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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7)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관리자 2022-10-11 (화) 23:39 2년전 1035  

본문)  수 24:14~28, 요 15:18-27, 행 3:22-26


창조절 일곱째 주일이다. 최근엔 가을답지 않게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이는 기후변화의 징조이다. 가을은 가을인데 한편으로는 아열대성 기온의 영향도 받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태풍 이야기도 계속 들려오잖은가! 게다가 마스크 착용도 크게 이완이 되고 감기의 면역력마저 약화된 상황에서, 겨울맞이는 우려가 크다. 코로나와 독감의 겸치기 공세가 예상된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 예방주사를 잘 맞으시고, 마스크 착용도 잘하여 감기에 잘 대처하시기 바란다. 


위기는 무엇이든지 확실할 때보다도 어정쩡할 때에 온다. 환절기에 조심하라는 말은 그래서 이유가 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문재인식 정치구조에서, 윤석열식 정치구조에로의 격변하는 중인데, 이로 인해 염려되는 일들이 많다. 자유를 계속 외치면서도, 그 자유가 누구를 위한 자유인지에 대해서는 답이 안 나오는 윤석열식 정치에, 지금의 국민들은 깊은 혼란에 빠져 들었다. 벌써 탄핵 문제가 나오고, 그를 옹호하는 대규모 집회까지 나올 정도로 양분이 되었다.  


지도력의 약화는 전체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 지금의 정권은 국민의 미래와 안정을 타개할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 체, 이전 정권의 허물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책임을 묻는 일에만 골몰하는 느낌만 준다. 물론 과거의 문제는 따져야 한다. 하지만 대책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체 그런 과거만을 묻는 일에만 몰두하면, 그것은 불행이다. 대책도 그렇다. 자체의 역량과 능력의 결집이 아닌, 강대국에 매달리고 그 힘과 도움만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은 어리석음이다.


이런 와중에는 특히 지도자들의 처신과 백성들의 협력이 중요하다. 초기 이스라엘도 큰 지도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나라와 백성이 긴장과 혼란의 격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가나안 입성을 앞둔 모세의 마지막 때도 그랬지만, 오늘 본문에 나타난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의 마지막 때에도 그런 흐름이 나온다. 늙은 지도자 여호수아가 머잖아 세상을 떠나게 될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은 깊은 불안감에 휘말려 있음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를 타개(打開)하기 위하여, 오늘의 세 본문들은 그 때의 지도자들이 혼란에 빠져든 백성들과 추종자들에게 어떠한 대책과 메시지를 주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예수님은 십자가와 이별을 앞둔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영적 혼란에 빠져든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각각 어떤 생각과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지를 밝히는 내용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이 시대에 줄 교회의 메시지는 진정 무엇일까?  


구약의 여호수아는 백성 지도자들을 대거 세겜(Shechem)에 소집하면서, 예전에 모세가 모압에서 취했던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언약 체결을 본받아(신29장 참조), 그들을 여호와의 신앙으로 언약(言約)을 맺게 함으로서, 그들의 불안 속에서 이완(弛緩)된 마음들을 다시 여호와의 신앙 중심으로 하나가 되도록 이끌어 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복음서의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그리고 제자단의 독자적인 행보를 앞두고, 그들에게 밀어닥칠 세상의 공세의 내용과 그에 따른 대처 방안을 매우 심도 있게 제시해 주신다. 여기에서는 그들을 향한 세상의 미움과 배척을 어떻게 보고 이해해야할 것인지를 일깨우신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극복책도 예수가 미리 당하신 것을 알면, 얻게 될 일이었다.  


그런가하면 사도행전의 사도 베드로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이어진 부활사건에 따른 예루살렘 주민들이 영적(靈的) 대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그들이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어떻게 마음을 추스르고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제시한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선지자들이 일관되게 가리킨 한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며, 그의 말을 듣고 돌아올 것을 역설하면서 그 혼란을 수습하고 교회 공동체의 출현도 견인해낸다. 


지금은 성령이 세우신 교회의 시대이다. 성령은 세상과 만민의 구원을 교회 공동체에게 맡기셨다. 그렇다면, 이 혼란과 격랑의 파고에 흔들리는 이 백성들에게, 우리 교회는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외칠 것인가? 우리의 대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게다가 지금의 순리를 거스르는 위선 세력 중에는, 전광훈 같은 거짓 목사요 선지자들과 그를 추종하는 맹신자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저들은 분명 창조 질서와 영적 질서를 파괴하는 세력들이다. 


1. 구약 / 수 24:14-28 /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나이 110세를 마감할 순간에 다다른 여호수아(29절)의 자기 백성들을 향한 마지막 행보(行步)는 세겜 대회를 개최하여, 그의 선임(先任)이었던 모세가 보여 주었던 모습처럼(신29장 참조), 하나님과 자기 백성들이 다시금 믿음의 언약(言約)을 체결하여서, 백성들의 마음과 몸을 여호와께로 묶어두는 일을 매듭 짓게 한 일이다.  


그가 본 백성들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매우 불안정했고, 자의반타의반 형(型)의 믿음이었으며, 언제든지 여호와께로부터 등을 돌리고 또 다시 그의 조상들처럼 배신의 역사 속으로 휘말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16,23절 참조). 게다가 자신이 떠난 후에는 어떤 변질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있었다. 따라서 무언가 미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긴박감이 결국 그를 그곳에 있게 하였다. 


1)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요구한 첫 일성은 여호와를 섬기는 그들의 마음과 자세를 향한 것이었다 -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우상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1절). 

이 부분이 왜 그리 중요했나? 하나님이 바로 온전하시고 진실하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분을 섬긴다는 자들이 부실하고 형식적이며 위선적이게 되면, 그것부터가 양측의 교제를 막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예배자의 기본적인 태도와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2) 여호수아는 그들의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예배자의 태도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를 단호하게 짚는다. 바로 이방 신(神)들이 준 영향이 그들의 신앙을 그토록 어지럽히고 있음으로 본 것이다(15절). 그들은 애굽에서는 물론, 이곳 가나안에 들어와서도 이방 신들을 숱하게 접하면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크게 받은 듯하다. 그러면서 하나로만 알던 신, 여호와를 향한 진정성과 신실성도 적잖이 흔들린 듯했다. 또 일부는 이미 우상들에게로 기울기도 했다고 보았다. 


3) 그러면 그들의 잘못된 신앙의 내용은 어떤 것들일까? 여호수아가 지적한 내용을 먼저 보면 알 수 있다(23절). 여호수아가 지적한 내용을 보면, 그들은 이미 이방 신상들인 형상(形象)들이나 부적(符籍)을 집안에 설치해 놓거나 소지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 모습이기에, 집안에서는 우상을, 밖에서는 여호와를 섬기는 이중적인 모양세를 취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23절, 신32:15-18, 창35:2 참조). 사정이 이런데, 어찌 그들이 여호와를 진실히 섬길 수 있겠는가?  


4) 이에 여호수아는 그들의 단호한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며 나왔다. ‘이제 너희가 섬길 자를 택(擇)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15절). 이런 지도자의 선언에는 무슨 메시지를 담겼을까? 결코 개인적 고백일 리가 없다. 여호와를 향한 집단적 고백을 견인하고자 한 것이고, 이를 거부하는 자들과의 단절도 불사하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자신들은 우상들과 혼합종교를 이루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5) 최고 지도자의 진정어린 고백에 압도된 백성들은 결국 집단적 고백도 올린다.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습니다’(16절). 그러면서 그들이 수확의 첫 열매를 드리면서 올리던 신앙고백을 또 다시 반복하며(신26:5-9참조), 여호와께서 그 동안 자신들과 조상들에게 행하신 일들을 열거하고,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지도자에게 맹세하고 나왔다. 

☞(우리와 조상들을 인도하시고, 올라오게 하시고,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보호하셨고, 이방족을 쫓아내셨음을 고백하면서,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나’며 반복해서 약속했다(17-21절) 


6) 그러면서 지도자의 지적에 따라, 그들은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며,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한 후(25절), 그들은 자신들과 세겜에서의 큰 돌을 증인들로 세우기도 했다(22, 26-27절 참조).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그 돌이 증거가 되게 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었다.  


2. 복음서 / 요15:18-27 /  “ 세상이 너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 ”


본문은 제자들과의 이별을 앞둔 예수님의 고별사(告別辭)의 일부이다. 홀로 남게 될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한 동안 미움과 배척을 당하면서 지내게 될 어려운 상황을 예측하며, 제자들을 미리 무장시키려고 주신 말씀이다. 그들은 버림을 당했다거나 고아가 되었다는 피해의식에 빠져서는 안 되는 무리들이다. 다만 닥쳐올 시험과 도전을 대처할 시선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세상의 공격에 대한 영적 대처를 잘 할 수 있다. 본문은 그런 제자들을 위해 주신 말씀이다. 


1) 주님은 당신의 고난 이후, 당신을 죽인 세력들이 제자들까지도 괴롭게 하리라고 보셨다. 주님은 그 점을 제자들에게 미리 알리셨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미움과 박해를 받을 때, 제자들이 세상이 자기들에 앞서 주님을 미워했었다는 점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18절). 주님이 자기들을 세상에서 뽑아내서, 세상에서 예수께로 소속이 옮겨진 일 때문에, 세상이 예수와 함께 자신들도 미워한다고 보는 일이 중요했다(19절), 그 일이 예수와 제자를 묶어준 열쇠이다. 


2) 이 점은 성도의 세상 안에서의 위치도 잘 설명해 준다. ‘세상 안에는 있으나’ ‘세상에는 속하지 아니한 존재’가 바로 성도이다(19, 17:14-16참조). 그러기에 세상은 성도를 자기 사람으로 생각할 수 없기에 더욱 미워한다. 성도가 되어 육체의 정욕이 아닌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기에 더욱 미워한다(엡2:2-3, 갈5:16-18,25 참조). 


3) 만일 여호수아 시대의 이스라엘처럼, 여호와도 믿으면서 우상과 이방 풍습도 쫓아 살면, 그들은 세상의 미움을 결코 받을 리 없다. 도리어 세상의 사랑만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오직 예수만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좇으면, 세상은 예수의 종된 자들을 향해서도 참지 못한다. 예수를 미워하고 배척하듯, 그의 제자 된 자들도 미워하고 배척한다(20-21절 참조).  


4) 예수께서 행하신 말씀(22절)과 일(24절)은 그의 신성(神性)을 충분히 증명한다(7:16, 17:10,25,37,38 12:29참조). 그러므로 그를 믿지 않는 자들의 죄(罪)는 핑계할 수 없다(24절). 세상은 예수를 거부했고, 예수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요청과 제의를 불신앙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3:18, 16:9참조). 여기서의 유대인들은 이러한 신(神) 적대적인 세상의 대표자로 나타난점을 주목하자(25절, 시35:19참조). 


5) 이 점에서도 예수께서는 자신과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고난을 함께 당할 일에 대한 증언할 자들임을 밝히신다. 이는 앞에서 여호수아가 세겜 언약을 체결하면서 세운 두 증인들인 백성들 자신과 성소 곁에 세운 큰 돌의 역할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수24:22,26-27 참조). 이 둘은 누군가? 한 분은 당신이 아버지로부터 보내실 보혜사(保惠師-the Comforter) 성령이시고, 나머지는 예수와 처음부터 동행했던 제자들 자신이다(26-27절). 


☞ 증인과 증언자들이 계속 나타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과 행실을 입증해줄 증인 말이다. 성령과 또 다른 증인이 필요함을 본다. 심판대에서 나의 증인될 이들은 진정 누구일까?


3. 서신서 / 행 3:22-26 /  “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으라 ”


본문은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 사람들을 향하여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그들의 주(主)로 영접하고 그에게 돌아올 것을 권유하는 내용이다. 사실 이 일은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대 전환과 회개를 유도하는 일이어서, 매우 의미가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들은 본래 예수가 누군지도 잘 모른 체, 미워하고 저주하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죽도록 힘을 모았던 가해자들이었기 때문이다(3:17참조). 그런 그들에게 베드로는 예수가 누구신지를 알리는 일에 전력을 쏟았다. 


1)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가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보내시고 세우실 분으로 약속했던 분이 있었음을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면서 증언했다. 모세를 통해서도 예고하셨고(22절, 신18:15), 사무엘을 비롯한 모든 선지자들도 그의 때를 예고하였으며(24절), 심지어는 그들의 원 조상인 아브라함에게도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희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예고하셨던 대상(창12:3,22:18,26:4,28:14참조)이 바로 이 부활하신 예수이셨음을 역설했다(24-25절).  


2) 그러면서 베드로는 그들이 바로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손들임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이 이제는 마음을 돌이켜 악함을 버리고 그 언약의 자손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하며, 그의 말을 들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하였다. 이 증언으로 사도는 그들이 최후로 할 일이, ‘돌아와 그의 말씀을 듣고 복종하며 사느냐’에 달려 있음을 전했다(22-23절). 이는 그 일이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관문(館門)임을 통보한 내용이어서(26절), 그만큼 구원열매와 교회시대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되었다고 본다.

    

o 위기에는 지도자의 자세와 말, 그리고 신뢰와 믿음을 보여주는 모습이 매우 중요하다. 무엇이 위기를 벗어나고 모두에게 구원을 안겨줄 것인지를 분별하게 하는 말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이 새롭게 정착한 가나안에서의 뿌리내리는 일에서 보여준 여호수아의 모습, 유대교의 억압과 낡은 굴레를 벗어나 구원의 세상을 열기 위한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제자들을 무장시키신 예수님, 그리고 강한 죄책감과 영적 혼란의 터널을 벗어나 교회공동체의 새 싹을 발아시키는 순간에 보여 준 사도 베드로의 강력한 증언, 이 모든 것들이 생명과 역사의 축을 세우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이제는 우리의 시간이다. 이런 영과 지도력이 이제 깊은 혼란에 들어간 우리나라와 교회들에게 임하도록 간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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