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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10)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평화통일주일

관리자 2020-08-04 (화) 23:57 3년전 825  

본문) 롬 3:21~31, 출 12:51-13:10, 눅 18:9-14

 

어느 덧 성령강림 후 열 번 째 주일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매우 수상하고 예사롭지 않다. 코로나19의 판데믹으로 지구촌 전체인 오대양 육대주가 대규모 홍역을 앓고 있는 중에, 이번에는 기상 이변으로 인한 각종 재앙(災殃)들의 공습까지 받고 있다. 내용과 상황만 보면, 지난 주일에 우리가 이사야를 통하여 들었던 증언, 곧 유다 왕국이 여호와께 범죄하여 매를 맞아서 얻었던 참상들과 그 국면(局面)이 흡사하다. 어떤 모습이었던가?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인데, 그것도 치유 받지 못했다. 게다가 땅은 황폐하였고 성읍은 불에 탔으며 토지는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시온 예루살렘만 참외 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처럼, 겨우 남았다’(사1:5-8참조). 

 

지금의 우리 모습이 겨우 살아남은 그곳처럼 됐다는 느낌이다. 각종 보고서들에 의하면, 이번 코로나 재앙은 세계 전체의 경제적 기반을 대거 주저앉혔다.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가릴 것 없이 기득권의 정치지도자들의 기반도 무너지고 있다. 거기에 중국과 일본과 아시아 일대를 덮쳤던 폭우재앙이 이번엔 우리에게까지 큰 피해를 안겨 주었다. 미국 동부에는 하리케인의 공격으로, 서부에는 대형 산불로 극심한 피해를 당하고 있다. 얼음의 땅인 시베리아에서까지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앞에는 본격적인 태풍시즌까지 임박했다! 

 

실로 피할 곳이 없다는 느낌이다. 이런 때, 우리는 시선(視線)을 어디에 두어야할까? 삶의 지침을 어떻게 설정하고 지내야 할까? 그래도 우리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 따라서 생명의 주이신 그를 붙들고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서 우리의 삶을 조율해야 하겠다(출13:9참조). 마침 이번 주간에는 우리가 8.15 제75주년 해방일도 맞이한다. 36년의 일제 식민지 백성의 서러움과 치욕을 씻어낸 해방절을 맞는다. 

 

마침 오늘의 세 본문들은 해방절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은총(恩寵)의 해방절>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 해방절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이며, 거기에 적합한 행동까지도 요구하신다. 본래 해방(解放)이란 무엇인가? 불의한 속박과 굴레에서부터 자유(自由)를 얻어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육체적 해방과 함께 죄와 저주에서 벗어난 영적 해방도 함께 기념하게 된다. 

 

해방사건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들이 담겨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오직 하나님만이 제공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의(義)를 그 사건 속에서 생생하게 맛보는 일이다. 얍복의 사나이 야곱이 밤샘기도를 통하여 뜨겁게 맛보았던 하나님의 그 의, 그로 인하여 얽힌 천근만근의 생존의 위기(危機)를 결국 고요한 바다 위에서의 순탄한 항해처럼 감격스럽게 헤쳐가게 되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맛보는 일이다(창32장). 그 경험 속에 인간은 결국 대 변화를 경험한다. 

 

사도 바울은 그 하나님의 의를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맛볼 수 있음을 말한다(21절). 하나는 율법(律法)을 통해서이다. 비록 인간이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한계는 있지만(23절), 율법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결코 폐기될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달려서 우리 죄를 대속(代贖)하게 하시므로, 영원한 화목(和睦)제물로 삼으신 사건을 통해서이다(24절). 이 둘(율법과 복음)에는 모두 하나님의 의가 가득히 담겨 있다.

 

바울도 유혹에 연약한 인간이 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율법임을 인정은 하지만, 율법의 폐기론자는 아니다. 오히려 바울은 복음의 뼈대가 되는 율법이 가진 순기능적 입장을 주목한다(31절). 예수님도 율법을 폐기하러 오시지 않고, 완전하게 하러 오셨잖은가!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율법 세력들보다는 더 나아야만 한다고 강조하셨음을 기억하자(마5:17-20 참조). 

 

그런 측면에서 오늘의 세 본문을 다시 보자. 구약은 이스라엘의 해방절에 담긴 하나님의 의와 축복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며 그 가치를 지켜낼 것인지를 증언한다. 서신서는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힘입어 영적 해방을 받고 살아가는 자들이 품어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다. 복음서는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의와 인정을 받는 올바른 길을 안내한다. 누가 실패하고 누가 성공하는 지를 명료하게 전한다. 

 

구약을 보자

본문은 이스라엘의 해방절인 출(出)애굽의 날인 유월절을 맞이하면서, 그 사건을 잊지 않고 기념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어떻게 최상(最上)의 상태로 보존하고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방안들을 우리에게 풍부하게 전한다. 제국(帝國)으로부터의 해방이란 비슷한 처지와 경험을 가졌던 우리들에게도 이 증언은 매우 적절한 규범과 지침이 될 말씀이리라. 

 

1) 가장 중요한 첫 작업은 그들의 해방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주도하여 내신, <은총(恩寵)의 해방(解放)>이었음을 선언한 일이다! 이는 어느 탁월한 위인이나 영웅이 주도한 일이 아니라, 역사의 주이시고 약한 자의 신음과 기도에 응답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홀로 주관하셔서 이루어내신 대 사건이었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 해방 사건의 표현을 이렇게 세 차례에 걸쳐서 올렸다. -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라’(12:51,13:3,9).  

 

☞ 이런 강조가 왜 중요한가? 이것이 외면되거나 무시되면, 인간들 영웅 만들기가 조작되거나 형성되면서, 해방의 주도 세력을 두고 국론이 분열되고 민(民)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마치 우리나라의 해방사 이후가 더 불행해졌던 것과 흡사한 일이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추앙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지역이나 이념이나 사상도 갈라지는 등의 분열도 잇따르기 때문이다. 

 

☞ 해방 후 우리의 사정을 보라. 해방의 주도세력이 중구난방하며 이승만과 김구, 이승만과 김일성, 친미파와 친소파와 친일파 등으로 갈가리 흩어지다 보니, 우리 역사는 너무도 혹독한 대가들을 치러왔잖은가! 그런 흐름이 이스라엘에게도 발생했다면, 그들 역시 모세의 영웅 만들기가 발생했을 것이고, 12지파들도 패권 분열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결과는 어떨까? 출애굽의 구원사적 의미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출현도 불가능했으리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앞장세워 백성들의 흩어지기 쉬운 마음들을 출애굽 해방의 주도자를 여호와 하나님 한 분에게로 집결시키고, 또 엄격한 율법과 규례를 세우면서, 하나님의 주권도 세우고 역사도 살리며, 모세 자신도 살고 모두를 하나 되게 하였다. 우리가 못한 일을 이스라엘은 신앙의 틀로 해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으로 인한 홍해 도강한 사건이 은총의 해방이 된 연유이다. 

 

2) 무교절(the Feast of Unleavened Bread)이란 절기를 만들어서 매년 지키도록 했다. 그들의 해방 전승을 후손들이 매년마다 잇게 하고,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의 윤리와 품위를 보전하게 하였다. 그 때는 아빕월(니산월)로, 우리나라의 3-4월에 해당하면서 땅의 소출을 수확하는 절기였다. 따라서 이 무교절에는 땅의 소출인 보리의 소산으로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구속자인 ‘고엘 여호와’의 은총의 해방을 정기적으로 축하하며 기념하게(라코르.히) 하였다. 

 

3) 그러면 무교절에 엄수(嚴守)할 절기용 규례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가? 두 가지 있었다 :

첫째는 태(胎)에서 나온 모든 처음 것들을 다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게 하였다(2절). 그것은 그들이 출애굽 전날 밤, 여호와의 손이 전체 애굽의 초태생(初胎生)들을 치실 때에, 유독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은, 그것도 당신이 지시한 어린 양의 피를 집 문설주에 발랐던 이스라엘의 가정만은 면제되면서 구원을 받게 된 은총에 대한 응답의 표지였다(출12:29-30참조). 그게 유월절(pass-over)의 기원이 되었고, 여호와께서는 그 때부터 이스라엘의 모든 초태생들을 당신의 것(소유)으로 간주하셨다(2절.하). 

 

그때부터 이스라엘에는 모든 생명 있는 처음 것들을 여호와께 성별하여 떼어서 드리는 거룩한 신앙 전통(콰다쉬) 첫 열매 신앙이 본격화되었다. 첫 열매 신앙에는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의 손에 넘겨드린다는 복종의 의미도 담겨있다. 당시 고대사회에는 초태생인 장자의 특권이 매우 강고했는데, 그러기에 이 초태생을 하나님께 드림은 그런 인간적 주도권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를 주어서, 결국은 장자는 물론 남은 전체까지도 주께 드리는 파급을 유발했다고 보인다. 

 

둘째는 전체 백성들이 이레 동안 누룩이 있는 유교병을 피하고 무교병만 먹게 하였다(3-6절). 여호와께서 당신의 땅에서 일체의 누룩을 보이지 않게 하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무교병은 지름이 20-50cm, 두께는 1cm 정도를 유지하는 둥글넓적한 빵이다. 평소는 그 안에 누룩이란 발효액을 주입하여 덩치를 부풀려 먹었는데, 오직 무교절기에는 누룩이 제거된 통빵인 무교병만을 먹게 하셨다. 무슨 뜻이 그 안에 담겨 있을까? 비(非)인위적이고 순수하며 자연적이고 본래적인 모습을 보이는 절기로 삼았음이다. 특히 그곳 토속 신인 바알(Baal)을 배제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땅과 먹거리를 주시는 진짜 생명의 주인으로 모두에게 각인(刻印)시키는 기회가 되게 하였다. 

 

결국 무교절기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명절 전날에는 집안의 누룩을 완전히 제거하는 때라는 전통을 세웠다. 후에 예수님은 거짓과 잘못된 교훈들을 주는 모습을 누룩으로 비유하며 경계하셨다(마16:12). 사도 바울은 이 누룩을 전염성이 있는 온갖 죄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면서, 교회 안에 침투해 있는 모든 죄악상을 청소해 내는 기간으로, 이 무교절기를 활용하도록 권면하기도 하였다(고전5:6-8, 갈5:9참조). 절기가 주는 신앙적이고 생산적 힘들을 엿보게 한다. 

 

서신서를 보자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제공된 또 하나의 <은총의 해방>에 대하여 증언한다(21절). 여러분은 자신의 영혼이 범죄의 늪에서부터 해방된 날을 기억하는가? 무엇으로 해방되었음을 말할 수 있는가? 그런 점에서 아무래도 각자가 받은 물세례는 매우 중요한 모멘텀(momentum)이 될 것이다. 이제 사도 바울이 전하는 놀라운 증언들을 경청하자. 

 

내 영혼 해방의 경위는 이렇다. 본래 죄인인 나는 마땅히 죽음의 형벌을 피할 수 없었으나,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연약한 나를 불쌍히 여기시므로서, 그 무거운 형벌을 나에게가 아니라 그의 독생자이신 예수에게 돌려서 형벌의 자리인 십자가에 매달려 대속(代贖)과 속죄(贖罪)제물로 죽게 하셨다. 나는 그 속죄의 피의 은혜를 그의 이름으로 받은 물세례를 통하여 경험했다. 내가 죄의 옛사람으로는 죽고 예수의 피로 씻음 받은 새 사람으로는 살아났다(롬6:1-11절참조). 그 바람에 나는, 저 출애굽 직전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여된 죽음 면제의 은총처럼-, 저주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다! 곧 저 십자가에서 품어 나온 하나님의 대체 불가능한 의(義)가 나를 은총의 해방과 구원을 입고 살아가게 하였음이다(롬1:17). 

 

그 십자가 대속에 의한 해방의 은총은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이 제공된 것이며(22절), 값없이 제공된 것이다(24절). 그런 은총의 해방을 수혜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딱 하나뿐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은혜가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한 화목제물이었다는 사실을 믿고 인정하며 시인하는 일이었다. 그런 나의 믿음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의로우심이 인정되었음을 확인하시면서, 또한 시인하는 우리도 함께 의롭게 되게 하시었다(25-26절). 

 

이제 바울은 그 해방의 은혜를 받은 자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자문자답(自問自答) 한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 없다’(27절), 이것은 우리가 받은 해방의 은혜는 오직 믿음에서 얻은 하나님의 의로우심 때문이지, 나의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27-29절). 이 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은혜로 해방되고 구원받아 사는 우리에게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할 지에 대한 요긴한 지침을 준다 -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겸손과 감사의 삶을 살라’

 

복음서를 보자

예수님은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는 두 사람의 모습과 내용을 대비(對備)시키면서, 믿는 자 중에서 누가 하나님으로부터 의(義)롭다 하심을 받게 되는지를 밝혀 주셨다. 

1) 첫째 사람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인 바리새인이었다. 그의 기도는 이랬다 - ‘하나님이여 나는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11절). 

☞ 그의 기도에는 온통 자기 자랑과 우월감으로 가득 찼다. 하나님에게도 자기 자랑만 늘어놓아서, 구할 것이 없었다. 하나님의 도움이 전혀 필요치 않은 상태였고, 기도가 무언지도 아예 몰랐다. 그 바람에 비록 많은 좋은 일을 행하고도, 주님의 외면을 당하는 불쌍한 자가 되었다. 

 

2) 둘째 사람은 세리(稅吏)로서, 죄인 의식이 가득하여 멀리 서서 눈도 못 들어 하늘도 쳐다보지도 못한 체, 가슴만 치며 이렇게 고백하였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3절).  

☞ 그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고 죄를 자백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자비를 구하는 바람에, 죄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넘치는 의를 받아내는 큰 복을 받았다(14절). 믿음으로 사는 의인의 반열에 들었다. 

 

결론이다

우리는 해방의 은혜를 크게 받은 백성들이다. 민족적으로도 해방을 받았고, 개인적으로도 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죄악에서 구원 받은 영혼의 해방도 받았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의 선물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이제 해방과 자유를 안겨주신 은혜의 여호와께 감사하며 응답하며 살자. 부패와 거짓 없는 무교병 인생이 되자. 

 

해방의 절기를 무교절 차원으로 지키는 교회와 성도가 되자. 이 세상과 생명 모두의 주도권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고 시인하며, 첫 열매 신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자. 예수의 십자가의 피로 해방 받은 자답게, 오직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낼 겸손한 자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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