예수의 피로 사신 동료 성도들과의 사랑의 교제가 충분히 나누어지는 

영적 훈련장이어야 한다. 

성전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영성을 제대로 체득하게 되면, 그는 소년 예수처럼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되고, 사무엘처럼 교회는 물론 세상까지 살리는 성숙한 일꾼이 될 것이다. 

부디 교회 사랑을 회복하여 새해를 축복되게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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