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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6)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설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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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6)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0-02-11 (화) 23:10 4년전 1956  

본문) 마 14:1~12, 계 12:7-12, 출 6:2-9 

 

지난 주간에는 우리나라에 큰 기쁨을 안겨 준 사건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기생충>(parasite)이 세계영화의 최고의 무대인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 무대에서 무려 4관왕(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이 되어 세계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우리를 황홀하게 만든 일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늘 인간 세상의 어두운 영역을 주제로 고발성 영화를 만들어 세상과 세계무대에 내놓아온 봉준호 감독과 그 배우들, 그리고 영화인들이 이번에 너무도 자랑스럽고 대견한 큰일을 해냈다. 무엇보다도 우리 한국인의 위대한 능력과 역량을 온 세계에 전해 주어서 기쁘기 그지없다 

 

봉준호, 그는 사실 지난 정부시절, 좌파(左派) 연예인으로 블렉리스트에 올라 숱한 불이익을 당했던 인물이기도 하였다. 정부 시책과는 달리, 세상의 어둔 면을 주제 삼아 집권자와 세상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국내에서보다도 온 세계에서 더 인정받는 영화인으로 공인을 받은 것이다. 어찌 보면, 내국인들의 편협함에 대한 심판을 세계가 내린 것이다. 누가 옳고 보다 공감력을 가진 인물인지를 세계가 먼저 평가한 것이었다.   

 

좀 더 생각해보자. <기생충>이란 제목 자체가 결코 유쾌한 주제는 아니다. 오히려 불결한 느낌과 함께 우리가 피하고 싶은 주제이다. 누군가에게 슬며시 들어와 붙어서, 그의 피와 살을 빨아먹고, 그 때문에 자신을 키우며, 나중에는 그를 결국 병들어 무너지게 만드는 훼방꾼이 바로 기생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기생충의 실체를 알고 있기에, 종종 해충약도 복용하며 내 몸에 기생하는 각종 충들을 떼어내고 박멸하려고도 하지 아니한가!  

 

하지만 이번의 봉 감독은 우리 세상의 양극화(兩極化)를 파괴하고자 하는 시도를 영화에 담았다. 화려한 부자 집 네 가족에게 반지하의 냄새나는 곳에 살던 네 가족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가지고 들어와 그들에게 붙어서, 나중에는 그 집안을 완전히 무너뜨려버린다. 나중에는 그런 예상치 못한 비극 속에서 기생하던 가족들은, 화려했던 부자 집이 파괴당한 것과는 달리, 여전히 살아남아 다시 그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체, 맴돌고 사는 모습을 전한다. 기생하는 인생들의 냉혹한 현실과 한계를 여과 없이, 우리 시대의 과제로 고발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 풍조와 세태에 지금 온 세계인들이 아픔의 공감대를 이루고 있기에, 이번에 그토록 온 세계가 아카데미 영화제를 통하여 우리의 영화, <기생충>을 집중한 것이다. 

 

이 봉준호 영화에 대한 평가는 또 한편, 요즈음 우리 한국 정치와 국가적 현실의 수준과도 많이 오버렙 되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국내 사정과 외국 사정이 너무도 다르다. 우리 대통령은 세계 정치인 중에서 최고의 역량을 가진 지도자로 평가를 받는 중이다. 한국 민주주의 수준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하는 외국 단체가 많다. 국민을 보호하고 지켜내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대처도 세계는 지금의 한국의 역량을 놀랍게 평가한다.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모습에서 더욱 돋보이고 있음이다. 묘한 느낌이다. 안에서보다도 밖에서 더욱 인정받고 귀하게 여김을 받는 모습은 그 가치가 클수록 더하다. 마치 예수님의 경우처럼 말이다. 


반면에 국내 극보수들은 연일 현 정권을 독재나 빨갱이 공산주의자 정권이라고 매도한다. 그것도 국내 극보수 교회들이 정치판에 끌려 들어와서 그런 햇 갈리는 혼란을 주도하고 있다. 저 거짓 선지자인 전광훈이 앞장서서, 우리나라가 금방 망할 것처럼, 아주 못된 나라가 된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 그는 문제인만 물러나면 금방 좋은 나라가 열릴 것처럼 떠들어댄다. 국가 경제에 대한 평가도 갈린다. ‘폭망했다’고 저주하기도 하지만, 외부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의 경제적 기반을 긍정적으로 평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정신차려야할 때이고 무엇보다도 분별(分別)을 잘해야 할 때이다. 나쁜 것을 마냥 좋다고만 해도 문제이지만, 좋은 것을 자기들과 다르다고 해서 나쁘다고만 매도하는 것도 더욱 나쁜 것이다. 모두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현 정부는 촛불혁명의 산물이다. ‘국가나 정부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으며 집권한 정부이다. 그러기에 지금의 정부는 이전의 정부의 길과는 결코 같은 방식으로 나아갈 수 없다. 새로워져야하고 갱신되어야 한다. 권력자중심의 국가가 아니라, 국민중심의 국가가 되게 하여야 한다. 우리의 평가는 지금의 정부가 그런 큰 흐름에 충실하고 있느냐는 점에 있다. 물론 결코 완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전과는 정말 다른 길을 가고 있으며 국민 두려운 줄 알면서, 나라의 근간을 바르게 하려고 하는 지를 집중해서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와 역사는 지금 큰 영적 싸움에 들어가 있다고 본다. 어디 나라뿐인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시대의 변화에 올바른 영적 대응을 하고 있느냐는 문제에서 교회도 절대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용에서 하나님의 뜻과 사탄의 뜻이 세상 정치무대에서 정면충돌하고 있고 있는데, 어찌 교회가 초탈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세상 역사와 함께 우리 교회도 커다란 변곡점에 서 있음을 함께 알아야 하겠다. 

 

우리는 지금 이 싸움에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 주저앉느냐 아니면 이미 시작된 지금의 출애굽 여정을 무사히 이루어 약속의 새 땅, 가나안에 들어가느냐를 선택해야만 한다. 저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 애굽을 은혜롭게 건너고도 여전히 애굽의 떡고물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할 뿐이다. 극 보수주의자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던 지도자 모세의 외로움과 결단을 살필 수 있는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다. 

 

많은 이들이 지금을 대 혼란기라고 말한다. 맞다. 하지만 혼란이 없었던 때는 전혀 없었다. 그러니 크게 염려와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마귀의 공세는 나날이 더욱 거칠어지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것은 마귀는 그의 때가 다 되어 가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는가? 

 

주현절 여섯째 주일인 오늘에 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으면 된다. 오늘의 말씀의 주제가 무엇인가? 우리의 생존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성령과 악령의 싸움, 참과 거짓의 싸움에서 올바르게 분별하고 선택하며 처신하라고 하신다. 그 방법은 우리의 마음의 시선을, 하늘에서 펼쳐진 주의 뜻이, 이 땅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이다‘(마6:10)에 두고 사는 일이다. 

 

하늘에서도 있었던 싸움과 그 결과

오늘의 서신서인 계시록(啓示錄)은 우리에게 하늘에서 있었던 매우 놀라웠던 사건을 알린다. 그것은 하늘에 전쟁(戰爭)이 있었다는 소식이다(7절)! 이게 사실이라면, 이는 참 써프라이즈(Surprise)하다! ‘하늘은 본래부터 오직 평화와 기쁨과 승리와 생명만 가득한 곳이다’라는 우리의 보편적인 상식과 전제를 깨뜨리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 정보는 우리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준다. ‘하늘이 누리는 평화와 생명과 기쁨은 악과의 치열한 전쟁에서 얻어낸 열매이지, 결코 그냥 주어지고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이것은 또 다른 영적 메시지도 전한다. 하늘의 그런 영원한 생명과 평화를 기업으로 누리려고 하는 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 그냥 주어지기만 바라는 것이 답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 땅에서부터 어둠과 악의 권세들과의 싸움에서도 이겨낸 승자(勝者)여야 하늘의 그 기업을 상속(相續)할 수 있는 자격자(資格者)가 되리라는 것이다. 그 내용을 더 살펴보자. 

 

1) 그 전쟁은 천사장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큰 용과 그의 사자들 사이에서 발생하였다(7-8)

2) 그 용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면서, 온 천하를 꾀는 자였다(9절,사51:9, 시74:13-14참조, 권고용 서적, <사탄의 생태>.제임스 칼라스. 1979. 컨콜디아사). 

 

☞그 용은 창조 시부터 에덴동산에서만 분열 조장한 것이 아니라, 에덴 밖에서도 꾸준히 분열과 갈등과 대립의 한복판을 주도하였다. 그가 나라를 흔들면 나라가 분열되고, 가정에 들어오면 가정이 분열되며, 공동체와 교회에 들어서면 교회와 교인들도 분열되었다. 그는 수많은 분열과 대립의 이유들을 가지면서, 모두를 갈등하고 혼란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사자로 사역할 때에도 끊임없이 의심하게 하였다(욥기 참조). 종국에는 그는 하나님까지도 의심하고 형제들까지도 의심하고 미워하게 만들었다. 하늘나라까지도 의심 천국으로 만들려했다. 

 

3) 그런 그가 하늘에서 쫓겨났다. 그 용의 부정적 행태를 지켜보시던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세력들의 공격 때문이었다(10-11절). 그들에 대하여 하늘 소리는 이렇게 전한다. 성부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 그의 성자이신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권세, 그리고 성령에 의한 어린 양의 보혈의 힘과 말씀에 의지한 순교자들의 목숨을 내 놓은 믿음의 힘의 연합에 밀려서(10-11절), 결국 그 용의 세력은 천상에서 퇴출되고 말았다(8-9절). 어디로 쫓겼나? 바로 땅으로 쫓겼다! 혼자가 아니라, 용이 그의 하수인(마귀/악마/귀신 등)들과 함께 땅으로 밀려났다. 

 

그러니, 하늘과 그곳에 거하는 자들은 어떠하겠는가? 즐거워하게 되었다(12절). 평화와 생명의 요람이 되었다. 하지만 땅은 어떠하겠는가? 마귀의 최후의 요새(要塞)가 되고 말았다. 더 물러날 곳 없이 마지막까지 그의 ‘꾀는 능력’을 쏟아 부을 무대가 된 것이다. 그게 바로 세상이 격동하고 요란한 참 이유이다. 희망은 바로 여기에서 부터이다. 하늘의 승리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런 위기의 빠진 세상(땅)을 마귀의 활동 무대로만 맡겨 두실 수 없었다는 점이다. 

 

4) 그 점에서 오늘의 계시록 증언은 놀라운 복음을 예고하였다. ‘하늘에서 쫓겨난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憤)내어 세상으로 내려갔다’. 마귀가 먼저  안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기를 내쫓은 하늘의 메시아가 자기들이 머문 땅에까지도 내려와서 자기들을 가만두지 않고 자기 활동을 제어(制御)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단 말이다(12절). 

 

그렇다. 하늘의 패배자인 마귀의 사전 인지(認知)는 정말 놀랍도록 정확했다. 그것은 하늘에서 그들을 쫓아내셨던 그리스도가 그가 인지했던 대로, 나사렛 예수의 몸을 입고 자기가 당시의 유대의 독재자인 헤롯을 앞세워 마음껏 활동하고 있었던 유대 땅에 내려오신 것이다. 그렇다. 즉 예수의 성육은 연약한 인간들에게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었으나, 마귀에게는 사형선고였다. 

 

1) 헤롯의 예수 소문에 대한 반응, 즉 예수는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것이다‘라고 고백한 마음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안에 들어와 있던 사탄의 예지(叡智)에서 나온 것이었다(1-2절 참조). 하늘의 권세자인 그리스도에 대한 감지에서였다. 

 

2) 헤롯에게 예수는 세례 요한을 생각나게 하는 존재였다. 예수님은 요한의 선포를 좇아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면서, 천국의 기쁜 소식을 온 백성에게 선포하셨다. 이런 예수의 천국 선포는 마귀의 추종세력인 헤롯에게는 최대의 공포였다. 이미 그 안에 있는 마귀는 천국의 위력과 그 능력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미 예수 앞에서 쫓기고 있었다! 어디 헤롯뿐인가? 사탄의 모든 하수인들인 악령/마귀/귀신/악한 세력들 모두는 예수를 만나기만 하면, 무조건 엎드려 빌었던 것은 바로 그 이유에서다. 

 

3) 헤롯은 이미 패배감에 떨었다. 선지자 세례 요한의 목을 잘라 순교의 제물로 삼았는데-, 이는 이미 큰 용이 하늘에서부터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교자의 피에는 이기지 못하고 쫓겨난 전적(前績) 때문이었다(계12:11절 참조). 무엇보다도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헤롯에게 참변을 당한 세례 요한에게 찾아오셔서, 그를 당신과 복음을 위한 소중한 제물로 공인하시고 그를 가슴에 품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늘의 권세자는 당신을 위한 희생자를 꼭 품으신다! 그러기에 하늘과 그 안에 속한 자들(성령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즐거워하여야 한다!  

 

성부 하나님의 자기 백성 기억하시고 돌보시기

구약도 성부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배려와 챙기시는 모습을 담고 있다. 400여년 넘도록 대제국 애굽의 노예로 짓눌려 탄식하며 신음하던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본격적인 개입을 시작하셨다. 오직 능하신 하나님 당신만이 어둠과 용의 세력으로부터 그의 백성들을 빼내어 당신의 진정한 백성들로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개입하게한 매체가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탄식과 신음 소리(부르짖음)이었다(5절). 

 

☞ 그들의 신음(탄원)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 조상들에게 일찍이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언약 하신 바’에 대한 약속을 기억케 했다(5절.하). 그래서 주님은 그들 용의 세력들을 형벌로 심판하시고 그 어떤 대가의 속량(贖良)도 치루셔서도, 그들을 그곳에게 빼내어, 당신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이 그들의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고자 하셨다. 이 모든 일들은 모세를 앞세워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애굽의 무거운 멍에에서 빼내고 건지며 약속의 땅에로 인도하여 그 땅을 기업을 삼게 하시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7-8절). 

 

결론이다

하나님은 하늘과 온 땅 전체의 주님이시다. 그런 하나님과 가까이함이 복 중의 복이다. 잊지 말자. 사탄은 언제나 곁에서 우리를 노려본다. 참된 백성으로 사는지, 사이비로 사는지-. 조그만 틈이 보이면, 감시자요 분란자로 우리를 계속 흔들어댄다. 정신을 차리자. 하늘의 패배자인 사탄의 노리갯감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특히 우리 역사 속에 위선과 거짓 세력으로 행세하는 사탄의 행태를 깊이 경계하며 그의 분열책에 넘어가지 않게 살자. 사랑과 기도로, 주님의 자녀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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