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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12) - 세 분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 영생주일

관리자 2021-11-17 (수) 08:34 2년전 437  

분문) 민 20:1~12, 마 18:1-9, 약 3:1-12 


o 관련(關聯)주일 – 영생(永生)주일 


창조절 마지막 주일은 보통 대림절(待臨節) 대비(對備)주일로 지킨다. 하지만 독일교회를 비롯 

한 일부 교회들에서는 이 주일을 한 해의 마지막 주일로 간주하면서, 지난 한 해 동안 교회   

공동체에서 세상을 떠난 별세한 교우들을 추모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주일로 자연스

럽게 지키기도 한다. 그러기에, 이 영생주일은 총회 제정 여부와 상관없이 개교회가 자연스럽

게 고인(故人)들에 대한 추모(追慕)와 유족에 대한 위로(慰勞)의 주일로도 지켜도 유익하다. 


o 세 본문 분석(分析)과 이해(理解) :  


창조절 마감 주일이며, 대림절 대비 주일이다. 이 변곡점(變曲點)에서 우리는 창조의 마지막으

로서의 심판과 영생을 생각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내 자신의 믿음의 영적 준비에 들

어간다. 그런 점에서 지난 한 해 동안의 내 신앙 인격의 수준들을 점검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

다. 현재의 내 상태가 진정 주님 마음에 적합한 지, 아니면 책망과 심판을 면치 못할 만큼의 

부족한 것인지를 성찰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으로 말이다. 


그러면 무엇을 점검의 기준(checking point)으로 삼을 수 있을까? 오늘 세 본문의 내용들은

한결같이 인생의 관록이 쌓인 원로나 지도자급에 해당된 이들을 향한 책망과 견책, 그리고 경

고와 교훈들로 가득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것도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요 평생을 하나님

의 일꾼으로 충성했던 모세와 아론이 그의 백성 앞에서 보인 치명적인 실수로, 하나님으로 부

터 가장 가슴 아픈 견책을 받게 된 모습에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긴장하게 한다. 


등산가들이 가장 긴장하는 때가 있다. 정상 등정할 때보다는 등정 후의 하산할 때이다. 성취

감이나 마음의 해이가 승리해 얻은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는 교훈을 주는 내용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노년에 들어서 더 추(醜)해진 인물들이 많다. 아니, 노년에까지도 여전히 싱싱

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 준 인물들이 많지 않다. 처음의 것들이 크게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주님의 ‘깨어 있으라’라는 권고는 젊은이들보다는 노년과 원로가 된 이들에게 더욱 

적합한 말씀이다(민수기). 서로 자기가 공동체 안에서 실력자가 되고, 나이와 경험 면에서 젊

은 사람들을 지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말씀이다(복음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사

와 지도자가 되어, 마치 모두가 자기의 지도와 감독을 받아야 되는 위치에 있는 것처럼 행세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적합한 말씀이다(서신서).   


사실 이런 이들은 공동체의 실력자들이다. 나름대로 많은 공로와 업적을 쌓은 이들이 분명하

다. 그들의 수고와 노고 덕분에 그 공동체가 존재할 정도로 기여한 이들임도 분명하다. 문제

는 바로 그런 이들이 자칫하면, 평생을 공들여 수고해 쌓아 논 그런 집단과 공동체를 그들이 

마지막에 가서는 무너뜨릴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자신의 수고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돌리며 감사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끝까지 

대접 받고자 함에 있다. 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나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

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냉혹히 심판하신다는 점이다. 동시에 그 자신이 없어도 공

동체는 얼마든지 생존이 가능함을 생생히 보여주시기도 한다. 그 점을 결코 잊지 말자.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생의 노년(老年)과 또 머잖아 주님 앞에 설 준비를 어떤 마음과 

자세로 임하면 좋을까? 삶에 어떤 점을 유념(留念)하면서,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좇으

면서 살아가야 할까? 무엇을 피하고 무엇을 택하면서 살다가, 주님 앞에 서야만 할까? 오늘의 

말씀들을 중심해서 그 적합한 길을 확인하자.  


1. 구약 / 민 20;1-12 /  - “ 내 주인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냄에 끝까지 집중하라 ” 


본문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40년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이다. 주목할 것은 14:34의 냉혹하고 

엄중했던 그곳 신 광야의 가데스에, 이스라엘 백성이 두 번째로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분명

한 것은, 지난 38년간의 오랜 광야 생활에서도 그들은 기갈(飢渴)이나, 배고픔으로나, 환경의 

위기로 인하여 죽은 자들은 없었다는 점이다. 그 만큼 그들의 의(義)로우신 하나님의 완벽한 

돌보심이 그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민20장의 기록은 모세의 혈육이자 오랜 세월 최측근이었던 두 사람의 사망 사실을 전한다. 한 

사람은 모세의 누이이자 여성 지도자인 미리암이었다(1절). 그녀는 이전에 모세의 구스 여인과

의 결혼한 일을 두고 비난한 적이 있었는데(12:1-2참조),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구(舊)세대

(이전 가데스에서의 심판 세대) 숙정(肅正)의 일원으로서, 죽게 하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인물은 모세의 형 아론이다(24절). 그는 모세를 도와 출애굽 과정과 이곳에 이르기까

지 크게 동역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모세와 함께 호르 산에까지 올랐으나 여호와께서 거기까

지로 그의 생을 마감시키시고, 그의 대제사장 직분도 아들 엘르아살에게 넘기게 하시고 조상

에게 돌아가게 정리하셨다.(25-29절 참조)


문제는 유일하게 남게 된 모세였다. 그 역시, 그곳의 가데스의 높은 장벽(?)을 넘지 못하고 걸

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최대의 꿈이었던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압의 

드보산의 비스가 정상에서 그의 삶의 여정을 강제로 마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신34장 참조). 

본문은 모세가 왜 그렇게 좌초를 당하였는지에 대한 원인과 과정을 소상하게 전하고 있다.    


1) 결정적인 원인들은 두 가지로 보이는데, 그 첫째는 백성들의 집요하고 끈질긴 모세와 아론

을 향한 불평과 불만이 원인 제공을 하였다(2-5절). 그들은 가데스에 도착해서 마실 물을 구

하지 못하자, 온갖 악담과 험담을 내뱉으면서 ‘우리들을 죽이려고 이 나쁜 곳으로 인도했느냐’

(5절)라며 모세에게 공박한 것이다. 실로 폭동(暴動)에 가까웠다. 삶의 위기를 느끼게 하였다. 

놀랍게도, 40여 년 전(前)에 그 조상들이 그곳에서 보여 주었던 바로 그 살벌했던 분위기였다. 


사실 이곳에 온 것은 하나님의 인도 때문이었는데, 이곳을 본 백성들의 시각은 ‘죽을 곳’이었

고, ‘나쁜 곳’이었다(5절). 발악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모세 형제는 그들을 떠나 회막(會幕) 

문에 이르러, 여호와께 엎드렸다(6절). 유일한 피난처인 여호와께 답을 구하고자 함이었다. 그

러자 여호와께서는 즉시 해결책을 주셨다(7-8절). 백성들의 원망에 대한 질책 대신에 그들의 

문제를 수용하시고, 바로 위기를 극복하게 하셨다. 그때 여호와가 주셨던 지시를 확인하자.    


☞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

령(命令)하여 물을 내게 하라. 네가 그 반석(磐石)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8절)


2) 둘째 원인도 드러났다. 이런 여호와의 명령을 좇아 집행하던 지도자 모세 자신의 잘못된 

태도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세가 보여 준 문제가 무엇이었나? 


① 하나님의 응답을 쉽게 받아낸 모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안도하는 심정보다는 자기에게 

고통을 안겨준 백성들에게 분노를 강하게 표출하고 나왔다. 마치 ‘이 기회에 못된 버르장머리

를 확실히 고쳐주어야 하겠다’는 듯이, 백성들에게 ‘반역(叛逆)한 너희여’라는 심한 질책을 한 

것이다(10절). 그들을 ‘하나님과 그의 종과 다투려한 죄인들’(출17:7,13절 참조)로 본 것이다. 

 

② 그 바람에 모세는 백성들에게 그들과 유사한 심정인 격한 감정(感情)을 쏟아냈다. 지난 40

년간 그토록 오랜 세월 꿋꿋이 유지해온 온유하고 따뜻한 심정을 포기하고, 감정적 대응을 숨

기지 아니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10절). 그러면서 그는 손을 들어, 그가 가진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내리쳐대었다.(11절) 

그러자 반석에서 물이 솟아 나와서 회중과 짐승들이 마시게 되어 힘을 얻게 된다(11절,하).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전혀 이외의 문제가 발생했다. 모세의 그 행동은 백성들의 마음속에, ‘이 

위기를 해결한 주역이 하나님인가 모세인가’라는 점에서, 깊은 햇갈림을 안겨 준 것이다. 즉 

백성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아닌 신통력이 강한 모세만 돋보이게 한 사건이 되고 말았다. 

 

③ 그 바람에 새로운 문제가 모세와 하나님 사이에 발생했다. 만일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대

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반석에게 명령(命令)하여 물을 터뜨려 마시게 했더라면, 백성들은 모

세가 아닌 여호와를 제대로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섬기는 백성들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

세는 격한 감정의 포로(捕虜)가 되어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 그 기적을 행사하는 것처럼 하면서, 

정작 모든 은혜를 베푸신 주역이신 여호와의 영광은 완전히 가려버리고 만 것이다.  


그건 분명 모세의 실수였지만, 하나님의 입장은 분명했다. 하나님으로서는 ‘이제까지의 모세는 

아니다‘라는 판단을 하셨고, ‘거기까지의 모세’로 정리하신 것이다(12절). 공(公)을 위해 사(私)

를 거두어들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백성들의 시선을 흐리게 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

하게 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엄중한 뜻임을 온 천하에 보여주셨다. 


☞ 하나님은 영적 지도자의 실책을 엄중히 다루시는 분임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혈기와 분노

를 엄히 다스리지 못하고, 비신앙적인 자세나 사적 감정노출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훼손하

는 일에는 하나님께서 매우 분노하신다는 점을 우리는 새삼스럽게 배우게 된다. 조심하자. 


2. 복음서 / 마18 : 1-9 /  - “ 어린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이다 ” 


그러기에 복음서는 제자들이나 교회 공동체가 관심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질서(秩序)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내용으로 올렸다. 제자들은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물었지만, 주님

은 그 대답 이전에, 천국 입성의 자격(資格)부터 제시하신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

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3절). 


1) 여기에서 ‘돌이키다’(스트라폐테/헬)라는 말은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을 말하기에, 매우 

큰 결단이 필요함을 말한다. 기존의 것보다는 새 것, 익숙한 것보다는 신선한 것, 다 익은 것

보다는 설은 것, 갖춘 것보다는 미완의 것에 더욱 관심과 애정을 갖도록 주께서 새로운 방향

을 제시하신 것이다. 그 나라는 교만이나 관록이 판치는 이 세상과는 근본 다르기 때문이다. 


2) 이를 위해서는 제자 된 우리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자기를 낮추는 겸

손(謙遜)이다. 천국에서도 바로 이 겸손한 사람이 큰 자로 인정받는다고 증언하셨다(5절). 바울

의 지적대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선결 조건이 된다(빌2:2). 이를 위하여 

예수님은 겸손한 자들의 모델이 될 존재들이 소개하셨다. 하나는 어린 아이이고(2-5절), 또 하

나는 당신을 믿게 된 소자, 곧 교회의 신입(新入) 교우들이다(6절).     


3) 이들은 절대 영접 받아야 하고, 실족되지 않도록 보호받아야만 할 존재들이다. 이들이 거부

되면 하나님 나라를 잃게 되는 일이며, 실족하게 되면 하늘의 형벌을 면치 못하게 되기 때문

이다(7-9절). 그들은 왜 그렇게 주님으로부터 구원의 촉수(觸手)로 인정받는 것일까? 그들에게

는 기득권자들이 잃어버린 순수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약3:17). 그리고 새 세계를 수용

하려는 열린 마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자들의 배제됨은 천국의 출입문을 

상실한 집단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실족하게 하는 자들은 화가 있다(7절 참조).


3. 서신서 / 약 3: 1-12 / - “ 찬송(讚頌)과 저주(詛呪)가 한 입에서 나오게 살지 말라 ”


우리는 앞에서 모세를 통하여 자신이 선생이 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해야 할 처지에 있

는 지를 확인했다. 자의든 타의든, 모두의 선생의 위치에 서게 된 이들은 어떤 마음가짐이 필

요할까? 절대 ‘나를 드러내게 하고자 주어진 자리’라고 보지 말라. 그 대신 그런 자리나 위치

란 멍에를 통하여, 얼마든지 방종하고 타락할 수 있을 나를 통제시키고(3절), 보다 성숙한 존

재로 살아가게 하시려는 조물주의 선하신 뜻에 따른 것으로 간주하라. 그게 참 지혜이리라. 


그 점에서 야고보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지도자들의 말과 혀의 통제력 강화를 유달리 강조

한다(3-12절). 혀는 인간 지체들 중에서 가장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 역할 면에

서는 그의 온 몸과 마음과 인격과 존재를 대변(代辯)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지

체임을 명심하라고 강권한다(5-6절). 특히 그 말의 내용에 따라서 그 존재 자체가 천국이나 

혹은 지옥에까지도 가게 할 수도 있기에-, 더욱 말(혀)조심 할 것을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혀의 잘못된 이중성, 곧 그리스도인이면서도, 한 혀로 하나님께 찬송도 하고 이

웃에게는 저주도 하는 행동에는 날카롭게 경고한다(9-11절). 그런 모습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땅의 샘물이나 자연의 나무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이율배반적인 행태임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샘이나 나무는 절대 이중 플레이를 하지 않으며, 자기와 맞지 않은 엉뚱한 열매를 

맺는 법이 없다(11-12절). 진리를 좇는 하나님의 우리들도 그렇게 일치된 삶을 살아야 한다. 


o 그런 일원론적 삶은 성령의 내주(內住)로 마음의 성전(聖殿)이 견고해야만 가능해진다. 그러

나 성전이 무너져 있을 때에는 이원론적 삶으로 전락하고 만다. 바로 한 입을 가지고, 찬송하

고 저주도 하는, 뱀의 혀 놀림과 같은 타락한 역할을 자행하게 된다. 부디 정신 차려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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