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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9)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 종교개혁주일

관리자 2022-10-25 (화) 19:28 2년전 897  

본문)  삼상 16:1~13, 마 22:41-46, 행 2:22-36


창조절 아홉째 주일이다. 세계의 개혁교회들은 오늘을 제505주년 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킨다. 종교개혁의 최대의 화두는 무엇이었나? 표면적으로는 로마카톨릭교회의 제왕적 제도에 대한 거부같이 보이나, 사실은 특정 세력들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의 독점화(獨占化)내지 사유화(私有化)를 거부하고, 말씀의 공적 기능인 진리를 회복시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진리와 생명력을 되찾아, 온 세계 만민과 전체 피조물 구원을 이루고자 함이었다.    


이런 점에서 개신교회와 종교개혁자들의 공로는 지대했다. 저들은 개혁교회의 말씀의 온전성을 회복시키고자, 개혁자 혼자만 매달리지 않았다. 쯔윙글리를 비롯한 죤 칼빈 같은 이들이 주변의 목사들 그룹을 규합하여, 매주 일회 이상을 연구모임(프로페차이)을 같이 하면서, 서로 발표하고 토론하면서, 마치 그리스의 베뢰아 교회 성도들처럼, ‘과연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과 뜻이 그러한가’하며 연구하고(행17:11), 그 결과물을 함께 공유하며 설교강단에서 선포해왔다. 


그런데 그런 우리 개신교회도 언젠가부터 강단 설교말씀의 사유화가 재현되기 시작했다. 교단과 신학교육의 부실화로 인해, 현장 교회 목사들의 한 본문 설교가 오래 자리하면서 진리성이 약화되고 부작용이 확산되었다. 교파분열과 난립현상 때문에 더욱 악화되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우리 말씀목회연구회가 지난 2017년 말에 발족하면서, 절기중심 목회와 세 본문중심의 설교를 좇아서, 다시 말씀의 공적 기능회복을 위한 연구 작업을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주간 연세대에서 만난 정진호 박사(남북통일운동가)가 주창한, 분단 시대에 필요한 역사관이 어떤 것인지를 소개한다.(p.25) 세 가지 차원이었는데, 그 내용이 성경 말씀을 삼위일체론적 시각에서 보는 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통시(通時))적 시각이다. 영원과 순간이란 시간적이고 수직적 차원의 시각을 말한다. 둘째는 공시(共時)적 시각이다. 이곳저곳을 함께 보는 수평적 시각이다(예, 남의 역사와 북의 력사가 공존함). 셋째는 통전(通典)적 시각이다. 이 모든 시각들에 담긴 양쪽 전체를 함께 보는 시각이다.  


이 시각은 오늘 받게 된 세 본문 이해에도 꼭 필요한 것들이다. 오늘 본문은 지난주일 내용의 연속이다. 그 의미와 뜻이 단순한 이스라엘 역사 이야기만이 아니다. 신정(神政)정치의 일환이었던 사사(士師)정치에서 왕정(王政)정치 체제로 옮겨감을 말한 것이다. 그것도 잘못된 신정정치를 보여 준 사무엘의 아들들 때문에, 백성들의 집요한 요청에 의해 취하게 된 왕정 정치였고, 그 귀결이 주목되는 분야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하나님의 허락으로 된 것이었지만-(22절)! 


그러면, 우리의 관심은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못해서 허락하셨다면, 그 일로 하나님은 백성에게 등을 돌리신 건가? 아니면 그들 정치에 대한 당신의 방법을 따로 준비하신 것인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다스리시는 일, 곧 그의 백성들을 향한 정치는 결코 외면하거나 포기하시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7-8절 참조). 다만 기다림과 깨우침을 통한 새 방안을 마련하셨을 뿐이다. 보다 온전하고 성숙한 체제를 온 만민이 접하게 되도록 말이다.   


오늘의 세 본문 내용들을 주목해보라. 모두가 왕정에 관련된 내용이지만, 그러나 이 땅에서는 전혀 맛보거나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신형(新型) 왕정체제’(?)에 관하여 언급한 것이다.  


1) 구약 사무엘상에서는 왕의 새 모델이 될 다윗이 등장한다. 그는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이었는데, 앞의 모든 형들은 외면당했고, 목장 현장에서 일하던 목동 다윗이 불려 나와, 새 왕의 후보로 기름부음을 받으면서 역사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그 순간부터 주의 영(靈)이 그에게 함께 하신다. 


2) 복음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왕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왕인 그리스도(메시아)를 이미 준비하셨던 일을 소개한다. 게다가 그 분은 다윗이 생전에 성령의 감동 속에서 이미 뵙고 주님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던 분이었다. 그것도 다윗에게 직접 주라고 불림을 받았던 당사자인 예수께서 그 점을 친히 증언하셨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오실 새 왕을 다윗의 후손으로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함을 지적하신다. 


3) 서신서는 제자 베드로 사도에 의하여, 다시 예수님의 그런 증언이 재확인 된다. 곧 다윗은 생전에 성령의 깊은 감동 속에서 그 왕(그리스도)을 미리 뵈었고(25-31절), 세상에 오실 때에는 자기의 자손의 일원으로 오실 것과(30절 이하), 자기 백성에 의해서 불법으로 처형될 것과 함께 하나님에 의하여 다시 살리심을 받게 될 것까지도 알고 계셨음을 선포했다. 베드로는 그런 다윗을 아예 선지자라고까지 증언했다(30절). 결국 예고된 왕은 인간 왕의 모델인 다윗에 의하여, 주님으로 경배 받기로 예고된 만민의 왕이셨다. 


o 그렇다면, 하나님의 허락으로 등장한 초기 이스라엘의 세 왕들의 면모와 특징을 살펴보자 : 


1) 초대 왕 사울이다 – 외모가 걸출하고 잘 생겨 백성의 압도적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내용이 빈곤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신앙이 없어서 버림을 당했다. 


2) 2대 왕 다윗이다 – 목동으로서 책임감이 강하고 용감했다. 적에게 여호와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에 분개하면서 골리앗과 맞섰던 주역이었다. 법궤를 모시면서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도성으로 정착시켰다.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철저히 인식했다. 하나님 공경이 뜨거웠다. 흩어진 지파들을 흡수하여 통일 왕국을 이루었다. 후에 밧세바 간통사건으로 큰 비리를 저질렀으나, 정직한 회개로 하나님의 용서와 인정을 받는 주인공이 되었다(행13:22절 참조).   


3) 3대 왕 솔로몬이다 – 화려하게 등장했으나 결국 용두사미(龍頭蛇尾)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부귀영화와 창대한 권세를 신앙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나중에 이방 문화와의 무분별한 접촉을 통하여 우상숭배와 혼합종교에 빠져 들어서,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게 하였고 왕정 체제의 한계를 생생히 역사 속에 각인시킨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o 그러면 하나님께서 친히 대비하신 왕(메시아)은 세상 일반 왕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1) 세상 일반 왕들 – 인간 위에 군림(君臨)하는 왕이다. 백성들은 왕을 위해 존재하는 무리들이다. 따라서 그곳 정치세계는 차별, 분열, 계층분리, 지배, 억압, 착취, 이용, 하나님 무시, 탐욕, 억지, 불의와 불법, 뇌물, 패거리 들이 난무한다. 


2) 메시아 예수 – 인간 위에 군림(君臨)하는 왕이 아니라 도리어 가장 낮은 곳에 오신 분이다. 백성들을 위해 존재하는 왕이다. 따라서 그곳 정치세계에는 사랑, 신뢰(믿음), 진리, 섬김, 헌신, 나눔, 봉사, 목숨까지 제공하심, 가치, 이웃 사랑, 책임, 열매들이 풍성 등이 뒤따른다. 

                   

☞ 이런 새 왕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라는 공식이 백성들 속에 회자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숱한 예언들도 있었으나, (앞에서 확인된 바대로) 다윗만큼 왕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신정 정치를 온 세상에 펼치려고 노력한 왕이 없었던 연유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다윗은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 가슴에 살아서, 그들 국가에서는 자신들의 국기(國旗)를 다윗 기(旗)로 채택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없는 주님이시다---!!! 


o 이제 하나님의 나라 정치의 차원에서, 우리 한국의 현 정치적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대통령은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국민들의 지지율이 30%안팎으로 오르고 내리고 있다. 우리의 미래가 암담해진 느낌이며, 슬픈 현실만이 가득한 것이 심히 유감이다. 가슴 아프지만,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가 우리에게 보여 준 5가지 위기(危機)를 본다. 


1) 자신을 단순한 임기 5년의 최고 공무원인 대통령이 아닌, 왕(王)으로 그것도 하늘에서 낸 인물로 간주하는 듯하다(이런 모습은 선거 전후에서 계속 그 주변에서 흘러나온 증언들이다). 그래서 그는 주변의 어떤 조언이나 충고를 듣지 않고, 자기 홀로 말을 독점한다는 풍문이 많다. 그러기에 교만한 모습이 두드러지고, 국민이란 말을 많이 앞세우면서도 국민의 뜻을 가장 외면하는 위정자이고, 자유란 말을 많이 하면서도 자신만을 위한 자유를 즐기는 듯하다. 


2)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우상종교에 심취해 있는 사람이다. 청와대 이전도 그 연유로 안다. 말은 국민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선택이란 것이지만, 주변의 풍수지리설에 따라서 본 자신의 위치에 대한 강한 불안감 때문이다. 그는 물론, 그의 부인 김건희의 무당(巫堂)과 무속신앙과 그 진용에 둘러싸여서 나오는 일련의 행태들은 지금 국정농단의 심각한 수준에 들어간 상태이다. 청와대 이전에 따른 국가 예산 낭비는 갈수록 하늘을 찌르듯 쌓여가고 있다.


그 부부의 그런 모습들은 마치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로 인해 선지자 엘리야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왕 아합과 왕비 이세벨을 연상하게 하는 데, 특히 김건희의 권력욕과 행태는 이세벨을 훨씬 능가하게 보인다. 지금 한창 논쟁중인 박사논문의 내용들도 사주팔자와 관상에 관련된 것이어서, 그 남편의 참모들 선택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인다. 왜 그리도 말썽이 많은 사람들이 장관이나 참모들로 선택되고 있는지 놀랍다. 


3) 패거리 정치의 표본이다. 대통령은 자기가 믿는 사람들만 쓰는 듯하지만, 국가 주요 보직에 검찰출신들이 대거 유입되는 일은 삼권분립을 기반으로한 민주주의 국가 기반을 현저히 무너뜨리는 일이다. 검찰은 생리상, 뒤지는 일에 능하고 권모술수 형에 가깝다. 그 바람에, 이전 정권의 비리와 착오만을 문제 삼는 일에 능하다. 그것도 자신들의 가치와 판단과 다른 그룹들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제거하려고만 한다. 소위 검찰공화국이란 소리가 그래서 나온 것이다. 


나라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검찰 자체에게도 아주 불행한 일이다. 그 바람에 힘들에 이루어 논 일류국가 위상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정책과 비전을 세우고 국가의 내일을 열어가는 데에서 훨씬 더 자유로운 영혼들과 기능인들이 필요하다. 그러지 못하기에, 그의 모든 주요 보직들에는 새 인물은 없고, 오로지 낡은 옛 인사들로만 채우고 있다. 그러니 어찌 국가의 밝은 내일이 이 정권에서 나올 수 있겠는가? 맹종 아부자만 살아남을 분위기다. 


4) 공정(公正)과 상식(常識)을 가장 무시한 집권세력이다. ‘공정과 상식’이란 말은 윤석열씨가 집권을 위해서 최고의 대국민 홍보용으로 구사해온 구호였다. 그 말에 순진한 국민들은 그를 지지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을 전혀 사용을 하지 못한 체, 사장(死藏)되어 가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는 자기를 지지한 국민들을 배신한 것이다. 역사에 반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는 그런 말을 정치 현장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인가? 국민들은 모두 이유를 안다. 


자기와 자기의 가족에 대한 성역화 행태 때문이다. 지금 매주말이면, 그의 퇴진과 부인 김건희의 국정조사에 임하게 하라는 대규모의 촛불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청지 검찰은 윤석열 가족 지키기에는 완강하며, 정적인 야당 대표 이재명의 비리를 털어서 감옥에 보내려하는 일에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결사대를 투입해 뒤지고 있다. 직전 대통령 문재인을 향한 감사원의 권력남용도 이미 도를 넘었다. 


야당 인사의 비리도 분명히 수사해야만 한다. 하지만 공정과 상식을 지켜가려면, 대통령은 당연히 자신의 가족들의 비리에도 그 수사를 받게 해야만 한다. 그런데 마치 뇌물을 받아먹은 양, 그들은 적들만 때려잡으려 하고, 자기 식구들에게는 면죄부와 보호막만 쳐놓고 버티고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게 진정 통할 일인가? 지금은 왕정시대가 아니다. 백성을 위한 민주주의 시대이다. 자기 도끼에 자기 발등을 찍는 어리석은 짓들을 무모하게 자행하고 있다. 


5) 대통령 자신의 외교관, 안보관, 경제관, 정치관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맹신적 종미(從美), 묻지만 친일(親日). 맹목적 반북(反北), 평화통일세력에게는 종북과 친북으로 매도, 기후변화와 환경운동세력에게는 원자력 강화로, 경제와 서민 정책에는 친기업과 예산 삭감 등으로 치닫고 있다. 그 바람에 힘들게 일류 국가에 오른 우리는 순식간에 염려스러운 나라가 되면서, 국격과 신뢰도가 급속이 몰락하는 중이 아닌가 싶어졌다. 


가장 염려되는 일은 전쟁위험이 고조된 일이다. 9.18남북정상회담에서의 합의문을 파괴하려는 징조도 일어났고, 서해상에서는 이미 포를 쏘아대는 일이 발생할 정도가 되었다. 심각한 것은 우리 집권자의 미일 의존의 태도이다. 미국과 일본이 우리를 지켜 주리라는 믿음이 더욱 우리를 비참하게 한다. 전쟁이 나면, 미일의 지시를 받아 우리 대통령의 헤매게 될 모습은 끔찍하다. 대체 남북 충돌의 피해와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렇게 오만한가? 숨이 꽉 막힌다. 

   

o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겠나?  


1) 기도하자.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선하신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그리고 집권자가 취하는 위의 내용들이 철저하게 회개로 돌아서게 해 달라고도 기도하자. 전혀 새로운 대통령으로 거듭나도록 기도하자. 이를 위해 깨어 있는 국민 되게 기도하자.

2) 분명히 ‘아니요’는 표시하고 살자. 예와 아니요는 우리의 정당한 정치적 의사 표시이다. 

3) 영원한 왕이신 예수의 영과 마음을 간직한 지도자(다윗과 같은 영성을 가진)를 우리에게도 세워달라고 간구하자. 


이 싸움이나 씨름은 매우 깊은 인내와 고난을 견디면서 전개해야할 것들이 될 수도 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선택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대가가 매우 혹독하다. 하지만 역사와 세상 모든 상황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금방 그 날이 올 수도 있다. 가장 놀랍고 선하신 방법으로 말이다. 우리나라에 하나님의 크신 뜻이 펼쳐지는 그 날을 고대하며 기도행진을 시작하자. 주의 놀랍고도 거룩하신 능력이 우리와 우리 민족을 선히 이끌어주시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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