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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6)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2-10-03 (월) 15:01 2년전 913  

본문)  신 26:1~11, 눅 12:13-21, 고후 9:6-15 


창조절 여섯째 주일이다. 10월이 활짝 열리면서, 전 국민의 단풍 나들이 역시 본격화되고 있다. 년 중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미(美)를 즐길 수 있는 때이다. 성도들도 부디 즐거운 시간을 향유하시기 바란다. 아울러 이때는 지난 봄 부터 시작된 농산물의 추수(秋收)기이기도 하다. 땀 흘려 수고한 대가를 거두는 기쁨의 계절이란 말이다. 투자에 대한 소출을 거두게 되면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때라서, 우리는 또 다른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한번 새롭게 생각해볼 일이 있다. 곧 사람이 언제 자신의 참 모습이 드러날까? 일할 때일까, 소비할 때일까? 돈 벌려고 힘쓸 때일까, 번 돈을 쓰려는 때일까? 물론 어느 양쪽 다 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선택 차원에서 보면, 그 사람의 사람됨과 성숙성을 보여주는 일은 아무래도 후자인 경우가 확실하다. 소유하려는 때에는 그곳에 몰두하지만, 관리에 들어갈 때에는 그 자신이 누군지를 주변에 노출하기 때문이다. 


마침 오늘 주일에 주시는 세 본문 말씀들은 소유(所有) 과정에 대한 문제보다는, 소유한 것에 대한 관리(管理) 차원에서 필요한 행동들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곧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소유보다 관리에 훨씬 더 신경을 쓰면서 살아야 한다는 점을 전하고자 하신 말씀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네가 얼마나 가졌느냐’라고는 묻지 않으신다. 대신 ‘네가 가진 소유를 어떻게 썼느냐’라는 점은 매우 예민하게 물으신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의 소유물 관리에 그토록 관심하실까? 귀찮게 하시려고 그러시나? 아니다. 소유물 관리를 잘하는 자에게는 더 큰 축복을 부여하고 싶으신 까닭이다. 반면에 관리에 허술하거나 소유를 불의하게 죄 짓는 도구로 사용하는 자에게는 그 주신 소유물까지도 회수(回收)하시려고 하심이다. 따라서 우리는 소유와 관리에 대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부자가 되려는 마음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왜 부자가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哲學)과 준비성(準備性)이 없으면, 그의 소유는 그를 복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불행하게 하고 저주가 되게 한다. 그것도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두에게까지도 불행하게 한다.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소유가 없게 가난하게 사는 것이 그에게 축복일 수 있을 것이다. 욕심만 가지고는 안되는 게 인생이다. 관리 능력을 잘 갖추어야 복 받은 자 된다. 


요즈음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의 무능(無能) 문제가 심각하다. 선거전에서는 그토록 이전 정부를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라고 규탄하면서 자신이 집권하면 새 세상이 열릴 것’처럼 목 놓아 외친 자였는데, 정작 국민이 기회를 주니까, 지금은 국민들의 걱정거리로 전락해 버린 인물이 되었다. 말과 입까지 거칠어서 외국에까지 나가 거칠 욕설을 내뱉다가, 수습이 안 되는 지경에까지 떨어졌다. 그것은 이 사람이 소유만을 집착하고, 관리력은 허탕이었기 때문이다. 


본문들을 보면, 구약 신명기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천신만고 끝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첫 번째 소출을 거두게 되자,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며 살 것인지를 안내한 내용이다. 그 땅의 첫 열매(맏물)를 가지고 그 땅을 안겨주신 여호와께 나아가 감사와 영광을 드리고, 집에 와서는 그 받은 복들로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과 기쁨을 나누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는 받은 복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하는 일에 사용하는 삶의 자료가 되게 하도록, 우리들에게 샘플로 제시한 것이다.    


복음서는 소유문제는 가족 간에도 갈등을 불러오는 것임을 말씀하면서, 어느 부자의 소유의 관리에 대한 어리석음을 통하여, 재물이나 소유는 자기 위해 쌓아두고 살아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요한 삶의 자료가 되게 해야 됨을 일깨우신다. 서신서는 하나님을 향해 부요한 삶의 모범으로 교회의 구제와 모금 행위를 소개한다. 이 모금은 주는 자에게는 의의 열매로, 받는 이들에게는 제공자를 위한 감사와 축복을 함으로써, 상호간의 유익을 안겨줌을 말한다.  


1. 구약 / 신 26:1-11 / “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하라 “ 


본문 전반적 내용을 보면, 온통 하나님께 드리는 일들로 가득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도 공들여 거두어들인 토지소산의 맏물(첫 열매)를 드리는 일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심해서 살펴보아야 된다. 왜 그렇게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 강조되고 있는 지를 말이다. 사실 우리의 현실적 삶에서도 거주지라든지, 직업을 위한 공간들을 이용할 때에는 제법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며 살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런 하나님께 바치는 일도 훨씬 이해하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이해를 위해서 우리는 본문 중에서,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이란 표현이 계속 강조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무려 6번이나 언급되었기 때문이다(1,2,3,9,10,11절). 이는 무엇을 뜻할까? 인생이나 생명 자체도 그렇지만, 땅이나 집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임을 기억하며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알고 보면, 우리의 노력이나 수고는 마치 다 차려 논 밥상에 우리의 숟가락 얹어놓기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귀한 것들을 제대로 누리고 살려면, 무감각하게 받아 누리려고만 하지 말고,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보답 정도는 응답하며 살아야, 비로소 주고받은 것도 소중하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공짜로 받았으니, 내 맘대로 써도 된다’고 판단하며 사는 인생은 금방 황패해진다. 하지만 주신 분의 뜻을 헤아리며 보답하려는 의식을 갖고 살면, 그로 인하여 다소의 수고가 따르더라도, 그 인생은 훨씬 건강하고 탄탄해 진다. 


오래 전, 일본 유학시절 학교 기숙사에서 함께 동숙한 젊은 일본인 인턴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동경에서 의사인데, 그 친구는 항상 ‘나는 어서 돈 벌어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도움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 속에 살고 있었다. 큰 충격이었다. 우리 한국인의 입장과는 너무 다른 인식을 가진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비의 것들을 거져 받으려하지 않고, 반드시 갚아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너무도 놀라웠기 때문이다. 공짜의식과 보상의식, 그 뒷심은 누구에게 있을까-? 


모세는 약속의 새 땅 가나안에 들어가 살게 될 이스라엘 백성은 언제나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며, 경배(敬拜)드리는 인생들이기를 강하게 요구했다. 그와 동시에, 받은 소출의 복을 어려운 이웃들(레위인,나그네 등)과도 그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며 살기를 권하였다. 그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땅과 소출과 해방의 복을 내려주신 일을 복되게 받는 일로 보았고, 자신들의 애굽에서의 고단했던 노예생활도 승화(昇華)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1) 여호와께서 주신 땅에서 거둔 소산의 맏물(첫 열매) 처리는 매우 중요했다. 본래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고 하신 분은 여호와이셨다(출13:2,신15:19 참조). 하지만, 본문에서 보면, 그 첫 열매의 대상이 생산된 땅의 곡식(穀食)에 까지도 확장된 것을 보인다(2,10절).  


2) 하나님께서 장자, 첫 열매, 맏물에 대한 당신의 주권을 그토록 강조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맏물을 제사장에게 넘기면서 여호와께서 자신들에게 베푸셨던 출애굽의 은혜(恩惠)와 그 후 40년의 광야생활을 통한 인도(引導)하심 등을, 잊지 않고 기억(記憶)하며 사는 백성들이기를 바라심 때문이다(2-10절 참조). 그래서 오직 유일하고 참 신인 여호와를 사랑하며 그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무리들이 되기를 바라신 까닭이다. 그때부터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사실상 ‘네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음’을 훈련시키신 것이다(눅12:34 참조)


3) 특히 맏물을 성별시키심은 맏물이 유독 매력적이거나 탐(貪)나서가 아니다. 그 보다는 맏물은 그 후에 태어난 모든 형제나 후대들의 머리요 그 집안과 가족의 상징적 존재이기에, 그 영향력도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호와의 맏물에 대한 주권행사는 나머지 모두 사람들을 당신의 백성들로 두시려는 큰 그림이었다고 보인다. 


4) 아울러 여호와는 이 추수의 절기를 자신만의 유익과 기쁨(복)을 누리는 때가 아닌,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도 함께 초청하여 즐거워하는 기회가 되도록 인도하셨다. 절기를 이웃 사랑의 기회와 무대로 인도하신 것이다(11절 참조). 곧 추수의 두 절기들(칠칠절, 초막절)을 이웃을 향한 배려과 나눔과 공생의 훈련된 백성으로 삼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었다. 


2. 복음서 / 눅 12:13-21 / “ 모든 탐심(貪心)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所有)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 ”


예수님의 말씀으로 된 본문은 두 가지 소재(素材)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부모의 유산(遺産)을 형이 독점하는 일을 막아달라는 동생 된 이의 요청에 대한 예수님이 답변이 올라와 있다. (13-15절). 또 하나는 그 기회를 통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를 어디에다 사용해야 마땅한 지를 일깨우시는 주님의 교훈을 담은 내용이다. 결론은 손에 들어 온 소유나 재산을 자신을 위한 재물로 쌓아두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드러낼 도구로 사용하라는 메시지였다.  


1) 형이 부모의 유산을 동생과 나누지 않고 독점하려는 일이 발생하자, 힘이 없는 동생은 그 문제를 당시에 랍비로 인식된 나사렛 예수께 가져와 처결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신명기 법전에 의하면, 장자는 다른 아들보다 두 배의 몫을 받을 권리가 확보된 자였는데(신21:17참조), 이 인물은 소유를 보고 탐욕(貪慾)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개인사의 분쟁을 해결하려는 분은 아니었으나, 탐욕에 빠진 자들을 향한 경고만은 외면할 수 없었다(13-14절). 


2)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生命)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다’(15절).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당하는 소유나 부요는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천명하신 것이다. 이는 역(逆)으로, 생명과 구원에 도움이 될 소유 활용을 취하란 뜻이기도 하다. 이를 위한 인식의 폭을 넓혀주시기 위하여, 주님은 한 부자 이야기로 설명해 주셨다. 


3) 이 비유는 어리석은 부자 농부의 이야기이다(16-20절). 그 해는 대풍(大豐)이 들어 그 부자의 마음은 한없이 흡족했다. 그 바람에 그는 늘어난 소유물을 어떻게 관리할까에 몰두했다. 본문을 보면, 온통 ‘내 것, 내 곡간, 내 모든 것, 내 영혼’들로만 가득하다(6번이나), 조금도 자신의 부유로 하나님께 감사하거나 가난한 이웃들과도 공유할 마음이 없었다. 그저 소유와 수입은 오직 자기의 평안과 안식과 즐거움을 위한 도구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19절).  


4) 이를 보신 하나님이 그의 삶에 개입하셨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며 따지고 드신 것이다(20절). 이 사람의 문제는 많다. 자신의 소유와 소출의 주인이 누구며, 자신의 생명의 주인은 누구신지에 대한 영적 감각이 죽어 있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자기 소유도 한 순간에 누릴 자들을 바꾸실 수 있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한 데 있었다. 마치 앞의 형이 그 인물이었다-! 

   

5) 주님의 엄중한 당부는 이것이었다.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광명에 참여하고자 하는 자들은, 절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면 안되고, 하나님께 부요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21절). 그 방법은 무엇일까? 자기에게 주어진 소유물을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어가짐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다(33-34절 참조). 이제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선택한 자들을 서신서에서 확인하자. 


3. 서신서 / 고후9:6-15 /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다 ”


본문은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시련을 돕기 위하여, 이방교회들의 모금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고린도교회의 태도를 지적한다. 그들은 바울을 통하여 모교회의 어려움에 대한 소식을 접한 후, 매우 열심을 내서 구호헌금운동을 시작했다. 바울은 뒤늦게 북쪽의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아가야의 고린도교회의 모금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도전을 받은 북쪽교회들은 서둘러 헌금했고 그 과정도 끝냈다. 그런데 문제는 앞섰던 아가야교회들의 지지부진함이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 교회의 분발과 결단을 촉구하였다. 그의 믿음의 권고는 그 교회를 향한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소유와 재물이 줄 수 있는 위험성을 피하고, 도리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귀한 안내가 되리라고 믿는다. 


1) 명심하라.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6절).  

2)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그러니 마음에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라(7절). 

3) 하나님께서 착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도록 내려주신 은혜의 기회임을 명심하라(8절).  

4) 자신의 것을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줌으로서, 그의 의(義)는 영원토록 있다(9절).  

5)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고 거두는 소출도 풍성하게 하신 이가 의의 열매도 더하신다(10절)

6) 너희가 이 일에 넉넉하고 너그럽게 연보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게 한다(11절)

7) 이 봉사 직무는 성도의 부족만 채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도 넘치게 한다(12)

8) 이 직무수행은 너희의 복음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입증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너희를 위해 간구하며 하며, 너희가 전한 혜택을 통하여 너희를 사모하게 한다(13-14절)  


o 소유나 재물은 힘이다. 가진 것도 힘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진정한 힘이 되고, 내 생의 유익이기 위해서는 주어진 소유나 재물을 잘 관리하고 잘 이용해야만 한다. 자짓하면 그것들이 날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오늘의 세 본문 말씀들은 한결같이 우리의 소유와 재물과 능력을 주신 분의 뜻을 좇아 사용하라고 명한다. 나만의 유익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이나 공동체를 위하여 사용하라고 요구한다. 그게 하나님께 부요한 일이다. 반드시 순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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