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16:13~20, 벧전 2:4-10, 출 19:1-6
오늘은 주현절 절기 마지막 주일이면서, 다음 주일부터 시작될 사순절(四旬節)기를 대비하는 주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번 주현절에 우리는 과연 지난 6주간 동안 계속된 주현절기 동안에 그리스도의 제자와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서, 어떤 행보를 추구해왔는지를 성찰(省察)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는 반드시 자라고 성숙하며 진보(進步)하는 응답(應答)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당신의 백성에 대한 분명한 기대(期待)는 자람과 발전과 진보에 있다. 이 부분은 육체적인 요구보다는 영적(靈的) 요구이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마음도 자라고, 식견도 자라서 주님의 제자와 백성으로서 자기 역할과 가치를 능히 수행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스스로 전능자이시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시는 일에는 언제나 그가 택하시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앞세워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그를 위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이 택한 사람들에게 당신이 어떤 분인지를 먼저 확인(確認)시키고 각인(刻印)시키는 행동을 하신다. 그러면서, 자신의 계시(啓示)에 온전히 응답하는 자들에게는 거기에 걸맞은 명예와 지위와 권능도 부어 주신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당신을 세상의 구주로 알리고 전하도록 인도하신다. 어찌 보면, ‘하나님 좋고, 나도 좋은 윈윈(win-win)의 행보’를 취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영광의 선택을 받게 될 인물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어떤 모습으로 응답하는 사람들일까? 그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의 세 본문에 따르면, 복음서는 성자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분별하고 신앙 고백할 수 있는 인물을 기뻐하신다(16절). 구약의 성부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주의 말씀을 잘 듣고 약속을 지키는 자를 당신의 소유로 삼으신다(4-5절). 서신서의 성령 하나님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를 믿고 나아가, 그에게 신령한 삶의 제사를 드리는 자들에게 한없는 축복과 영예를 안겨 주신다(4-5절).
복음서를 보자
성자이신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기대감(期待感)이 고조되어 있는 본문이다. 특히 당신 생의 최후가 임박한 실정이었다. 십자가 수난으로 인한 제자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계셨다. 그러기에 중요하게 점검하실 일이 있으셨다. 곧 당신과 함께 지난 3년의 세월 동안을 보낸 제자들 12명은, 당신과의 관계가 얼마나 성장하였는지가 점검하고 싶으셨다. 가장 큰 핵심적 관심은, ‘제자들이 과연 당신을 누구로 인식하고 있는 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꾸준히 그들에게 보여 주셨던 메시아인 당신 자신을(마16:20참조) 과연 제자들이 제대로 보고 살아왔는지, 아니면 또 다른 내용의 인물로서 보고 있는지를 친히 확인하고자 하셨다. 그 시점에서의 주님은 제자들로부터 정답(正答)을 고대하고 계셨음이 분명하다. 만일 제자들에게서 정답이 아닌 오답(誤答)이 나오면, 아직도 미숙한 제자들을 남겨두고 가셔야할 주님으로서는 또 다른 길을 찾아야만 하는 긴박한 상황도 맞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그렇게 부족한 제자들에게 마음이 매이셨나? 예수님에게 제자들은 절대 하찮은 개인이 아니었다. 예수 당신 자신(自身)이요, 지체들과 같은 분신(分身)들이었다. 당신 이후의 시대를 당신의 모습으로, 온 세상과 인류와 교회들에게 끌어안고 구원해야할 대체적(代體的) 존재들이었다. 그러기에, 주님의 제자 사랑은 극진했으며, 엄격하면서도 뜨거웠다. 가룟 유다처럼 완전 배반하지 않는 한, 주님은 그 어떤 제자들도 절대 버리지 않으시고 용납하고 지켜내셨다. 제자들의 가치 제고를 위해서도 총력을 다 하셨다.
제자들이 그런 스승에게서 받은 시험 문제는 이것이었다. ‘사람들이 인자(나)를 누구라 하느냐’(13절). 이에 대하여 제자들은 평소 스승 예수에 대한 세상 여론들로서 쉽게 대답하였다. ‘주님을 세례 요한, 엘리야, 예례미야,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14절). 하지만 예수님의 반응은 당연히 무(無)반응이었다. 주님의 진짜 관심은 그 다음에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진짜 핵심문제가 주님으로부터 제시(提示)되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절).
이것은 당연히 묵직한 질문이었기에, 가볍게 나올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답은 100점짜리고 그 자리에서 꼭 나와야만 하는 현장이었다. 그러면 과연 누가 주님의 그 깊은 바램을 읽고 정확히 답변할 수 있을까-? 드디어 침묵을 깨고 한 제자가 답변했다. 바로 시몬 베드로였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16절).
시몬 베드로가 주님께서 그렇게 고대하던 정답을 올렸다. 인류 역사에서 예수에 대하여 ‘가장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신앙고백(信仰告白)’이 될 증언을 시몬이 그 때에 했던 것이다. 그 신앙고백이 왜 있어야만 했는가? 그 정립(定立)된 고백이 있어야만 비로소 예수 이후의 사도와 교회와 평신도의 시대가 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확립된 신앙고백이 없으면, 예수로 시작된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 운동은 제대로 시작될 수 없었다. 생각해보라! 세상의 그 어떠한 교회가 이 주님을 향한 이 고백을 하지 않고도, 교회로 존재할 수 있는가! 세상의 그 어떠한 사람이 이 고백 없이도,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나 있느냐 말이다! 결코 불가능하다!
만일 이 고백을 외면하는 곳이나 사람을 만나면, 그곳은 절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며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알게 된다(요일4:14-15)! 그러기에, 베드로의 이 고백으로 세상은 그때부터 누가 구원 받고 누가 멸망하게 되는 지를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일 그 누구나 이 부분을 애매모호하게 하면, 그는 경계해야 할 이단(異端)일 뿐이다. 그러기에, 시몬 베드로의 그 고백은 구원의 새 시대를 여는 구체적인 열쇠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몬에게서 그런 놀라운 신앙고백이 가능했던 것일까? 육신(肉身)상의 평소 시몬으로서는 도저히 기대하기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에서, 주님은 깊이 보셨다. 그 시간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시몬 베드로가 성령(聖靈)을 통하여 그런 증언을 할 수 있도록, 큰 은혜와 복(福)이 그에게 임하였음을 발견하신 것이다(17절). 이는 마치 하나님의 첫 백성인 이스라엘 시대를 연 아브라함에게 임한 수준의 복이 그에게 임한 것을 보신 것이다(창12:2-3)
사실 그곳 제자들 중에는 스승이 제시한 물음에 정답을 제출할만한 능력자들은 정말 없었다. 그러기에 그 역사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것은 그 정답을 제시할 인물을 제자들 중에서 선택하고, 성령의 감동 속에 그의 입에서 그런 신앙을 고백하게 하며(고전12:3참조), 그런 영적 환경 속에서 아들 예수로 하여금 그 다음의 십자가의 대속적 사역을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게 하시려는 하늘 아버지의 손길이 개입되었음을 아들 예수께서 분명히 목도(目睹)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이 시몬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17.중).
예수가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세상에 공인하고 선포되는 일에,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 되어 개입하셔서 완성시키신 일은 정말 놀랍다! 이런 상황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만큼 이 베드로의 고백의 비중과 역할이 하늘과 땅에 소중하고 막중한 일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실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開幕)을 예고한 큰일이었다.
그러기에 시몬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성부와 성령의 선택을 받은 베드로를 정식으로 당신 이후에 열릴 <교회 시대>의 리더십의 근원(根源)으로서, 이렇게 공인(公認)해 주셨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盤石) 위에 내 교회(敎會)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19절).
아,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놀라운 권세와 명예인가! 시몬에게 ‘베드로’란 칭호(稱號)를 부여하신(벧전2:9-10) 이 말은 그리스어로 Petra 또는 Petros로서, 하늘과 땅의 허무와 파괴의 그 어떤 세력들도 흔들 수 없는 ‘반석’임을 뜻한다. 당신이 그 반석 위에다 장차 당신의 교회(에클레시아/복음서에서는 2회만 언급된 표현/마18:17참조)를 세우겠다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새 시대의 서기관의 사역이기도한(23:13참조) 하늘이 부여한 교도(敎導)권과 땅을 일깨우는 훈도(訓導)권까지 부여하시면서(이 모습은 행1-12장에서 확인되었다), 예수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天國)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놀라운 권세까지 덧붙여 주셨다(19절). 실로 엄청난 은총(恩寵)의 선택(選擇)이었다!
이 대목을 놓고 세계교회는 논쟁(論爭)은 계속해왔다. 그 축복이 베드로 개인에게 부여된 것이냐, 아니면 그런 신앙고백을 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여된 것이냐는 관점 때문이다. 로마 카톨릭 왕국은 지금도 바티칸 대성당을 베드로 성당으로 규정하면서, 그의 손에 들린 천국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의 권위를 내세운다. 모든 교황들이 사도 베드로의 후예로서, 전 세계 신자들의 신앙문제를 결정짓는 왕(王)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개신교(改新敎)의 입장은 다르다. 주님이 부여하신 반석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신앙고백의 내용(內容)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우리는 사도 베드로 자신이 교회들에게 보낸 목회 서신서에서 드러난 그의 입장과 가르침을 경청하여야 하겠다.
서신서를 보자
베드로서의 내용을 보면, 사도 베드로 자신은 결코 그 자신과 신자들의 역할을 차별하거나 구분하여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 자신이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서 자신도 산 돌이 된 은혜(반석이 된 은혜)를 입는 체험자임을 드러내면서(4-5절 참조), 주님 앞에 나온 신자들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영광스러운 명예와 권세들이 부여되어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즉 예수께 나온 이들은 그의 신령한 집(교회)으로 세워지는 데에 쓰임 받게 될 산 돌이 되고 반석이 되기에,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祭司長)도 되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4-5절). (신령한 제사란 형제 사랑과 하나님 경외로 나타나는 삶의 행실에 의한 삶의 예배를 말한다).
그 뿐 아니다. 사도 베드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산 돌로 부른 이들이 비록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출신들 일지라도, 다음과 같이 이전(以前)과는 다르게 신분과 가치에서 변화 받은 존재임을 확실히 알린다. 그의 증언에는, 오직 은혜의 기적을 통하여 부르심과 세우심을 받은 자신의 사례를 담아내면서, 동시에 호2:23의 예언의 말씀인 ‘자기 백성이 아닌 자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놀라운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더불어 증언하고 있다.
곧 ‘택(擇)하신 족속(族屬)이요 왕(王)같은 제사장(祭司長)이며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所有)된 백성이다. 전에는 백성도 아니었고 긍휼도 얻지 못한 자들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긍휼을 얻은 자이다. 이것은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주의 기이(奇異)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德)을 온 세상에 선포하게 하려고 하신 까닭이다’(9-10절, 호2:23 참조).
다만, 베드로는 오직 그리스도와의 차이 이외에는 그 어떠한 인간적 차별은 배제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 머릿돌로 증언하면서, 그를 상대하는 자들에 따른 주님의 이중적 역할도 전했다. 그를 믿는 자에게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는 보배가 되시지만, 믿지 않고 말씀을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부딪치는 돌과 걸림돌이 되어 그들을 넘어지게 하는 심판(審判)의 주가 되심을 예리하게 증언하였다(6-8절, 사28:16, 롬9:33, 10:11참조)
구약을 보자
출애굽을 통하여 애굽의 오랜 종살이를 청산하고 광야 생활에 접어든지 3개월 되는 어느 날, 성부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런 이스라엘을 향한 당신의 존재가 누구이며, 이스라엘에게서의 하나님은 진정 어떤 분인지에 규정짓는 선언을 하셨다. 이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 위에서, 이스라엘의 새 출발을 추진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하신 것이다(1-3절).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은 어떤 존재였나?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애굽에서 당신의 약속하신 땅으로 옮겨 나르신 여호와셨다(4절). 업어 키우신 대상은 자식과 같았음을 말한다. 절대 사랑하시고 절대 버릴 수 없는 관계에 들어선 대상이란 말이다. 그렇게까지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이것이었다.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6절). 즉, 하나님과 세계 사이에서 증언자요 실천하는 제사장적 사명을 수행하는 민족이 되는 계획을 가지신 것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온 세계가 오직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깨달아, 절대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들으며 주님과의 언약을 지키고 살아야만 했다(5절). 그럴 때, 그들은 여호와의 완전한 소유(所有)가 되어서 반석위에 세운 민족이 되며, 왕 같은 제사장이 되고, 기이한 빛을 받아 온 세상을 밝히는 존재들이 된다(마16:19, 벧전2:9참조). 결국 이런 삼위일체 하나님의 약속과 제사장적 축복은, 이스라엘에게서 사도들과 교회들에게로 흐르고 흘러, 우리에게까지 전해왔다.
결론이다
이제 우리가 섬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을 보다 분명히 하자. 관계를 더욱 뚜렷히 하자. 그래야 우리가 그의 소유가 되고, 왕 같은 제사장적 존재가 되며, 하늘과 땅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신실한 권세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반석위에 선 주의 백성으로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