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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주일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성령강림주일 / 도시,농어촌선교주일

관리자 2021-05-18 (화) 08:16 1개월전 105  

본문)  행2:1~13, 신5:1-21, 요14:15-31

 

오늘은 성령께서 이 세상에 강림(降臨)하신 주일이다. 세계교회는 오늘부터 8월 말까지 열 다섯 주간들을 이 강림절기로 보낸다. 따라서 우리 모두 다 이 기간을 ‘나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일하시는 절기’로 맞이하게 하자. 만일 이 긴 절기를 성령 없는 절기로 보낸다면, 나는 이 은혜의 때를 허송(虛送)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 누구보다도 나를 위해 강림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충만히 받으셔서, 평생을 기쁘고 복된 생활을 누리는 신앙인들이 되길 축원한다. 

 

성령이 이 세상에 강림하신 일은, 이 땅에 성령세례(聖靈洗禮)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음을 말한다. 그래서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로 이 세상에 ‘새로운 피조물(被造物)’들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활동들이 본격화되었음을 말한다(고후5:17참조). 그래서 새로운 생명과 구원의 파장이-, 마치 쓰나미 처럼- 전 지구촌에 일어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그들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되었음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성령 시대>의 개막은 예고(豫告)된 일이지,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 아니었다. 멀리는 구약 선지자 요엘의 선포를 통한 성령의 대중화(大衆化)시대에 대한 예고를 필두로 하여(욜2:28-29참조), 세례 요한의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리라’(눅3:16)는 예고와, 그의 지목(指目)을 받았던 예수님 자신의 수차례에 걸친 ‘보혜사(保惠師)로 너희에게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눅24:49,행1:5,8참조). 

 

그러기에 이런 탄탄한 배경과 기반으로 오신 성령은 그 순간부터 그를 받게 된 사람들을 앞세우셔서 이 지구촌의 인물, 종교, 문화, 구조, 생태환경, 가치관 등 모두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구원의 창조적 동력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큰 과제도 있었다. 바로 기존의 기득권 세력과 문화와 기반들과의 충돌(衝突)이었다. 복음의 들어가는 곳마다 그곳의 저항과 반대, 모함과 박해하는 일들이 끊임이 없었다. 마치 밭갈이하며 옥토를 만들어 좋은 밭작물을 생산하고자 할 때, 그 땅속에 묻혀 있는 각종 암초와 잡초덩어리와의 힘겨운 씨름들과 같았다. 

 

그 과정에서 성령의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곤경, 비난, 모함, 구타, 투옥, 심지어 살해까지 피하지 못했다. 그들을 향한 주님과 성령의 말할 수 없는 위로와 돌보심이 없으면, 도저히 한발도 나아갈 수 없는 고난의 가시밭길의 행군을 치러야만 했다. 오직 소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들기같이 순결해야 하는 일 뿐이었다. 그런 그들이 패하지 아니하고 인내하고 견디며 십자가의 순교로 승리해낸 것이 지금의 우리가 누리는 세상이요 교회들이었다.  

 

꼭 직시할 일이 있다. 소위 자기 목숨을 내어 놓아야 가능한 이 일들은 모두 인간의 자원에 의해 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명과 능력을 부어주심으로 이루어진 일들이라는 점이다. 땅의 일은 땅의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육신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땅의 일은 하늘의 힘과 능력이면 해결된다. 육신의 일도 오직 영의 일로는 해결된다. 성령강림이 지구촌과 인간 세상의 완고한 질서를 완전 세신하고 변혁할 수 있음도, 바로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이 개입하심으로서 되어진 것이었다. 그 질서를 받아들인 무리가 바로 교회요 성도들이다. 

 

o 그러면, 오순절(Pentecost)에 오신 성령이 이 세상에 부어주신 구원의 선물들은 무엇인가? 몇 가지 의미 있는 성령의 선물들이 본문들을 통하여 볼 수 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현현(顯現)하심이다(2-3절). 그곳은 마가요한의 다락방이란 제한된 옥내(屋內)이었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감히 그 어떤 인간들이 볼 수 없던 하나님의 영광을 뵙게 된 것이다. 얼마나 두렵고 감격스러웠을까-! 하나님께 붙잡히는 카이로스를 맞이한 것이다. 

 

그들은 영이신 하나님의 본체는 볼 수 없으나, 그의 말씀하시는 소리(음성-sound/2절)와 그분의 임재를 드러낸 불(Fire)을 볼 수가 있었다(3절). 이 모습은 성령이 이 땅에 오실 때, 당신의 모습을 불같은 존재로 드러냈음(출3:2,13:21,사66:15,눅3:16)과 당신의 이 땅에서 정체를 드러내실 모습이 소리(음성,말씀)임을 알리셨음(고지(告知하신)을 말한다. 

 

둘째, 임하신 성령으로부터 강한 소리와 언어인 말씀을 건내 받은 사람들은 예루살렘 시내를 향하여 나갔다. 그 소리를 들어야할 대상을 찾은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 그들은 곧 해외에서 예루살렘에 들어와 메시아의 오심을 고대하며 여생을 경건히 보내고 있던 유대인 디아스포라였다.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자신들도 예기치 못한 언어와 메시지를 그 교포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5-6절). 말씀 선포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 디아스포라들은 다양한 출신지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최소 13개국 이상에서 몰려온 교포들이었다(9-10절). (11절의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은 그곳 팔레스틴인 유대에서의 서쪽 바다와 동쪽 광야(사막)에서 모인 이들이라는 총합적 표현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는 히브리어(아람어)를 사용하지만, 자기들끼리 모이면 회당(會堂)에서 예배하며, 자기 본국의 언어를 각각 사용하는 것이 통상이었다. 삶의 수준도 제법 여유롭지 않았을까 싶다. 

 

셋째, 그런 그들이 지금 성령의 충만함으로 자신들을 찾아 온 히브리인들을 만난 것이다. 모두가 저 북방에서 온 갈릴리 출신들이었다(5-7절). 이는 성령 받은 이들의 첫 선교(宣敎)활동이었다. 그들은 큰 소리로 방언을 말했는데, 듣는 자들 모두를 소동(騷動)하게 하였다.- 놀람, 신기함, 당황, 난처함, 어찌할 바 모름 등으로 반응을 보였다(6-7,12,3:10-10-11,5:24참조). 일부는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라며 조롱도 했으나, 그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12절). 

 

-대체 그들은 무슨 소리를 들어서 그랬을까? 첫째는 그 말(소리)들이 모두 자기들의 살아온 본국의 언어들로서 말했다는 점이다(6,8,11절). 평소 예루살렘에서 쉽게 들을 수 없었던 본국 언어가 유창하게 들리는 일은, 신선하다 못해 당황과 놀라움을 주었다. 둘째는 그 스피커들이 모두 갈릴리인들이라는 점이었다(7절). 복장부터 표가 났던 갈릴리인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는 늘 얕잡아 보이는 무리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지금 자기 나라 언어로 말을 걸어온 것이다! 셋째는 그 소리의 내용이었다. 엄청난 수준과 비밀을 밝히는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1,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가 그들 모두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o 이것은 단순히 유대 디아스포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 모두가 몸담고 있던 예루살렘 사회와 모든 시민 전체를 흔들어대는 대 쇼크(shock)이었다. 뭔가 새 역사와 새 질서를 이루시려는 하늘 역사의 신호탄이었다. 바로 이 땅에 오신 성령이 그 일을 주도(主導)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면 성령의 목표는 진정 무엇이었을까? 다음의 몇 가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主)이심을 선포하고자 하셨다. 서로 다른 고향과 언어로 흩어져 살고 있는 그들이 한 분의 하나님을 동시다발(同時多發)적으로 접하면서, 그의 말씀을 듣게 되는 시대가 비로소 열리게 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것인데, 예수의 이름으로 전파되었으며, 성령의 감동과 일깨움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유대교의 편협한 유대 중심적 율법 종교는 성령의 확실한 갱신 대상 제 1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2) 말씀으로 오신 성령이심을 밝히셨다. 그날 그곳에서 들린 소리는 괴성(怪聲)이 아니었다. 내용이 있고 생명을 전해주는 능력을 담은 구원의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의 영이심을 보여 준 것이다. 정죄와 심판을 중심한 율법 시대를 종언하고 자비와 긍휼의 복음의 시대를 온 세상에 열고자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유대의 경지를 넘어,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세상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하며 구원을 받는 세계를 이루고자 하셨다(4-11절.1:8 참조). 

 

☞ 이 보혜사 성령의 사역부분에 관해서는 주 예수께서 친히 언급하신 내용을 주목하면 된다.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이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시다.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세상에 파송되어 오신 영이시다. 

 

-그러면서 당신을 몸으로 받은 자에게, 그는 가르침과 일깨움을 주신다. 최소한 말씀에 관한한, 성령은 당신 자신의 독자적인 말씀 보다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신 말씀들을 받아서 사람들이 이해하고 깨우치며 전할 수 있도록 추동(推動)하시는 일에 전력하신 영이시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일들이 잘 집행되도록 앞장 서 능력과 지혜룰 행사하시는 하나님이셨다. 

 

☞ 마침 오늘의 구약 신명기는 성부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서인 요한복음서는 성자 예수님의 말씀을 각각 전한다. 성부께서는 십계명을 영원히 지켜야할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다. 성자께서도 제자들과 추종자들에게 수많은 말씀들을 주셨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그 말씀들을 받아 지켜 행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오셨다. 그를 위하여 성령은 교회를 세우시고, 설교와 교육과 선교와 전도란 매체들을 통하고, 각종 은사들과 열매들을 쏟아 부으셔서, 하나님의 말씀들이 땅 끝에까지 전달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도록 앞장을 서셨다.

 

3) 특별한 부분은 바로 설교(說敎)이다(4절 참조). 성령 받은 그들이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니라’라는 말은, 사도들에게 주님과 함께 살면서 보고 듣고 배우고 깨달은 말씀들을 전하고 증언하고 해석(解釋)하는 권한이 부여되었음을 말한다. 그러기에 강림사건 후에 베드로의 본격적인 설교가 시작될 수 있었다(14-36절). 물론 베드로만의 것만은 아니고, 모든 사도들에게도 부여된 것이다. 설교와 함께 성도들이 모이고 교회도 세워지며 선교의 문도 열렸다. 

 

성령에 의한 설교의 기능은 독특하다. 한 설교자가 하나의 주제의 내용을 선포했는데, 듣는 수많은 청중들은 자신을 위한 맞춤형 말씀으로 듣는다(8절). 하나의 로고스가 수많은 이들을 일깨우시는 말씀인 레마로 들리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큰 일’에 집중되었다(11절.하,4:18,10:46참조). 설교는 언제나 하나님의 나를 향한 선하신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을 열고 설교를 들으면, 누구나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큰 일들을 접하게 된다(11절). 

 

 

o 성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말씀을 다시 보자. 구약의 십계명 기사는 둘이 있다. 출20:1-17에 나타난 십계명은 출애굽 1세대가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광야에서 초기에 여호와께 징벌을 받아 모두 사망하였다. 오늘 본문의 신5장의 내용은 그 후손들이 광야교회 생활 38년을 지나고 가나안에 입주를 앞둔 시점에서, 모세에 의하여 다시 받는 말씀이었다. 

 

-모세도 이 십계명을 불 가운데 계신 분에게서 받았다(행2:3 참조). 하나님과 그들 조상 사이의 중개인으로, 시내 산으로 자신을 부르신 여호와께로부터 직접 받은 말씀이었다(4-5절). 그러기에 모세는 이 계명이 현재 살아있는 후손인 그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言約)임을 강조하면서(3절), 그러기에 더욱 그 규례와 법도를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하라고 촉구하였다(1절).  

 

-말씀의 핵심은 둘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7-15절) 네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 사는 것이다(16-21절 참조). 이 십계명은 불후의 진리이며, 예수께서도 인정하신 영생의 절대 조건이 된 말씀이기도 하다(눅18:18-21절). 

-다만 출17장의 십계명에 비하여, 모세는 안식일 계명 속에 사회적 약자보호 차원을 가미하여 사회적 성격을 강화시켰고, 애굽의 고난에서의 해방과 연계시키면서(15절)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 밑받침했다(막2:27). 그리고 마지막 계명인 10계에서는 출20장의 이웃의 소유 중, 탐내지 말아야할 대상을 ‘아내’를 ‘집’의 앞에 두면서, 아내의 인권과 보호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했음이 주목된다(21절,출20:17참조).

 

 

o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고별 설교의 내용인 복음서 본문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담은 내용이다. 예수께서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셔서,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잘 듣고 지켜 행하는 무리들이 되고 사랑받는 자들이 되게 하시겠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행2:1-4 참조). 

 

-주님이 거론하신 성령 보혜사는 누구이기에, 그를 제자들의 후견자로 보내시겠다고 하셨나? 

보혜사는 ‘파라클레토스’(헬)로서, ‘변호사’ ‘조력자’ 원조자‘ ’위로자‘등의 다양한 후견인적 능력을 보유하신 분이시다(16절). 그는 한번 오시면 영원히 함께 계실 분이시라는 점에서, 주님은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은 결코 외로운 고아(孤兒)처럼 되지 아니하리라고 보셨다(19절). 무엇보다도 성령은 본체가 진리의 영이어서, 죄악 된 세상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분이고, 오직 예수를 아는 사람들과만 함께 하시고, 그들 속에 계실 분이시다고 안내하셨다(17절). 

 

-예수님의 신뢰는 제자들이 아니라 성령이셨다! 그것은 성령이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당신이 말씀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참 도우미이시기 때문이었다(26절). 그러기에 제자들은 오직 주님이 보내실 성령을 충만히 받는 일이 중요했다! 그러면, 말씀의 영인 성령이 그들을 주관하시면서, 주님이 그토록 반복하여 요구하셨던, ‘주의 계명을 지켜 행하라’는 그 요구를 능히 수행할 제자들이 될 것이었다(15,21,23-24절 참조). 그렇다. 성령 안에 거하면, 제자들은 세상이 주는 모든 두려움과 염려를 극복하면서, 주님이 주신 사랑과 평화를 누리며 주의 말씀인 복음 전파에 전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 주님의 약속과 언약에 따라, 오순절인 오늘, 그 보혜사가 오신 것이다! 그러면서 그 성령을 대망하며 기도하던 이들 속에 각각 들어가셔서, 그들이 받았던 주님의 말씀들을 전하는 증언자들로 인생의 새 출발을 시작하게 하셨다. 지구촌의 지각변동이 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O 마침 오늘 성령강림주일은 우리 총회가 도시.농어촌 선교주일로도 지킨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선교하는 이들로 살자는 것이다. 선교는 성령이 오셔서 시작된 말씀운동이며 하나님 나라 확장운동의 매체이다. 부디 나부터 성령 충만하여 우리 교회가 보다 선교하는 교회로 더 나아가게 하자. 나부터 선교인이 되어, 내 안에 계신 예수의 꿈과 생명을 활발히 펼쳐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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