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잠 3:13~23, 눅 6:39-45, 약 3:13-18
o 세 본문 분석(分析)과 이해(理解) :
창조절 열한 번째 주일이다. 입동(立冬) 추위가 겨울이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시절이 어찌나
빨리 지나는 지 정말 놀랍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오늘의 말씀은 온통 지혜에 집중한다. 그것도
창조의 기원이요 자원이 된 지혜를 말한다. 그러고 보면, 지혜는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
께 존재한 신령한 것이 분명하다. 특히 잠언서에서 이 지혜와 관련된 증언의 무게감은 정말
대단하다.
☞ ‘여호와께서는 지혜(wisdom)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understanding)로 하늘을 견
고히 세우셨고, 그의 지식(knowledge)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잠3:19-20절).
즉 땅과 하늘과 바다 등의 온 천하 만물(자연)은 창조주의 지혜와 명철과 지식으로 가득 채워
진 현장이다. 따라서 피조물인 인간들로서는 조물주가 펼쳐놓으신 온 천하 만물을 통하여 그
의 지혜와 명철과 지식을 맛보고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조물주께서는 그의 창조물들만 세상
에 배치하지 않으셨고, 그 지혜를 당신만이 독점하려고도 하지 않으셨다. 그 보다는 그의 지
혜와 명철과 지식까지도 피조물인 인간들이 습득할 수 있도록 이 세상에 기꺼이 제공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도 당신의 놀라운 지혜를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이 조물주의 그 지혜와 능력을 전이(轉移) 받을 수만 있다면, 그는 확실
히 모든 사람들 중에서 차원이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잠언 기자는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福)이 있다’(13, 18절)고 선언했다. 물질이 많거나 자
식이 많거나 강한 권력을 소유하거나 건강한 것 자체를 복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왕 솔로문의 복을 참조하자(대하1:1-13장 참조). 그는 역사 이래 부귀영화를 가장
풍성히 누린 대표적인 왕이다. 그가 그런 위치에 오른 것은 그가 일천 번제를 드린 후, 하나
님으로부터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7절)는 요구 앞에,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
여 지혜와 지식을 달라’(10절)고 요청한 데에서 얻어낸, 은총의 선물이었다. 공의를 위하여 구
한 지혜 때문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와 재물과 영광도 덤으로 얻었던 것이다(12절).
사실 인간은 참 지혜의 유무에 따라서 행.불행이 갈라진다. 이 점에서 우리는 반드시 솔로몬
왕처럼, ‘나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소서’란 기도를 하나님께 매일 올리면 좋다. 마치 일용할 양
식을 구하듯 지혜를 구하자. 우리는 지금 얼마나 매일 매일의 삶을, 거짓 정보의 홍수 속에서
와 정상적인 분별력과 정의로운 판단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러
기에 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기가 무척 힘들다. 그러기에 하늘의 지혜가 더욱 필요하다.
특히 오늘의 말씀은 지혜에도 두 가지 차원이 있음을 전한다. 하나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요
다른 하나는 땅 위에서 나온 것이다(약3:15절 참조). 그 지혜의 결과는 물론 천양지차이다. 위
로부터의 지혜는 구원이요 의의 열매들이지만, 땅엣 것은 저주와 범죄와 심판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오늘의 세 본문 말씀들은 지혜에 관련된 제반의 근본 사상과 이해와 주의할 부분
들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구약 잠언은 그 지혜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면서, 그러기에 그 지혜를 좇고 받아들여
서 살아갈 때 일어나는 삶의 제반 축복된 내용들을 소개해 준다. 복음서는 그 지혜를 공동체
안에서 행사하고자 할 때에 반드시 성찰(省察)해야만 하는 부분들에 대하여 주의를 일깨운다.
서신서는 하늘과 땅에서 제공되는 지혜의 현격한 차이를 공개하면서, 그것을 각각 좇을 때 발
생하는 결과물을 공개하며 주의를 일깨운다. 우리 성도들이 취해야할 아주 귀한 지침이다.
1. 구약 / 잠 3:13-23 / “ 지혜를 얻은 자에게 부여된 하늘과 땅의 복들 ”
잠언서는 지혜가 무엇인지를 먼저 밝힌다. 그 근원을 인간에게서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찾는다. 특히 18절에서 ‘지혜’는 원어로 ‘에츠 하임’으로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지혜임을 말
한다. 이 지혜가 곧 자기를 보유한 자를 영생(永生)에 이르게 함을 말한다. 이 점에서 요17:3
은, 이 지혜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말한다.
그러기에 이 지혜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와 분리해서 말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에 이 지혜가 명철과 지식과 함께 이 땅의 터를 놓고, 하늘을 견고히 세우며, 깊은 바다
를 갈라지게 하고,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했다(19-20절). 그러기에 이 지혜는 만물 창조의
기초였고, 우주 만물 생성과 질서 형성의 동력이었다. 실로 우리에게 경탄과 신비로움을 안겨
준 조물주의 창조 능력 자체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창조적 영성(靈性)을 가진 지혜를, 우리와 같이 지극히 나약한 피조물인 인간
이 접촉하거나 보유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인가? 그 점에서 잠언 기자
는 확실하게 말한다. ‘지혜와 명철을 얻은 자 & 가진 자는 복(福)이 있다’(13, 18절). 그러면서
지혜의 보유(保有)가 안겨 주는 복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1) 먼저 이 지혜는 ‘인간들이 갖기를 사모(思慕)하는 모든 것으로도 비교 불가능한 것’임을 밝
힌다(15절). 이 말은 ‘내가 가진 모든 귀중한 물건들이란 뜻으로서, 가치에 있어서는 지혜와는
맞먹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점을 말한다. 그 점을 잠언의 현자는 이렇게 말
한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精金)보다 낫다’(14절).
인간들이 최후의 자산으로 선택한 것이 금은보석인데-, 지혜의 가치는 그보다 낫다는 것이다.
2) 그러면서 지혜가 안겨 주는 대가(代價)와 상급(賞給)들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오른 손에
는 장수(長壽)요, 왼손에는 부귀(富貴)와 명예(名譽)다(16절). 그것도 마음의 즐거움과 평안 속
에 부여된 상급들이라서 더욱 돋보이는 것들이다(17절). 사실, 건강과 명예가 밑받침되지 못한
장수와 부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진정한 복이 못되는데-, 지혜의 삶이 안겨 준 여생
은 그런 우려와 염려가 전혀 없는 것이기에, 진정한 복이 될 것이 분명하다.
3) 그러기에, 현자는 결국 이 점을 강조한다. 얻은 자에게 있어서의 지혜는 바로 ‘생명나무’다.
그러기에 ‘가진 자는 복(福)되다’(18절). 즉 지혜는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임을 밝혔다. 히브리
어로 ‘에츠 하임’인데, 이는 에덴(Eden)에서 선(show)보였으나, 결국 인간이 취하지 못했던
최후의 생명체였다(창2:8-9절 참조). 그러니, 이런 보화가 이 세상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4) 이 점을 확인하고 깨달은 현자는 그의 후손(자녀-후배-제자-성도)들에게 강력히 당부한다.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21절). 그러면 이 예
측불가능(豫測不可能)한 세계와 지극히 불안한 세상에서도, 그것이 내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의 장식이 되어서, 네가 어디를 가도 평안히 행할 것이고, 네 행보에도 거침이 없을 것이다
‘고 뜨겁게 증언한다(22-23절). 지혜 소유자에게는 안심된 인생이 따른다(요14:1,마6:34참조).
☞ 이는 천지를 창조하신 기능적 솜씨가 인간에게 임할 때의 놀라운 위력(?)을 전한 말씀으로
보인다. 내용이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가 담고 있는 탁월한 축복과 복음의 가
치에 주목해야 한다. 아니, 매일의 양식으로 지혜의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할 것이다.
이 점에서 지혜의 주로 오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그 지혜의 힘과 능력을 공동체 속에서 온전
히 드러낼 방법을 일깨워 주셨다. 바로 오늘의 복음서의 내용에서 말이다.
2. 복음서 / 눅 6:39-45 / -“ 선(先) 자기 성찰 & 선과 의를 꾸준히 심는 생활 ”
복음서 중에서도 누가복음의 예수 설교는 마태복음의 산상설교와는 달리, 평지(平地)설교로 알
려져 있다. 이것은 마태의 내용은 총괄적이고 집약적이라면, 누가의 내용은 보다 상황적이고
단편적인 면이 많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도, 짧은 내용 속에 다양한 국면들이 집약되어 나온다. 특히 제자들의 이
웃 돕기나 이웃 사랑하기에서 아주 조심할 것을 구별해 주신 교훈이다. 이 점에서 잘 대처하
지 못하면, 제자들 역시 유대교의 위선적 바리새인들과 같아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1) 첫 번째 경고의 내용, ‘제자가 그 스승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니라’(39-40절)의 말씀의 의미는 이렇다. 곧 유대교의 전통에서는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
을 넘어서려는 행위는 불가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잘 소화하고
존중하며 살아간다면, 그 역시 스승의 수준에서의 역할이 가능함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러면
서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의 가르침을 소홀히 하는 인물을 교회 공동체
가 목자로 받아서는 아니 됨을 일깨우신 내용이기도 하다. 둘 모두를 구덩이에 빠지게 한다.
2) 형제 사랑의 행위에서 나오는 형제를 향한 비판과 문제 지적도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곧
‘너를 사랑해서 말한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눈의 티를 빼주겠다’라는 입장이다(41-42절).
하지만 그러려면 사전(事前)에 비판의 기본적인 자세에 대한 숙지(熟知)할 사항이 있다. 주님
의 지적사항이기도 하다. 그게 무엇이고 어떤 것인가?
‘나였다면, 그때 그 순간에 어떻게 하였을까’, ‘나는 과연 그런 상황에서라면 범죄하지 않았을
까’를 먼저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일이다. 그래서 양심에서 부끄러움이 없고, 또 그로 인해 건
설적인 방안까지 찾아진다면 그 때에는 상대에게 도움을 주고자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내용은 이웃을 판단할 때에는 항상 자신에 대한 망상(妄想)은 버리고, 자신의 부족(不足)함
부터 성찰(省察)하는 삶을 권고한 것이다. 그게 모두에게 참 지혜가 되기 때문이다.
3) 이 부분은 ‘사람은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갈6:7)는 진리에 관한 해석이다(43-44절).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나쁜 나무에서 나쁜 열매가 맺는 것은 모든 사물의 이치(理致)이
듯이(43절), 판이 다르고 성장 환경이 다른 곳에서 전혀 돌발 상황을 기대할 수는 없음을 지
적하셨다. 곧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음과 같다(44절).
그렇다면, 선(善)한 사람이 누군가? 그 삶에서 마음에 꾸준히 선을 쌓아둔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의 행실에서도 자연히 선이 나온다. 악(惡)한 자도 마찬가지이다. 그 쌓은 악 때문에, 나오
는 것도 악을 내게 된다. 이것은 인간이 보여 준 열매는 철저히 처음부터 그가 어떻게 살아왔
는 지에 대한 답변일 뿐임을 지적하신 것이다(45절). 이로 인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 과정(process)을 중시하는 일이다. 결과만 중시하면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기
적도 심은 데서 찾고 기다려야 가능하다. 우리도 평소부터 선(善)과 의(義)를 심는 삶을 택하
는 삶이어야만 한다. 임박해서 무엇인가를 해보려면, 그 때는 이미 열차가 떠난 후 일뿐이다.
3. 서신서 / 약 3:13-18 / - “ 내 지혜는 위로부터 받아야 하고, 평화를 심으며 살자 ”
선한 것 곁에는 언제나 악한 것이 있다. 빛 곁에는 어둠이 늘 상존(常存)하고, 알곡 곁에는 언
제나 가리지도 상존한다. 그런 것처럼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이란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는 하
늘의 지혜에도, 그 곁에는 항상 땅이 주는 지혜도 있다. 즉 사이비(似而非)성 지혜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부분을 잘 분별하고, 그 함정 속에 빠져드는 일
이 없도록 깨어 대비하여야만 한다.
☞ 분명한 것은 지혜도 진짜와 가짜 모두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이 그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야 만다. 그러면 그들은 각각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게 되나?
1) 참 지혜(知慧)와 총명(聰明)은 선행(善行-good life)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지혜 자체가 품
고 있는 온유(溫柔)함과 겸손(謙遜)함으로 자신을 드러낸다(13절).
2) 그러나 가짜 지혜는 완전 다르다. 독한 시기와 다툼을 일으키고 혼란을 야기하며, 자기 자
랑이 앞선다. 진리가 품을 수 없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14절). 그것은 이 가짜가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닌,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며 귀신이 준 것이기 때문이다(15-16절).
3) 따라서, 우리가 집중해야할 지혜는 바로 위로부터 난 지혜이다. 그 속에는 성결(聖潔)이 있
고, 화평(和平)하고, 관용(寬容)하며, 양순(良順)하고(submissive), 긍휼(矜恤)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偏見)이 없고(impartial), 거짓이 없다(1절). 이렇게 평화의 씨앗의 지혜를 심는
자들로 인한 공동체는 결국 의(義)의 열매들을 풍성히 거두게 된다(12절). 복(復)낙원을 이룬다
o 지혜가 진정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그것도 하늘의 지혜 말이다. 가정- 교회- 사회-, 그
리고 삶의 현장에도 필요하다. 평화와 온유와 겸손을 바탕한 지혜의 삶으로 응답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