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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4)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1-12-14 (화) 22:14 3년전 1015  

본문) 사 35:1~10, 막 9:33-37, 벧전 1:22-2:3 


o 세 분문 분석(分析)과 이해(理解) :   


대림절 넷째 주일이다. 준비된 네 게의 촛불들이 모두 밝혀졌다. 부디 메시야를 기다리는 우

리들의 심령이 깨끗하고 간절하여, 그 분의 숨결과 발자국 소리까지 듣게 되고, 마음은 감동

과 환희와 설렘의 맥박으로 뜨거워지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오시는 분과 맞이하는 영혼들이 

서로 하나 되어, 그 분의 뜻이 펼쳐지고 이 땅에는 하늘 영광이 널리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이제 우리는 절기의 흐름에 따라서, 대림절기를 지나 금주 토요일에는 아기 예수를 맞이할 성

탄절(聖誕節)을 맞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은혜로운 절기를 어떻게 맞이할 것이냐에 있

다. 우리는 결코 무미건조하게 이 놀랍고 은혜로운 절기를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선 오늘 주신 세 본문의 현장인 성서의 세계와 그 흐름에 들어가 보아야만 하겠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도 들어

보아야 하며, 신앙 때문에 위기의 순간순간을 보냈던 초대교회 신앙 선배들의 그 자리에 서 보

기도해야 하겠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시선을 성서의 자리와 상황에 들어가 서 보는 일부터 

먼저 해보자는 말이다. 그래야 맞이할 대림과 성탄이 비로소 우리의 것들이 될 수 있을 것이

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먼저 성령의 도우심이 우리에게 충만하시길 빈다. 귀와 눈이 열리고, 마음이 주님

과 말씀을 향하여 집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들이 ‘가난한 마음

들’이 되기를 축원한다(마5:3장). 메시야 당신만이 나와 우리의 문제와 아픔을 해결해 주실 분

임을 절박하게 고백하고 믿는 마음이 가득하기를 원한다. 기대하는 것, 기도하는 것이 없이 

주님을 맞이하려면, 피차 빈 껍질만 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이제 준비된 마음으로 주님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먼저는 메시야가 오셔서 펼치실 그 영광의 

세상의 파노라마를 장엄하게 보게 된다(사35:1-2절). 그러면서 그 세상의 개막(開幕)을 위해 

메시아의 오실 때가 임박(臨迫)했음을 선포하는 선지자의 외침을 듣는다. 그러면서 오실 메시

야를 맞이할 사람들을 향한 예고의 말씀들도 미리 접한다. ‘굳세어라. 두려워 말라’고(4절)-! 

   

오늘의 구약의 말씀에는 선지자 이사야의 급박하고도 뜨거운 외침이 가득하다. 곧 너희가 ‘여

호와의 영광(榮光),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2절).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

(報復)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4절)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오시는 분을 맞이할 대상(對象)을 보다 선별해 준다. ‘겁(怯)을 내는 자들이다(4

절). ‘약하게 살아온 자들이요 외세의 압력과 억압에 짓눌려 제대로 서보지도 못한 체 떨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3절). 그들은 자의(自意)든 타의(他意)든, 맹인처럼 살았고 귀머거리처럼 살

았으며 절름발이처럼 살았고 벙어리처럼 살아온 사람들- 곧, 자기 삶을 빼앗겨 살아온 아프고 

속상하며-, 그래서 통한(痛恨)의 인생을 살아왔던 그런 사람들이었다(5-6절). 


그러기에 이 사람들은 세상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오직 외롭고 고단한 마음으로, 자

신의 총체적인 무너진 삶의 아픔과 탄식을 오로지 해결해 주실 메시야에게만 소망하고 의지하

면서 기도하고 고대하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바로 오실 메시야가 만나 줄 일차적인 

대상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이야말로, 메시야를 만나면 즉시 새 하늘과 새 땅을 맛볼 사람들이

었다. 오늘 나머지 본문들도, 이들과 함께 그런 대상들을 광범위하게 소개하여 준다, 


복음서에서도 그 대상들이 예수님에 의하여 제시되고 있다. 그는 자기를 내세우면서 돋보이며 

살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뭇사람을 섬기기 위하여 밑바닥에서 수고와 헌신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뿐 아니다. 뜻밖에도 어린이도 그 대상이었다(36절). 이는 가장 순수성과 가능성을 갖고서도 

힘 있는 어른들로부터 가장 무시와 멸시를 당하던 대상인 어린이들을 지목하신 것이다. 주님

의 이 어린이 선택은 분명 인류의 역사의 진보(進步)와 발전을 촉진(促進)시킨 대 사건이었다.  


베드로의 서신서는 그 대상을 보다 구체화했다. 진리에 순종으로 거짓 없이 형제를 뜨겁게 사

랑하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22절). 그리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영원히 썩지 아니할 하나

님의 말씀인 복음을 마치 간난 아이처럼 사모하면서 그 말씀을 좇아 나날이 자라가는 사람들

이 성탄의 메시야를 온 몸으로 받게 될 대상임을 밝혀 준다(1:23-2:1-2절). 


그러기에 이제 이 말씀 앞에서 내 신앙의 현주소를 점검해보자. 이 세 본문에 거론된 대상들 

중에 나는 과연 속해 있는 지, 아니면 여전히 겉돌 고만 있는 지를 점검해 보자. 부디 가난하

고 겸손해야 한다. 회개와 거듭남의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내 문 밖에 서서 내 마음 문을 두

드리시는 주님의 노크 소리에, 민감하게 문을 열고 맞이할 수 있어야 하겠다(계3:20참조). 


1. 구약 / 사 35:1-10 / -“ 오직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그의 영광을 보리라 ”


본문 예언서는 두 차원의 배경을 동시에 담고 있다. 하나는 정치적 역사적 배경에서의 구원을 

예고한다. 앗수르 제국에로부터의 이스라엘의 속량과 바벨론 제국으로부터의 유대의 해방사건

을 담고 있다. 또 하나는 믿는 자를 향한 영적 구원의 배경이다. 누구든 십자가의 은혜로 속

량(贖良)함을 받아, 죄와 저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된 자들을 향한 약속도 담았기 때문이다. 


본문(예언1부의 종결 부분)의 결론은 마지막 10절에 담고 있다. 그 내용은 사40-66장의 내용

의 예고편과도 같다. 망가진 나라와 역사를 회복시키면서 펼치실 여호와의 영광과 메시야 왕

국의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본문에 나타난 메시야의 사역은 오신 메시야 예수께서 

에바다의 사역을 통하여 펼쳐 보이신 내용에서 확인된 모습이었다(마11:4-5,요5장 참조). 


여기에서 선지자는 오실 메시야를 전제로, 그로 인하여 펼쳐질 변화된 세상에 대한 청사진을

매우 은유적이고 서정적으로 묘사하며 제시한다. 구조는 세 가지 차원이다. 첫째는 임박한 메

시야를 맞이할 준비 태세 촉구이다. 둘째는 그로 인해 어떤 세상이 열릴 것이냐 라는 점이다. 

셋째는 그 직접적인 수혜자(受惠者)들과 배제(排除)와 심판(審判) 받을 자들에 대한 예고이다. 


1) 메시야의 오심이 급박함을 고한다. 그러기에 백성들은 언행에 유의하며 오실 분을 정중히 

맞이할 대비(對備)를 하라는 요구가 하달되었다. ☞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怯)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

님이 오사 보복(報復)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3-4절). 


2) 메시야로 인하여 펼쳐질 새로운 세상의 변화가 장엄하게 소개되었다.(1-2절,7-8절 참조)

총체적으로는 광야와 사막의 힘의 변화와 회복이다. 기쁨과 즐거움과 영광의 회복이 되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드러내게 될 세상이 열릴 것을 예고했다. 이것은 실제 광야나 사

막의 변화 자체가 아니다. 광야와 사막 같은 세상(世上)에 현실적인 대 변혁을 가져올 것임을 

그렇게 말한 것이다(30:6절 참조). 그렇다면 그 모습이 어떻게 변화되리라는 것인가? 


3) 먼저 겁(怯)먹고 살아온 사람들의 회복과 해방이다. 기득권 세력들에 짓눌리고 살아온 이들

이 자신감을 찾고 보통 사람들과도 평등하게 살게 되는 세상의 도래를 예고하신 것이다. 그런 

일은 하나님의 보복과 갚아 줌이란 정의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4절). 그런 그들

은 누구였나? 맹인처럼 살아온 이들이었고, 귀머거리처럼 살아왔고, 절름발이로 살아왔으며, 

벙어리처럼 살아왔던 이들이었다. 정치,경제,사회,신체,인종,신분,성별 등등으로 각가지 차별과 

억압의 굴레에서 탄식하며 신음하며 ‘비인간적으로’ 지내 온 이들이 바로 그 수혜자들이었다.  


4) 그 바람에 하늘의 힘, 곧 메시야의 은혜를 입게 될 그들이, 해방과 자유의 탄성을 노래 하

게 될 것임을 예고했다(7-9절 참조). 사막 인생이 연못 인생으로, 원천(源泉)의 제공자로, 식물

들과 자연이 형성되고, 대로(大路)가 열리게 되어 떳떳하게 자유를 구가하며 지내는 인생살이

가 펼쳐질 것이 예고되었다.  


5) 그러기에 사람들은 말한다. 그 길은 ‘거룩한 길’(8절)이요,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들을 위

해 있는 길’(9절)이며, ‘여호와의 속량(贖良)함을 받은 자들’만이 다닐 수 있는 길‘(10절)이라고 

규정하게 된다. 이들의 결과는 놀랍다. 그들 무지랭이 인생들이 하나님의 그런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입게 되면서, 노래하고 기뻐하며 슬픔과 탄식에서 해방되는 자유인이 되게 된다(10절). 

그러면 이런 압도적인 은혜를 그런 패자 인생들에게 안겨 준 이가 누군가?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 죽임 당하심으로 죄인들에게 참 자유와 해방을 안기신 예수님이 아닌가!   


6) 그 바람에 그곳에 통행이 금지당한 자들도 자연히 드러났다. 그 패배자들은 대체 누군가? 

가진 힘을 남용하며 지내 온 힘센 자들, 그래서 그 힘을 자신의 이익과 보전을 위하여 사용하

고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려 온 깨끗지 못한 자들, 그래서 우매하고 어리석게 산 인간들이었다

(8절). 한마디로, 사자와 사나운 짐승처럼 약자에게 군림하고 억압해 온 자들이, 곧 오시는 메

시야 시대에는 한없이 부끄럽게 버림당할 자들이었다(9절). 이제 복음서의 경우를 보자.    


2. 복음서 / 막 9:33-37 /  “ 뭇 사람을 섬기는 자 & 어린 아이와 같은 자라야만 “


성부 아버지의 마음이 그랬다면, 성자 예수님의 언행과 시선은 어떠하시겠는가? 당연히 그 아

버지의 행보(行步)를 따르실 것이다. 사자(강한 자)와 우매한 자(어리석은 자)들을 경계하시고, 

그들에게 눌려 지낼 약자들과 나약한 자들을 보호하시려는 행보에 집중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오늘 본문은 바로 예수님의 그런 깊은 관심사에서 나온 특별한 행보였다. 


1) 본문은 제자들 사이에 있었던 언쟁(言爭)에 스승이신 예수께서 끼어 드신 장면이다(33절). 

가버나움은 예수께서 출가하신 후, 제자 시몬 베드로의 집이 있던 곳을 거점으로 머무시던 곳

이었다. 그곳에서 있었던 제자들 사이의 어느 대화 속에 주님이 개입하신 것이다. 매우 이례

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제자들의 대화의 내용이 주님께서 침묵(沈默)할 수 없

는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판단하셨기 때문이었다. 그게 대체 무엇이었을까? 


2) 서로 간에 ‘누가 크냐’라는 논쟁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제자들은 스승과 자신들의 미

래를 놓고, 누가 제일 앞자리를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신경전을 벌렸던 것으로 보인다(34절).     


3) 그러자 주님은 불후(不朽)의 메시지를 주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35절). 곧 사람을 부리려는 자가 아니라, 밑

과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이 큰 자요, 다스리는 자보다는 되게 하는 자가 큰 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 그들 중에 세우고 안으신 후,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

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요 -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고 규정하셨다(37절).  


4) 약자 섬김과 어린이 우대-, 이는 분명히 새로운 가치관이요, 새로운 인생 서열의 척도였다. 

왜 이런 새 시각을 그의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걸까? 바로 그곳, 낮은 곳과 약한 곳에 삼위일

체 하나님의 시선과 마음이 머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곳과 그쪽 인간들을 향하여 마음을 

두는 일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며 사랑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그곳 인생들에

게도 –주를 통해- 햇빛을 보게 되고, 새 인생을 누려볼 기회까지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3. 서신서 / 벧전 1:22-2:3 /  “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까닭은 그것이 인간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거듭나게 하며, 썩어 사

라지지 아니하고 항상 살아 있어 세세토록 있는 능력의 복음(福音)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복

음의 힘으로 당시 신앙인들은 박해 당하는 중에서도 진실한 마음으로 형제들을 사랑하였다. 

그것이 베드로가 서신에서 아름다운 신앙이라고 예찬하며, 격려를 보낸 것이었다(22-25절).   


그러면서 사도는 주변에 있는 거짓되고 불의한 행태를 보이는 이들을 경계하라고도 주문한다. 

그들은 악독과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언행을 통하여, 주의 거룩한 교회 공동체를 훼

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2:1절). 그러면 성도들은 그런 환란의 시기에 어떤 면을 강화시켜야할

까? 아기처럼 ‘신령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여야 하며’(말씀을 좇아서 살아야 하며/헬), 거듭난 

생명은 영생에 이르도록 성장(成長)해가야 한다(2-3절). 정체되면 언제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o 어떤 성탄이 주님과 함께 할 성탄이 될까? 오실 주님이 나에게 잠깐 스쳐갈 손님처럼 되어

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내 안에 그 분을 위한 구유가 마련되어야 한다. 모실 자리, 함께 애환

을 나눌 자리, 내 마음을 주께 안겨드릴 삶의 고민과 과제들이 있어야 하겠다. 교만이나 오만

심은 절대 안 된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최대 관심사인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삶과 이웃 

사랑의 모습들이 내 삶 속에서도 더욱 굳게 자리 잡아가는 성탄이 되도록 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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